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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책임감있게 먹는다는 것

생명환경자연 최용우............... 조회 수 2807 추천 수 0 2007.06.24 22: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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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웬델 베리 

책임감있게 먹는다는 것

웬델 베리

  “도시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죠?” 미국 농업과 농촌 생활의 쇠퇴에 관한 강의가 끝나면 청중 가운데 누군가가 이렇게 물어온다. 이런 일은 여러 번 있었는데, 나는 보통 “책임감을 가지고 먹으세요.”라고 대답한다. 물론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려고 했지만, 그들은 항상 내가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보다 충분한 설명을 듣고자 한다. 이제 여기서 그 대답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하고자 한다.
  우선 ‘먹는 것은 농사를 짓는 행위’라는 명제로부터 시작하겠다. 씨앗을 뿌려 싹이 트는 것으로 시작되는 음식경제 행위는 먹는 행위를 통해 1년에 걸친 드라마의 종지부를 찍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아마도 그들은 음식이 농사의 산물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자신들이 바로 농사의 참여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자신을 단순한 소비자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자신들이 수동적인 소비자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들은 가질 수 있는 한계 내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나 원하도록 설득 되어온 것을 산다.
그들은 대부분 별 저항감 없이 부과된 금액을 지불한다. 그리고 대부분 자신들이 산 제품의 질이나 가격에 대한 비판적인 질문들, 가령 얼마나 신선한가? 얼마나 순수하고 깨끗한가? 위험한 화학재료는 얼마나 배제되었나? 얼마나 멀리 운반되어 왔고, 그 가격에 운반비용도 포함되었나? 그 가격에 제조나 포장이나 광고비용은 어느 정도로 포함되었나? 식품이 제조되거나 가공 처리되거나 살짝 조리될 때 그 질이나 가격이나 영양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나 등을 그냥 지나쳐버리고 만다.
  도시에서 물건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식은 농장에서 생산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농장이 무엇인지, 어떤 종류의 농장이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농사짓는 데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분명 농장이 계속해서 생산할 것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지만, 그것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이 무엇이고 어느 정도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음식이란 식품점 선반이나 식탁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알지도 못하고 상상해볼 수도 없는 상당히 추상적인 개념이다.
  생산의 분화는 소비의 분화를 부른다. 예를 들어, 연예오락 산업에 의존하면 할수록, 스스로 즐기는 것이 줄어들고 점차 상업적 공급자에게 수동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이런 모습은 음식산업의 번성에도 영락없이 적용된다. 우리는 점점 더 수동적이고 무비판적이고 의존적인 단순한 소비자가 되기 십상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소비형태가 기업들의 주요 목표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음식 생산업자들은 지금까지 수백만의 소비자들에게 이미 준비된 음식을 택하라고 설득해왔다. 그들은 당신을 위해 당신의 음식을 재배하고 배달하며 요리할 것이고, 그 음식을 마치 엄마처럼 먹으라고 권할 것이다. 그들이 아직 당신의 입속에 집어넣고 씹어주지 않는 이유는 단지 거기서 이익을 남길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이 결국에는 기쁘게도 그 방법을 찾길 바라는지도 모른다.
기업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음식 소비자는 식품 공장에서 바로 소비자의 위 속으로 들어가는 통로에 의해 식탁에 꼼짝없이 인도될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 과장된 말이겠지만, 사실 그다지 과도하게 과장한 것도 아니다. 산업적인 음식을 먹는 이는 사실 먹는 행위가 농사의 한 행위라는 것을 모른다. 그리하여 먹는 것과 땅의 연관관계를 더 이상 알거나 상상하지 못한다. 이들은 필연적으로 수동적이고 무비판적인 사람이다. 간단히 말해 희생자인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음식을 먹는 사람은 음식은 더 이상 농사나 땅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아주 위험한 문화적 기억상실증이다. 이러한 기억상실증은 우리를 아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
  현대판 ‘꿈의 가정’에서는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애쓸 필요 없이 쇼핑하거나 리모컨으로 미리 요리된 음식을 데우는 것들이 포함된다. 물론 이것은 음식이 소비되는 역사를 철저히 무시한다는 것을 뜻하며, 그래야만 가능하기도 하다. 그것은 시민들이 보지도 않고 물건을 사는데 대해 더 이상 감각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혐오하지 않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음식에 관해 충분히 알지 못하게 함은 물론, 상품으로서 음식물을 파는 행위를 명예롭고 영광스런 활동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음식을 소비하는 사람은 음식의 종류나 질에 대해서, 혹은
