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어느 날 저녁 식사 때 최근 인터넷에
뜨고 있는 노부부 이야기를
아내가 신문에서 보았다면서 말해 주는데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왔다.
육십이 넘은 노부부가 성격 차이로 이혼하려고
마지막 변호사와 함께 식사를 하는데,
상대에게 묻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주었다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다리를 좋아하는데 당신은
왜 물어보지도 않고 날개를 주는 거야?’
‘날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위로 먹고 싶어도
참고 평생 당신 줬는데 이혼하는 날까지
그런 식으로 나에게 말할 수 있어?’
화가 난 노부부는 집으로 돌아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고 사과하려고
전화하려는데 연결되지 않던 중 할머니에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달려가 보니 핸드폰을 꼭 쥐고
있었는데 자신에게 보낸
한 건의 문자메시지가 있었다.
"미안해! 사랑해!! 용서해!!!"
이 노부부가 아니더라도 부부 중 한쪽이 먼저
죽을 때 남은 자는 거의 이 말을 한다.
‘여보! 미안해!!’
사람은 왜 이렇게 미련하게 뒷북만 치고 살아갈까.
만약 지금 배우자(配偶者)가 먼저 죽는다면
남는 자는 뭐라고 할 것인가.
그렇게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살아있을 때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러브스토리’ 영화에서 주인공은
사랑은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
이라고 말하지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작은 일에도 고마워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정 미안한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살아있을 때 많은 표현(表現)을 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말 안 해도 상대가 알겠지 하는
생각에서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문제의 화근이 되어
뒤늦게 커다란 후회를 하게 된다.
핑계 같지만 우리는 수직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유교문화에서 살아오면서 감정 표현이
인색할 수밖에 없었다.
즉 부모 공경하는 법은 보고 배웠지만,
부부나 자녀에 대한 사랑의 표현은
배운 적도 없고 또 표현해도 문제가 되었다.
그런 문화 속에 살다보니
관계의 갈등(葛藤)은 다른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하관계에서
동반(同伴)관계로 시대가 바뀌었으므로,
모든 문제는 대화로 풀어야만 한다.
세상에서 절대로 늦추어선
안 될 일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빚 갚는 일, 용서하는 일, 그리고
사랑을 고백(告白)하는 일이다.
빚을 안 갚거나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참된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없지만,
표현(表現)되지 않는 사랑은
내일에 대한 꿈도 없이
스스로 고독(孤獨)한 인생이 되게 한다.
아니 그것보다도 살아있을 때는 상대에게,
죽은 후에는 본인이 그 상처를 안고 살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미루지 말고 지금 표현해야한다.
먼저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메시지로 표현하라.
-당신은 나에게 꼭 필요한 존재야!
-내가 당신을 선택한 일이 가장 잘한 일 같아!!
-당신은 나의 영원한 소망이야!!!
이 한마디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나
하면 할수록 신뢰감(信賴感)이 형성되면서
가정은 작은 천국이 되어간다.
다음으로는 몸으로 표현(表現)해야 한다.
상대방의 말에 귀기울여주고,
원하는 것을 들어주며,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상대의 필요를 물어보고
적극적(積極的)으로 들어주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요구도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그래야 사랑의 가장 보편적인 법칙인
give & take관계가 부부사이에 이루어지게 된다.
사람은 신(神)이 아니다.
말 하지 않으면 상대의 생각을 알 길이 없다.
부부는 눈만 봐도 안다는 전설에 제발
속아 넘어가지 말라.
둘째로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려면
상대를 이해(理解)하려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몇 일전에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아내가 계단에 주저 앉아버린다.
순간, 모든 생각이 정지(停止) 되는 듯 했다.
유달리 몸이 약해 결혼 후
몇 번이나 쓰러지는 일이 있었건만,
나는 그녀는 약하다는 생각을 망각하고
모든 일을 자신에게만 맞추며 살아왔던 것이다.
