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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예수님 앞에 사람의 '영적 리더십'은 없다.

수필칼럼사설 오세용............... 조회 수 4737 추천 수 0 2006.05.21 11:29:38
.........
출처 :  
사람에게 '영적 리더십'은 없다. (1)  

지금으로부터 수십년전 대학과 대학원에서 행정학과 경영학을 배웠습니다.
행정학의 기초는 조직관리입니다. 그 조직을 관리하기 위한 필수적인 방법이 바로 리더십입니다.
경영학에서도 리더십을 다룹니다. 접근 방향은 다르지만 어떻게 하면 사람을 효율적으로 움직여 조직에 도움이 되게 하느냐는 리더십의 원리는 동일합니다.

그렇게 리더쉽을 배우고 다시 신학교에 들어갔는데 신학교 과목중에도 리더십이 있었습니다.
과목 이름은 리더십인데 실제로는 그앞에 한마디가 더 붙습니다. '영적' 리더십입니다.

그런데 과목을 들으며 놀라게 된 것은 그 영적 리더십이란 과목에 기초가 되어야 할 것은 분명 예수님의 리더십인데
그 예수님의 리더쉽은 겉 껍질뿐이고 실질적으로 그속을 꽉 채우고 있는 것은 바로 세상에서 배웠던 리더십이었습니다.
행정학과 경영학에서 배웠던 복잡한 리더십 이론들이 신학책에서는 마치 저자들의 독창적인 이론인양 포장을 하고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조직을 관리하기 위하여 쓰임받던 이론들이 어느새 교회에서 영적인 면을 관장하는 도구로 둔갑하고 나타난 것입니다. 그 변화를 어찌 설명해야 할지?
그래서 지금 각종 교회주변에서 펼쳐지는 리더십 세미나에서는 행정학에서 쓰이는 리더십 이론을 누가 먼저 예수라는 이름을 대입하여 바꿔 놓느냐, 열거되는 각종 사례들을 어느 누가 멋지고, 그리고 감쪽같이 성경귀절로 바꿔놓느냐 하는 경쟁을 하는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세속적인 리더십은 예수님이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리더쉽을 빌려오게 된다면 영적 리더십이 세속화될 뿐만 아니라 결국 예수님의 ‘섬김’을 ‘리더십’이란 미명하에 훼손시키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리더십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을 리드하여 조직을 융성하게 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섬기는 리더십입니다.
그래서 그 리더십은 사람을 리드하지 않습니다. 다만 섬길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적 리더십’그리고 '리더십’이란 용어가 교회에서 쓰이는 것을 반대합니다.
아니, 용어뿐만 아니라 예수님 앞에서 사람의 '영적 리더십' 자체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목회자는 '영적 리더쉽'으로 교인들을 리드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손잡고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섬김을 실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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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리더십은 이제 어디로 튈까?  
사람에게 영적 리더십은 없다 (2)  

영적 리더십의 영역이 점점 확장일로를 걷고 있다.
맨처음에는 순수한 ‘영적 리더십’만을 다루던 영적 리더십이 이제는 교인들의 행동과 의식 전반을 커버하는, 더 나아가서 교회전반을 아우르는 무소불위의 도구로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리더십이란 열차에 타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고 목회에 무언가 부족한 것 같은 그러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름조차 애매한 수상쩍은 단체, 출신과 경력이 어딘지 모르는 수상쩍은 강사들, 그리고 전혀 수상하지 않는 강사들이 하는 리더십 세미나 광고는 계속해서 목회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수상쩍은 강사든 수상쩍지 않은 강사든 요즈음 시행되는 리더십 세미나, 그리고 서점의 한 코너를 너끈히 꿰차고 앉은 ‘영적 리더십’ 책들, 그 내용을 살짝 들여다 보자.

맨 처음에는 경영학의 리더십 이론을 살짝 차용해서 영적 리더십에 사용하던 ‘영적 리더십’ 주창자, 강사님들이 이제 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가 보다. 아예 발을 벗고 나섰는데 이제 성경을 가지고 영적 리더십을 강의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중의 많은 분들은 아주 세상적(?)으로 성공한 성공학 강사로 나섰다. 그래서 교회안과 밖을 넘나들며 강의를 하다보니 리더십이란 말 앞에 조심스럽게 붙여져 있던 ‘영적’이란 말도 어느새 없어져 버렸다.
아예 그 경계를 없애버려 책 판매량과 수강자의 대상을 늘이려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용이 도저히 영적이라는 말을 넣기에 부끄럽기 때문일까? 하기야 영적이지 않은 책과 강의를 교회안으로 가져 오기가 미안하기도 했겠지.

이제는 그런 강사 목사님들이 세상 학문인 경영학속에서의 리더십 이론과 리더십 학자들의 이름을 교회 밖에서도 교회안에서도 줄줄 읊어댄다. 교회 성도들 중에 학교에서 행정학 혹은 경영학을 배운 사람들의 수가 얼마나 되겠는가? 대다수의 교인들은 그런 말과 그런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들일 것이니 그저 신기하게 들을 수 밖에.

