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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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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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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생산성 1 (Life Productivity)
오늘의 말씀 : 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8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9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11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욥42:7-12)
1. 예수님께서 당신의 성장과 성공에 얼마나 크게 관심하고 있는지 아는가?
성공한 사람의 뒤에는 헌신적인 희생자가 있다. 사람은 홀로 커나가지 않는다. 누군가 그를 끝까지 믿어주고 끌어주며 뒤에서 밀어주었기 때문에 성장하며 성공을 일구어낸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야 할 고지를 분명하게 바라보게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승리하도록 열정적인 관심을 갖고 지원하신다. 또 성장하기 원하고 변화받기 원하고 고침받기 원하는 모든 자들에게 가장 적절한 도움을 베푸셨고 더 낫고 더 잘하고 더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하셨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10:10)
2.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였는가?
세상은 온통 부정적이며 강압적인 태도로 가만히 만족하며 안주하고 있지 않으면 무서운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윽박지른다. 그러면서도 현실은 점점 밀물이 밀려오듯 다가오며 우리의 영역을 위협한다. 그러면 자리에서 일어나 좀 더 양보하지 않으면 않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세상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어제의 안전지대가 더 이상 오늘은 안전지대가 아니다.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뛰어 도약하기는 더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우리의 삶은 장속곡이 아니라 축제이다. 안전 지대에서 떠나 주님의 품에 안겨야 할 때다.
3. 당신은 완전히 망하고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인간관계가 있는가?
나른 사람들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살며, 더 쾌활한 삶을 산다는 보고가 있다. 섬길 때 엔돌핀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돈을 버느라 관계를 놓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사실 관계를 놓치면 조만간 돈도 놓치고 만다. 관계와 경제학은 긴밀하다. 관계를 최악의 상태로 몰고가지 않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혜인가? 어떤 경우에도 앞으론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한 영혼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우할 때 우리는 관계에서 성공한다.
4. 당신은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비판적인 편입니까?
심지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보란듯이 싸워대는 부부들도 있다. 내가 이런 형편없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으며 그래서 너무 억울하다는 하소연이다. 그러나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민망하기 짝이 없다. 남편의 폭력에, 또는 부모의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것이 벌써 오래 전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진노의 포도주를 쏟아 부으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노의 칼날을 가장 공정하고 예리한 솜씨로 사용하신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어떤 사람이 진노의 칼날을 들었을 경우 수 많은 주변 사람들이 그로 인해서 상처를 입는다. 어떤 상처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된다.
만약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칭찬하든지 징계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그만큼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게 된다.
인생 생산성 2 (Life Productivity)
오늘의 말씀 : 10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11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2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 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왕상17:10-14)
1. 남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 당신에게도 잘 어울립니까?
다윗은 빌려입은 갑옷이 익숙하지 않아서 이내 벗고 말았다. 남이 무엇을 통해 성공했다고 해서 나도 그대로 하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나의 길은 내가 개척해야만 한다.
내가 남의 도움을 끌어 내는 것은 지혜이지만, 남의 뒤에 숨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남의 장점이나, 남의 돈이나, 남의 명예나 특권을 이용해서 과연 나의 이익을 창출해 낼 수 있을까? 결국은 남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 주어야 한다.
그보다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으며, 나의 기술이나 장점이 무엇이며, 그것들은 경제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잘 따져보아야 한다. 그리고 남들로 하여금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을 얻으려 한다면 응당 그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불하게 한다. 그리고 지불한 비용은 어떤 명목으로 사용될 것이며 어떤 결과를 얻게 될 것인지를 분명히 해 둔다. 결국 비용을 많이 지불한 사람일수록 결과적으로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사람은 투자한 만큼 얻어가기 때문이다.
남의 옷을 입고 일하지 말고, 내 옷을 입고 일하라.
2. 당신 속에 어린이가 들어 있지는 않는가?
