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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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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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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山 편지586] 할 수 있거든....평화하라!
▲ 민들레교회 최완택목사
그리스도가 본이 되셔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진정한 평화...
사랑하는 민들레 형제. 자매 여러분,
절기가 어느새 입추(立秋 . 8월7일)를 지나 처서(處暑,8월23일)로 가고 있습니다. 처서는 땅에서 찬 기운이 일어나 더위가 끝나는 절기니까 우리는 시방 폭염 가운데 가을 속으로 들어 온 것입니다. 엊그제 귀뚜라미가 방을 들어왔습니다.
2005년 8월 15일은 광복 60돌입니다. 그리고 분단 60돌입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되던 날에 삼천리 강산과 우리 민족이 북위 38도로 금그어 정확하게 분단되었으나 이제 우리는 광복 60돌 회갑과 함께 분단 60돌 회갑을 맞이한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나라를 분단한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입니다. 그런데 소련은 이미 여러해 전에 망해버려 여러나라로 갈라졌으니 남은 문제는 미국입니다. 우리는 삼천리 강산과 우리 민족의 분단의 책임이 미국임을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문제를 언제까지 남의 나라 탓을 하고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여러분,
시방 남.북으로 분단된지 올해로 회갑이 된 삼천리 강산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통일’입니다. 그러나 그 통일이 온전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진정한 평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진정한 평화’야 말로 지상과제입니다.
진정한 평화의 원형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베소서 2장 14절)
저 기가 막히는 Pax Romana 시절에 성인 바울로는 ‘Pax Christi'를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바쳐 서로 원수가 되어 갈렸던 사람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또 하느님과 화해시켜 이루신 그 평화입니다.
성인 바울로가 말씀한 그리스도의 평화는 예수께서 이세상을 떠나시며너 하신 말씀에 대한 화답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이 세상의 권력자가 가까이 오고있다. 그가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께서 분부하신대로 실천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 하겠다. 자, 일어나 가자.”(요한복음 14장 2~31절)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하여 ‘자 일어나 함께 갑시다!’
그런데 이세상에서 평화를 이루려면 힘이 있어야합니다. 힘이 없는 평화는 처음부터 평화가 아닙니다.
이세상의 평화(Pax Romana, Pax Americana)의 힘은 무력이고 재력이고 기술력이고 학력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한때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긴 하지만 한순간에 반드시 무너집니다. 무너지기만 하면 그 무너짐이 대단히 심합니다.
반면에 그리스도 평화의 진정한 힘은 ‘내려감’입니다.
절대적으로 힘있는 하늘의 하느님이 상대적인 힘밖에 없는 땅의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또 영원이 시간 안의 몸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평화의 진정한 힘은 위에서 아래로 물이 되어 내려오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물과 설령으로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새롭게 보니 “물처럼 위에서 아래로 흐르라”는 뜻으로 깨닫게 됩니다.
평화를 이루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평화는 그 힘을 가지고 위에서 군림하는 거짓 평화입니다만 그리스도의 평화, 곧 하느님의 평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평화입니다.
그대가 성령의 사람이라는 증거는 위에서 아래로 흐를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북산편지 2004. 8. 15 “누가 평화를 이룰 수 있는가?”의 요약입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성인 바울로가 이렇게 권고 합니다.
여러분의 힘으로 되는 일이라면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십시오.(공동번역)
할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개역, 로마서 12장 18절)
이 말씀이 참 고귀합니다. 세상에 여러분(인간)의 힘으로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특히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이신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일이야 그냥 의식을 바꿔 흐르기만 하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의식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면 몸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게 됩니다.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려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 가지 못할 것이다.”(마태오 18장 2절).
하늘나라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평화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어 어른에서 어린이를 흐르는 것입니다. 지식이 풍성한데서 무식한 데로 흐르는 것입니다. 돈이 많은데서 없는 데로 흐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한에 돈이 더 있고 자유가 더 있다면, 그리고 북한에 돈이 없고 자유가 덜하다면 당연히 남한에서 북한으로 흘러야 되겠죠.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그리스도가 본이 되셔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진정한 평화라고 새롭게 배웠습니다. 할 수 있거든, 여러분의 힘으로 되는 일이라면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사십시오. 그런데 사람의 힘으로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결국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사람 구실을 못하고 산 셈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사람답게 살기위하여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흘러 그리스도의 평화, 하늘나라의 평화를 이루어 나갑시다.
우선 한가지만 긴급하게 말씁하겠습니다.
물이 흐르는건 무조건이지만 사람이 흐르는 건 좀 주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헤어져 있는 동안에 둘 사이에는 달라진게 많습니다. 의식을 말할 것 없고 말도, 음식도, 교육방법도 달라진 게 많습니다. 본디한 핏줄이요 한 형제자매임에도 불구하고 10년, 20년, 또는 60년 세월동안 헤어져 있으면서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다름을 진지하게 인정하십시오. 다름을 공부 하십시오. 친구사이에 사흘만 헤어졌다가 만나게 되더라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다름을 인정하게 되면 평화가 이미 반은 이루어진 셈입니다. 그다음에 어떻게 흐르고 흐를 것인가를 생각하고 구한다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우리 하느님께서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습니까?”(누가 11장 13절) 이제 평화의 문을 여는 열쇠는 그대의 손 안에 있습니다. (민)
*운영자 註 : 이 글은 지난 20여년간 오직 손수 필경으로 써서 제작하여 발송하는 [민들레교회 이야기 2005.8.14 제586호]에 실린 내용을 최완택목사님의 허락을 얻어 연재하는 것입니다
당당뉴스 webmaster@dangdangnews.com
▲ 민들레교회 최완택목사
그리스도가 본이 되셔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진정한 평화...
