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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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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택목사의 기독교고전산책 ⑶] 기독교 강요
…1536년 당시의 개혁교회 체계화
◇기독교강요(1536년 초판 완역)/존 칼빈/크리스찬다이제스트
제네바의 개혁자 존 칼빈은 모든 시대에 걸쳐서 가장 뛰어난 기독교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종교개혁기에 교회적 정치가로서,종교적 논쟁가로서,교육가로서,저자로서 그의 명성과 영향은 넓게 퍼져나갔다. 그는 신학적 통찰력,주석적 재능,언어 지식을 통해 종교개혁가들 중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저술가가 되었다.
기독교강요 초판이 1536년 세상에 나왔을 때 이 걸작은 기독교계를 뒤흔들었고 역사를 움직였다. 당시 로마교회는 기독교강요를 두려워했다. 또한 개혁교회는 이 책으로 말미암아 체계가 잡히고 당당하게 참 교회를 향한 길을 갈 수 있었다.
칼빈은 그의 저서 기독교강요가 당시의 어려운 시기에 그리스도인으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안내서가 되기를 원했다. 모두 6장으로 이루어진 초판에서 칼빈은 자신의 저술 의도를 밝히고 있다.
오로지 본인의 목적은 종교적인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 참된 경건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확실한 기본원리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간단하고 초보적인 교리의 형태로 책을 펴냈는데 십계명과 주기도문 그리고 사도신경 해설을 그 안에 포함시켰다.
사실 칼빈은 진정한 복음주의자들을 변호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는 신앙의 형제들을 위한 교리문답서의 필요성을 느꼈다. 동시에 박해의 중단을 위해 프랑스 왕에게 탄원하고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동기가 기독교강요의 집필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교회 역사가 곤잘레스에 의하면 기독교강요는 개신교 신앙에 대한 조직적인 해설이요,개혁전통의 근본문서이다. 1559년 칼빈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책의 초판을 내놓았을 때 주님께서 무한한 은혜로 그와 같은 성공을 거두게 하실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따라서 나는 내가 더 분발하도록 격려해주신 여러분들의 열렬한 평가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여 미력이나마 보답하도록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장 큰 배은망덕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강요는 수백년 동안 개혁교회들의 필수적 신학 교과서가 되었다. 1536년 초판 이후 계속 조금씩 증보되었는데 중요한 판은 1536년, 1539년,1543년,1559년도 것이다. 초판의 사상이 거의 변함없이 최종판에도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초판은 칼빈 신학의 정수요 핵심이다. 초판은 학계에서 역사적 가치에 있어 최종판 이상으로 많이 읽혀지고 있다.
칼빈은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으로 살았고 그같은 자세로 글을 썼다. 그에게 있어서 경건은 신학의 배경이며 목표였다. 따라서 그는 그의 책을 경건대전이라고 불렀다. 그에 의하면 경건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선행조건이다. 이 책에서 칼빈은 차갑고 지적인 목소리가 아니라 열정과 따뜻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믿음,그리고 경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1536년 당시의 개혁교회 체계화
◇기독교강요(1536년 초판 완역)/존 칼빈/크리스찬다이제스트
제네바의 개혁자 존 칼빈은 모든 시대에 걸쳐서 가장 뛰어난 기독교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종교개혁기에 교회적 정치가로서,종교적 논쟁가로서,교육가로서,저자로서 그의 명성과 영향은 넓게 퍼져나갔다. 그는 신학적 통찰력,주석적 재능,언어 지식을 통해 종교개혁가들 중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저술가가 되었다.
기독교강요 초판이 1536년 세상에 나왔을 때 이 걸작은 기독교계를 뒤흔들었고 역사를 움직였다. 당시 로마교회는 기독교강요를 두려워했다. 또한 개혁교회는 이 책으로 말미암아 체계가 잡히고 당당하게 참 교회를 향한 길을 갈 수 있었다.
칼빈은 그의 저서 기독교강요가 당시의 어려운 시기에 그리스도인으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안내서가 되기를 원했다. 모두 6장으로 이루어진 초판에서 칼빈은 자신의 저술 의도를 밝히고 있다.
오로지 본인의 목적은 종교적인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 참된 경건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확실한 기본원리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간단하고 초보적인 교리의 형태로 책을 펴냈는데 십계명과 주기도문 그리고 사도신경 해설을 그 안에 포함시켰다.
사실 칼빈은 진정한 복음주의자들을 변호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는 신앙의 형제들을 위한 교리문답서의 필요성을 느꼈다. 동시에 박해의 중단을 위해 프랑스 왕에게 탄원하고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동기가 기독교강요의 집필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교회 역사가 곤잘레스에 의하면 기독교강요는 개신교 신앙에 대한 조직적인 해설이요,개혁전통의 근본문서이다. 1559년 칼빈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책의 초판을 내놓았을 때 주님께서 무한한 은혜로 그와 같은 성공을 거두게 하실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따라서 나는 내가 더 분발하도록 격려해주신 여러분들의 열렬한 평가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여 미력이나마 보답하도록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장 큰 배은망덕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강요는 수백년 동안 개혁교회들의 필수적 신학 교과서가 되었다. 1536년 초판 이후 계속 조금씩 증보되었는데 중요한 판은 1536년, 1539년,1543년,1559년도 것이다. 초판의 사상이 거의 변함없이 최종판에도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초판은 칼빈 신학의 정수요 핵심이다. 초판은 학계에서 역사적 가치에 있어 최종판 이상으로 많이 읽혀지고 있다.
칼빈은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으로 살았고 그같은 자세로 글을 썼다. 그에게 있어서 경건은 신학의 배경이며 목표였다. 따라서 그는 그의 책을 경건대전이라고 불렀다. 그에 의하면 경건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선행조건이다. 이 책에서 칼빈은 차갑고 지적인 목소리가 아니라 열정과 따뜻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믿음,그리고 경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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