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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는 배필

창세기 이정원 목사............... 조회 수 416 추천 수 0 2015.01.05 23: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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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2:18-25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2014.7.6 주일 http://charmsarang.onmam.com/ 참사랑교회 

돕는 배필(1)                               

창2:18-25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심히 좋았습니다(1:31). 물론 사람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돕는 배필’을 만들기로 하셨습니다. ‘돕는 배필’은 아담과 동등한 피조물이라야 했고, 아담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존재라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창조하심으로 창조를 완성하셨습니다.

 

동물의 이름을 지어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첫 번째 임무는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짐승과 새들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의 이름을 직접 짓지 않으시고 사람에게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19절). 하나님께로부터 이 모든 것들을 다스릴 권위와 임무를 부여받은 아담은 그것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다스리는 행위를 나타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큰 특권이었습니다.

이름을 지으려면 먼저 그 사물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특히 그 많은 동물들의 이름을 한꺼번에 지으려면 그 모든 동물들에 대한 특징들과 차이점들을 분명히 파악해야만 합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이 모든 것들을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타락하기 전의 인간의 지혜였습니다. 타락하기 전의 아담의 지식은 지금의 생물학자들의 전문적인 지식보다 훨씬 뛰어나고 온전했습니다. 장차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살게 될 때, 우리는 다시 이렇게 온전한 지식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아담은 이 모든 짐승들과 새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그것들을 다스렸습니다.

만일 아담이 이 모든 동물들과 새들의 이름을 마구잡이로 하나씩 지었더라면 큰 혼란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 특징과 차이점들을 먼저 파악하지 않고 이름을 지었더라면, 모든 것이 다 뒤죽박죽이 되어 구분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중에 이름을 지어놓고 잊어버려서 “네 이름이 뭐였더라? 돼지였던가? 곰이었나?”한다면 그것은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이 모든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구분해나갔습니다. 털이 있는 것들, 비늘이 있는 것들, 뿔이 달린 것들, 주머니가 달린 것들 … 이렇게 종류와 특징을 따라 구별해 놓고 하나씩 이름을 지어나갔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종류의 짐승들과 새들이 혼동되지 않게 각자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따라

이것은 오늘 정보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의 머리는 한계가 있고, 정보는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한 눈을 팔면 시대에 뒤떨어지게 되지 않을까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보를 최대한 많이 얻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많은 정보들을 다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식이 발달하고 정보가 많이 쏟아져도, 우리는 불안해하거나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가지고 이 모든 것들을 판단하고 분별하고 해석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요즘 부모들과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듭니다. 부모들은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안달입니다. 그래서 걸음이 떨어지자마자 학원이다 과외다 하고 아이들을 몰아붙입니다. 경쟁이 심하고, 또 모두들 그렇게 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그렇게 몰아대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릴 적부터 그렇게 많은 것들을 배우며 자라는 아이들이 모두 영재가 되고 걸출한 인물들이 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질려서 공부도 잘 하지 않으려 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갈수록 학생들의 실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러한 고생은 계속됩니다. 이 세상에서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배워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해야 할 일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늘 피곤하게 삽니다. 그렇다고 해서 만족할 만큼 지식을 습득하고 정보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습니까? 결코 그렇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우리의 지혜가 손상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그렇게 고생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척 보면 다 알 수 있었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혜와 원칙을 잘 사용하면 됩니다.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다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철학과 체계를 가지고 그것들을 판단하고 걸러내며 이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은 성경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모든 것에 대한 자세한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많이 읽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식과 정보가 홍수를 이루는 이 세상에서도 당황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세상을 보는 눈을 분명히 가지면 됩니다. 어떤 것이 정말 옳고 필요한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중에서 어떤 것들이 우리를 해롭게 하며 파멸시키는 것인지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과 정보가 있다 해도, 이러한 분명한 틀을 통하여 정리되고 걸러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두려워하거나 당황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라.