사랑하는 민들레 형제. 자매 여러분,
절기가 어느새 입추(立秋 . 8월7일)를 지나 처서(處暑,8월23일)로 가고 있습니다. 처서는 땅에서 찬 기운이 일어나 더위가 끝나는 절기니까 우리는 시방 폭염 가운데 가을 속으로 들어 온 것입니다. 엊그제 귀뚜라미가 방을 들어왔습니다.
2005년 8월 15일은 광복 60돌입니다. 그리고 분단 60돌입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되던 날에 삼천리 강산과 우리 민족이 북위 38도로 금그어 정확하게 분단되었으나 이제 우리는 광복 60돌 회갑과 함께 분단 60돌 회갑을 맞이한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나라를 분단한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입니다. 그런데 소련은 이미 여러해 전에 망해버려 여러나라로 갈라졌으니 남은 문제는 미국입니다. 우리는 삼천리 강산과 우리 민족의 분단의 책임이 미국임을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문제를 언제까지 남의 나라 탓을 하고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여러분,
시방 남.북으로 분단된지 올해로 회갑이 된 삼천리 강산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통일’입니다. 그러나 그 통일이 온전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진정한 평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진정한 평화’야 말로 지상과제입니다.
진정한 평화의 원형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베소서 2장 14절)
저 기가 막히는 Pax Romana 시절에 성인 바울로는 ‘Pax Christi'를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바쳐 서로 원수가 되어 갈렸던 사람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또 하느님과 화해시켜 이루신 그 평화입니다.
성인 바울로가 말씀한 그리스도의 평화는 예수께서 이세상을 떠나시며너 하신 말씀에 대한 화답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이 세상의 권력자가 가까이 오고있다. 그가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께서 분부하신대로 실천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 하겠다. 자, 일어나 가자.”(요한복음 14장 2~31절)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하여 ‘자 일어나 함께 갑시다!’
그런데 이세상에서 평화를 이루려면 힘이 있어야합니다. 힘이 없는 평화는 처음부터 평화가 아닙니다.
이세상의 평화(Pax Romana, Pax Americana)의 힘은 무력이고 재력이고 기술력이고 학력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한때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긴 하지만 한순간에 반드시 무너집니다. 무너지기만 하면 그 무너짐이 대단히 심합니다.
반면에 그리스도 평화의 진정한 힘은 ‘내려감’입니다.
절대적으로 힘있는 하늘의 하느님이 상대적인 힘밖에 없는 땅의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또 영원이 시간 안의 몸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평화의 진정한 힘은 위에서 아래로 물이 되어 내려오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물과 설령으로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새롭게 보니 “물처럼 위에서 아래로 흐르라”는 뜻으로 깨닫게 됩니다.
평화를 이루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평화는 그 힘을 가지고 위에서 군림하는 거짓 평화입니다만 그리스도의 평화, 곧 하느님의 평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평화입니다.
그대가 성령의 사람이라는 증거는 위에서 아래로 흐를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북산편지 2004. 8. 15 “누가 평화를 이룰 수 있는가?”의 요약입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성인 바울로가 이렇게 권고 합니다.
여러분의 힘으로 되는 일이라면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십시오.(공동번역)
할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개역, 로마서 12장 18절)
이 말씀이 참 고귀합니다. 세상에 여러분(인간)의 힘으로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특히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이신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일이야 그냥 의식을 바꿔 흐르기만 하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의식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면 몸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게 됩니다.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려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 가지 못할 것이다.”(마태오 18장 2절).
하늘나라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평화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어 어른에서 어린이를 흐르는 것입니다. 지식이 풍성한데서 무식한 데로 흐르는 것입니다. 돈이 많은데서 없는 데로 흐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한에 돈이 더 있고 자유가 더 있다면, 그리고 북한에 돈이 없고 자유가 덜하다면 당연히 남한에서 북한으로 흘러야 되겠죠.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그리스도가 본이 되셔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진정한 평화라고 새롭게 배웠습니다. 할 수 있거든, 여러분의 힘으로 되는 일이라면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사십시오. 그런데 사람의 힘으로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결국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사람 구실을 못하고 산 셈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사람답게 살기위하여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흘러 그리스도의 평화, 하늘나라의 평화를 이루어 나갑시다.
우선 한가지만 긴급하게 말씁하겠습니다.
물이 흐르는건 무조건이지만 사람이 흐르는 건 좀 주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헤어져 있는 동안에 둘 사이에는 달라진게 많습니다. 의식을 말할 것 없고 말도, 음식도, 교육방법도 달라진 게 많습니다. 본디한 핏줄이요 한 형제자매임에도 불구하고 10년, 20년, 또는 60년 세월동안 헤어져 있으면서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다름을 진지하게 인정하십시오. 다름을 공부 하십시오. 친구사이에 사흘만 헤어졌다가 만나게 되더라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다름을 인정하게 되면 평화가 이미 반은 이루어진 셈입니다. 그다음에 어떻게 흐르고 흐를 것인가를 생각하고 구한다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우리 하느님께서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습니까?”(누가 11장 13절) 이제 평화의 문을 여는 열쇠는 그대의 손 안에 있습니다. (민)
*운영자 註 : 이 글은 지난 20여년간 오직 손수 필경으로 써서 제작하여 발송하는 [민들레교회 이야기 2005.8.14 제586호]에 실린 내용을 최완택목사님의 허락을 얻어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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