어떨 때 우리는 더 이상 어떤 사람을 어른으로 대우하지 말고 어린이로 대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돈문제에 관해서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누군가 내 사정을 봐 줄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특히 유교문화의 남존여비, 또는 선비문화나 양반문화에 젖은 한국 남성들에게는 현 시대에 어울리지 못하는 행동 양식들이 있다. 이들은 굶을지언정 허드렛일도 못하고, 체면을 중시해서 아쉬운 소리도 못하며 점잔을 빼느라고 재빨리 이익을 향해서 달음질도 치지 못한다. 그리고 뒤에서 혀를 끌끌 차며 세태를 한탄하지만 결코 상황을 되돌릴 능력은 없다. 자기 한몸 처신하는 것이 고작이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행동하지 못한다.
예수는 더 이상 우리가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지 못하게 하신다. 우리에게 진리라는 칼을 쥐어 주시고 그것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라고 하신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13:11)
3. 당신은 무난하게 지내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문제를 해결하기 원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무난하게 지내기 위해서 정작 해야 할 일들을 묻어 버리곤 한다.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하고 내 일이 아닌 이상 모른척 하고 지나치기 원한다. 문제는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지내던 습관대로 불편하지만 참고 견디려고 한다는 점이다. 공격적인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니다.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귀는 38년된 환자에게 와서 여전히 39년째에도 40년 째에도 그냥 아픈채로 누워지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어 보신다.
4. 초라하지만 주님 앞에 내 놓을만한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보잘것 없는 인생이 주님을 만났을 때 우리는 놀라운 사건을 경험한다. 왜냐면 나는 하나지만, 주님은 거기에 주님의 능력을 곱해 주시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너무 초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부끄러워 내가 가진 것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주님 앞에 내어 놓으면 주님은 그것으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신다. 나는 아무런 자랑할 것이 없지만 주님은 그것을 자랑스럽게 하신다.
인생 생산성 3 (Life Productivity)
오늘의 말씀: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겔47:1-5)
1. 당신은 좁은 길로 걸어갈 준비가 되었는가?
예수님은 넓은 길 보다는 오히려 좁은 길로 가라고 하신다. 자신의 상식이나 지혜로 가는 길은 넓은 길이고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길은 좁은 길이다. 좁은 길을 걸어가면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신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만사형통하게 된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그 길은 좁은 길이다. 어려운 길이다. 그러나 진리의 길이고 사명의 길이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흔히 좁은 길은 고난의 길, 기초를 다지는 길, 원칙을 고수하는 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길, 철저하게 지식이나 정보를 깨우치는 일로 묘사될 수 있다. 아브라함은 풍요로운 고장을 떠나야 했다. 야곱은 삼촌 집으로 가야 했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가서 종살이를 해야 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에 광야생활을 해야 했다. 예수를 믿으면 죄악을 벗어나서 광명한 새 삶을 살게 되는것이 사실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영광의 길을 걷기 전에 고난의 길을 먼저 걸어야 한다.
2. 하나님은 당신에게 냉엄하신가, 아니면 다정 다감하신가?
세상에는 무뚝뚝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날마다 손해를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무뚝뚝한 것은 일종의 교만이고 무식을 동반한 실례이다. 모든 기회나 은총에서 무뚝뚝한 사람들은 제일 먼저 제외 된다. 한참을 생각하고 자존심을 버리고 ‘나도 끼워 주시오’ 할 때는 이미 행사는 끝난 뒤이다. 설사 자격 요건이 미달되더라도 꽁무지에라도 붙어야 한다. 맨 마지막으로 은총에 참여하는 것이 문 닫힌 후에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것보다 백배는 낫다.
가장 흔한 영적 질병이 무감각이다. 다른 사람을 대하면서 무표정한 것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추락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다정 다감하시는가? 하나님의 따뜻한 배려가 사람들의 차가운 마음을 녹인다.
3. 당신의 약점은 무엇이며, 그것 때문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가?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는데, 그것을 인정하려는 사람은 적다. 만약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지 못하면 그는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하게 된다. 약점을 피하여 다른 길을 선택하려고 노력한다. 그것도 지혜가 되겠지만, 훌륭한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피해갈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수시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셨다. 심지어는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함께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한 적도 있다.
