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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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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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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필로 쓰는 최완택목사의 민들레교회 이야기 제 625호 중에서
北山편지
사랑하는 민들레 형제•자매 여러분.
어느새 절기가 여름의 셋째 절기요, 여름의 한창 때인 망종(芒種)에 들었습니다. 세월이 참 빠르게 흐르지요?
망종(芒種)이란 벼, 보리 등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말합니다. 망(芒)이라는 글자가 벼, 보리 따위의 수염인 까끄라기를 뜻합니다. 이 시기는 모내기와 보리베기에 알맞은 때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芒種)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망종은 결국 우리 민족의 일용(日用)할 양식(糧食)과 아주 깊은 관계가 있는 절기입니다.
보십시오. 가을에 심어 싹을 틔우고 그 어린 싹으로 한겨울 눈구덩 속에서 겨울을 이겨내며 그 어린 몸에 음기(陰氣)를 가득 배고 자란 보리가 초여름에 추수되어 양기로 가득 찬 한여름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 사람들에게 음기를 보태주고, 초여름에 모내기하여 한여름 땡볕 속에 온몸으로 양기를 받아들인 쌀은 늦가을에 추수되어 음기로 가득찬 한겨울을 사는 사람들에게 양기를 보태주는 일용할 양식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 민족의 일용할 양식인 쌀과 보리만 보더라도 우리 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큰 복을 받은 민족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비록 시방 농사하지 않고 살더라도 망종절기만이라도 농사와 창조질서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갖기를 당부합니다. 저 들에 나가 보리가 어떻게 추수되고 벼가 어떻게 심어져 자라는지를 살펴보고 농사짓는 형제•자매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도 합시다.
우리는 시방 달로는 6월에 들었습니다. 6월 5일은 ‘세계 환경의 날’이고 우리 교회는 6월 첫째주일 또는 둘째주일에 ‘환경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1984년 3월에 제가 한국공해문제연구소(시방은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소장으로 들어가서 맨 먼저 한 일이 세계환경의 날을 즈음하여 환경주일을 제정하고 선포한 일이었습니다. 이 씨앗이 자라서 1992년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 환경위원회가 구성되고 KNCC ‘환경주일’을 선포함에 따라 한국교회가 마침내 공동으로 환경주일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KNCC 회원교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교파들의 교회들이 다같이 환경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올해 환경주일의 주제는 “한국교회여 지구를 식혀라”입니다. 시방 하느님의 몸이요, 또 우리의 몸인 지구가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작년 11월 6일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세계 기후정상회의에서 영국 정부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보고서에서, 세계가 시급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지구온난화 비용으로 9조 6천억 달라를 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세계 1, 2차 대전 비용을 능가하는 것으로 세계 공황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하였습니다.
지난 2월 2일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의 보고는 지난 50년 동안에 있었던 지구 온난화의 주된 원인이 인간의 화석연료 사용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힘으로 온난화에 대한 책임공방에 종지부를 찍고 인간의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또한 10년 내로 지구온난화 해결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지구가 멸망할 거싱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시방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온 인류가 합심 협력하여 지구를 식히는 일 밖에는 달리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식힐 수 있을까요?
2007년 1월에 열린 다보스포럼(경제포럼)의 핵심의제는 단연 지구온난화였습니다. 다보스포럼 이후 부시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변하고 있습니다. 2017년까지 휘발유 소비를 20% 감축하기로 선언하고 대체 에너지로 바이오매스 생산을 선언했습니다. 과연 이런조치가 열나는 지구를 식힐 수 있을까요?