다음은 시인이기도 한 어느 목사님의 <30초리더학>이란 책에 나오는 리더십 학자들과 이론들이다.
리더십의 개념을 설명하는 기본적인 이론과 이름들인데 한참을 읽어야 한다.
<오스왈드 샌더스 , 버나드 몽고메리, 존 해가이, 리차드 허치슨, 찰스 심프슨, 데오도어 루즈벨트, 트루먼, 쿤즈와 오도델, 카즈와 칸, 데이비스, 파트레이닝, 테드가 말하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특성, 이나모리의 회사 경영 원칙, 잭 웰치의 경영 철학, 아이젠하워의 자신감있는 리더십, 스티븐 코비의 참된 리더의특성>
이제 교회에서 이런 이름 모르면 교인노릇도 힘들게 되었다.

이제 앞으로 예상되는 것은 그분들의 큰 폭으로의 영역확장이다. 어디로 ‘영적’ 리더십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갈지?
그래서 바라기는 리더십 앞에 붙어 있는 ‘영적’이라는 말을 확실히 떼주기를 부탁하는 것이다. 내용 또한 영적이 아니라는 것도 강의 시작이나 책 서문에서 알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첫번째 생각되는 것은 그분들이 이제 완전히 ‘성공학’ 장사로 나서는 경우이다.
이제 그 내용을 웬만큼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니 굳이 ‘영적’이 아니라는 것을 감출 필요가 없다.
그래서 성공이라는 말을 가져다 강의 제목이나 책 제목에 과감히 붙일 수 있는 것이다.
모목사는 이런 제목으로 설교 제목을 삼았다. <예수라는 성공의 물감으로 실패를지워버려라>
이런 성공학 강의로 벌써 스타(?) 강사 목사님이 나왔다 한다.
이렇게 나선 분들이 앞으로 쓰실 책들의 제목으로는 이런 것들이 예상된다. 책 제목에 ‘성공’과 ‘예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당신의성공을 원하신다. >, <실패한 인생이 예수때문에 리더로변했네>.

또 성공학 장사로 나서지 않더라도 그분들은 서로 차별화를 해야만 명성이 유지되고 살아남을 수 있으니 자꾸만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여 선을 보일 것이다.
리더십에 자꾸만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내고 또 리더십의 주입 대상도 자꾸 새로 만들어 내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가장 손쉬운 것은 아직 ‘영적 리더십’ 책에 사용되지 않고 묻혀 있는 진주같은 성경인물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 인물들을 찾아내어 갈고 닦아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 이 때에는 누가 먼저 그런 사람들을 꺼내어 놓느냐가 관건이다. 그래서 그런 인물들이 다 떨어지게 되면 마리아의 남편 요셉도 언젠가 빛을 볼 때가 올 것이다.
마리아 남편 요셉의 <관용의리더십>, 그 정도면 책 한권은 얼마든지 메꿀 수 있는 소재이니 말이다.

그 다음에는 성경속의 인물이 아닌 믿음의 본을 보인 사람들이 대상이 될 것이다.
빌리 그래함은 <빌리그래함 리더십의비밀>이란 책이 이미 나왔지만, 아직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무궁무진하다.< br><요한 웨슬레 리더십>, <윌리암 캐리리더십>.
신앙적 인물말고도 <히딩크 리더십>, <이순신리더십>이 지금 시중에 나와 있다.
야구 시합 때문에 뜬 <김인식리더십>도 책으로 나와 있는지 궁금하다.
<황우식리더십>도 아주 좋았는데 불행하게도 황교수가 낙마하는 바람에 써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앞으로 가능한 것으로는 <장금이리더십>도 있고, 서울시장으로 누가 되던 그분의 이름을 딴 리더십이 등장할 것이다.

또 신앙소설 등 신앙을 토대로 하는 문학작품이라던지 간증집에서 뽑아내는 리더십 이론도 가능하다.< br> <천로역정 리더십>,<하늘에 속한 리더십>,<갈대상자리더십>

유행어와 접목시키는 방법도 있다. 2%가 부족하다, 라는 말이 유행인데 이렇게 만들어보자
<당신에게 2% 부족한리더십을 채워라> 꼭짓점 댄스가 유행이니 <꼭짓점 리더십>도 괜찮다.
요즈음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이며 무언가 내용이 있어 보이는 말인 ‘패러다임’, ‘시너지 효과’ , ’ E Q’ 도 있다.
그래서<리더십의 패러다임을 바꿔라>, <시너지 효과리더십>, 도 좋을듯 하다.
또 이건 어떨까? <목적이 이끄는리더십>, 너무 속보이는 제목인가?

지금 영적 리더십의 분야가 확장되어 이제 ‘시간관리’까지 그 범위를 넓혀왔다. 그 다음에는 무엇일까?
성공학 속의 리더십 교과서를 들여다 보면 그 해답이 보인다. 분야를 세분화한 리더십이 다양하게 등장할 것이다.
리더십에서 관장하고 있는 분야들, 그리고 각종의 기법등이 영적 리더십에 이름을 붙혀 나타내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시간관리, 비젼관리, 목표관리, 커뮤니케이션, 대화의 법칙, 팀 리더십.
또 ‘윈윈 전략’도 있고 ‘고객 감동’은 얼마나 감동적인 단어인가? 그래서 <성도 감동리더십>도 언젠가 나올 것이다.
이미 시간관리를 다룬 책들은 많이 나와 있다.
리더십으로 한몫하는 한모 목사도 <성경에서 배우는 리더의 시간관리 시간의마스터>라는 책을 출판했다.

