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더 무서운 것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으로 전두환 씨가
정권을 획득하자 학생들과 시민들이
크게 반발하자 군사정권은
5월 18일을 기해 계엄령을 선포(宣布)해 버렸다.
그 일 후에 광주 시내에서
등교 중이던 학생과 계엄군이 최초로
충돌하면서 시위가 확산되어 ‘화려한 휴가’는
작전(作戰)이 개시되었다.
택시기사 민우는 일찍 부모님을
잃은 뒤 동생과 함께
평범(平凡)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동생과 같은 성당에 다니는
간호사 신애를 좋아해 구애를 펼치고 있는데,
어느 날 평생(平生) 기억하고 싶지 않는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언론이나 방송에서는 광주에서
빨갱이 사주를 받은 무장 세력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보도가 광주(光州)사태를
알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광주에는 이미 무고한 시민들이
총칼로 무장한 진압군들에 의해
죽어가며 지옥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상황임을 인식한
퇴역 대령출신 흥수는
시민군을 결성(結成)해 끝을
알 수 없는 사투는 시작되었지만,
시민들에겐 6.25전쟁만큼
끔찍스러운 열흘이 된 것이다.
지난주에 나는 서울에서 손님이 와서
가족(家族)들과 함께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았는데,
보면서 첫 번째로 생각이 들었던 것은
최근 국내 영화 중 흥행에 성공했다는 영화들 마다
한국의 근, 현대사의 비극을 영화 소재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이었다.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영화는 흥행에서도 성공했지만 개봉과 동시에
사회적인 이슈까지 낳을 정도로
시대에 대한 분노를 공감(共感)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우리 근대사에서
5.18은 여러모로 보나 시대적인 비극과 아울러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큰 사건이었는데,
왜 이제야 이런 영화가 만들어
졌는지에 대한 의구(疑懼)심을 갖게 되었다.
어찌되었든 간에 ‘화려한 휴가’는
재미있는 영화(映畵)가 아니라
우리 가족에겐 가슴에 남는 영화가 되었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몇몇 사람의 오판 앞에
저항할 방법이 없는 소시민들의 더 큰
비극을 극대화 하려고 전반부에
일부러 많은 웃음을 유발(遺髮)시켰지만,
웃었던 만큼 후반부엔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영화였다.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린 첫 번째 원인은 그 영화는
사실(事實)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비극(悲劇)은 작가가 감정을 조절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던
실화(實話)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 일어난 그 일은 믿고 싶지 않지만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때의 상처(傷處)가 아직도
아물지 않고 도처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픽션과 논픽션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픽션은 작품완성도를 높여
어떤 극적인 장면을 연출 한다 해도
관객이 마음속으로,
‘이건 단지 영화이야기야...’하면
더 이상 작가의 의도는 퇴색되어 버린다.
허나 누가 죽고 또
어떻게 전개될 줄 안다 해도
‘이건 실화야...’하면 영화 속의 슬픔은
고스란히 자기일이 되어버리는 것이
논픽션의 능력(能力)이라 말할 수 있다.
나이를 불문(不問)하고
결혼을 하면 어른이 된다는 말이 있다.
부모를 떠나 살다보면 인생이 얼마나
현실적인가를 매 순간 뼈저리게
느끼기에 스스로 어른이 되어 버린다.
결혼(結婚)은 겉으로 볼 때는
좋을 것 같지만, 내부적으론 부부가 직접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가득 차 있다.
또 무슨 일을 하든지
둘이 하나가 되지 않고는 행복은커녕
천하에 원수와 동거해야한다는
현실적(現實的)인 히든 스토리들이
아이 같은 인생을 어른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우리 착한 창수, 죽을 리 없어...’
영화 속에 어떤 어머니의 절규 앞에
함께 고뇌(苦惱)했던 것은 그 아들은 이미
죽었다는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석가가 궁 밖에서 사고(四苦)를
처음 본 후에 출가(出家)를 작심했듯이,
인생도 날마다 현실과 싸우지 않고는
고상은커녕 생존자체도 어렵다.
거짓학력 도마 위에 오른 신정아 씨는
겉으론 동화 같은 삶을 살았지만,
속은 신용불량자라는 현실 앞에
스스로 얼마나 비굴(卑屈)한 삶을
살았을까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크고 작은
수많은 현실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기형적인 자신만의 꿈만을
주장할 때 인생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그렇다고 매 순간마다 너무 현실 앞에
순복하여 현실의 종이 되는 것은
더 큰 문제(問題)의 삶이다.
다만 오늘이라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난관들을
이겨나가며 최선을 다하는 삶이
진정한 ‘오늘’ 앞에
부끄럽지 않는 인생이 될 것이다.
둘째로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세상에서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시 한 번 실감했었다.
‘총보다 무서운 것이 뭔지 아나?
바로 그 총을 겨누는 사람이라네.’
시민군 사령관인 안성기는
무력으로 진압하는 일을 거부하며
이 말을 할 때 나는 무릎을 치며 공감이 되었다.