입으로는 그녀를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그녀에게 대한 작은 배려가
나에게 밀리고 자식에게 밀리고 있었다.
‘아버지학교’를 초장기 때부터 진행했던
김성묵 씨가 몇 년 전에, ‘그 남자가
원하는 여자, 그 여자가 원하는 남자’ 책을
출판했는데 그 책의 요점은 간단했다.
부부의 갈등은 성격(性格) 차이가 아니라
남녀(男女)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여
생긴 문제라는 것이다.
곧 남녀라는 작은 이해(理解)를 통해서만
큰 행복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자는 여자로부터
‘당신은 성공한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반면에,
여자는 남자로부터,
‘당신 얼마나 힘드나! 많이 힘들지?‘라는
말을 가장 듣고 싶어 한다고 했다.
즉 남자는 칭찬과 인정(認定)의 말을,
여자는 염려와 배려(配慮)의 말을 원한다.
또 말을 할 때에도 남자는
요점을 정리해서 말하는 직접화법,
여자는 부연 설명을 하는 간접화법을 선호한다.
곧 아내는 남편이 사실과 정보를
나누는 대화를 원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맞장구를 쳐주는 지혜가 필요하며,
남편은 아내가 느낌과 감정 그리고 생각을
나누길 원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 대화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에게 어떤 문제가 있을 때에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가길 원하는데,
이 때 여자는 남자가 스스로
그 굴에서 나오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이런 남녀의 차이를 알고 인정하고
인내하는 것이 성숙(成熟)한 사랑일 것이다.
셋째로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상대를 있는 모습 그대로 수용(收容)함에 있다.
나는 정리가 안 되어있으면 집중이 안 되는데,
아내는 그런 일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취생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이 결혼 초의 갈등(葛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묵상하다가 이런 깨달음이 왔다.
‘야! 너는 꿈도 야무지구나.
아니 나도 평생 못 고친 문제를 네가 고치겠다고?
그래... 한 번 해 봐라!’
그 뒤로 생각을 고치고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대신에 가끔 깔끔하게 정리하면
잊지 않고 꼭 그녀를 칭찬을 해 주었다.
그렇게 작전을 바꾼 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집은 변해가고 있었다.
결혼(結婚)의 목적은 물건처럼
자신의 편리를 위해 상대를 자기 식으로
뜯어 고치려는데 있지 않다.
만약에 잔소리나 어떤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도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아직도 알지 못했다면,
헛 똑똑이요 헛 인생을 산 사람이 분명하다.
사람은 있는 모습 그대로 이해하고
인정하며 수용할 때부터 변화하고 성장한다.
결혼은 완전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을 위한 제도라고
말하는 것은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것이 상대에게 없고,
상대가 가진 것이 내게 없는 것이 많다.
곧 부족한 면이 있기에 배우자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 자녀들이 실수를 하면서
혼란스럽지만 그 과정이 필요한 것은
사람은 그러한 혼란을 통해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부부의 진정한 하나 됨도 마찬가지다.
사랑이란 기성품처럼
이미 완성(完成)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연약(軟弱)함을 통해 상대를 알고
나아가 그 아픔까지도 수용하고
사랑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아름다운 관계가 형성되는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용의 겸손함이 없을 때는
상대의 약점은 물론이고 장점까지도
인정하지 않아 독불장군이 되면서
누구도 동반자가 될 수 없기에
고독하게 일방통행적인 삶을 살아 갈 것이다.
주여,
마지막 그 날,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도록,
오늘 이 순간에
감정들을 표현하고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분명하게 인정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해
혼란 속에 살아왔던
제게 당신은
연약한 상대를 통해
자신을 바로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있는 모습 그대로를
수용(收容)하여,
상대를 변화시키겠다는
야무진 꿈을 깨고,
축복(祝福)의 관계가 되게 하소서...
2007년 4월 29일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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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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