또 다른 방법은 다른 분야와 통합하는 방법이다. 접목을 시키는 방법이다.
세상이 흘러가는 것을 유심히 – 이분들은 세상의 트랜드를 잘 포착한다- 보고 있다가 무엇인가 뜨고 있고 관심사가 되고 있다면 그것에다가 얼른 리더십을 걸치는 방법이다. 일례로 요즈음 관심분야인 ‘영성’과 합치면 ‘영성 리더십’이 나온다. 이에 대하여는 이미 책이 나왔다. <시대가 원하는 영성리더십> (앨런 넬슨).
멘토링과 합할 수도 있고 비젼과 합할 수도 있다. 그래서 < 리더십위기에서 멘토를만나다>이라는 책은 이미 나왔다.
< 리더십위기에서 멘토를만나다>라는 책 제목에서 얻을 수 있는 힌트도 있다.
<멘토링의 위기에서리더십을 만나다>, <교회침체의 위기에 리더십을 만나다>

또 시대상과 맞물려 연결한 리더십도 있을 수 있다.
무언가 내용이 있어 보이는 말 ‘포스트 모더니즘’과 합해 보자. <포스트 모던시대의 리더십>
‘21세기’라는 말은 이미 식상할 정도로 많이 써먹었다. <21세기의 리더십>
그리고<이미지 시대의 리더십> 또 <디지털 시대의리더십>도 가능하다.
또 이것은 어떨까? <시대를 초월하는리더십>. 이런 정도의 제목이면 22세기까지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다음에 꼭 나올 분야로서는 유모어가 있다. < br> <유모어로 배우는 리더십>, <성경에서배우는 유모어 리더십>, <예수는 유모어로승부했다>
이미 유모어로 설교를 하시는 분도 있으니 그 정도는 충분히 예견되는 일이다.

또 이제 대상을 특화한 리더십 책들이 나올 것이다. 읽는 대상을 세분화하여 나누는 일이다.
수강 대상, 독자층을 나누자면 여성, 남성, 청년, 아동, 대학생, 직장 새내기 등등 한이 없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리더십에도 아주 무궁무진한 보고가 성경 속에 있다.
가장 손 쉬은 것은 성경속의 여성 리더들을 발굴해 내는 일이다.
아직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여성 지도자는 누구일까? 드보라, 에스더, 마리아 등등 너무 많다.
그래서 <에스더 리더십>, <드보라리더십> 등등 무궁무진하다.
그 다음에는 신앙의 모범을 보인 인물들이 있을 수 있겠다. 누가 있을까? <테레사리더십>도 훌륭하다.
그런 의미에서 다이아나 황태자비는 아까운 인물이다. 조금만 조신했더라면 훌륭한 제목으로 쓸 재목이었는데 말이다.

이번에는 여성을 대상으로 나누어 보자. 얼마든지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다. 미혼, 기혼, 어머니, 주부, 아내등등.
그래서 이런 리더십 책들이 등장할 수 있다.< br><주부도 리더십이 필요해! >,<리더십은 부엌에서 나온다>, <어머니의 리더십>, <착한 주부 리더십>, <신랑길들이기 리더십>, <초보 아내의 가정 리더십>

그 다음 청소년들을 겨냥한 것도 역시 나올 것이고 청년들을 향한 것도 나올 것인데 이미 나온 책도 있다.
<청년리더의조건>(전병욱) . 또 유소년을 향한 분야도 남아 있다.
이런 제목은 어떨까?<리더십은 주일학교에서부터 길러진다>, <미래 리더들을 이렇게키워라>
이미 나온 책도 있다. <친구가 따르는 아이들의 리더십 비결 20가지>(김현숙)

또 이런 것들은어떨까? 노년층을 겨냥한 <황혼의 리더십>,<리더십은 황혼에 피어난다>, <리더십은 황혼에아름답다>. 이런 책을 펴내면 각 교회에서 운영하는 노인대학의 교재로 쓰기 딱 좋을 것이다.

교회의 형편에 따라 나눠보는 것도 가능하다.
요즈음 가정교회에도 관심이 많으니 <가정교회로 풀어보는 리더십>도 괜찮을듯 하다.< br><셀 목회 리더십>도 좋고, 교회성장이라는 말만 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분이 많으니 <성장하는 교회의리더십>도 괜찮다. 이런 책들은 벌써 나왔겠지.
이렇게 책들을 만들다 보면 언젠가 그 소재가 떨어지게 될 것이고 그 때에는 분명 이런 책도 나올 것이다.
<초보 신자리더십>. 초신자도 리더로 키워야 할 것 아닌가, 라는 명분하에.

