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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36: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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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4.10.13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469) |
감사하면 인생이 바뀝니다
(시136:1-26) >
< 감사하는 인생의 복 >
인생은 짧습니다. 꿈과 비전은 많은데 나이가 들면 더 인생이 짧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생은 깁니다. 수많은 시련 중에도 여전히 우리는 살아있고 앞으로 찬란한 꿈과 비전과 이상을 펼칠 시간은 아직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생은 죽음으로 다 끝나지 않고 죽음 이후의 세계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가끔 “인생이
무엇이냐?”라고 묻습니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소수의 사람이 사형선고를 받아 쇠사슬에 얽혀있고
그중 몇 명이 매일 남이 보는 데서 학살되고 남은 자는 자신의 운명이 그들처럼 될 것을 알고 슬픔에 잠겨 희망도 없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인생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비참하고 맹목적인 존재란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인생은 불안이란 불개미 떼가 수시로 출몰하는 바란 광야의 나그네길이다.” 다 그럴듯한 정의지만 인생에 대한 좋은 정의가 인생을
좋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시인 하이네는 바닷가에서 “바다야 인생이 무엇이냐고 외쳤더니 파도만 철썩철썩하더라.”고 했습니다. 인생을
정의한다는 것은 헛된 수고란 뜻입니다.
어느 날 한 자매가 영국 문호 칼라일에게 인생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칼라일이
대답했습니다. “자매님! 광대하고 복잡한 문제에 뛰어들지 말고 단순하고 정결한 삶에서 지족을 배우시고 매일 일과에 충실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인생을 잘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잘 펼쳐가는 것입니다. 성도의 인생은 황무지에 핀 샤론의 장미꽃과 같습니다. 샤론의 꽃 예수님이
마음속에서 피어나 예수님의 꽃향기를 날리며 살면 얼마나 복된 삶입니까?
복된 인생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감사에 탁월해야 합니다.
그리고 입에서 “감사합니다.”란 말이 수시로 나오게 해야 합니다. 입에서 나온 반복된 말은 점점 습관과 체질이 됩니다. 감사하는 말을 많이 하면
거꾸로 감사하는 말도 많이 듣게 되고 감사거리도 많이 얻게 됩니다. “감사합니다.”란 말은 복을 부르고 기적을 낳는 거룩한 주문과 같습니다.
식사할 때 “감사합니다. 잘 먹었습니다.”라고 하는 자녀는 미래가 밝습니다.
감사하면 표정도 밝아지고 건강도 회복되고 병의
면역성이 강해집니다. 또한 일도 잘 풀리고 인맥도 튼튼해집니다. 또한 감사하는 태도는 어른으로 인정받는 기준입니다. 어른이 되어도 감사가
부족하면 ‘미숙한 어른애’지만 어린이라도 감사가 넘치면 ‘성숙한 애어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성도보다 감사하는 성도를
기뻐하십니다.
< 감사하는 삶의 원리 >
시편 136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명절에 성전에서 낭송하는 감사
시편입니다. 서론인 본문 1절에서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선포하고 본론인 2-25절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할 내용들을
죽 열거한 후 결론인 26절에서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선포하며 시편을 끝냅니다. 이 시편이 가르쳐주는 감사의 원리를 2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1. 감사할 것을 찾아서 감사하십시오
이 시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감사할 내용을 죽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일일이 헤아리고 입술로 고백하며 감사하면 하나님은 더욱 기뻐하실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님께 말로 감사를
표현해도 기쁘지만 편지로 그 동안에 베풀어주신 감사한 일들을 다 적고 감사하면 부모는 더 기뻐할 것입니다. 어떤 감사내용을 보면 “아니! 그것도
기억하며 감사하네? 그때는 내가 더 미안했는데.”라고 하면서 더 감격할 것입니다. 그처럼 감사한 것을 일일이 찾아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더
생기고 삶에 기쁨과 감격과 행복도 넘치게 됩니다.
