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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지키십시오

잠언 이한규 목사............... 조회 수 1100 추천 수 0 2014.12.29 23: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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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잠15:1-11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461) 2014.9.29 

마음을 지키십시오 (잠15:1-11절)


< 감정문제가 중요합니다 >

 사람에게 생기는 많은 문제는 기분이 나쁜 감정문제에서 생길 때가 많습니다. 기분이 나쁘면 죽음도 불사합니다. 사느냐 죽느냐 보다 감정과 기분이 먼저입니다. 공동체의 문제도 개인의 감정문제가 원인일 때가 많습니다. 감정의 상처가 잘 처리되지 않으면 점차 육신의 상처로 진전됩니다. 암 선고를 받은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2-3년 전쯤에 마음의 큰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마음의 상처가 암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사람에게 빵문제만큼 중요한 것이 감정문제입니다. 감정문제를 해결하려면 진솔한 대화가 중요합니다. 대화할 때 온유한 태도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고 호칭을 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의를 갖춰 호칭하면 남들 보기에도 좋고 서로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됩니다. 또한 자기 의사를 설득력 있게 말하는 기술도 필요합니다. 좋은 말과 맞는 말을 해도 대화 기술이 부족하면 대화가 더 큰 문제를 일으킬 때가 많습니다.

 물론 매일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보면 아내 입에서 좋은 말이 나가기 힘듭니다. 그래도 분노하기 전에 왜 남편이 집을 편안하게 여기지 않는가에 대해서도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잔소리 때문에 의무적으로 일찍 들어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역할에 이상이 없는지 잘 살핀 후에 세련된 대화로 문제해결을 꾀해야 합니다. 귀가가 늦고 술이 잦으면 남편도 심리적으로 편치 않다는 뜻입니다.

 어느 날, 공부를 많이 한 부부가 몇 년을 팽팽하게 대립한 채 살다가 한편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자 쌓인 응어리가 풀렸습니다. 그 간단한 말 한마디가 그토록 어려웠던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똑똑함이 문제를 더 일으킬 때가 많습니다. 어떤 부인은 똑똑한데 남편의 마음이 딴 여자에게 가 있습니다. 그 부인은 이해되지 않아서 계속 생각합니다. “어느 모로 봐도 내가 그 여자보다 나은데 어떻게 된 일인가?” 외형의 문제보다 감정의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똑똑해서 잘 따지면 인간관계가 더 힘들어집니다.

 요즘 결혼생활은 권태기란 말이 생기기도 전에 첫날밤부터 문제라고 합니다. 결혼 직후부터 주도권 쟁탈전이 시작됩니다. 나쁜 친구들 탓도 큽니다. 신랑 친구들이 말합니다. “야! 정신 차려! 처음부터 여자를 꽉 잡아야 해!” 신부 친구들도 말합니다. “남자를 잘 길들여야 해. 처음부터 다 해주면 평생을 꼼짝 못하고 노예처럼 살아야 해.” 결국 첫날부터 전쟁이 벌어져 팽팽하게 맞서다가 계속 어려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어떤 부인은 자랑삼아 얘기합니다. “남편이 저를 3년 동안 졸졸 따라다니며 결혼해 달라고 해서 할 수 없이 결혼해주었어요.” 남편을 깎아내리는 한심한 자랑입니다. 그런 너절한 스토커 남편과 사는 자신은 얼마나 한심한 여자가 됩니까? “사실은 제가 더 좋았어요.”라고 해야 배우자도 올라가고 자신도 올라갑니다. 망신스러운 일을 자기 자랑의 재료로 삼으려는 무지가 문제입니다. 자기를 높일 수 있는 진짜 좋은 지혜로운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상대를 높여주는 것입니다. 상대를 높여주면 자신도 높아집니다.

< 살면서 지켜야 할 3가지 >

 자신의 소중한 인생을 소중하게 지켜가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지켜야 할 것이 많지만 특별히 다음과 같은 3가지를 잘 지켜야 합니다.