이렇게 생각해보니 아직도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교회내 영적 리더십 주창자들의 계속적인 분발을 기대해 본다.
단, 부탁이 있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제발 리더십이란 말 앞에 ‘영적’이라는 말을 빼주기 바란다.
가능하다면 ‘이 책과 강의 내용은 전혀 영적이지 않습니다’ 라는 말을 넣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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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우리더러 으뜸이 되라 하셨나?  
사람에게 영적 리더십은 없다 (3)  

리더십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리더십의 성경적 근거는 어디일까?
그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여 리더십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 근거는 마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그 중에서도 43절과 44절의 말씀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또 다른 분은 마가복음 9장 35절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있기도 하다.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명성훈 목사는 그의 책 <성경속의 리더십 마스터키>에서 마가복음 10장 43-44절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지도자가 되고 싶은 열망은 지극히 좋은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성서적이다. 주님께서도 그것을 인정하셨다.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이라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크고자 하는 마음이나 으뜸이 되고자 하는 마음 그 자체가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다. 얼마든지 크고 으뜸이 되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 방법이 좋아야 하고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 성경의 방법은 세상과 정반대이다.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의 리더십은 세상의 리더십과 정반대의 방법론을 가르칠 때가 많다. 하나님 나라는 “거꾸로 왕국( the upside –down kingdom”이다. > (39페이지)

길버트 빌지키언 박사는 그의 책 <공동체0>에서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하고 있다.
<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막 9:35) 예수님은 첫째가 되려는 욕망이 잘못이라고 책망하시지 않으셨다.> (166페이지)

과연 위의 해석대로 예수님이 우리더러 세상 사람들보다 큰 사람이 되라고 하셨을까? 으뜸이 되라고 하셨을까?
지도자가 되고 싶은 열망을 갖는 것이 과연 명목사의 말대로 성경적일까? 아니다. 그들은 성경해석을 잘못하고 있다.
명목사가 인용한 성경말씀 막 10:43-44절 두절만 놓고 보면 마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으뜸이 되라 하셨고 첫째가 되라 하신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첫째가 되기 위하여는 섬겨야 한다고 하여 마치 첫째가 되는 조건으로 섬김이라는 항목을 열거한 것처럼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게 되는 배경을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에게 와서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라고 청하니 예수님은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신다.
이때 두 제자와 예수님 사이를 감싸던 분위기는 얼마나 따뜻했을까?
예수님은 그들이 무엇을 말하든지간에 다 들어줄 듯한 자애로운 음성으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랑하는 제자들이 와서 새삼스럽게 무언가 청을 하겠다니 예수님이 어찌 모르는 채 할 것인까?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이든지 다 들어 주겠다는 뉴양스조차 풍겼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이 그들로부터 기대하던 요청사항에는 다음과 같은 것은 제외되어야 한다.
어떤 것이 예수님이 예상하신 요청사항이 아니었을까?
먼저 제외시킬 것은 요한과 야고보가 예수님에게 다가오기 전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것과 관련된 것이다. 그들이 말을 꺼내기 방금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던가?
바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죽을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그러니 예수님의 죽음, 남을 위하여 희생하는 죽음과 반대되는 이야기는 생각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 말씀을 하실 때에 과연 제자들은 어떤 의미로 받아 들였기에 그 말이 끝나고 나자 야고보와 요한이 와서 그런 요청을 하게 되었을까?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가셔서 돌아가시겠다는 말을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실 때에도 그들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누가 첫째가 되는가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했던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생각지 않았던 것으로는 앞 장인 9장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는 문제- 제자들 가운데 누가 크냐 하는 문제- 도 예상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이미 그 문제에 대하여는 예수님이 한번 딱부러지게 짚고 넘어가지 않았던가?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막9:35)
그렇게 한번 말씀하신 것이니 어찌 예수님이 요한과 야고보의 입에서 그런 요청이 나오리라고 상상이나 하셨겠는가?
그러니 그들의 요청 -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 은 예수님의 기대를 산산히 깨어 버리는 것이었다.
자, 그런 상황이었으니 그런 말을 들은 예수님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아마 자기 귀를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그러나 예수님이 잘못 들은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래도 자기 귀를 의심하면서 예수님은 깊은 한숨을 쉬었을지도 모른다. ‘한심한 것들 같으니라구!!!’
입에서는 한숨이 나오고 그래서 눈길조차 그렇게 속없는 제자들에게 차마 향하지 못하고, 먼 산을 바라보시면서 속으로 어찌할꼬!! 하는 한탄을 계속 하셨을 것이다.