어느 날, 한 집사가 버스를 탔는데 조금 후에 뚱뚱한 아줌마가 아이 다섯을
데리고 탔습니다. 버스 안에서 아이들은 떼를 쓰고 고함을 지르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난장판을 만들었습니다. 그 아줌마는 아이들을 때리고 욕하고
짜증을 냈지만 통제가 안 되었습니다. 피곤해서 쉬고 싶었던 그 집사도 막 짜증을 내려고 하다가 갑자기 생각을 바꿔 이런 유머러스한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 저 아줌마가 제 아내가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
성도는 힘든 일이나 평범한 일에서도 감사거리를 잘 찾아내는
비범한 탐구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평범한 일에서도 감사할 것이 참 많습니다. 만약 별들이 1년에 딱 한 번 밤에 나타난다면 그 별들을 보면서
감격하겠지만 거의 매일 밤에 별들을 보니까 별로 감동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처음 만나가 내릴 때 백성들은 감격했지만 매일 만나가
내려지니까 나중에는 오히려 “고기는 안 주고 매일 만나만 준다.”고 불평했습니다.
평범한 것에서도 감사거리를 찾고 늘 새롭게
감사할 줄 알아야 비범한 인생이 됩니다. 더 나아가 고난 중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추수감사절이 왜 생겼습니까? 청교도들은 신대륙 도착하고 첫해
겨울을 지나면서 102명 중 44명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봄에 씨를 뿌리고 마침내 가을에 추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도 여전히
상황은 어려웠지만 그들은 작은 감사의 조건을 붙잡고 추수감사절을 제정한 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감사할 일을 힘써 찾아
감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면할 때 그는 핍박과 고통과 시련 중에 있었습니다. 그래도 감사거리를 찾아
감사하고 남들에게도 감사하라고 한 것입니다. 요새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불평하다가 감사거리를 다 놓치고 불행하게 살지만 자세히
찾아보면 감사할 것이 훨씬 많습니다. 오늘 예배자리에 나오게 된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하나님이 사모하는 마음도 주시고 건강도 주셔서 나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살다 보면 별로 유익이 없는 것 같은 일도 큰 유익이 될 때가 많습니다. 옛날에 보리밥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었지만 지금은 보리밥이 성인병과 다이어트에 좋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그 사실을 잘 몰랐던 것입니다. 그처럼 싫은 것이 실제로는 유익한 것이
많기에 싫은 것도 그 가운데 유익이 있음을 믿고 감사를 앞세워 사십시오.
자녀가 학교 성적에서 꼴지를 했어도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더 내려갈 일은 없고 올라갈 일만 있으니 감사합니다! 또한 성적이 나빠도 기 안 죽고 건강하게 학교 잘 다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또한 성적이 나빠도 거짓말과 커닝을 하지 않고 무엇보다 교회를 잘 다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감사거리를
찾아 감사하면 삶도 즐거워지고 고난을 극복할 힘도 생기게 됩니다.
맑을 때 감사하는 삶은 일반적인 삶입니다. 그러나 비가 올 때
감사하는 삶은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자녀가 먼저 천국에 가도 감사할 수 있습니까?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만나도 감사하겠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오히려 그런 시험과 시련을 더 피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처럼 최악의 상황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감사하겠다고
다짐하고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최대 증거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이
이뤄질 것입니다(롬 8:28).
2.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감사하십시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 시편은 후렴에서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키 레올람 하스도)’란 찬양구절이 매 구절
계속되기에 ‘위대한 찬양시’로 불립니다. 명절에 레위인들이 각 구절의 앞부분을 선창하면 회중 전체가 후렴구인 ‘키 레올람 하스도’를
제창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믿음과 감사는 비례합니다. 많이 가져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감사할 때 많이 가지게 됩니다. 기쁨도 많이 가질 때보다 많이 감사할 때 더 넘치게 됩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감사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특히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한 믿음이 굳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가장 위대하신
분입니다. 시편 기자가 본문 2-3절에서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고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위대성과 절대
주권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그 다음에 4-9절에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위대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선하심을 굳게
믿어야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잘 되면 자기 노력으로 그렇게 된 줄 알지만 사실상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삶의 선한 열매는 ‘노력의 산물’이기 전에 ‘은혜의 선물’입니다. 성도의 삶은 운명이나 우연의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삶에
대한 가장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역사(history)도 ‘그분의 이야기(His story)’이지만 성도의 이력도 ‘그분의
이야기’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그분의 이야기’를 최종 선을 향해 펼쳐가고 있음을 믿어야 진정한 감사가
나옵니다.
