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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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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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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선생과 고봉 기대승이 주고 받은 편지 중에 재미있는 편지가 있다. 1567년 2월에 퇴계 선생이 쓴 이 편지는 자기 이름으로 나도는 ‘용학석의’라는 책을 불태워 없애 달라고 고봉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편지다.
평안도 중화군수 안위와 훈도 문명개가 판각한 이 책은 ‘중용’과 ‘대학’에 대한 여러 설이 너무 어지러운 것을 보고, 퇴계 선생이 자료를 모으고 연구하여 버리고 받아들일 것을 헤아려 본뜻을 찾아 하나의 주장으로 모아보려고 저술한 ‘용학석’을 다시 만든 것이다. 퇴계 선생은 ‘용학석’을 저술하고 나서 논변은 하였지만 결론을 제대로 내지 못해 남에게 보이기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중화군에서 ‘어록석’을 덧붙여 다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자신의 책을 부끄러워한 퇴계-
퇴계 선생은 당시 몇 달째 병중에 있었는데 기대승이 중국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관서지방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편지를 써서 “엎드려 바라건대 중화군에 도착하거든 바쁜 일을 제쳐두고, 곧바로 그 판본을 찾아다가 뜰에서 불태우는 것을 감시한 다음 떠나기 바랍니다”하고 거듭거듭 부탁을 한다.
책을 만드는 데 관여한 두 사람 다 퇴계 선생이 아는 사람이고 퇴계 선생의 학문을 다른 이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한 일이었는데 퇴계 선생은 어찌나 이들을 책망하고 간곡하게 부탁하는지 기대승은 중화군에 들러 여섯 개 판 스물 네 장의 판각을 모아 마당에서 불태운다. 그리고 “관리들과 벗들이 매우 아쉬워했고 나 역시 매우 슬펐다”고 답장을 쓴다.
퇴계 선생은 단지 남에게 보이기 부족하다는 이유로 책의 판각을 불태워달라고 한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 68세로 크고 깊은 학문을 이룬 때였는데도 스스로는 어리석다고 생각하고 헛된 명성을 지닌 채 과분한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자신을 경계했던 것이다.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종이책으로 출판되는 서적 말고도 인터넷에 떠도는 글들이 너무 많아 지식의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 있는 글들 중에는 저자가 미처 알지도 못하는 상태로 떠돌아다니는 글이 많다.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글을 올릴 수 있고, 그 글을 퍼 옮길 수 있기 때문에 원문과 다른 채로 떠다니고 있는 글이 무수히 많다. 어떤 글은 임의로 편집되어 있기도 하고, 어떤 산문은 일부분이 시로 행 가름 된 채 바뀌어 있기도 하다. 오·탈자가 있는 글은 무수히 많고 지은이가 바뀌어 있는 경우도 있다.
엊그제 집으로 온 시선집을 보았더니 오·탈자 투성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발표한 시 중에 좋은 시를 가려 뽑은 책인데 오자가 많았다. 글은 한 자만 틀리게 인쇄되거나 띄어쓰기를 잘 못해도 다른 내용이 되기 때문에 문인들로서는 여간 속상한 게 아니다. 미국의 문학사가 매티슨이 허먼 멜빌의 ‘백경’에 나오는 ‘soiled fish of the sea’라는 구절을 보고 ‘바다의 더렵혀진 고기’란 이 심상은 “지상의 바다는 물론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심해의 공포를 의식하고 있던 상상의 산물”이라고 해석했는데 원전을 보니 ‘soiled’는 ‘coiled’ 즉 ‘몸을 사리고 있는 고기’의 오자였던 것이다. 한두 자의 오자가 어떤 결과를 빚어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유명한 예이다.