모든 일에 해답을 가지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 하는 사람 보다는 대부분의 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 방면의 전문가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지혜롭게 보인다. 사실은 전문가라도 자기 분야에서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않는다.
4. 당신은 하나님의 방식에 온전히 익숙합니까?
예수님은 사역 초기에 기꺼이 요한에게 가서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하여 새로운 방식의 삶으로 발을 디뎌 놓으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요한에게 모두 내어 맡기는 것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셨다.
아이 아버지에게 자전거를 배울 때, 아이는 핸들에 손만 얹고 뒤에서 아버지가 어떤 식으로 자전거를 운전하는지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만약 아이가 넘어질 것을 두려워 나름대로 손에 힘을 주려고 하면 그 순간 자전거는 흔들리며 넘어질 위험에 처하게 된다. 먼저는 온전히 아버지께 손잡이를 맡겨야 한다.
아이가 아버지의 방식을 완전히 익히게 되면, 아이는 아버지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효율적인지를 깨닫고 누리게 된다. 만약 당신이 자동차를 운전하려고 한다면 마찬가지로 내 방식을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방식에 다시금 깊이 잠겨들어가야 한다.
인생 생산성 4 (Life Productivity)
오늘의 말씀: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26-30, 33)
1. 비판적인 평가일지라도 당신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평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성장한다. 바르게 성장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사람들은 매 순간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를 원한다. 왜냐면 오직 평가 속에만 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지침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평가가 긍정적이지는 않다. 어떤 경우에는 비아냥일 수 있고, 노골적인 비판일 수 있다. 또는 엉뚱한 소리이기도 하고, 잘못된 평가일 가능성도 있다. 평가하는 사람이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때는 평가 속에 들어있는 독소조항이든지, 비아냥이든지, 엉뚱한 것들을 섬세하게 도려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평가가 되고 그 평가는 성장을 위한 훌륭한 지침이 될 것이다.
물론 가장 뛰어난 평가는 칭찬이다. 제대로된 지속적인 칭찬은 사람을 변화 시키고 급성장 시킨다. 칭찬이든 비판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2. 당신은 생각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행동하는 사람인가?
잘 훈련된 사람들은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다시 개선된 방법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생각과 행동에 균형이 잡혀서, 요행을 바라고 행동하지 아니하고 실수를 해도 안전장치가 있다. 그러나 이 균형이 깨어지면 섣부른 행동을 한다든지, 아니면 아예 새로운 행동을 실행에 옮길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된다.
생각이 너무 과하다든지, 행동이 지나치면 한쪽으로 쏠림 현상이 일어난다. 생각에 쏠리면 행동이 어설프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주님의 계시가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오히려 주님의 계시를 확인하기 위해서 행동할 필요가 있다. 행동이 생각을 바르게 이끌기 때문이다. 섣불리 행동하지 말라는 뜻은 확실하지 않는 이상 움직이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안전이 확인되었으면 행동에 옮기라는 뜻이다. 행동에 쏠리면 생각이 짧아지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반복된 행동을 한다. 생각에 쏠리는 이유는 그만큼 허망한 것들이 생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행동에 쏠리는 이유는 반성이 성실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현실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3. 당신은 믿음의 능력을 체험하셨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운전면허증을 장롱속에 모셔둔다. 왜냐면 초행운전에서 크게 겁을 먹었기 때문에 자신이 운전대를 잡고 복잡한 거리로 나서서 제대로 운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행운전에서 실패하지 않은 사람은 대부분 두 번째 운전에서 더 큰 믿음을 쌓고 익숙해 지기까지 여러번 접촉사고도 당하겠지만, 결국에는 운전을 익숙하게 하는 사람으로 변화된다.