이윽고 한번 목을 가다듬으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하여 정색을 하고 말씀하신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이렇게 질문하신 것은 그들이 요청한 것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하심이었다.
그러나 멍청하기 이를데 없는 두 제자는 아무런 생각없이 불쑥 대답한다. “할 수 있나이다”
이런 대답에 예수님은 너무 너무 안타까워서 이렇게 대답하신다.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문제는 다음에 다시 일어났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에게 그러한 청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다른 제자들이 다시 분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다시 부르신다. 부르셔서 말씀하신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이말이 무슨 말인가? 세상 권세있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은 권세로 부리며 자기들 마음대로 몰아가지만은 너희는 그러지 마라는 말씀이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 다음 이어질 말의 전제가 된다. 해석의 방향이 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말을 다시 한번 해석해 보자.
“너희들이 그렇게도 첫째가 되고 싶고, 으뜸이 되고 싶으냐? 그러냐? 정, 그렇다면 그래 일등이 되어라, 첫째가 되어라. 으뜸이 되어라. 단, 남들보다 크고자 하는 자는 남을 섬겨야만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자, 그래도 너희가 첫째가 되고 싶고 으뜸이 되고 싶으냐? 어리석은 것들아, 정신차려라.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일등이 되어서, 크게 되어서 섬김을 받으러 온게 아니잖느냐? 도대채 몇번이나 말해 주어야 알아듣겠느냐? 나는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서 섬기러 왔단 말이다. 다시 말해 줄까? 죽기 위해 왔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이 말씀 속에서 섬김을 말씀하셨지만 그 섬김은 제자들에게 으뜸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으로 언급하신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속에서 그 행간에 숨은 뜻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친히 성경의 행간 읽기 모범을 보여주신 적이 있다.
바로 마가복음 10장의 앞부분에 나온다. 예수님이 모세의 글에서 그 행간을 읽으신 장면이다. (막 10:2- 9)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바리새인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묻는다.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모세의 말한 바 이혼을 하되. 이혼증서를 써주라는 것을 어떻게 해석하시는가?
예수님의 해석은 이혼을 허락한 것에 강조를 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오죽했으면 모세가 그런 말을 했겠는가 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해서 조그만 흠이 있어도 아내를 버리고 있으니 그렇게 하지 못하게끔 이혼증서를 써주도록 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혼증서를 써주라 하면 그것이 귀찮고 힘들어서라도 아내 버리기를 그치지 않겠느냐?
예수님은 그렇게 모세의 말씀 행간을 읽으셨다. 그것도 문제되는 말씀과 같은 장에서이다.

그러면 그런 예수님의 행간 읽기를 우리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는 우리들이니 한번쯤 예수님의 성경 해석 방법을 따라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자, 그렇게 한번 따라 해보자. 우리는 예수님을 열심히 본받아야 하니 말이다.

사람들이 와서 우리에게 묻는다.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것이 옳습니까?”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라는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해석의 원칙은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으뜸되라고 말씀하신 것에 강조를 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오죽했으면 예수님이 그런 말을 하셨겠는가 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해서 서로들 잘 났다고 하면서 으뜸이 되기를 원하고 있으니 그렇게 하지 못하게끔 으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 것이라는 해석이다.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 그것이 귀찮고 힘들어서라도 으뜸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겠는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오죽이나 사람들이 으뜸이 되려고 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크고자 하려 했기에 예수님은 정 그렇게 하려거든, 일등이 되고 싶으면 섬기는 일로 으뜸이 되라고 하셨을까?

자, 그런데도 예수님의 말씀속에서 한두절을 쏙 골라내어 예수님이 우리더러 첫째가 되어도 좋다고 하셨다며 으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해석은 과연 제대로 된 해석인가?
명목사는 이어 “얼마든지 크고 으뜸이 되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 방법이 좋아야 하고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 성경의 방법은 세상과 정반대이다.”라고 말한다.

과연 방법만 세상 것과 정반대로 하면 되는 것일까? 목적이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면 아무리 방법을 세상 것과 반대로 한다 할지라도 이미 전제가 틀렸다. 목적 자체가 틀렸으니 아무리 방법이 다르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정말 하나님 나라가 ‘거꾸로 왕국’ (the upside –down kingdom) 이라고 한다면, 방법만이 아니라 목적도, 목표도 세상 것과는 달라야 한다.
우리들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그냥 ‘섬김’이다. 지도자가 되기 위하여 하는 ’섬김’은 지양해야 한다.

궁금한게 하나 있다.
리더십 주창자들은, 리더 양성을 위하여 밤낮으로 수고하는 분들은 그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마태복음에 있는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혹시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도자로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마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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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영적' 리더십.  
사람에게 영적 리더십은 없다 (4)  

지금까지 세번에 걸쳐서 영적 리더십에 대하여 글을 썼는데 그 글들을 읽고서 이런 의문을 가지시는 분이 있을 것이다.
대체 ‘영적 리더십’이 어떤 면에서 ‘영적’이지 않는가?
앞으로도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오늘은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영적 리더십이 ‘영적’이지 않은 이유는 영적 리더십 이론이 빌려 쓰고 있는 리더십 이론의 한계에서 태생적으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두개의 리더십 이론을 구분하기 위하여 편의상 ‘영적 리더십’과 ‘일반 리더십’으로 부르기로 하자. )
일반 리더십 이론은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문제의 해답을 사람에게서 찾는 이론이다.
일반 리더십 이론은 사람을 보는 눈이 성경과 다르다. 따라서 일반 리더십 이론에서 사용하는 도구를 빌려다가 쓰는 영적 리더십 이론은 태생적으로 일반 리더십 이론의 한계를 고스란히 안고 갈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영적 리더십 이론을 계속 접하다 보면 어느새 사람을 보는 시각이 성경과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예를 한번 들어보자. 요셉을 아시는지? 기독교 신자라면 모두 다 잘 알고 있는 요셉이란 인물이 있다.
요셉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먼저 성경에서 그 평가를 찾아보도록 하자.
성경을 보면 요셉의 일생을 기록, 평가한 부분이 많이 있는데 먼저 스데반(Stephen) 집사의 시각을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스데반 집사는 죽음을 앞두고 행한 그의 설교에서 요셉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한다.