-변질된 채 e세상 떠도는 내 글-
자기가 저술한 책도 다시 보니 부끄럽고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태워달라고 한 퇴계 선생 같은 분을 보면 글을 쓴다는 일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책 한 권 세상에 내 놓는 일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일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쓴 글도 본래 내가 쓴 내용이 아닌 모습으로 변형되어 옮겨 다니고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망연자실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 어떤 때는 불태워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할 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도종환/시인〉
출처/경향신문 2007년 03월 29일
평안도 중화군수 안위와 훈도 문명개가 판각한 이 책은 ‘중용’과 ‘대학’에 대한 여러 설이 너무 어지러운 것을 보고, 퇴계 선생이 자료를 모으고 연구하여 버리고 받아들일 것을 헤아려 본뜻을 찾아 하나의 주장으로 모아보려고 저술한 ‘용학석’을 다시 만든 것이다. 퇴계 선생은 ‘용학석’을 저술하고 나서 논변은 하였지만 결론을 제대로 내지 못해 남에게 보이기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중화군에서 ‘어록석’을 덧붙여 다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자신의 책을 부끄러워한 퇴계-
퇴계 선생은 당시 몇 달째 병중에 있었는데 기대승이 중국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관서지방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편지를 써서 “엎드려 바라건대 중화군에 도착하거든 바쁜 일을 제쳐두고, 곧바로 그 판본을 찾아다가 뜰에서 불태우는 것을 감시한 다음 떠나기 바랍니다”하고 거듭거듭 부탁을 한다.
책을 만드는 데 관여한 두 사람 다 퇴계 선생이 아는 사람이고 퇴계 선생의 학문을 다른 이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한 일이었는데 퇴계 선생은 어찌나 이들을 책망하고 간곡하게 부탁하는지 기대승은 중화군에 들러 여섯 개 판 스물 네 장의 판각을 모아 마당에서 불태운다. 그리고 “관리들과 벗들이 매우 아쉬워했고 나 역시 매우 슬펐다”고 답장을 쓴다.
퇴계 선생은 단지 남에게 보이기 부족하다는 이유로 책의 판각을 불태워달라고 한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 68세로 크고 깊은 학문을 이룬 때였는데도 스스로는 어리석다고 생각하고 헛된 명성을 지닌 채 과분한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자신을 경계했던 것이다.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종이책으로 출판되는 서적 말고도 인터넷에 떠도는 글들이 너무 많아 지식의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 있는 글들 중에는 저자가 미처 알지도 못하는 상태로 떠돌아다니는 글이 많다.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글을 올릴 수 있고, 그 글을 퍼 옮길 수 있기 때문에 원문과 다른 채로 떠다니고 있는 글이 무수히 많다. 어떤 글은 임의로 편집되어 있기도 하고, 어떤 산문은 일부분이 시로 행 가름 된 채 바뀌어 있기도 하다. 오·탈자가 있는 글은 무수히 많고 지은이가 바뀌어 있는 경우도 있다.
엊그제 집으로 온 시선집을 보았더니 오·탈자 투성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발표한 시 중에 좋은 시를 가려 뽑은 책인데 오자가 많았다. 글은 한 자만 틀리게 인쇄되거나 띄어쓰기를 잘 못해도 다른 내용이 되기 때문에 문인들로서는 여간 속상한 게 아니다. 미국의 문학사가 매티슨이 허먼 멜빌의 ‘백경’에 나오는 ‘soiled fish of the sea’라는 구절을 보고 ‘바다의 더렵혀진 고기’란 이 심상은 “지상의 바다는 물론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심해의 공포를 의식하고 있던 상상의 산물”이라고 해석했는데 원전을 보니 ‘soiled’는 ‘coiled’ 즉 ‘몸을 사리고 있는 고기’의 오자였던 것이다. 한두 자의 오자가 어떤 결과를 빚어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유명한 예이다.
-변질된 채 e세상 떠도는 내 글-
자기가 저술한 책도 다시 보니 부끄럽고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태워달라고 한 퇴계 선생 같은 분을 보면 글을 쓴다는 일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책 한 권 세상에 내 놓는 일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일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쓴 글도 본래 내가 쓴 내용이 아닌 모습으로 변형되어 옮겨 다니고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망연자실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 어떤 때는 불태워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할 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도종환/시인〉
출처/경향신문 2007년 0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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