이처럼 많은 경우 믿음이 없이는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도로 병을 고쳐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또 다시 기도할 믿음이 생긴다. 믿음으로 성공한 사람은 이제 문제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4. 당신에게는 주님의 영광과 신비를 바라보는 눈이 있습니까?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과 신비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세상을 대할 때 우리 속에서는 경이로움이 솟아난다. 경이로움이라는 두레박은 생기를 길어 올리고 활력을 쏟아 붓는다. 천둥소리와 번개가 내리치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한 때를 기억하는가? 우리가 커다란 대자연을 대면했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고 그 장관을 연출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만끽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더 이상 삶에 찌들거나 고민에 싸이지 않는다. 초월적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 이 세상은 잠깐 지나가고 고통이나 사람의 영광도 지나간다는 것을 믿게 된다. 영혼은 깊은 안식을 누리고 영원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 깃든다. 경이감은 질병과 심리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내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데 매우 큰 도움을 준다.
인생 생산성 5 (Life Productivity)
오늘의 말씀:16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26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눅19:16-26)
1.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긍정적인가 아니면 시비조인가?
우리 속에 상처가 많을수록 우리의 대화는 시비조로 변한다. 그러나 시비조의 언어는 듣는 사람을 긴장시키고 흥분시킨다. 동조하던지 반발하기 때문이다. 시비조의 언행은 미움을 유발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다.
모든 시비조의 언어는 사단적인 것이다. 왜냐면 그것은 표면상으로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지만, 이면적으로는 사람의 인격에 상처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은 살리고 적절하지 않고 부족한 것들은 보완해 나아가야 한다. 세상에는 완벽하고 모든 사람들을 만족케 하는 것은 없다. 항상 어느 것이든 시비거리는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본적으로 칭찬을 먼저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먼저 내린 다음에 개선하고 보완해야 할 것들을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2. 당신은 긍정적인 믿음의 힘을 믿는가?
사람은 부정적일 때 보다 긍정적일 때 성공할 확률이 더 크다. 뿐만 아니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긍정적으로 믿고 확신할 때 더 좋은 효과가 있다.
사람들은 생각에서도 매우 습관적이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갑작스럽게 생각하는 예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생각이 어제 했던 생각이다. 어제의 생각 대부분은 역시 그저께의 생각이다. 따라서 부정적인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긍정적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믿는 대로 된다’고 하신 말씀은 진리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사고를 하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덮어놓고 좋게만 보라는 뜻이 아니다. 거짓은 아무리 긍정적으로 믿어도 여전히 거짓일 뿐이다. 오직 진리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부정적인 사고는 대개 과거의 실패경험이나 비판 받은 경험 때문에 생겨난다. 이럴 경우에는 예수님의 보혈로 씻김을 받으면 된다.
3. 당신에게는 돈을 (불리는/없애는) 습관이 있습니까?
억만장자가 되기 전에 우선 돈을 불리는 습관을 길들여야 할 것이다. 만약 당신에게 돈이 새 나가게 하는 습관이 있다면 우선 그것부터 잡아야 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무척 절약 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물쓰듯 돈을 써댄다. 흔히 자신의 유흥이나 문화생활에 관해서는 무분별한 지출을 감수하는 경우가 있다. 당연히 문화적으로 살아가야 하겠지만 지출을 줄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부기를 배우고, 공인중개인 자격증을 따는가 하면, 나름대로 한두가지 전문지식을 습득하기도 한다. 결국에는 그런 것들이 쏠쏠한 수입을 주기도 하고, 예상되는 지출을 막기도 한다. 경제적으로는 꼼꼼할 필요가 충분히 있다.
4. 당신의 인간관계 중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실수가 되풀이되는 경우가 있다. 대개는 한번 실수하면 나중에 면역이 생겨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되지만, 실수가 반복된다면 그것은 일종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는 그 메시지를 읽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심지어는 ‘세상이란 항상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라고 단정지어버렸을 가능성도 있다.