1. 입술

 말은 생각 이상으로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말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려면 말을 유순하게 잘해야 합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그치게 해도 과격한 말은 분노를 일으킵니다(1절). 본문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거역하는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하지만 순종하는 말은 생명을 살린다는 뜻입니다. 짐승은 단단한 이빨이 더 힘이 있지만 사람은 부드러운 혀가 더 힘이 있습니다. 유순하게 말하면 손해만 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장면을 다 보고 심판도 내리고 상급도 주십니다(3절).

 또한 말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려면 말을 지혜롭게 잘해야 합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이 구절에서 “미련한 것을 쏟는다.”는 표현은 때와 장소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말을 내뱉은 것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지식이 많은 것보다 지식을 유익하게 사용하고 또한 지식을 선하게 잘 표현하는 지혜가 더 중요합니다.

 말을 유순하고 지혜롭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말을 잘 받는 것입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 부모의 말을 잘 들어야 지혜를 얻는다는 말씀이지만 더 나아가 기본적으로 말을 잘 들어야 지혜도 생기고 사랑도 받고 축복도 받습니다. 더 나아가 마땅한 책망이라면 책망도 잘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마땅한 책망을 싫어하면 죽음의 형벌이 따른다고 했습니다(10절). 말을 잘 듣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살면서 자주 목격하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말을 잘 듣기를 요구하는 사람일수록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설교자나 부흥사 중에도 자기 말을 잘 들으라고 유난히 강조하는 사람들을 보면 강단에서 내려와서도 혼자 말하는 것만 좋아하고 잘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모순입니까? 결국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은 ‘자기 말을 잘 듣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처럼 말을 잘 듣는 것이 중요하지만 때로는 말을 너무 잘 들어서 인생이 망가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을 가지고 주의하며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보십시오. 솔직하게 말하면 그들 중에는 인간적으로 따뜻하고 헌신적이고 성품 좋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계산하고 재고 따지고 뺀질거리는 사람이 일반 정통 교인보다 오히려 더 적다는 느낌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기본 성품이 헌신적인 성향이 강하고 남의 말을 순진하게 잘 들으니까 교주의 거짓말까지 잘 듣고 몸과 마음과 물질을 맹목적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결국 악한 교주와 그런 교주 밑에서 양떼들의 고혈을 같이 빨아먹는 핵심 중간 리더 및 이너써클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분별력을 가지고 잘 들어야 합니다. 분별력이란 말을 잘 안 듣고 무조건 의심부터 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잘 듣는 것이 참된 분별력입니다.

2. 믿음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어도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되느니라.” 이 구절에서 잠언 기자는 정당하게 물질을 얻는 사람을 의인으로 보고 부당하게 물질을 얻는 사람을 악인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진짜 의인은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 함을 받는 사람입니다. 결국 이 말씀은 믿음이 없이 얻은 물질은 인생의 고통을 가중시키지만 믿음이 있으면 물질적인 소득 이상의 다른 많은 보물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부당하게 얻은 재물도 사람을 고통에 빠뜨리지만 하나님이 없이 물질만 있는 것도 사람을 고통에 빠뜨립니다. 결국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믿음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어떻게 믿음을 잘 지킵니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일주일에 한번 돌아오는 주일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진실한 예배와 기도는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 8절 말씀을 보십시오.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이 구절에서 ‘악인의 제사’는 형식적으로 드리는 제사를 뜻합니다. 또한 입술로는 더러운 말을 하면서 예배할 때 그 입술로 찬송과 기도를 드리는 예배를 뜻합니다. 그런 예배는 하나님이 미워하시지만 정직한 자의 진실한 예배와 기도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축복의 산실입니다.

 하나님은 겉포장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사려는 행동을 미워하십니다. 한참 잘못해 놓고 미안하니까 아내의 환심을 사려고 선물 사주는 것과 같은 식의 예배를 하나님은 악인의 제사로 보십니다. 참된 예배는 예물이 아닌 믿음에 좌우됩니다. 멋대로 행동하면 하나님의 미움을 받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9절).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이뤄지는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3. 마음

 본문은 곳곳에서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왜 입술을 잘 다스려야 합니까? 그래야 마음이 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4절). 지혜로운 자는 입술이 지혜롭게 활용되어 좋은 지식을 전파시키지만 미련한 자는 마음이 어리석게 됩니다(7절). 입술로 아무리 잘 믿는다고 외쳐도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깊은 속마음을 다 아십니다.