그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생산되고 가공되었는지, 성분은 무엇인지, 무엇이 첨가되었으며 찌꺼기는 무엇인지에 대해 필연적으로 아무것도 모르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거부하려면 소비자는 음식산업에 대해 면밀하게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 그럴 경우에만 음식경제 속에서 눈을 뜨는 능동적이고 책임 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여느 정치학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자유를 포함하는 ‘음식의 정치학’이라는 것이 있게 된다. 다른 누군가에 의해 우리의 정신과 목소리가 조종당하게 된다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음식과 그 근원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조종당할 때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는 소홀했다. 수동적으로 음식을 소비하는 것은 민주적 삶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책임감 있게 먹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유롭게 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음식의 정치학이 있다면, 음식의 미학이나 음식의 윤리학도 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음식의 정치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산업사회의 성과 마찬가지로 산업사회에서 먹는 행위는 점점 수준이 떨어지고 빈약해지며 보잘것없는 것이 된다. 집이 점점 모텔을 닮아가는 것처럼 부엌이나 우리가 먹는 장소는 점점 주유소를 닮아간다. 삶은 그렇게 재미없어지고, 만족도 그저 피상적일 뿐이다.
우리는 일터에 가기 위해 서둘러서 음식을 대충대충 먹어버리고, 저녁이나 주말이나 휴가 때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 일을 대충 처리해버린다. 그러고나서 가능한 가장 빠른 속도로 아주 시끄럽고 난폭하게 기분 전환행위를 해치워 버린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어떤 패스트푸드점에서 10억 번째 햄버거를 먹는 것이 인간으로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 모든 것은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원인과 결과, 가능성과 목적에 대해 완전히 무감각해진 결과일 뿐이다.
  우리는 이렇나 무감각이 음식산업 광고에서 나오는 ‘순수한 청정함’과 같은 표현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광고 속의 음식은 연기자와 마찬가지로 화장을 하고 있다. 만약 이런 광고들로부터 얻는 것이 음식에 대한 정보의 전부라면 -분명히 그런 사람들이 꼭 있을 것이다- 다양한 식품들이 살아 있는
생물체였던 적도 있고, 그 모든 것들이 땅에서 나왔고, 노동을 통해서 생산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수동적인 미국 소비자들은 미리 조리된 식사나 패스트푸드 앞에 다가앉아 살아있던 어떤 생명체의 특정 부위와는 아무런 유사성도 없이 가공처리되거나 건조되고, 구워지고, 소스가 뿌려지고, 고깃국물로 만들어지고, 갈리고, 과육으로 채취되고, 걸러지고, 혼합되고, 장식되고, 위생처리된, 생기 없고 익명적인 내용물로 뒤덮인 접시와 마주하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자연과 농사의 산물은 산업의 산물이 된다. 그래서 먹는 사람이나 음식 모두 생물학적 실재성을 빼앗기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일종의 고독, 이전에는 결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인간소외가 나타난다. 이러한 소외 속에는 먹는 행위는 순전히 식욕을 해결하기 위한 공급자와의 단순한 상업적 거래 정도로 여기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먹는 행위를 특이하게 소외시키는 것은, 다시 음식산업에 명백한 이익을 가져온다. 음식산업의 입장에서는 음식과 농사 사이의 연관관계를 감추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음식산업은 소비자 자신이 먹고 있는 햄버거가 가축 사육장에서 배설물 속에 깊이 파묻혀, 선 채로 일생을 보내면서 지역 하천을 오염시키는 데 일조한 식용 수송아지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모르게 한다. 그리고 접시 위에 있는 얇계 저민 송아지 커틀릿의 재료가 되는 송아지가 몸을 돌려볼 공간조차 없는 상자 속에서 일생을 보냈다는 사실을 모르게 한다. 또한 헥타르 단위의 양배추 재배 지역의 위생적·생물학적 의미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좁은 공간에 갇혀사는 식용동물들이 항생물질이나 화학약품들에 의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단일경작 방식으로 재배되는 야채들 역시 독성 강한 화학약품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음식산업에 대한 소비자의 가장 큰 관심은 질과 건간(몸에 좋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산업들과 마찬가지로 양과 가격에 있다는 사실을 소비자 스스로 알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 10년동안 전체 음식산업은 대규모 농장이나 사육장에서부터 슈퍼마켓 체인과 패스트푸드점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분량’에 홀린 듯 집착해 왔다. 그들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가차없이 규모를 확대시켰다. 그러나 규모가 커감에 따라 다양성은 감퇴되고, 다양성이 줄어듦에 따라 건강에 대한 관심 또한 쇠퇴되었다. 그 결과 약물과 화학약품에 대한 의존도는 필연적으로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자본이 노동을 대체하는 것은 기계와 약물과화학약품이 인간의 노동과 자연의 건강함과 토양의 비옥함을 대신하는 것이다. 음식은 이윤을 증대시켜줄 어떤 수단이나 손쉬운 방법을 통해서 생산된다. 그리고 광고를 통해 그렇게 생산된 음식이 질 좋고 맛있으며, 몸에 좋고 장수를 보장한다는 말로 소비자를 설득한다.
  이제 우리는 음식경제에서 예전에 비해 남편노릇이나 아내노릇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또 다른 덫에 빠짐으로써만 그런 해방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덫은 ‘산업주의의 이상적 목표인 상품을 얻을 수는 있지만 어떤 의식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꽉 막힌 도시’이다. 그렇다면 이 덫으로부터 어떻게 빠져나갈 수 없을까? 그것은 오직 자발적으로 먹는다는 행위와 그 행위에 포함된 것들에 대한 자신의 의식을 회복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음식산업에 자기 자신이 참여하고 있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지금의 잘못을 고쳐나감으로써 가능하다. 하워드(Albert Howard)의 ≪토양과 건강The Soil and Health≫에 나온 계몽적인 원칙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토양, 식물, 동물, 그리고 거대한 주체로서의 인간 모두의 건강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먹는 사람은 먹는 행위가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일이며, 불가피하게 농사와 관련된 행위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먹는가 하는 것이 세계가 어떻게 개발되고 이용되는가 하는 것을 결정
짓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표현할 수 없이 복잡한 관계를 간결하게 기술하는 방법이다. 책임감을 가지고 먹는다는 것은 우리가 가능한 한 이런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여기에 완전한 형태는 아닐지라도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목록이 있다.