요즘은 철학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철학은 따분하고, 돈 버는 데도 별로 쓸모가 없기 때문에 무시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철학이 없으면 사람이 사람답게 되기 어렵습니다. 철학은 이 복잡하고 수많은 지식과 일들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잡아주고,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체계를 세워줍니다. 이 작업이 이루어지면 우리의 삶에 질서와 체계가 잡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학이 중요합니다. 같은 일을 해도 나름대로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런데 철학 중에서도 가장 완전하고 탁월한 철학은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은 내가 누구이며,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서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살면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했다고 해도,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했다면 실패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선순위의 문제가 나옵니다. 어차피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부터 하면 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세워져 있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루고 얻었다 해도 다 헛될 뿐입니다. 철저히 실패자가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믿음을 확고히 가져야 합니다. 특히 자녀들에게 이 문제는 더욱 중요합니다. 자녀들을 믿음으로 바로 세우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것을 가르쳤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영어, 수학, 컴퓨터, 피아노, 태권도, 무슨 소년단 … 그런 것들보다 절대 우선적으로 신앙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녀들이 올바로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그들이 배우고 습득한 것들이 올바르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정직하고 진실하고 너그러운 사람, 이웃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잡기에는 능하지만, 인격적으로는 매우 빈곤한 가운데 있습니다. 우선순위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되지 못했는데 컴퓨터 도사가 되면 뭣하겠습니까? 지능적인 범죄자가 되기 쉽습니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이 되지 못하면, 그런 사람은 오히려 사회에 해로운 존재가 되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우리 자녀들이 올바른 인간이 되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중요한 과목들부터 기초를 잡아주어야 합니다. 취미나 특기는 그 다음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특별히 어떤 분야에 뛰어난 아이들은 좀 다르게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신앙과 사람됨이 우선되어야 하며, 기초적인 것들이 무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특기를 가졌다 해도 기형적인 인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우리가 그토록 바쁘게 사는 생활 속에서도 우선순위가 분명해야 합니다. 당신이 오늘 하루 동안에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해야 할 일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바쁘게 몰아감으로써 우리의 인생을 실패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기도할 시간도 없이, 묵상할 여유도 없이 우리를 몰아댑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죽으라고 살게 만듭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무엇인가 많은 일을 한 것 같은데, 정신이 없이 바쁘고 피곤하게 살았는데, 진정으로 남은 것이 없고 허무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패한 삶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도 우선순위가 분명해야만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말할 것도 없이 예배와 묵상과 기도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의 모든 삶은 질서를 잃어버리고 목적도 희미해져 버립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은혜와 지혜와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만 합니다. 때로는 용기를, 때로는 위로를, 때로는 담대함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생활 속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복잡하고 바쁜 삶에 질서와 목적과 방향과 의미를 분명하게 밝혀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가정입니다. 직장이나 일이 아니라 가정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바로 서야 사회도 바로 서고 나라도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가정이 온전해지고, 가정에 천국이 이루어져야 힘이 나고 당신의 일을 제대로 감당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만일 가정이 온전치 못하다면,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맙니다.

그 다음이 당신의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고,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가정이 평화롭고 온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당신의 일은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선순위가 거꾸로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맙니다. 아무리 수고하고 애를 써도 헛것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사는 사람은 성경이 교훈하는 대로 올바른 우선순위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갑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이렇게 살면 아무리 복잡하고 바쁜 세상에서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 다음이 취미와 휴식입니다. 때로 너무 지치고 힘들 때는 일을 뒤로하고 쉬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우선순위는 분명합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정말 해야 할 일들은 하지 않고 취미와 오락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도 학문보다는 동아리와 노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투자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선순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우선순위는 자기 생각에서 나와서는 안 되고 성경에서 나와야만 합니다. 왜냐면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인생을 평가하고 심판하실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성경적인 우선순위를 따라 자녀들을 양육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이 올바르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은 바로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은 성경적인 우선순위에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이 아무리 복잡하고 힘들어도 이 우선순위를 따라 살아가는 성도는 당황하지 않고 헤매지 않습니다.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이 지시하는 대로 판단하고 해석하고 취하고 버리면 아무것도 잘못될 것이 없습니다. 뒤떨어질까 봐서 불안해하거나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아담이 발견한 것

