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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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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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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예수님을 찿아온 젊은 부자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부자 청년은 자신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유대 종교의 신앙생활이나 재물이나 가족들의 관계나 주변의 친척이나 자기를 알고 지내는 사람들 과의 좋은 교제나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었는데 단 한가지 자신에게 확신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영생이었습니다.
이것을 고민 할수록 마음의 번민이 자신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놀라운 능력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시고 지헤로운 말씀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신다는 것을 사람들로 부터 들었습니다.
그 청년은 예수님이 사람들 로부터 조금 한가한 틈을 타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대답을 하시기 보다는 오히려 질문을 하십니다. 너가 계명을 지켰느냐? 고 물으십니다. 이 질문에 부자 청년은 다 지켰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러면 너의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명하십니다. 그 말씀에 부자 청년은 시험이 들어 예수님은 뒤로하고 떠났습니다. 마태복음 19장,누가복음 18장 말씀입니다.
그 부자 청년이 할수 있는 것은 율법 신앙 생할 까지는 할 수 있었습니다. 계명을 행위로 지키는 율법적인 신앙 수준에서는 가능 했습니다.(사실은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사람은 없음. )
그는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것의 본질을 알지 못했을 뿐 만 아니라 받아들이기 싫어 했습니다. 예수님은 계명의 본질(하나님의 의도)을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예수님을 따라오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함께 동행했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을 따라 오라고 하십니다. 이 청년은 율법신앙 으로는 지켰다고 생각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에는 걸려 넘어 지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모든것을 부인하고 믿고 따라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말씀하실때 우리는 무었을 생각합니까? 다른 사람과 비교해 떨어지지 않은 정도의 신앙 행위를 하면 주님의 요구에 따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까? 열심히 기도하고 신양 생활을 잘하면 영적인 사람으로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신앙행위이라고 생각하는 주일예배, 새벽기도 기도모임, 심방예배, 헌금. 십일조 드리는 것 부흥집회가기, 산 기도 가기 그렇습니다.
행위로 드리는 신앙생활도 중요합니다. 이것은 기본적인 신앙생활로 열심히 해야 겠지요. 그러나 주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셨다면(열심도 필요하지만) 지금 당신에게도 주님은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한가지는 오히려 모든 것 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하는 신앙생활 외에 가장 중요한 것, 믿고 순종하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순종은 결단과 행함이 요구 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모든것 이삭을 하나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제단에 바치려 했을때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의로 인침해 주셨습니다.
고난을 두려워하는 신자들은 십자가를 싫어하고 피할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며 십자가를 피해가는 설교를 좋아하고 십자가 없는 신앙으로 현세의 축복과 영생을 얻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이미 그리스도께서 2000년전에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십자가의 공로는 저절로 얻으지고 나는 그리스도의 피로 의인이 되었고 구원을 받았다. 이렇게 스스로 자신의 구원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 속단해버립니다.
십자가는 선택입니다. 선악과와 생명나무의 열매는 선택으로 주어졌습니다. 우리에게도 십자가는 선택으로 스스로 주님 앞에 나아가 결단해야 하는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장차 주님 앞에 설때에 변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을 가는 신앙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믿음이 요구 됩니다. 넓은 길 보다는 좁은 길을 선택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르지요. 그 길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해야 하는 위험과 두려움과 외로움과 고통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기는 자에게는 주님이 주시는 영광에 참여 할수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당신과 함께 동행하시길 원하십니다. 언제라도 우리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로 가기를 원한다면 나의 것은 버리고 주님을 따르려는 각오와 회개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그리고 좁은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고난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구원이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이글을 읽으면서 뭐 이렇게 해야되나 쉽게 생각하는 쪽이 좋지---이렇게 생각하고 싶겠지만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길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다름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옛사람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는 부활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요행과 요령으로 자신이 남보다 우선적인 위치만 점령하면 기득권을 누릴수도 있지만 십자가의 길은 요행이나 자신이 원하는 평탄한 고속도로를 승용차를 타고 가는 길이 아닙니다.
이것을 고민 할수록 마음의 번민이 자신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놀라운 능력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시고 지헤로운 말씀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신다는 것을 사람들로 부터 들었습니다.
그 청년은 예수님이 사람들 로부터 조금 한가한 틈을 타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대답을 하시기 보다는 오히려 질문을 하십니다. 너가 계명을 지켰느냐? 고 물으십니다. 이 질문에 부자 청년은 다 지켰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러면 너의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명하십니다. 그 말씀에 부자 청년은 시험이 들어 예수님은 뒤로하고 떠났습니다. 마태복음 19장,누가복음 18장 말씀입니다.
그 부자 청년이 할수 있는 것은 율법 신앙 생할 까지는 할 수 있었습니다. 계명을 행위로 지키는 율법적인 신앙 수준에서는 가능 했습니다.(사실은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사람은 없음. )
그는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것의 본질을 알지 못했을 뿐 만 아니라 받아들이기 싫어 했습니다. 예수님은 계명의 본질(하나님의 의도)을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예수님을 따라오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함께 동행했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을 따라 오라고 하십니다. 이 청년은 율법신앙 으로는 지켰다고 생각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에는 걸려 넘어 지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모든것을 부인하고 믿고 따라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말씀하실때 우리는 무었을 생각합니까? 다른 사람과 비교해 떨어지지 않은 정도의 신앙 행위를 하면 주님의 요구에 따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까? 열심히 기도하고 신양 생활을 잘하면 영적인 사람으로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신앙행위이라고 생각하는 주일예배, 새벽기도 기도모임, 심방예배, 헌금. 십일조 드리는 것 부흥집회가기, 산 기도 가기 그렇습니다.
행위로 드리는 신앙생활도 중요합니다. 이것은 기본적인 신앙생활로 열심히 해야 겠지요. 그러나 주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셨다면(열심도 필요하지만) 지금 당신에게도 주님은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한가지는 오히려 모든 것 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하는 신앙생활 외에 가장 중요한 것, 믿고 순종하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순종은 결단과 행함이 요구 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모든것 이삭을 하나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제단에 바치려 했을때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의로 인침해 주셨습니다.
고난을 두려워하는 신자들은 십자가를 싫어하고 피할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며 십자가를 피해가는 설교를 좋아하고 십자가 없는 신앙으로 현세의 축복과 영생을 얻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이미 그리스도께서 2000년전에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십자가의 공로는 저절로 얻으지고 나는 그리스도의 피로 의인이 되었고 구원을 받았다. 이렇게 스스로 자신의 구원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 속단해버립니다.
십자가는 선택입니다. 선악과와 생명나무의 열매는 선택으로 주어졌습니다. 우리에게도 십자가는 선택으로 스스로 주님 앞에 나아가 결단해야 하는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장차 주님 앞에 설때에 변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을 가는 신앙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믿음이 요구 됩니다. 넓은 길 보다는 좁은 길을 선택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르지요. 그 길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해야 하는 위험과 두려움과 외로움과 고통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기는 자에게는 주님이 주시는 영광에 참여 할수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당신과 함께 동행하시길 원하십니다. 언제라도 우리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로 가기를 원한다면 나의 것은 버리고 주님을 따르려는 각오와 회개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그리고 좁은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고난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구원이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이글을 읽으면서 뭐 이렇게 해야되나 쉽게 생각하는 쪽이 좋지---이렇게 생각하고 싶겠지만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길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다름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옛사람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는 부활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요행과 요령으로 자신이 남보다 우선적인 위치만 점령하면 기득권을 누릴수도 있지만 십자가의 길은 요행이나 자신이 원하는 평탄한 고속도로를 승용차를 타고 가는 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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