  하나, 가능한 한 음식 생산에 참여하자. 마당이나 베란다, 해가 들어오는 창문에 화분이 있다면 거기에 먹을 수 있는 무언가를 키우자. 주방에서 비료가 될 만한 것들을 조금씩 모아 흙을 비옥하게 하는 데 사용하자. 조금이라도 당신 스스로 음식들을 키워야만 땅으로부터 시작해 씨앗으로, 꽃으로, 열매로, 음식으로, 찌꺼기로, 결구 썩어가고 다시 땅으로 되돌아가는 아름다운 에너지 순환을 깨달을 수 있다. 당신은 스스로 키운 그 음식에 대해 충분히 책임을 지게 될 것이고, 그것에 대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은 그 음식의 전 생애를 알고 나서 그 음식에 대해 충분히 감사하게 될 것이다.
  둘, 자신이 먹을 음식을 스스로 준비하자. 이것은 당신의 정신과 생활 속에서 부엌과 집안살림의 기술들을 되살려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면 당신은 더욱 값싸게 먹을 수 있게 되고, ‘음식의 질 조작’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당신은 당신이 먹는 음식에 첨가된 것들에 대한 믿을 만한 지식을 어느 정도는 얻게 될 것이다.
  셋, 당신의 사는 음식의 원산지를 알아보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산되는 식품을 사도록 하자. 자기가 먹는 모든 식품의 재료가 가능한 한 가까운 지역에서 나와야 한다는 생각은 몇 가지 의미를 가진다. 그 지역에서 생산된 음식물은 가장 안전하고 신선하다. 또 지역 소비자들이 그 재료들에 관해 손쉽게 알 수 있으며, 그것의 생산과 생산 방식에 직접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넷, 가능하다면 그 지역 농부, 채소 재배자, 과수원과 직접 거래하자. 앞서 제안하면서 나열된 모든 이유들이 여기에 적용된다. 덧붙이면 그런 직거래를 통해서만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희생시켜 번성하는 상인이나 운송업자, 가공업자, 포장업자, 광고업자등을 배제시킬 수 있다.
  다섯, 자기방어라는 의미에서, 산업적 식품 생산의 경제적 측면과 기술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만큼 알아보자. 음식이 아니면서 음식에 첨가되는 것이 무엇이며, 이러한 첨가물들에 대해 당신이 무엇을 지불해야 되는지 등에 대해서도.
  여섯, 최선의 농사와 채소가꾸기에 포함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일곱, 다양한 식품이 살아가는 역사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찰하고 경험하여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배우자.