살다 보면 절망적인 일을 많이 당합니다. 또한 세상을 보면 실망스런 일들도 많이 보입니다. 또한 자신을 봐도 실망적인
모습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때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희망이 생기고 기쁨과 평안도 생깁니다.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의 열매도
크게 달라집니다. 바람이 불면 어떤 성도는 쉽게 흔들리고 믿음을 포기하지만 어떤 성도는 더 뿌리를 깊이 내리면서 믿음이 부쩍
커집니다.
인생의 문제는 시각과 생각의 문제이고 믿음의 문제입니다. 믿음은 만사형통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고난의 비는 성도에게도 내립니다. 중요한 것은 고난 중에 인격을 가꾸고 시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처럼 고난을 통해 성도는 점차 변화됩니다. 사람이 변화된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대개 보면 축복 체험보다는 고난 체험으로 잡초 인생이 거목
인생으로 변화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모든 상황을 당장 바꿀 수 있지만 선한 목적을 위해 때로는 침묵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지내게 하셨고 때로는 신실한 성도가 순교하고 투옥되어도 그냥 지켜보십니다. 얼마든지 그 일을 막아주실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 더 큰 일을 이루시고 더 큰 깨달음을 주시고 그 일의 극복과정에서 더 크고 성숙한 믿음과 마음을 주실 때도
많습니다. 그 하나님의 최종 선을 신뢰하십시오.
출애굽의 구원의 역사는 며칠 만에 이뤄졌지만 노예백성이 용사로 변화되는 역사는
40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용사가 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구원도 중요하지만 주님의 용사가 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광야의 시련 중에 환경의 변화를 위해 기도하기 전에 항상 자기 변화를 위해 먼저 기도하십시오. 그처럼 자기 변화를 이루는
최상의 통로가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통해 자기가 변화되면 신기하게 환경도 변화됩니다. 결국
고난을 극복하는 최선의 길은 범사에 감사하는 삶에 있습니다. 현재 고난이 극심해도 하나님의 선한 목적이 있음을 굳게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분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가장 정의롭고 공평하신 하나님입니다. 고난을 감사로 받아들이고 믿음이 성숙해지는 계기로
삼으면 조만간 고난의 크기 이상의 상급의 크기가 주어질 것입니다.
< 감사하면 인생이 바뀝니다 >
사람은 빈손으로 이 땅에 왔다가 빈손으로 이 땅을 떠납니다. 그러므로 선한 목적도 없이 부자가 되려고 하면 나중에 인생이
허무해집니다. 돈을 사랑하면 일만 악이 생기고 근심걱정도 커집니다. 꿈과 비전을 향해 나갈 때도 만족하고 감사하는 삶의 기초를 튼튼히 하고 더
많이 나누기 위해 꿈과 비전을 이루려고 해야 인생이 행복해집니다.
옛날에 왕 쥐에게 예쁜 딸 쥐가 있었습니다. 때가 되어 딸 쥐를
시집보내려고 왕 쥐는 강한 신랑을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가슴이 넓고 따뜻한 태양을 찾았습니다. 왕 쥐가 딸 쥐 얘기를 하자 태양이 말했습니다.
“왕이여! 제가 높은 곳에서 세상을 비춰도 구름이 가리면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자 왕 쥐는 구름을 찾아갔습니다. 구름이 말했습니다.
“왕이여! 저는 바람이 거세게 불면 볼품없이 밀려다니니 차라리 바람을 찾아가보십시오.”
왕 쥐가 바람을 찾아가자 바람이
말했습니다. “왕이여! 저는 힘은 강해도 수천 번 시도해도 넘어뜨리지 못한 돌기둥이 있습니다. 돌기둥에게 찾아가보십시오.” 왕 쥐는 좋은 혼처를
찾았다고 좋아하며 돌기둥을 찾아갔습니다. 돌기둥이 말했습니다. “왕이여! 저는 온갖 비바람을 견디고 이렇게 굳게 서 있지만 제게도 딱 한 가지
무서운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제 발 밑에 매일 들어와 땅을 파고 돌아다니는 쥐 선생 때문에 언젠가는 저도 쓰러질 것입니다.” 결국 왕 쥐는
돌고 돌아 같은 쥐 중에서 최고의 신랑 후보를 찾았다고 합니다.