저 옛날, 노아의 홍수 때, “하느님 보시기에 세상은 너무나 썩어 있었다.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어 있었다. 하느님 보시기에 세상은 속속들이 썩어, 사람들이 하는 일이 땅위에 냄새를 피우고 있었다.”(창세기 6장 12절)
그래서 하느님은 무법천지 세상을 물로 다 쓸어 버리셨습니다. 노아와 함께 배에 있던 사람과 짐승만 살아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린것을 후회하신 듯 합니다. “나는 너희와 계약을 세워 다시는 홍수로 모든 동물을 없애 버리지 않을 것이요. 다시는 홍수로 땅을 멸하지 않으리라.”(창세지 8장 11절)
하느님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오는 저 아우성을 나는 차마 들을 수 없다. 너무나 엄청난 죄를 짓고들 있다.”(창세기 18장 20절)고 장탄식하고서 “손수 하늘에서 유황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퍼부으시어 거기에 있는 도시들과 사람과 땅에 돋아난 푸성귀까지 모조리 태워버리셨다.”(창세기 19장 23-25절)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조카인)롯이 살고 있던 그 도시를 뒤엎으시면서도 롯을 파멸에서 건져 주셨던 것이다.(창세기 19장 29절)
하느님의 천사들이 처음에 롯에게 내린 경고는 이렇습니다. “살려거든 어서 달아나거라. 뒤를 돌아다 보아서는 안된다. 이 분지 안에는 아무데도 머물지 말아라. 있는 힘을 다 내어 산으로 피해야 한다.”(창세기 19장 17절)
그러나 롯은 그들에게 간청했습니다. “재앙이 당장 눈앞에 있는데 산으로 도망치다가는 죽고 말 것입니다. 저기 보이는 작은 도시 소알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소알이라는 도시는 남았습니다. 그런데 롯은 종당에 소알에서 살 수가 없어서 산에 들어가 살게 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큰 재난의 날에) 황폐의 상징인 흉측한 우상이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선 것을 보거든(독자는 알아 들으라.) 유다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하라.”(마가 13장 14절)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가장 큰 재난의 날’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시방 서둘러 산으로 도망할 때입니다.
산(山)은 무엇입니까? 인간이 만든 도시에 대하여 하느님이 만드신 창조의 세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산은 구원의 한 상징이 됩니다. 산에 드는 사람은 도시를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아아.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롯으로 인하여 ‘소알’이라는 도시가 살아 남았습니다. ‘소알’로 인하여 ‘소돔과 고모라’는 여전히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롯으로 인하여 ‘소알’이라는 도시가 살아 남았는데, 거기서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종당에 롯은 산으로 도망합니다.
우리 주님게서 말씀하십니다. “(가장 큰 재난의 날에)산으로 도망하라!”
산(山) 그 자체는 물론 구원이 아닙니다. 그러나 산으로 가는 길은 구원으로 가는 길입니다. 산은 반드시 멸망의 도시를 등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
北山편지
사랑하는 민들레 형제•자매 여러분.
어느새 절기가 여름의 셋째 절기요, 여름의 한창 때인 망종(芒種)에 들었습니다. 세월이 참 빠르게 흐르지요?
망종(芒種)이란 벼, 보리 등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말합니다. 망(芒)이라는 글자가 벼, 보리 따위의 수염인 까끄라기를 뜻합니다. 이 시기는 모내기와 보리베기에 알맞은 때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芒種)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망종은 결국 우리 민족의 일용(日用)할 양식(糧食)과 아주 깊은 관계가 있는 절기입니다.
보십시오. 가을에 심어 싹을 틔우고 그 어린 싹으로 한겨울 눈구덩 속에서 겨울을 이겨내며 그 어린 몸에 음기(陰氣)를 가득 배고 자란 보리가 초여름에 추수되어 양기로 가득 찬 한여름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 사람들에게 음기를 보태주고, 초여름에 모내기하여 한여름 땡볕 속에 온몸으로 양기를 받아들인 쌀은 늦가을에 추수되어 음기로 가득찬 한겨울을 사는 사람들에게 양기를 보태주는 일용할 양식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 민족의 일용할 양식인 쌀과 보리만 보더라도 우리 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큰 복을 받은 민족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비록 시방 농사하지 않고 살더라도 망종절기만이라도 농사와 창조질서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갖기를 당부합니다. 저 들에 나가 보리가 어떻게 추수되고 벼가 어떻게 심어져 자라는지를 살펴보고 농사짓는 형제•자매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도 합시다.