<열두 족장들은 요셉을 시기하여 그를 이집트에 종으로 팔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계셨습니다.
요셉은 그 곳에서 많은 어려움을 당했으나 하나님께서 그 때마다 구해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지혜를 주셔서 이집트 왕 파라오에게 사랑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집트 왕은 요셉을 총리로 삼아 이집트와 왕궁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
(아가페 성경, 행 7:9-16)

스데반 집사는 요셉이 어려움을 많이 당했으나 그때마다 하나님이 구해주셨다고 한다.
즉, 스데반 집사는 요셉이란 인물을 해석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강조하고 있다.
요셉이 모진 어려움을 이겨낸 그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그 원인을 요셉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든가 인격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찾고 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다. 요셉이 어려움을 겪을 때에 하나님이 그 때마다 구해주셨다. 또 하나님이 요셉에게 지혜를 주셔서 애굽의 총리 자리에 오르게 하셨다, 이런 식이다.

이게 스데반 집사의 시각이다. 어디 스데반만 그런가? 시편 기자도 마찬가지이다.
<주께서 그 땅에 기근을 내리시고 모든 식량 공급을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먼저 한 사람을 보내셨는데 그가 종으로 팔렸던 요셉이었습니다.> (시 105:17)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셨다는 시각이다.

그런가 하면 요셉 자신도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창 45:7-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 50:18-21)

그렇게 요셉 자신은 물론, 스데반 집사도 또한 시편 기자도 요셉의 삶의 모든 고비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눈으로 인생을 보는 시각이다. 이런 시각을 ‘영적’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일반 리더십 이론에 의하면 그런 시각은 전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왜냐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분석 도구(tool)에는 애초부터 하나님이 들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또 한명의 스데반인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는 그의 책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요셉을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구약 성서 내용에는 유태인의 기독교 전통에 대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17세의 나이로 형제들에 의해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얼마나 요셉이 죄없는 자신을 팔아 넘긴 형들과 노예상인들의 나쁜 짓을 원망할 수 있었으며, 보디발의 종으로서 자신의 불쌍한 신세를 보고 괴로워할 수 있었을까’ 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셉은 주도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될 수 있다’고 결의하며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그는 얼마 안가서 보디발의 가사를 돌보는 관리자가 되었다. 그는 큰 신망을 얻었기 때문에 보디발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게 되었다. 어느날 요셉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지만, 불의와의 타협을 거부하여 결국 13년간이나 부당한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주도적이었다. 즉, 그는 ‘영향력의 원’에 집중하였고, 의존적 기대보다는 ‘될 수 있다’의 결의로 최선을 다했다. 얼마 가지 않아 요셉은 감옥에서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후 요셉은 마침내 이집트에서 왕 다음가는 제 2인자가 되었다. > ( 120페이지)

인용한 스티븐 코비의 말에서 몇가지만 짚어보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말이 코비의 결론이다. 영향, 이 말에 언더라인을 해야 한다.
왜냐면 일반 리더십 이론의 핵심이 바로 영향력이기 때문이다.
일반 리더십을 여러 각도로 정의할 수 있지만 가장 지지를 많이 받고 있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 조직의 목표달성을 위해 어떤 개인이 조직 구성원이나 조직의 행위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이끌어 가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른 말로 말하자면 리더십은 ‘영향력’인 것이다. 그래서 일반 리더십 이론에서 리더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스티븐 코비에 의하면 요셉은 주변에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서 리더의 역할을 한 것이 된다.

그러면 코비는 왜 요셉이 주변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가? 그는 몇가지로 그것을 분석해 내고 있다.
첫째는 요셉이 주도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이며 둘째는 그가 ‘될 수 있다’고 마음 먹었으며
세째로 그는 열심히 일했으며 네째로 불의와의 타협을 거부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네가지가 바로 요셉이 영향력을 가지게 된 이유이며 요셉이 지니고 있었던 지도자의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일반 리더십에서는 요셉이 가지고 있었던 그러한 특성(혹은 성격)들을 추출하여 지도자가 가져야 할 자질로 확대하여 일반화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일반 리더십 이론에서 흔히 사용하는 리더의 조건을 추출해 내는 방법과 절차인 것이다.
그래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주변에 영향을 끼쳐야만 하는데 그 영향을 끼치기 위하여는 주도적이야 하며, 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며, 열심히 일하는 근면한 사람 그리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야만 한다는 공식이 나오는 것이다.
여기 어디에 하나님의 은혜가 개입할 수 있겠으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가 개입할 수 있겠는가?