항상 배은망덕을 느낀다든지, 물건을 살 때는 항상 다툰다든지, 부부간에 반복되는 문제, 꼭 비슷한 사건으로 헤어지게 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무슨 일이든 반복적으로 되풀이 되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거기에는 분명히 유의미한 메세지가 있다. 그 메시지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되풀이되는 문제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말씀 : 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8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9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11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욥42:7-12)
1. 예수님께서 당신의 성장과 성공에 얼마나 크게 관심하고 있는지 아는가?
성공한 사람의 뒤에는 헌신적인 희생자가 있다. 사람은 홀로 커나가지 않는다. 누군가 그를 끝까지 믿어주고 끌어주며 뒤에서 밀어주었기 때문에 성장하며 성공을 일구어낸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야 할 고지를 분명하게 바라보게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승리하도록 열정적인 관심을 갖고 지원하신다. 또 성장하기 원하고 변화받기 원하고 고침받기 원하는 모든 자들에게 가장 적절한 도움을 베푸셨고 더 낫고 더 잘하고 더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하셨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10:10)
2.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였는가?
세상은 온통 부정적이며 강압적인 태도로 가만히 만족하며 안주하고 있지 않으면 무서운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윽박지른다. 그러면서도 현실은 점점 밀물이 밀려오듯 다가오며 우리의 영역을 위협한다. 그러면 자리에서 일어나 좀 더 양보하지 않으면 않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세상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어제의 안전지대가 더 이상 오늘은 안전지대가 아니다.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뛰어 도약하기는 더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우리의 삶은 장속곡이 아니라 축제이다. 안전 지대에서 떠나 주님의 품에 안겨야 할 때다.
3. 당신은 완전히 망하고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인간관계가 있는가?
나른 사람들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살며, 더 쾌활한 삶을 산다는 보고가 있다. 섬길 때 엔돌핀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돈을 버느라 관계를 놓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사실 관계를 놓치면 조만간 돈도 놓치고 만다. 관계와 경제학은 긴밀하다. 관계를 최악의 상태로 몰고가지 않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혜인가? 어떤 경우에도 앞으론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한 영혼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우할 때 우리는 관계에서 성공한다.
4. 당신은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비판적인 편입니까?
심지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보란듯이 싸워대는 부부들도 있다. 내가 이런 형편없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으며 그래서 너무 억울하다는 하소연이다. 그러나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민망하기 짝이 없다. 남편의 폭력에, 또는 부모의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것이 벌써 오래 전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진노의 포도주를 쏟아 부으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노의 칼날을 가장 공정하고 예리한 솜씨로 사용하신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어떤 사람이 진노의 칼날을 들었을 경우 수 많은 주변 사람들이 그로 인해서 상처를 입는다. 어떤 상처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된다.
만약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칭찬하든지 징계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그만큼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게 된다.
인생 생산성 2 (Life Productivity)
오늘의 말씀 : 10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11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2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 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왕상17:10-14)
1. 남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 당신에게도 잘 어울립니까?
다윗은 빌려입은 갑옷이 익숙하지 않아서 이내 벗고 말았다. 남이 무엇을 통해 성공했다고 해서 나도 그대로 하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나의 길은 내가 개척해야만 한다.
내가 남의 도움을 끌어 내는 것은 지혜이지만, 남의 뒤에 숨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남의 장점이나, 남의 돈이나, 남의 명예나 특권을 이용해서 과연 나의 이익을 창출해 낼 수 있을까? 결국은 남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 주어야 한다.
그보다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으며, 나의 기술이나 장점이 무엇이며, 그것들은 경제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잘 따져보아야 한다. 그리고 남들로 하여금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을 얻으려 한다면 응당 그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불하게 한다. 그리고 지불한 비용은 어떤 명목으로 사용될 것이며 어떤 결과를 얻게 될 것인지를 분명히 해 둔다. 결국 비용을 많이 지불한 사람일수록 결과적으로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사람은 투자한 만큼 얻어가기 때문이다.
남의 옷을 입고 일하지 말고, 내 옷을 입고 일하라.
2. 당신 속에 어린이가 들어 있지는 않는가?