아담은 이렇게 수많은 동물들과 새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아담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들은 각각 암수 한 쌍씩인데, 자기만 혼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가 여자 없이 얼마나 부족하고 허전한지를 절감하게 하시기 위해서 먼저 남자만 만드셨습니다.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를 같이 만드셨더라면 남자는 여자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실히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 없이는 완전치 못합니다. 미완성인 것입니다. 여자가 있어야 비로소 인간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남자의 돕는 배필인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여자의 창조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후,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어 여자를 만드셨습니다(21-22절). 남자는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여자는 이렇게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여자가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에게서 나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자는 남자보다 못한 존재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Mathew Henry는 하나님께서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다는 사실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머리뼈로 만들지 않으셨다. 또 남자에게 짓밟히지 않도록 다리뼈로 만들지도 않으셨다. 동등한 위치에 서라고 옆구리 부분에서 만드셨으며, 보호함을 받도록 팔 밑에서 취하셨고,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남자의 가슴과 가까운 곳에서 취하여 내셨다.”

 

남자와 여자

남자와 여자는 누가 더 우월할까요? 남자와 여자는 동일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는 동등합니다. 남존여비 사상은 매우 비성경적인 사상입니다. 여성상위를 주장하는 것 역시 비성경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동등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차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에게 주도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돕는 배필로 창조하셨습니다. 본질상으로는 동등하나 기능상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차이는 높고 낮음의 차이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순서는 항상 성부, 그 다음이 성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부가 성자보다 더 높으신 것이 아닙니다. 성부와 성자는 동등하십니다. 남자와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실을 잘 깨닫고 남자와 여자가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할 때 가장 아름답고 행복하게 됩니다. 갈수록 남자와 여자의 위치와 권리를 두고 갈등이 심해지는 이 때 이 진리는 가장 근본적이고 확실한 해답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후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고 약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잡하고 정보와 일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길을 잃기 쉽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바르게 살아가려면 성경적인 우선순위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최우선임을 명심하십시오. 그리고 믿음과 말씀으로 우선순위를 정하여 하나씩 해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목적과 방향을 잃지 않고 바르게, 온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돕는 배필을 주셨습니다. 큰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부부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능력 있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돕는 배필(2)                        

창2:18-25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가슴 벅차고 설레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남자는 여자를 만나는 일이었을 것이며, 여자는 남자를 만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의 배우자를 만날 때 어땠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남자들은 대개 여자를 만날 때 넋을 잃게 됩니다. 이것은 극히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만들어 아담에게로 데려오셨을 때, 아담은 여자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홀로 있었던 남자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남자를 먼저 만드시고 여자를 나중에 만드셨습니다. 아담은 새들과 짐승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면서 자기만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남자는 여자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나중에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가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만들어 함께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결혼하기 전까지 남자들은 여자를 그리워합니다.

 