우리는 시방 달로는 6월에 들었습니다. 6월 5일은 ‘세계 환경의 날’이고 우리 교회는 6월 첫째주일 또는 둘째주일에 ‘환경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1984년 3월에 제가 한국공해문제연구소(시방은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소장으로 들어가서 맨 먼저 한 일이 세계환경의 날을 즈음하여 환경주일을 제정하고 선포한 일이었습니다. 이 씨앗이 자라서 1992년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 환경위원회가 구성되고 KNCC ‘환경주일’을 선포함에 따라 한국교회가 마침내 공동으로 환경주일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KNCC 회원교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교파들의 교회들이 다같이 환경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올해 환경주일의 주제는 “한국교회여 지구를 식혀라”입니다. 시방 하느님의 몸이요, 또 우리의 몸인 지구가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작년 11월 6일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세계 기후정상회의에서 영국 정부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보고서에서, 세계가 시급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지구온난화 비용으로 9조 6천억 달라를 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세계 1, 2차 대전 비용을 능가하는 것으로 세계 공황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하였습니다.
지난 2월 2일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의 보고는 지난 50년 동안에 있었던 지구 온난화의 주된 원인이 인간의 화석연료 사용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힘으로 온난화에 대한 책임공방에 종지부를 찍고 인간의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또한 10년 내로 지구온난화 해결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지구가 멸망할 거싱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시방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온 인류가 합심 협력하여 지구를 식히는 일 밖에는 달리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식힐 수 있을까요?
2007년 1월에 열린 다보스포럼(경제포럼)의 핵심의제는 단연 지구온난화였습니다. 다보스포럼 이후 부시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변하고 있습니다. 2017년까지 휘발유 소비를 20% 감축하기로 선언하고 대체 에너지로 바이오매스 생산을 선언했습니다. 과연 이런조치가 열나는 지구를 식힐 수 있을까요?
저 옛날, 노아의 홍수 때, “하느님 보시기에 세상은 너무나 썩어 있었다.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어 있었다. 하느님 보시기에 세상은 속속들이 썩어, 사람들이 하는 일이 땅위에 냄새를 피우고 있었다.”(창세기 6장 12절)
그래서 하느님은 무법천지 세상을 물로 다 쓸어 버리셨습니다. 노아와 함께 배에 있던 사람과 짐승만 살아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린것을 후회하신 듯 합니다. “나는 너희와 계약을 세워 다시는 홍수로 모든 동물을 없애 버리지 않을 것이요. 다시는 홍수로 땅을 멸하지 않으리라.”(창세지 8장 11절)
하느님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오는 저 아우성을 나는 차마 들을 수 없다. 너무나 엄청난 죄를 짓고들 있다.”(창세기 18장 20절)고 장탄식하고서 “손수 하늘에서 유황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퍼부으시어 거기에 있는 도시들과 사람과 땅에 돋아난 푸성귀까지 모조리 태워버리셨다.”(창세기 19장 23-25절)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조카인)롯이 살고 있던 그 도시를 뒤엎으시면서도 롯을 파멸에서 건져 주셨던 것이다.(창세기 19장 29절)
하느님의 천사들이 처음에 롯에게 내린 경고는 이렇습니다. “살려거든 어서 달아나거라. 뒤를 돌아다 보아서는 안된다. 이 분지 안에는 아무데도 머물지 말아라. 있는 힘을 다 내어 산으로 피해야 한다.”(창세기 19장 17절)
그러나 롯은 그들에게 간청했습니다. “재앙이 당장 눈앞에 있는데 산으로 도망치다가는 죽고 말 것입니다. 저기 보이는 작은 도시 소알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소알이라는 도시는 남았습니다. 그런데 롯은 종당에 소알에서 살 수가 없어서 산에 들어가 살게 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큰 재난의 날에) 황폐의 상징인 흉측한 우상이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선 것을 보거든(독자는 알아 들으라.) 유다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하라.”(마가 13장 14절)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가장 큰 재난의 날’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시방 서둘러 산으로 도망할 때입니다.
산(山)은 무엇입니까? 인간이 만든 도시에 대하여 하느님이 만드신 창조의 세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산은 구원의 한 상징이 됩니다. 산에 드는 사람은 도시를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아아.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롯으로 인하여 ‘소알’이라는 도시가 살아 남았습니다. ‘소알’로 인하여 ‘소돔과 고모라’는 여전히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롯으로 인하여 ‘소알’이라는 도시가 살아 남았는데, 거기서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종당에 롯은 산으로 도망합니다.
우리 주님게서 말씀하십니다. “(가장 큰 재난의 날에)산으로 도망하라!”
산(山) 그 자체는 물론 구원이 아닙니다. 그러나 산으로 가는 길은 구원으로 가는 길입니다. 산은 반드시 멸망의 도시를 등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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