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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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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서기 훈련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일을 맡겨야 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훈련을 시키십니다. 전문성에 관계없이 누구나 받아야 할 훈련은 바로 홀로서기입니다. 길을 가다가 아기가 넘어지면 모르는 척 딴 곳으로 눈 돌리는 엄마를 봅니다. 아기는 소리도 지르고 사방을 둘러보며 구원을 요청하지만 지혜로운 엄마는 여전히 모르는 척 합니다.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을 기르기 위한 방법입니다.
소그룹을 인도 한지 10년쯤 되던 해 입니다. 더 이상의 훈련은 없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을 때쯤 더 깊은 회개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께서 내 실상의 모습을 보게 해 주셨습니다. 내 안에 있는 더러운 오물을 보게 하셨습니다.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지만 주님은 오히려 그 모습을 겸손함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다시 흘러서 한국을 떠나 말도 통하지 않는 미국 땅에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일가 친척도 없는 타국에서 내 가족만이라도 내 편이라 생각하고 맘 놓고 살다 보니 점점 어그러지는 일들이 솟아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스라치게 놀랄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계기를 통하여 알게 되었지만 우리 가족 모두가 내 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참고 견디어 주었기에 내가 평안했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부터는 가족들의 평안을 위해 되는대로 살았던 생활을 뒤집어 색다른 관심을 가져보기로 했습니다.
그때 깨달은 것이 홀로서기 훈련이었습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남이 아니고 내 가족입니다. 내 가족이 하는 일은 나를 발가 벗기는 일이었습니다(눅 12:49-53)성경 말씀을 적용해야 할 부분이 돌출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끼리 분쟁하는 것을 허락하신 주님께서 그 분쟁을 뛰어넘어가게 하는 지혜와 기술을 터득하게 하셨습니다(마 10:21).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마 7:5-6).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 집안 사람이로다.
그렇습니다. 나만이 겪는 일이 아니고 누구나 겪고 통과해야 할 사항이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일은 주님께서 우리 가정에 허락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피차 원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야 비로소 자기 정체성을 면밀하게 볼 수가 있었습니다. 결국 내 가족이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가족도 내 이웃일 뿐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 가족이 아니고 이웃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몰려오는 외로움이 있었습니다. 어차피 극복해야 할 일입니다. 보다 더 친절한 이웃이 되기 위해 새롭게 언어 경영을 하고, 태도 경영을 해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어그러진 관계가 또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단 내가 겪어 내야 할 외로움은 예외였습니다. 그 외로움 속에서 주님을 부릅니다. 내 작은 신음까지도 응답해 주시는 주님을 이전보다 더 깊게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어떤 간증자의 간증을 들으면서 참 부럽다는 생각이 잠깐 스쳤습니다. 외모도 손색없이 아름답고,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찬양드려 많은 사람을 감동케 합니다. 정상적인 교육으로 모든 사람이 선망하는 직업을 갖고 남편도 잘 만나서 전폭적인 사랑을 받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은혜 속에 잠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자가 천국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만큼 어렵다고 했는데 그 간증자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평은 아브라함에게도, 요셉에게도, 성경 어떤 인물에게도 적용되었던 것처럼 그 간증자에게도 견디어 내야만 하는 홀로서기 훈련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남편의 예리한 관찰은 나의 옷을 벗기는 작업이었고, 아들의 예리한 관찰은 내 몸의 가죽을 벗기는 작업이었으며, 며느리의 예리한 관찰은 보이지않는 심령 깊숙하게 숨어 있는 것들을 끄집어 내는 작업이었습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나 또한 남편의 옷을 벗기는 삶을 살았고, 아들 몸의 가죽을 벗기고, 며느리의 정체성을 내 판단으로 뒤집는 역할을 했다는 고백입니다. 이만하면 피차 원수 역할을 잘 감당했다는 결론 앞에 부끄러워 머리 숙여집니다. 주님의 인간을 향한 끝이 없는 교육은 가족 구성원을 통하여 원수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남편의 예리한 관찰이 더러운 옷을 벗어 버리게 하므로 새 옷을 입게 되었고, 아들의 예리한 관찰로 내 몸의 가죽이 벗겨 지므로 새살이 돋아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며느리의 예리한 관찰이 내 깊은 심령 속에 감추어 놓은 죄성 까지도 끄집어 낼 수가 있었기에 주님께로부터 위로의 손길을 더 깊게 체험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상황들은 외로움의 극치를 맛보게 하였고, 외로움 속에서 흐르는 눈물은 주님의 사랑의 끈을 당기게 하였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끈에 묶여진 내 삶은 오직 주님만이 조절해 주시고 경영해 주심을 날마다 경험하게 하십니다. 내 음성도 강약의 기술이 필요했고, 내 태도와 갖추어야 할 외모도 조절해 가시는 주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누군가를 통해 내 자존심을 자극해 올 때 참고 여과시켜 인격을 성장하게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성장된 인격으로 겸손의 질을 높이려는 주님의 사랑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나와 함께 동행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일을 맡겨야 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훈련을 시키십니다. 전문성에 관계없이 누구나 받아야 할 훈련은 바로 홀로서기입니다. 길을 가다가 아기가 넘어지면 모르는 척 딴 곳으로 눈 돌리는 엄마를 봅니다. 아기는 소리도 지르고 사방을 둘러보며 구원을 요청하지만 지혜로운 엄마는 여전히 모르는 척 합니다.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을 기르기 위한 방법입니다.