  위에 제안한 것 중 마지막 제안은 특별히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야생 동식물의 삶만큼이나 재배식물이나 가축들(꽃, 개, 고양이를 제외하고는)의 삶으로부터 멀어져 있다. 이것은 아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집에서 키우는 생물들은 다양한 측면에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알게 되면 아주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농사를 짓고 동물을 키우고, 꽃과 채소를 가꾸는 일은 나름대로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기술이다. 그런 일들을 경험하는 것에도 역시 상당한 즐거움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아름다운 기쁨을 알게 되면, 농작물과 동물들과 흙의 지위를 떨어뜨리고 남용하는 음식경제에 대해 안다는 것이 아주 괴로운 일이 될 것이다.
현대 음식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집 밖에서 먹는 것을 정말 싫어하게 될 것이다. 내 성향을 말하자면, 나는 여행 중에는 붉은 고기나 가금류 대신 생선을 먹는다. 결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 몇몇 동물들이 비참해져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기를 먹어야 할 경우에는 그
고기가 근처에 좋은 물과 그늘이 지는 나무가 있는 야외나 풍요로운 목장에서 즐겁고 한가롭게 살았던 동물의 고기이기를 원한다. 그리고 농작물에 대해서는 아주 까다롭게 군다. 나는 내가 아는 좋은 토양에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난 채소와 과일을 먹고 싶어한다. 예를 들자면, 캘리포니아의 센트럴벨리에서 보았던 화학약품을 치는 거대한 공장형 지대에서 생산된 채소나 과일은 원하지 않는다.
산업적 농장은 공장의 생산라인의 유형을 밟는다고들 한다. 실제로 그러한 농장은 포로수용소보다 더 심해 보인다.
  먹는 것의 즐거움은 단순히 미식가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마땅히 광범위한 즐거움이어야 한다. 자신의 채소들이 자라난 정원을 알고 있고, 그 정원이 건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자라나는 작물들의 아름다움을 기억할 것이다.
이슬이 맺혀 아침 햇살 속에서 빛나는 작물들의 아름다움 말이다. 그러한 기억은 그 음식과 관련이 있고, 먹을 때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정원의 건실한 건강함에 대해 아는 것은 먹는 사람의 걱정을 덜어주고 마음놓을 수 있게 하며 편안함을 준다.
식용고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훌륭한 목장과 만족스럽게 풀을 뜯어먹는 소를 생각하면 스테이크가 더 맛있게 느껴진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이 그 모든 생애를 알고 있는 동료 생물체를 먹는 것은 잔인하고 잔혹한 짓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에 반해 나는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이해와 감사의 마음으로 먹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먹는 즐거움의 중요한 의미는 살아 있는 것들과 음식의 세계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먹는 즐거움은 건강함의 가장 유용한 기준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즐거움은 도시 소비자들에게도 매우 유용할 것이다.
  나는 앞서 음식의 정치학, 미학, 윤리학에 대해 언급하였다. 하지만 먹는 것의 즐거움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러한 범주들을 넘어서는 것이다. 가장 충만한 즐거움을 가지고 먹는 것, 다시 말해 무지에 의존하지 않는 즐거움은 아마도 세계와 우리의 연관관계에 대한 가장 심오한 상호행위일 것이다. 이러한 즐거움에서 우리는 우리가 다른 생물들과 땅에 의존하고 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경험하고 찬양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비로움 속에서 우리가 만들지 않은 생물들과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음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때면 나는 늘 아주
솔직해 보이는 시인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의 다음 글귀가 떠오른다.

     둘러보면 우리가 먹는 어떤 것도
     하느님의 몸 아닌 것이 없다.
     은혜 입은 식물들과
     바다, 그들을 건드리지 말고
     상상하게 내버려두라.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What Are People For?)"
웬델 베리/양문출판사
中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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