가장 신성 시 해야 할 태극기와 애국가를
통해 계엄군은 무참히 살해하라는
신호(信號)를 보낸 셈이었다.
이제는 모든 시민에게 총격을
가했던 계엄군은 마을버스를 학살하며,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옷을 벗긴 채
개 끌듯이 끌고 갔었다.
6.25 이후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다는
5.18 사태는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는 현대사의 비극이지만,
그러한 비극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라는 사실(事實)이 더 두려운 일이 아닌가.
지하철에 어느 아주머니가 서 있는데,
노숙자가 다가와 돈을 달라니깐
그녀는 무서워 그를 무시하고 피했는데,
그것이 화가 난다고 그 노숙자는
아줌마를 철도(鐵道)에 밀쳐버렸던 것이다.
이러니 사람이 귀신보다 더 무섭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이런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 날마다 생성(生成)되고 있다.
사람은 항상 두 얼굴이 공존한다.
착한 성품의 천사와 악한 성품의 악마의
모습이 공존하는 이중적인 존재다.
돈과 명예, 자존심 때문에
사람은 한 순간에 천사에서 마귀가 된다.
남자들은 한 평생 살아도 부인을 다
이해(理解)할 수 없듯이 어리석은 인간은
사람에 대해 여전히 의문투성이기에,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다만
사랑하고 섬길 때 기쁨이 있을 뿐이다.
사람도 무섭지만 정말로 무서운 것은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진실(眞實)에 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지만 진실은
어떤 사람이든지 상관하지 않고
밝혀지면 질수록 죽기 전에
현상에서 떠나야만 한다는 무서운 힘이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진실(眞實)을 늘 왕따처럼 여겼고,
저 밖에나 있는 추상적인 진리로 알고 있지만
진실은 오늘도 일상(日常) 속에 근본임을
알아야만 평안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다.
흔히 종교(宗敎)를 떠나서
귀한 가르침을 주는 사람들의 특징은
일상 속에서 이미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현대인은 지식과 물질을 통해 편리함과
명예를 얻지만 2% 목마름에서
벗어나지 못해 늘 사고(事故)를 치고 있다.
나는 처서(處暑)가 지난
그날 밤부터 싸늘한 공기를 느끼며
자연의 질서 앞에 새삼 경외함이 느껴졌다.
아무리 떠들어도 세상은 결국
진실대로 아니 신(神)의
경륜에 따라 운행되어지고 있음을 알고
사람보다는 진실 앞에 더 겸손하게
사는 길만이 가장 잘 죽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셋째는 ‘기억’(記憶)이라는 단어의 여운이다.
‘광주 시민 여러분! 우리를 기억해 주십시오!’
신애는 광주 시내를 돌아다니며 외쳤다.
그 소리를 듣고 사람들은 도청으로
모여 진압군과 최후(最後)의
일전을 벌리다가 죽어갔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결혼식 사진에는
모두가 웃고 있는데 신애 혼자 우울하다.
주인공인 신부(新婦)가 웃어야 하는데
그녀는 왜 웃을 수가 없었을까.
평범한 택시운전사, 학생, 간호사, 선생님,
그리고 신부님들은 원치 않는 역사적
사건에 휘말려 죽은 일은 슬프지만,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그들을
우리는 왜 기억(記憶)해야만 하는가.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평안은
어느 한 영웅이 이룬 것이 아니라,
광주에서 사라진 그들처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수많은 무명의
민초(民草)들이 말없이 밀알처럼 살다가
사라졌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우리를 기억해 달라’는 신애의
가두방송은 생존자들에게는 죄책감이
느껴지게 하는 말 같지만 영화의 본래 의도는
진실을 향한 정의는 계속 되어야만
그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요,
또한 이미 사라진 뭇 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억하고
있다는 자체가 은혜(恩惠)다.
더 이상 아프지 않으려면,
더 이상 빠져들지 않으려 한다면,
아픔은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기억(記憶)해야만 한다.
나는 중 1학년 때 어머니 장례를 치룬 후
집에 돌아와 자장면을 먹는데 누나는
울기만 하고 먹질 못했는데,
나는 그 남은 음식까지 먹고 싶었다.
지금도 그 때만 생각하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는데 아마도
그 땐 너무 철이 없어서 어머니란
자리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모양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 혼자
생활하면서 비로써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인생에서 귀감이 되었던 일
인생에서 가장 큰 고비
인생에서 사장 큰 실패(失敗)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이 마지막 이라는 자세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며
남은 생명을 설계(設計)할 때,
우리의 생은 무게를 더해가면서 그 분 앞에
할 말을 준비(準備)하게 할 것이다.
주여,
제가 제일 부러워하는
두 가지 일을 당신도 아실 것입니다.
명예롭게 퇴직(退職)하는 일이요,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
당당하게
신의 부름을 받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도 물론 무섭지만
진실(眞實)은 더 무섭기에
늘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그래야만,
그 날 당신 앞에
두려움 없이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7년 8월 26일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사진허락작가ꁾ투가리님 lovenphoto님 크로스맵 해와달(정승제님) 포남님
^경포호수^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