영적 리더십 이론에서는 일반 리더십 이론으로부터 위와 같은 분석 도구를 빌려쓰고 있다.
그렇게 해서 영적 리더십 이론이든 일반적 리더십 이론이든 ‘인간적인 시각’으로 덧 칠해진 안경을 쓰고 리더십 이론을 전개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영적 리더십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사용하고 있는 도구때문에 비록 성경에 나오는 인물을 분석할지라도 ‘영적’이 되기 위한 필요 충분 조건인 ‘하나님의 시각’으로부터 자꾸만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님이기도 한 어느 강사님의 책 <30초리더학>에서 하나님의 주체적 역사하심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테드가 말하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특성, 이나모리의 회사 경영 원칙, 잭 웰치의 경영 철학, 아이젠하워의 자신감있는 리더십, 스트븐 코비의 참된 리더의 특성 등이 줄줄이 언급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영적 리더십 주창자들이 ‘인간적인 시각’으로 패러다임의 변동이 되어 버린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실례이다. 그렇게 해서 일반 리더십 이론에서 사용하는 도구를 사용한 결과 영적 리더십은 말만 영적이지, 결코 영적이지 못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이제 그렇게 ‘영적’이지 못한 영적 리더십을 자꾸 전파한다면 교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나님의 시각’ 대신에 자기도 모르게 ‘인간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 수많은 ‘영적 리더’들이 교회안에 가득차게 될 것이다.
과연 영적 리더십 주창자들은 교회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일까?
자기들이 말하는 리더십이 영향력을 끼치는 과정이라고 진정 생각한다면 이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자기들이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영향력은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만 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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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말고 하나님을 보여 주세요  
사람에게 영적 리더십은 없다 (5)  

이번에는 영적 리더십을 주장하는 측에서 요셉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강준민 목사 하면, 그 분야에서 한 몫을 단단히 하는 목회자이다. 그 분의 책을 아무 것이나 펼쳐 보면 ‘비젼’, ‘영성’, ‘리더십’ 이란 말들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분의 책들은 위의 세가지 말들이 장마다 면마다 녹아 있어, 그래서 책장을 넘길 때 마다 손에 묻어나는 느낌이 든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분이 요셉에 대하여 설교한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는 좋은 예가 된다.

강목사는 그책의 서문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저는 요셉과 더불어 꿈을 성취한 사람들의 생애를 연구하면서,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 (8페이지)
여기서 공통점이란 바로 요셉 그리고 꿈을 성취한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들을 말한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각자 가지고 있는 특성을 뽑아낸 다음에 그것 중에서 공통분모를 추려 냈다는 말이다.
어디서 듣던 이야기 아닌가? 바로 일반 리더십 이론에서 쓰는 도구를 쓰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오해하지 마시라. 강목사가 뽑아낸 특성 중에는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온 것도 있다.
그러나 무려 35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보다도 강목사가 ‘인간적인 시각’으로 경도된 리더십 도구를 가지고 뽑아낸 요셉의 특성들이 더 많이 담겨져 있다.

강목사가 요셉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요셉은 꿈꾸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꿈이 있기에 믿음도, 기도도 가능하며 유혹을 이기는 힘도 생겨난다. 그래서 요셉의 꿈은 만능이다.
잠을 잘 때 꾸는 꿈이 어떻게 해서 비젼을 말하는 꿈으로 해석되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정도 성경해석의 자유로움쯤은 강목사에게 허락해 주도록 하자.
그러나 근본적인 것(으뜸- 믿음, 기도)과 부수적인 것(딸림- 꿈)이 거꾸로 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요셉이 믿음이 있었기에 미래를 향한 기대(꿈이라는 말은 하지 않으려 한다)를 가지고 있었고, 기도했기에 미래를 소망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믿음과 기도의 힘으로 성적 유혹도 이겨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게 꿈을 대 전제로 하여 강목사는 요셉이 가지고 있는 특성들을 다음과 같이 추출해 낸다.
한가지 목표에 집중한 사람, 환경에 적응한 사람, 소박한 성품, 성실한 사람, 자기 위치를 지키는 사람, 봉사 지향적 성격, 실력을 쌓았던 사람이 바로 요셉이다. 이것들이 65페이지와 66페이지, 단 두페이지에 열거된 요셉의 성격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또 있다. 결단력, 낙천주의, 강인함( 68)을 가지고 있었으며,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104), 모든 환경을 배움의 기회로 만드는 자(106), 기다림을 통해 성숙해진 사람 (109), 기회가 올 때 붙잡은 사람 (119), 용서했던 사람 (160), 자기 관리를 잘한 사람 (180)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요셉은 영낙없는 슈퍼맨이다, 공중을 날지 못하는 것만 빼고는. (괄호안은 해당 책의 페이지)

그런데 책의 마무리가 되는 부분이 다가오자 강목사는 갑자기 태도를 바꾼다. 요셉은 믿음으로 시작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338) 그리고는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은 요셉처럼 꿈을 꿉니다, 라고 쌀짝 말을 바꿔 놓는다.
지금까지는 꿈이 있어 믿음도 가능하고 기도도 가능하다고 했는데 갑자기 이제 와서는 으뜸과 딸림을 바꿔놓는다. 아니다, 제대로 자리매김한 것이겠다. 이 부분이 강목사의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믿는 자의 정상적인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인 17장의 타이틀은 ‘믿음의 꿈은 최후까지 승리한다’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마지막 장에서는 꿈이란 말이 별로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타이틀과 중간에 몇마디 등장하고는 다른 장 같으면 ‘꿈’이란 말이 자리 잡을 자리에 ‘믿음’이란 말이 대신 앉아 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믿음’이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믿음이 요셉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 끈기있는 사람, 인내하는 사람,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336)
이어서 강목사는 요셉의 일생을 몇 단어로 정리한다. 꿈꾸는 사람, 믿음의 사람, 은혜의 사람.
그렇다. 이것으로 요셉의 인생을 정리할 수 있다. 강목사는 책의 마무리를 잘 했다.