결혼의 주례자이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에게서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이와 같이 여자는 남자의 죽음을 통하여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죽어야 여자가 삽니다. 이것은 대단히 성경적인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5:25)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처럼, 남편들은 아내를 죽기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여자는 이렇게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여자는 사랑 받을 때 빛을 발하며 아름다워집니다. 아내를 사랑하면 가정이 천국이 되며,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여자를 만드시고, 그 여자를 남자에게로 데려오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에덴동산에서는 최초로 결혼식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하나로 결합시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결혼입니다. 결혼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계셔야만 합니다. 결혼할 때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결혼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안 믿는 배우자를 골라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배우자를 골라야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결혼생활에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셔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남편과 아내가 각각 자기의 마음대로 살아가면, 온전한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결혼하면 남편과 아내 사이에 끝없는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양보하고 참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안 되겠다고 결론을 내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신 부부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남편과 아내의 생각이 다를 때, 서로 자기주장을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무엇이 옳은가? 성경은 은 이 문제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분명해지면, 남편이든 아내든 거기 복종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풀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무시하고 서로 자기의 주장을 고집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부부 사이가, 가정생활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항상, 무슨 일에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모든 문제를 막힘없이 해결하는 가정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인류 최초의 시는 남자가 여자를 만났을 때 나왔습니다.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23상) 이것은 기쁨과 놀라움을 나타내는 감탄이며, 사랑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아담은 여자를 보는 순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동물들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감정을 느꼈습니다. 여자는 너무나도 매력 있고 아름다웠으며, 자기와 동등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일은 지금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문제는 결혼한 다음부터는 이런 고백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남자의 가장 큰 의무는 여자를 사랑하고 보호하며 양육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엡5:28-29) 남자들은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자주 해야 합니다. 한국 남자들은 이 점에서 매우 서툴기 때문에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남편이 늘 사랑해주고 보살피고 양육해주면 아내는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식탁이 달라지고, 집이 달라지고, 삶이 풍성해집니다.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어졌습니다. 갈빗대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자가 상처를 입으면 남자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여자가 없으면 남자는 위험하고 약해집니다. 그러나 여자가 든든히 서있으면 남자는 안전하고 행복합니다. 그런데 여자가 든든히 서 있으려면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고 보호하며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혼의 원리

24-25절 말씀은 결혼의 중요한 원리 세 가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결혼하기 위해서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아내와 연합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부는 부끄러움이 없는 관계여야 합니다.

 

부모를 떠나라

결혼은 부모를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부모를 떠나 시집을 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만이 아니라 남자의 부모, 심지어는 남자의 가족들과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여기서 많은 불행과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시집살이는 시어머니의 심한 간섭과 구박을 받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이렇게 50-60세가 되도록 살아야 했습니다.

요즘에도 결혼한 후에 부모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걸핏하면 부모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물론 필요할 때는 부모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매사에 그렇게 하면 매우 연약하고 무능한 가정이 되고 맙니다. 결혼해서도 아내와 함께 잠을 자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자는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들이 며느리와 같이 자는 꼴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런 부부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결혼은 부모를 떠나서 독립하는 것입니다.

신혼 초에는 기대와 설렘도 있지만, 어느 때보다 갈등이 많을 때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부부싸움을 하고는 친정으로 가버립니다. 그런데 친정에서 시집간 딸을 싸고돌면서 부부를 원수로 만드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다 결국 이혼한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시댁에서 며느리를 구박해서 결혼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단 결혼하면 부부가 자기들의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여기에 괜히 부모나 다른 사람들을 개입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필요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도움까지도 두 사람의 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됩니다.

부모들은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온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나면 허전함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괜히 섭섭해지고 외로움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갖는 것입니다. 그 동안 자녀들 때문에 늘 아쉬웠던 것이 하나님과 맘껏 깊은 교제를 갖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성경도 많이 잃고, 묵상도 깊이 하고, 기도도 많이 하면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그리고 교회에 와서 봉사하고 남을 돕고 섬기는 데 힘쓰는 것입니다. 이제 자녀에게 기대하던 마음을 끊고, 여생을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천국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런 생활은 이전보다 훨씬 보람 있고 행복한 생활이 될 것입니다. 한층 수준 높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곱게 물든 단풍은 꽃보다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당신의 노년이 이렇게 되기 바랍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안나 여선지는 결혼한 지 7년 만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가련하고 불행한 여인입니까? 그런데 이 여인은 날마다 성전에서 섬기며 기도하는 생활에 힘썼습니다. 그 결과 안나는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 불행한 처지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극복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복되고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연합하라

결혼은 아내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결혼한 사람들이 매사를 남편이나 아내와 의논하지 않고 자기 어머니와 의논한다면, 그 부부는 진정으로 연합하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오랫동안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살아온 두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는 서로 연합하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부부가 연합하기 위해서는 문화적인 차이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남자들은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음식에 길이 들어있기 때문에, 결혼해서 아내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다보면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음식타박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자기는 정성껏 음식을 만들었는데, 맛있게 먹지 않고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음식타령만 하고 있다면 얼마나 힘이 빠지고 화가 나겠습니까?