누구나 현재 자기 처지에서 최상의 행복의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자족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가장 강하고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처럼 감사거리를 잘 찾는 사람이 결국 하나님의 마음도
얻고 축복도 얻습니다. 주일성수의 중요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복을 받으려고 주일성수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새롭게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결단하는 것이 주일성수의 더욱 중요한 목적입니다.
세금을 많이 내는 것에 대해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수입과 재산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림자에 대해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지금 빛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주차장의 제일 끝에 주차하게 된 것을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아직도 걸을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전기료가 많이 나온 것을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지금 많이 누리며 산다는 뜻입니다.
정부에 대해 불평거리가 있는 것을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지금 말할 자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틀린 음으로 노래하는 바로 뒤의
성가대원에 대해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지금 귀가 잘 들린다는 뜻입니다. 세탁하고 다릴 옷이 많은 것에 대해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내 곁에 아직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아침에 울리는 알람소리에도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아직 자신이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밤에 몸이 쑤시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낮에 생산적인 일을 많이 했다는 뜻입니다. 가끔 외로움을 느낄 때도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성령님이 “나와 깊이
교제하자!”는 거룩한 초청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생각과 시각을 바꾸면 불평거리가 얼마든지 감사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무지개가
드리워진 곳에서 금 항아리를 찾으려고 너무 시간을 소비하지 마십시오. 금 항아리는 십자가 밑에서 발견됩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삶이 십자가입니다. 그처럼 범사에 감사할 때 진정한 축복과 행복을 얻습니다.
요즘 살기 힘들다고
하지만 그래도 과거보다는 훨씬 잘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현대인들은 더 불평이 많고 더 영혼이 메말랐고 더 행복지수는 떨어졌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감사하는 삶의 부족 때문입니다. 감사를 찾아야 행복도 찾아옵니다. 감사는 행복의 문을 여는 최상의 열쇠입니다. 행복 유무는 감사
유무에 달려 있습니다. 행복의 크기는 소유의 크기에 달려 있지 않고 감사의 크기에 달려 있습니다.
살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머리를 가득 채우십시오. 좋은 일을 만나면 바로 말하십시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쁜 일을 만나면 더욱 입에서 이
말이 바로 나오게 하십시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생각할 것도 없고 이유를 따질 것도 없이 입에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란 말이 나오게
하면 사건의 초기에 사탄의 강력한 진을 깨뜨리는 셈이 됩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승리와 회복의 역사가 비교적 쉽게
펼쳐집니다.
얼마 전에 왼쪽 팔을 잘못 써서 한 동안 간혹 통증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어깨에서 통증을 느낄 때마다 입에서 저절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런 소리가 나왔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러면 곧 어깨가 아픈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며칠 전에 급히 계단에서
내려오다가 발을 삐끗 했습니다. 순식간에 엄청난 고통이 밀려올 때 입에서 나도 모르게 이런 신음과 고백이 나왔습니다. “으으윽!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처럼 저절로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을 보고 고통 중에서도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곧 고통을
잊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환경을 바꿉니다. 더 나아가 인생도 바꿉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뜻과 마음과 계획도 바꿉니다. 물론
그 바뀐 계획도 크게 보면 하나님의 큰 계획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총론적인 계획은 바꾸지 않아도 각론적인 계획은 수시로 바꿔가며 우리
삶을 이끌어 가십니다. 그 하나님의 계획을 바꾸는 최고의 지렛대가 바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결국 감사는 행복과 축복의 바로미터이고 활력과
생명력의 원천입니다.
가족이 있으면 감사하고 가족이 없어도 성령님이 함께 하심을 체감하며 감사하십시오. 교회에 나올 수 있는
건강과 마음과 믿음을 가진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십시오. 그처럼 수시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결단하며 감사를 체질화시키십시오. 감사하면 행복이
찾아오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잃어버린 감사를 회복할 때 잃어버린 소유도 회복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고 믿음이 좋다는
최대 표식입니다. 항상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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