어떨 때 우리는 더 이상 어떤 사람을 어른으로 대우하지 말고 어린이로 대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돈문제에 관해서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누군가 내 사정을 봐 줄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특히 유교문화의 남존여비, 또는 선비문화나 양반문화에 젖은 한국 남성들에게는 현 시대에 어울리지 못하는 행동 양식들이 있다. 이들은 굶을지언정 허드렛일도 못하고, 체면을 중시해서 아쉬운 소리도 못하며 점잔을 빼느라고 재빨리 이익을 향해서 달음질도 치지 못한다. 그리고 뒤에서 혀를 끌끌 차며 세태를 한탄하지만 결코 상황을 되돌릴 능력은 없다. 자기 한몸 처신하는 것이 고작이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행동하지 못한다.
예수는 더 이상 우리가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지 못하게 하신다. 우리에게 진리라는 칼을 쥐어 주시고 그것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라고 하신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13:11)
3. 당신은 무난하게 지내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문제를 해결하기 원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무난하게 지내기 위해서 정작 해야 할 일들을 묻어 버리곤 한다.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하고 내 일이 아닌 이상 모른척 하고 지나치기 원한다. 문제는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지내던 습관대로 불편하지만 참고 견디려고 한다는 점이다. 공격적인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니다.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귀는 38년된 환자에게 와서 여전히 39년째에도 40년 째에도 그냥 아픈채로 누워지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어 보신다.
4. 초라하지만 주님 앞에 내 놓을만한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보잘것 없는 인생이 주님을 만났을 때 우리는 놀라운 사건을 경험한다. 왜냐면 나는 하나지만, 주님은 거기에 주님의 능력을 곱해 주시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너무 초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부끄러워 내가 가진 것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주님 앞에 내어 놓으면 주님은 그것으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신다. 나는 아무런 자랑할 것이 없지만 주님은 그것을 자랑스럽게 하신다.
인생 생산성 3 (Life Productivity)
오늘의 말씀: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겔47:1-5)
1. 당신은 좁은 길로 걸어갈 준비가 되었는가?
예수님은 넓은 길 보다는 오히려 좁은 길로 가라고 하신다. 자신의 상식이나 지혜로 가는 길은 넓은 길이고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길은 좁은 길이다. 좁은 길을 걸어가면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신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만사형통하게 된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그 길은 좁은 길이다. 어려운 길이다. 그러나 진리의 길이고 사명의 길이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흔히 좁은 길은 고난의 길, 기초를 다지는 길, 원칙을 고수하는 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길, 철저하게 지식이나 정보를 깨우치는 일로 묘사될 수 있다. 아브라함은 풍요로운 고장을 떠나야 했다. 야곱은 삼촌 집으로 가야 했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가서 종살이를 해야 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에 광야생활을 해야 했다. 예수를 믿으면 죄악을 벗어나서 광명한 새 삶을 살게 되는것이 사실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영광의 길을 걷기 전에 고난의 길을 먼저 걸어야 한다.
2. 하나님은 당신에게 냉엄하신가, 아니면 다정 다감하신가?
세상에는 무뚝뚝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날마다 손해를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무뚝뚝한 것은 일종의 교만이고 무식을 동반한 실례이다. 모든 기회나 은총에서 무뚝뚝한 사람들은 제일 먼저 제외 된다. 한참을 생각하고 자존심을 버리고 ‘나도 끼워 주시오’ 할 때는 이미 행사는 끝난 뒤이다. 설사 자격 요건이 미달되더라도 꽁무지에라도 붙어야 한다. 맨 마지막으로 은총에 참여하는 것이 문 닫힌 후에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것보다 백배는 낫다.
가장 흔한 영적 질병이 무감각이다. 다른 사람을 대하면서 무표정한 것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추락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다정 다감하시는가? 하나님의 따뜻한 배려가 사람들의 차가운 마음을 녹인다.