 본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스올과 아바돈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리요.” 스올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거하는 곳’을 뜻하고 아바돈은 ‘스올보다 더 깊은 죽음의 장소’로서 신약성경에서는 무저갱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결국 스올과 아바돈도 하나님 앞에서 다 드러난다는 것은 하나님은 사람의 깊은 속마음까지 다 아신다는 뜻입니다. 그 마음을 잘 지켜야 인생도 지켜집니다.

 영혼을 무너뜨리고 가정 행복을 파괴하고 인간관계를 깨뜨리는 가장 큰 요인이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은 ‘자존심’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존귀하게 보는 거룩한 자존심은 필요합니다. 자존심이 강한 것 자체는 손해가 될 때도 있지만 유익이 될 때도 있습니다. ‘자존심’보다 더욱 큰 문제는 자기의 자격을 스스로 문제 삼는 ‘자격지심’입니다. 자격지심을 극복하지 못하면 마음의 상처가 끊이지 않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청년들은 돈과 권력과 신분이 높은 가정 출신의 배우자를 꿈꿉니다. 그러나 자격지심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그 꿈은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결혼 후 전체 가족이 모일 때마다 다른 가족의 말 한 마디나 태도 하나가 자신의 마음을 찌르는 것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괜한 상처들이 생기고 배우자 가정에 적대감을 가지게 되면서 결국은 배우자에게까지 적대감을 가지게 될 때도 많습니다.

 그런 상처를 방지하려면 자기 수준에 맞게 배우자를 찾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런 소극적인 태도보다는 계속 자기계발에 힘쓰고 자격지심을 잘 극복하면 됩니다. 어떻게 자격지심을 극복합니까? 가장 중요한 것이 겸손 훈련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기에 상처를 덜 받습니다. 결국 능력과 자질은 수준에 못 미치는데 교만을 극복하지 못해서 자격지심이 생기고 그 자격지심이 많은 새로운 문제를 낳는 것입니다.
 어느 날, A목회자가 목회자 모임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도 평소처럼 B목회자가 계산적인 똑똑한 태도를 가지고 절대 손해를 안 보는 얄팍한 행동을 했습니다. 어떤 목회자는 아주 어려운 형편에서도 꼭 필요하면 굶을 것도 각오하고 내는 반면에 B목회자는 형편이 어렵지 않은데도 잘 낼 줄 몰랐습니다. 그처럼 ‘자리 문제’에는 관심이 많고 ‘내는 문제’에서는 늘 미꾸라지처럼 쏙쏙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의 욕심이란 한이 없구나! 목회자가 되어도 저렇게 나눌 줄 모르다니.”

 그 날, A목회자는 인간관계 및 공동체 생활에서 ‘낼 줄 아는 것’과 ‘나눌 줄 아는 것’의 중요성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며칠 후 주일에 ‘내는 삶’과 ‘나누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 설교하며 “미꾸라지 인생을 살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 설교는 헌신의 책임을 외면하는 어떤 성도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찌르려고 한 설교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설교에 실제로 평소에 나눌 줄 모르고 계산적으로 살았던 한 성도가 찔렸습니다. 특히 ‘미꾸라지 인생’이란 표현에 큰 상처를 받고 결국 교회를 떠났습니다.

 자격지심이 심한 성도는 자기가 못하는 것에 대한 설교가 나오면 그 설교가 자기를 찌르기 위한 설교라고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자격지심이 더 심해지면 ‘희망을 전하는 흔한 설교’까지 힘들어하는 자기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설교라고 오해하고 ‘희망 고문’이란 사탄이 지어낸 기발한 용어까지 등장시키며 냉소합니다. 그처럼 자격지심을 가지고 자기를 초점으로 맞춰 자기를 찌르려고 혹은 자기에게 희망을 주려고 설교한다고 하며 앙심을 품거나 냉소할 때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마음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 자격지심을 버리십시오 >

 저의 온라인 새벽기도 회원은 목사님만 3천 명이 훨씬 넘습니다. 그 중에는 몇 천 명 교회의 목사들도 있고 몇 명 교회의 목사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을 같이 만나보면 서로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언뜻 보면 큰 교회 목사들이 작은 교회 목사들을 무시해서 그럴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처음에는 잘 어울리다가 작은 교회 목사들이 별 것 아닌 일과 말로 상처를 입고 그 상처를 토로하니까 정신적인 피로를 느끼면서 점차 서로를 멀리하고 저절로 끼리끼리 어울리게 될 때도 많습니다.