소그룹을 인도 한지 10년쯤 되던 해 입니다. 더 이상의 훈련은 없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을 때쯤 더 깊은 회개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께서 내 실상의 모습을 보게 해 주셨습니다. 내 안에 있는 더러운 오물을 보게 하셨습니다.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지만 주님은 오히려 그 모습을 겸손함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다시 흘러서 한국을 떠나 말도 통하지 않는 미국 땅에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일가 친척도 없는 타국에서 내 가족만이라도 내 편이라 생각하고 맘 놓고 살다 보니 점점 어그러지는 일들이 솟아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스라치게 놀랄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계기를 통하여 알게 되었지만 우리 가족 모두가 내 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참고 견디어 주었기에 내가 평안했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부터는 가족들의 평안을 위해 되는대로 살았던 생활을 뒤집어 색다른 관심을 가져보기로 했습니다.
그때 깨달은 것이 홀로서기 훈련이었습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남이 아니고 내 가족입니다. 내 가족이 하는 일은 나를 발가 벗기는 일이었습니다(눅 12:49-53)성경 말씀을 적용해야 할 부분이 돌출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끼리 분쟁하는 것을 허락하신 주님께서 그 분쟁을 뛰어넘어가게 하는 지혜와 기술을 터득하게 하셨습니다(마 10:21).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마 7:5-6).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 집안 사람이로다.
그렇습니다. 나만이 겪는 일이 아니고 누구나 겪고 통과해야 할 사항이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일은 주님께서 우리 가정에 허락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피차 원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야 비로소 자기 정체성을 면밀하게 볼 수가 있었습니다. 결국 내 가족이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가족도 내 이웃일 뿐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 가족이 아니고 이웃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몰려오는 외로움이 있었습니다. 어차피 극복해야 할 일입니다. 보다 더 친절한 이웃이 되기 위해 새롭게 언어 경영을 하고, 태도 경영을 해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어그러진 관계가 또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단 내가 겪어 내야 할 외로움은 예외였습니다. 그 외로움 속에서 주님을 부릅니다. 내 작은 신음까지도 응답해 주시는 주님을 이전보다 더 깊게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어떤 간증자의 간증을 들으면서 참 부럽다는 생각이 잠깐 스쳤습니다. 외모도 손색없이 아름답고,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찬양드려 많은 사람을 감동케 합니다. 정상적인 교육으로 모든 사람이 선망하는 직업을 갖고 남편도 잘 만나서 전폭적인 사랑을 받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은혜 속에 잠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자가 천국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만큼 어렵다고 했는데 그 간증자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평은 아브라함에게도, 요셉에게도, 성경 어떤 인물에게도 적용되었던 것처럼 그 간증자에게도 견디어 내야만 하는 홀로서기 훈련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남편의 예리한 관찰은 나의 옷을 벗기는 작업이었고, 아들의 예리한 관찰은 내 몸의 가죽을 벗기는 작업이었으며, 며느리의 예리한 관찰은 보이지않는 심령 깊숙하게 숨어 있는 것들을 끄집어 내는 작업이었습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나 또한 남편의 옷을 벗기는 삶을 살았고, 아들 몸의 가죽을 벗기고, 며느리의 정체성을 내 판단으로 뒤집는 역할을 했다는 고백입니다. 이만하면 피차 원수 역할을 잘 감당했다는 결론 앞에 부끄러워 머리 숙여집니다. 주님의 인간을 향한 끝이 없는 교육은 가족 구성원을 통하여 원수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남편의 예리한 관찰이 더러운 옷을 벗어 버리게 하므로 새 옷을 입게 되었고, 아들의 예리한 관찰로 내 몸의 가죽이 벗겨 지므로 새살이 돋아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며느리의 예리한 관찰이 내 깊은 심령 속에 감추어 놓은 죄성 까지도 끄집어 낼 수가 있었기에 주님께로부터 위로의 손길을 더 깊게 체험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상황들은 외로움의 극치를 맛보게 하였고, 외로움 속에서 흐르는 눈물은 주님의 사랑의 끈을 당기게 하였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끈에 묶여진 내 삶은 오직 주님만이 조절해 주시고 경영해 주심을 날마다 경험하게 하십니다. 내 음성도 강약의 기술이 필요했고, 내 태도와 갖추어야 할 외모도 조절해 가시는 주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누군가를 통해 내 자존심을 자극해 올 때 참고 여과시켜 인격을 성장하게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성장된 인격으로 겸손의 질을 높이려는 주님의 사랑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나와 함께 동행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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