그런데 하나 찜찜한 것이 있다.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가 되는 요셉을 왜 그렇게 그의 전 ‘생애를 연구하면서, 꿈꾸는 자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려고 애를 썼을까?
그 이유는 그가 바로 리더십 이론에 경도되었기 때문이다.
요셉의 생애를 주관했던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기는 하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중간에 ‘사람의 특성’을 뽑아내려고 자기도 모르게 애를 쓰는 것은 바로 리더십 이론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어떤가? 강목사의 요셉 연구분석 결과가 전편에서 인용한 스티븐 코비의 것과 유사하지 않은가?
당연한 일이다. 사용하는 분석 도구가 같으니 결과가 유사하게 나오는 것이다.
스티븐 코비의 분석에 의하면 요셉이 성공하게 된 것이 요셉자신의 노력 덕분이다. 거기에는 전혀 하나님이 개입하실 여지가 없다, 적어도 스티븐 코비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그런데 강목사의 분석에 따른다 할지라도 결론은 거의 흡사하지 않은가? 그렇게 훌륭한 성격을 가진 요셉이 애굽의 제2인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강목사의 이 설교들을 들은 사람에게 요셉은 목표에 집중한 사람, 환경에 적응한 사람, 소박한 성품, 성실한 사람, 자기 위치를 지키는 사람, 봉사 지향적 성격, 실력을 쌓았던 사람이었으므로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 요셉의 위대한 ‘특성’들을 닮고 싶지 않을 ‘리더’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하면 자기도 일국의 총리가 될지도 모르는데 ….
그래서 요셉의 특성들이 마음속에 잔상이 되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리더는 이러 저러한 특성을 가진 사람이므로 나도 그러한 특성을 가지기 위하여 노력하자는 결단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게 바로 하나님을 보여주지 않고 요셉을 보여준 결과이다.

문제는 그것만으로 끝나는게 아니다. 또다른 문제가 설교단에서 흘러나온다.
먼저 강해 설교의 대가인 브라이언 채플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성경속의 인물을 설교할 때 주의할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설교자는 한 (성경속의 인물) 개인의 경건한 신앙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그 배후에 역사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혜와 인도하심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경건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성취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그들에게 은혜를 내리시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사랑을 베푸셨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때로 그들은 매우 연약하고 죄 중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 역시도 우리가 선포해야 할 설교의 대상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성도들은 이런 인물들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만큼 충분히 성숙한 사람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전적인 은혜를 내리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설교자들은 성경속의 인물을 소재로 하여 설교할 때마다 '그 인물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전면에 나와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여줄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보여주고자 하는 유혹으로부터 자기자신을 지켜내야만 한다.

그러나 리더십 주창자들은 어떻게 접근하는가? 물론 리더십 이론에 따라서는 하나님이 주신 카리스마를 강조하기는 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면 이미 하나님은 개입할 여지가 없이 그 인물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전면에 등장해 버린다. 그래서 성경속의 인물들은 영적 리더십 주창자들에 의하여 ‘영적 거인’이 되기도 하고 ‘신앙의 위인’이 되기도 하며 설교단에서 하나님을 가리우는 인물로 활용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리더십 이론이 설교 강단에 입힌 폐해이다.

결론적으로 강목사같은 영향력을 지닌 목회자가 하나님을 보여주는 대신 요셉을 멋있게 청중들에게 보여주는 설교를 하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두가지로 일이 벌어진다.
설교단 바로 아래에서 듣는 사람들은 그런 요셉의 인간적인 특성을 닮으려고 결단하게 되고 강단 멀리에서는 그런 영감있는(?) 설교를 해보기로 결단하는 목회자들이 늘어난다.
어느 유명 설교자가 한번 성경 본문을 어떤 식으로 영감있게 해석하여 설교를 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 비슷한 내용의 설교가 여기 저기서 발견된다. 인터넷이 광범위하게 보급된 후에는 더더욱 그렇다. 무수한 아류 설교와 아류 설교자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깊은 영성과 비전을 가진 강목사가 영향력을 그렇게 끼치는 것이 그래서 오히려 안타깝다.
해서 언젠가 같은 저자로부터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라는 제목 대신 “꿈꾸게 하시는 분이 오시는도다”라는 책이 나오기를 기대해 보는 것은 무리일까? 요셉말고 하나님을 보여주는 책 말이다.

입력 : 2006년 05월 21일 00:11:17
오세용 인디아나 에반스빌 제자 침례교회 담임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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