 교회 밖에서는 그 원리가 더욱 냉혹하게 적용됩니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과 급이 맞지 않는 사람이 다가와서 귀찮게 하다가 “상처를 입었다! 자기를 무시한다!”고 불평하는 일이 자주 생기니까 더 상대해주지 않고 멀리합니다. 또한 성공한 사람을 지렛대로 삼고 자기의 존재 의미를 높이려고 별로 친하지도 않으면서 “나도 그 사람을 압니다!”라고 성공한 사람의 이름을 팔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일들을 많이 겪다 보니까 성공한 사람은 자기를 지렛대로 이용하려는 계산적인 사람들을 더 상대하기가 싫고 그런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귀찮게 생각합니다. 또한 성공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시간을 너무 뺏기니까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사람과는 만남과 대화를 피하거나 거절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면 거절당한 사람은 그것이 또 상처로 쌓입니다. 그렇게 본인이 스스로 상처를 당할 수밖에 없는 길로 가는 경우도 얼마나 많습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체급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만나주지 않는 사람에 대해 앙심을 품을 필요도 없고 더 이상 사람을 억지로 찾아다닐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그 시간에 하나님 붙잡고 자기 발전에 힘쓰는 것이 낫습니다. 남의 아까운 시간을 빼앗으려고도 하지 말고 자기의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려고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자신을 만나주지 않아도 자신을 무시한다면서 상처를 받는 자격지심은 더욱 없게 해야 합니다.

 가끔 보면 큰 교회 다니면서 자기 아플 때 담임목사가 모른 척 하고 부목사만 보낸다고 시험에 든 사람들도 자주 봅니다. 큰 교회 출석을 본인이 선택하고서 그런 마음을 가진다면 그것은 자기중심적인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입니다. 큰 교회 담임목사는 물리적으로 사람들을 다 만나줄 수 없기에 중요한 사람만 찾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님은 원하면 다 찾아와주시지만 사람은 원한다고 다 찾아와주지 않습니다. 그것이 차별일까요?

 이너써클(inner circle)과 아우터써클(outer circle)의 차이를 두는 것은 차별이 아닙니다. 그것을 차별로 몰아가는 것은 눈물로 씨를 뿌릴 때 구경꾼이었던 사람을 즐겁게 추수할 때 주인공처럼 여겨달라는 얘기밖에 안 됩니다. 그런 상황 이해도 없이 큰 교회에 등록하고서 큰 교회 목사에게 “왜 나를 챙겨주지 않느냐? 왜 성도를 차별하느냐? 모든 성도가 다 중요한 것 아니냐?”고 하면서 상처를 입는 것은 자격지심 문제에 매몰되는 것입니다.

 큰 교회 목사에게 모든 성도가 다 중요하니까 다 찾아달라고 하면 그 목사는 개인생활, 가정생활, 말씀 준비 등을 다 희생해야 합니다. 그런 상황을 이해하고 누군가 자신을 챙겨주지 않는 일로 시험에 들지 마십시오. 더 나아가 사람 만나는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마십시오. 차라리 그 시간에 하나님을 찾고 골방과 공부방을 찾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가끔 보면 거창한 명함을 만들어 자기 체급을 억지로 올려서 체급 높은 사람과 어울리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도 거짓된 삶입니다. 중요한 것은 묵묵히 자신의 체급을 높여서 체급이 높다고 여기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모습이 차별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기 위치와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태도는 자신의 현재 모습이 초라해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존감과 자신감은 결코 잃지 않는 것입니다. 자존감과 자신감이 없이 자격지심으로 스스로 망가지는 길로 간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몇 년 전에 저희 건물 1층의 한 섹션에 50대 초반의 부부가 분식센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남편이 우리 교회에 자주 와서 대화도 나눴습니다. 남편은 자신이 수학을 잘하니까 교회 학생 중에 원하는 학생이 있으면 공짜로 가르쳐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저를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정체가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삼성 부장으로 있다가 퇴직하고 몇몇 사업을 했다가 망해 무일푼이 된 분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처남 도움으로 분식센터를 열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홀 서빙도 하며 떡볶이 배달도 했습니다. 그리고 가끔 삼성 전직 부장 출신 모임에 나가서 “저는 지금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데 잘 운영됩니다.”라고 꽤 잘 나가는 사업가처럼 행세했습니다. 그러다가 가게 앞에서 우연히 역시 삼성 부장 출신인 우리 교회 이 집사님을 만나 정체가 밝혀졌습니다.

