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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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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는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대상4:9).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4:10).
어느날 다른 교회 나가시는 여 집사님이 찿아 왔습니다. 나에게 기도를 부탁하셨는데 기도의 제목은 야베스의 기도 같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길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였습니다. 난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야베스의 기도는 결코 기복적인 신앙의 의미와 다른 측면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 집사님이 오해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그 집사님은 아파트를 두채나 가지고 있고 아들들은 금융업에 손을 대고 있는 중산층의 생활을 하고 있읍에도 불구하고 집사님의 아들들이 잘되기를 부탁하면서 기도를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기도의 내용임을 부인하지 않슴니다. 그러나 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복적인 내용으로 기도하는 동기가 무었인줄을 깨달아야 합니다. 야베스는 그가 태어날때 부터 다른 형제보다 고난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도 환란과 고난의 연속인 가운데 있음을 말씀을 통해 짐작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삶이 곤고한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며 상한 마음과 깨어진 자아로 하나님께 간절하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엿볼수 있습니다.(야베스라는 이름은 '슬픔'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마치 기복적인 주문과 같이 적용한다면 큰 오해가 아닐수 없습니다. 이 기도를 신약적인 측면에서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말씀이 주는 교훈은 다르게 나타남니다.
우리가 주안에서 거듭나기 (새로운 생명)위해서는 성령을 통하여 환란과 고난의 과정이 선행되므로 십자가의 죽음의 역사는 우리의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역사로 나타나게 되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기독교 속담에 "십자가가 없는 영광은 없다 " 라는 말같이 우리는 존귀한 자이지만 거듭난 생명을 잉태하기 까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으로 우리의 육체와 삶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생명을 받은 자는 세상으로 부터 나옴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평강과 은혜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신 축복의 약속은 우리 이방인에게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 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님의 모든 언약과 약속은 '예"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고난 중에 있다면 예수님께 나아가야 될것입니다. 그분 만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수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많은 기적의 역사를 보여 주심으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변함없이 성령을 통하여 나타내 주심을 믿으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야베스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야베스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된 축복의 범주 안에서 받은것 같이 (히6:14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아브라함의 축복의 약속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얻은자에게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4:10).
어느날 다른 교회 나가시는 여 집사님이 찿아 왔습니다. 나에게 기도를 부탁하셨는데 기도의 제목은 야베스의 기도 같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길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였습니다. 난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야베스의 기도는 결코 기복적인 신앙의 의미와 다른 측면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 집사님이 오해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그 집사님은 아파트를 두채나 가지고 있고 아들들은 금융업에 손을 대고 있는 중산층의 생활을 하고 있읍에도 불구하고 집사님의 아들들이 잘되기를 부탁하면서 기도를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기도의 내용임을 부인하지 않슴니다. 그러나 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복적인 내용으로 기도하는 동기가 무었인줄을 깨달아야 합니다. 야베스는 그가 태어날때 부터 다른 형제보다 고난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도 환란과 고난의 연속인 가운데 있음을 말씀을 통해 짐작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삶이 곤고한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며 상한 마음과 깨어진 자아로 하나님께 간절하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엿볼수 있습니다.(야베스라는 이름은 '슬픔'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마치 기복적인 주문과 같이 적용한다면 큰 오해가 아닐수 없습니다. 이 기도를 신약적인 측면에서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말씀이 주는 교훈은 다르게 나타남니다.
우리가 주안에서 거듭나기 (새로운 생명)위해서는 성령을 통하여 환란과 고난의 과정이 선행되므로 십자가의 죽음의 역사는 우리의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역사로 나타나게 되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기독교 속담에 "십자가가 없는 영광은 없다 " 라는 말같이 우리는 존귀한 자이지만 거듭난 생명을 잉태하기 까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으로 우리의 육체와 삶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생명을 받은 자는 세상으로 부터 나옴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평강과 은혜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신 축복의 약속은 우리 이방인에게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 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님의 모든 언약과 약속은 '예"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고난 중에 있다면 예수님께 나아가야 될것입니다. 그분 만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수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많은 기적의 역사를 보여 주심으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변함없이 성령을 통하여 나타내 주심을 믿으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야베스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야베스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된 축복의 범주 안에서 받은것 같이 (히6:14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아브라함의 축복의 약속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얻은자에게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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