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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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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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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택목사의 기독교고전산책 ⑸ 고백록]
나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초대교회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생애는 사도 바울의 경우처럼 갑작스럽고도 극적인 회심에 의해 시작됐다. 이 두 사람의 회심 체험은 비슷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 체험은 그들의 나머지 생애와 사상을 결정해주었다. 고백록에서 그는 자신의 젊은 날과 회심을 회상하면서 그 체험의 지속적인 영향을 증거하였다.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에서 태어난 아우구스티누스는 초대교회의 교부들 중 최후의 인물이었고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이었으나 그의 아버지 파트리시우스는 그의 아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던 것 같다.
당시 북아프리카에는 마니교라는 종교가 번창하고 있었다. 마니교는 이 세상의 모든 악과 고통은 구약의 조물주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하나님과 무관하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에 매력을 느낀 나머지 9년 동안이나 이 이단종교의 일원으로 남아 있었다.
고백록에 따르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공적인 삶을 살면서도 그가 가입한 마니교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후에 밀라노에 간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곳에서 암브로시우스 감독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386년 8월의 어느날 그는 밀라노 그의 집 정원의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 하나님,언제까지 이렇게 시간만 낭비해야 합니까?라고 부르짖었다고 한다. 그때 그 부르짖음에 대해 답변이라도 되듯 어린아이들의 노래가 들려 왔다. 그 노래 가사는 집어서 읽어보아라(라틴어로는 톨레 레게)였다. 그는 로마서 13장에서 눈에 띄는 말씀 몇 절을 읽었다.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고…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3~14) 그의 회심은 이렇게 이뤄졌다. 성경책을 덮고 나서 그는 나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율법은 우리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지만 우리는 스스로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될 수 없다. 당시에 펠라기우스는 원죄를 부인하면서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는 주인이며 따라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완전히 자유롭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바울 서신들이 그러한 주장과 다르게 말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가 볼 때 인간 본성에 대한 펠라기우스의 견해는 위험할 정도로 순진한 것이었고 또한 성경의 가르침이나 인간의 경험과도 조화되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그의 진리 사랑이다. 고백록은 한 인간의 진리 추구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종류의 고백적인 글은 서구 역사에서 최초의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기독교문학에서도 최초의 고백문학에 속하는 이 작품은 인간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쉴 때까지는 참된 안식과 평안을 얻지 못함을 증언하고 있다.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나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초대교회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생애는 사도 바울의 경우처럼 갑작스럽고도 극적인 회심에 의해 시작됐다. 이 두 사람의 회심 체험은 비슷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 체험은 그들의 나머지 생애와 사상을 결정해주었다. 고백록에서 그는 자신의 젊은 날과 회심을 회상하면서 그 체험의 지속적인 영향을 증거하였다.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에서 태어난 아우구스티누스는 초대교회의 교부들 중 최후의 인물이었고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이었으나 그의 아버지 파트리시우스는 그의 아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던 것 같다.
당시 북아프리카에는 마니교라는 종교가 번창하고 있었다. 마니교는 이 세상의 모든 악과 고통은 구약의 조물주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하나님과 무관하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에 매력을 느낀 나머지 9년 동안이나 이 이단종교의 일원으로 남아 있었다.
고백록에 따르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공적인 삶을 살면서도 그가 가입한 마니교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후에 밀라노에 간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곳에서 암브로시우스 감독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386년 8월의 어느날 그는 밀라노 그의 집 정원의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 하나님,언제까지 이렇게 시간만 낭비해야 합니까?라고 부르짖었다고 한다. 그때 그 부르짖음에 대해 답변이라도 되듯 어린아이들의 노래가 들려 왔다. 그 노래 가사는 집어서 읽어보아라(라틴어로는 톨레 레게)였다. 그는 로마서 13장에서 눈에 띄는 말씀 몇 절을 읽었다.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고…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3~14) 그의 회심은 이렇게 이뤄졌다. 성경책을 덮고 나서 그는 나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율법은 우리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지만 우리는 스스로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될 수 없다. 당시에 펠라기우스는 원죄를 부인하면서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는 주인이며 따라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완전히 자유롭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바울 서신들이 그러한 주장과 다르게 말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가 볼 때 인간 본성에 대한 펠라기우스의 견해는 위험할 정도로 순진한 것이었고 또한 성경의 가르침이나 인간의 경험과도 조화되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그의 진리 사랑이다. 고백록은 한 인간의 진리 추구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종류의 고백적인 글은 서구 역사에서 최초의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기독교문학에서도 최초의 고백문학에 속하는 이 작품은 인간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쉴 때까지는 참된 안식과 평안을 얻지 못함을 증언하고 있다.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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