 그때부터 상당히 자존심상해 하며 일의 의욕을 잃고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한숨을 푹푹 쉬면서 저를 자꾸 피했습니다. 결국 얼마 후에 꽤 장사가 되던 분식센터를 약간의 웃돈을 받아 넘기고 이사 갔습니다. 살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고 초라해질 수도 있는데 초라한 현재의 모습이 과거의 동료들에게 알려졌다는 사실 때문에 자격지심을 가지고 스스로 무너져 외톨이의 길로 가는 것을 보면서 정말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때로는 죽을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격지심이 심한 사람은 그 사실도 억지로 감추려고 합니다. 특히 평소에 잘못을 많이 저지른 사람은 “저렇게 못되게 행동하니까 암이 걸렸지.”라는 말이 돌까봐 더 자신의 병을 감춥니다. 그래서 치유와 축귀와 은사를 내세우며 신처럼 군림했던 이단 교주들이 자기 병을 극도로 숨기는 것입니다. 어차피 알려질 것인데 끝까지 마음을 낮추지 않습니다. 그만큼 자격지심은 무서운 것입니다.

 어떻게 자격지심을 극복할까요? 십자가 신앙이 필요합니다. 누가 자기를 우습게 알면 우습게 아는 것으로 자기 존재의미를 찾으려는 그에게 “내가 보탬이 되어 좋다.”는 담대하고 넓은 희생지심을 가져야 합니다. 즉 남을 더 희생시키려는 세상에서 내가 더 희생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지 “십자가를 앞 사람에게 지우고 너는 뒤따라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를 안지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워서 십자가를 잠깐 지다가 도중에 떨어뜨리면 훨씬 더 힘든 상황이 펼쳐집니다. 그런 사람이 보이면 상처 받지 말고 “차라리 내가 십자가를 지고 가자.”라고 편하게 생각하십시오. 그런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실패도 없고 궁극적인 의미에서 손해도 없습니다. 다만 일시적인 성숙을 위한 고난 교육과 체험만 있을 뿐입니다.

 잠언 4장 2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잘 지키면 인생 성공의 보고가 되지만 마음을 잘 지키지 못하면 무서운 폭탄이 됩니다. 그 중에서 제일 무서운 폭탄은 자격지심의 폭탄입니다. 그 폭탄이 터지면 가정생활과 교회생활과 인간관계도 힘들어지고 사업도 어려워지고 자기도 어려워집니다. 그 자격지심의 폭탄의 안전핀을 잘 잠그고 마음을 잘 지킴으로 꿈과 비전을 이뤄내고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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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5 마태복음 아기 예수께 경배 마2:1-12  강승호 목사  2014-12-24 1436
11454 창세기 하나님의 의도를 따르자(송구영신예배) 창35:1-7  최장환 목사  2014-12-24 1927
11453 에배소서 내 생애 최고의 선물 엡2:8  한태완 목사  2014-12-24 1865
11452 역대상 주님의 은혜(성탄절) 대상1:1-34  최장환 목사  2014-12-23 1310
11451 시편 고정관념에서 나오라 시46:1-11  최장환 목사  2014-12-23 609
11450 시편 최후의 승자 시34:1-22  최장환 목사  2014-12-23 544
11449 야고보서 당장 시작하십시오. 약1:25  한태완 목사  2014-12-23 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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