이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합니다. 이보다 훨씬 심각하고 어려운 일들이 얼마든지 많습니다. 어떤 부부는 치약을 짜서 쓰는 방법을 가지고 심하게 다투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찮은 문제들을 가지고도 자기 입장만을 고집하면 큰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부부가 연합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화적인 차이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려면 서로가 자기의 것을 포기하고 상대방에게 맞추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것을 포기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자기의 것을 강요하려고 하기 때문에 갈등이 심합니다. 이렇게 하면 연합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부부가 연합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혹시 과거에 잘못된 것이 있더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아무 문제가 없던 부부가 우연히 과거의 일들을 이야기하다가 싸우고 이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나 아내의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서 알게 된 후, 서로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부부의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한 번 결혼했으면 상대방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이해하기로 작정해야 합니다.

두 사람이 온전히 연합되어, 아내는 남편을 신뢰하고 남편은 아내를 책임지는 가정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안델센의 동화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말 한 마리를 가지고 살아가던 노부부가 어느 날 의논 끝에 말을 보다 더 쓸모 있는 무엇과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말을 끌고 장터로 나갔습니다. 가던 중 우유를 얻을 수 있는 소가 좋을 것 같아 말을 소와 바꾸었습니다. 그 소를 다시 아내가 다루기 쉬운 양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양을 다시 거위와 바꾸었고, 그 거위를 날마다 알을 낳아 주는 닭으로 바꾼 뒤 여관에 들렀습니다. 여관 문에 들어서다 할아버지는 그 닭을 최종적으로 썩은 사과 한 자루와 바꾸었습니다. 언젠가 썩은 사과 한 개를 대단히 소중하게 다루던 아내가 생각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관에서 할아버지는 어떤 두 영국 사람에게 이 얘기를 들려주게 되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두 영국 사람이, 집에 돌아가면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내쫓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자기가 하는 일은 무엇이나 잘했다고 칭찬한다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할머니는 틀림없이 할아버지에게 잘했다고 칭찬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 영국 사람은 할아버지와 내기를 했습니다. 할아버지 말대로 할머니가 잘했다고 말하면 금화를 한 닢씩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할아버지의 집으로 갔습니다. 말을 젖소와 바꾸고, 젖소를 양으로 바꾸고, 양을 닭으로 바꾸고, 닭을 썩은 사과 한 자루와 바꾸고 돌아온 할아버지는 그 경위를 소상히 할머니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설명을 듣는 할머니는 시종일관 할아버지의 생각에 대해 ‘잘했어요!’를 연발하며 기뻐했습니다. 결국 두 영국 사람은 할머니의 반응에 감탄하면서 금화들을 내어놓고 돌아갔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결합이 얼마나 견고해야 하는지를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마19:5-6) 결혼을 통하여 부부는 한 몸이 됩니다. 몸은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만일 몸이 나누어진다면 그것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끄러움이 없는 관계

이렇게 연합된 부부는 서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25절)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은 부부 사이가 투명하고 거짓이나 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부 사이는 서로 허물이 없고 친밀한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둘이 아니고 이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될 때 그 가정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복된 가정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서로 돕는 배필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축복입니다. 남자나 여자는 혼자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결혼하는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복된 제도인데,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결혼이 되어야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 좋은 사람을 선택하도록 해야 합니다. 결혼한 후에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를 때, 자신의 주장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복종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결혼은 부모를 떠나 남자와 여자가 하나로 연합하는 것입니다. 부부사이에는 그 누구도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연합되기 위해서는 서로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상대방에게 맞추는 작업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신뢰하고, 남편은 아내를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한 가정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부부사이는 아무 부끄러운 것이 없는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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