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 출처 : |
|---|
“당신이 주님께 나올 때에는 온몸에 흙이 묻어 있고 심한 상처도 나 있는 연약한 어린아이,넘어지고 또 넘어져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어린아이로 나오라. 자기 자신의 힘은 하나도 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주님께 나오라.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는 힘이 전혀 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주님께 나오라. 당신의 불쌍한 상태를 겸손하게 아버지 앞에 내려놓으라.”(본문 중에서) 17세기 프랑스의 정적주의자(개신교의 경건주의자와 같은 경향)들은 완전에 이르기 위해 인간이 수동적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인간은 그가 그 자신의 구원을 생각하지 않을 정도까지 하나님에게 그 자신을 맡겨버려야 하며 그 상태는 기도로 도달될 수 있다는 것. 그 상태가 되면 죄를 범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1687년 교황 인노센트 11세는 정적주의를 정죄하였다.
잔 귀용(Jeanne Guyon·1648∼1717)은 1648년 4월18일 프랑스의 루이 14세 때 부유한 귀족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릴적에 몸이 허약했던 그녀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수녀원에서 지내며 그곳에서 교육받았다. 그녀가 15세가 되었을 때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자크 귀용이라는 부유한 상이군인과 결혼시켰다. 그 결혼은 그녀가 살면서 겪은 수많은 고통 중 하나였고 그 이후로 그녀의 일생은 거의 끊임없는 재난과 고난으로 점철되었다. 귀용 부인은 1676년 남편이 병으로 죽고 난 후 재혼하지 않고 평생을 주님과 함께 동행하리라고 서약했다. 1681년 그녀는 파리에서 제네바로 이주한 후 수십 권의 영적 서적들을 발간했다. 그러나 이 책들은 당시 죽은 전통과 형식에 사로잡혀 있던 가톨릭 성직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귀용 부인의 저서 가운데 그녀의 이름을 후세에 남기게 하는 데 기여한 책은 자서전과 이 책이다. 이 두 권의 책은 귀용 부인에 대한 종교재판에서 증거물로 제출되기도 했다. 그녀는 이 책으로 인하여 이단으로 정죄되고 결국은 악명 높은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 책은 경건주의자 진젠도르프 백작과 존 웨슬리,초기의 퀘이커 교도,허드슨 테일러 등에게 영향을 끼쳤다. 존 웨슬리에 대한 이 책의 영향은 부분적으로 그의 깊은 경건과 영성의 깊이를 설명해 주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의 목차에는 자기포기,안에 거하는 삶,자아 소멸,침묵 기도 등의 제목이 있는데 이것은 귀용 부인의 영적 관심사를 반영해준다. “고요함과 한적한 곳에 가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정말로 내면적인 세계로 방향을 돌린다는 것 즉,당신이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곳인 당신의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본문 중에서)
한때 프랑스에서는 이 책이 공개적으로 불태워지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는 간절히 그리스도를 찾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을 받는 ‘유익하고 힘있는 책들’ 가운데 하나로평가되고 있다.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폼나는 주보17
|
|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
|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