3. 당신의 약점은 무엇이며, 그것 때문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가?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는데, 그것을 인정하려는 사람은 적다. 만약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지 못하면 그는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하게 된다. 약점을 피하여 다른 길을 선택하려고 노력한다. 그것도 지혜가 되겠지만, 훌륭한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피해갈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수시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셨다. 심지어는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함께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한 적도 있다.
모든 일에 해답을 가지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 하는 사람 보다는 대부분의 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 방면의 전문가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지혜롭게 보인다. 사실은 전문가라도 자기 분야에서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않는다.
4. 당신은 하나님의 방식에 온전히 익숙합니까?
예수님은 사역 초기에 기꺼이 요한에게 가서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하여 새로운 방식의 삶으로 발을 디뎌 놓으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요한에게 모두 내어 맡기는 것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셨다.
아이 아버지에게 자전거를 배울 때, 아이는 핸들에 손만 얹고 뒤에서 아버지가 어떤 식으로 자전거를 운전하는지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만약 아이가 넘어질 것을 두려워 나름대로 손에 힘을 주려고 하면 그 순간 자전거는 흔들리며 넘어질 위험에 처하게 된다. 먼저는 온전히 아버지께 손잡이를 맡겨야 한다.
아이가 아버지의 방식을 완전히 익히게 되면, 아이는 아버지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효율적인지를 깨닫고 누리게 된다. 만약 당신이 자동차를 운전하려고 한다면 마찬가지로 내 방식을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방식에 다시금 깊이 잠겨들어가야 한다.
인생 생산성 4 (Life Productivity)
오늘의 말씀: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26-30, 33)
1. 비판적인 평가일지라도 당신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평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성장한다. 바르게 성장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사람들은 매 순간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를 원한다. 왜냐면 오직 평가 속에만 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지침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평가가 긍정적이지는 않다. 어떤 경우에는 비아냥일 수 있고, 노골적인 비판일 수 있다. 또는 엉뚱한 소리이기도 하고, 잘못된 평가일 가능성도 있다. 평가하는 사람이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때는 평가 속에 들어있는 독소조항이든지, 비아냥이든지, 엉뚱한 것들을 섬세하게 도려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평가가 되고 그 평가는 성장을 위한 훌륭한 지침이 될 것이다.
물론 가장 뛰어난 평가는 칭찬이다. 제대로된 지속적인 칭찬은 사람을 변화 시키고 급성장 시킨다. 칭찬이든 비판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2. 당신은 생각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행동하는 사람인가?
잘 훈련된 사람들은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다시 개선된 방법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생각과 행동에 균형이 잡혀서, 요행을 바라고 행동하지 아니하고 실수를 해도 안전장치가 있다. 그러나 이 균형이 깨어지면 섣부른 행동을 한다든지, 아니면 아예 새로운 행동을 실행에 옮길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된다.
생각이 너무 과하다든지, 행동이 지나치면 한쪽으로 쏠림 현상이 일어난다. 생각에 쏠리면 행동이 어설프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주님의 계시가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오히려 주님의 계시를 확인하기 위해서 행동할 필요가 있다. 행동이 생각을 바르게 이끌기 때문이다. 섣불리 행동하지 말라는 뜻은 확실하지 않는 이상 움직이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안전이 확인되었으면 행동에 옮기라는 뜻이다. 행동에 쏠리면 생각이 짧아지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반복된 행동을 한다. 생각에 쏠리는 이유는 그만큼 허망한 것들이 생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행동에 쏠리는 이유는 반성이 성실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현실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3. 당신은 믿음의 능력을 체험하셨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운전면허증을 장롱속에 모셔둔다. 왜냐면 초행운전에서 크게 겁을 먹었기 때문에 자신이 운전대를 잡고 복잡한 거리로 나서서 제대로 운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행운전에서 실패하지 않은 사람은 대부분 두 번째 운전에서 더 큰 믿음을 쌓고 익숙해 지기까지 여러번 접촉사고도 당하겠지만, 결국에는 운전을 익숙하게 하는 사람으로 변화된다.
이처럼 많은 경우 믿음이 없이는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도로 병을 고쳐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또 다시 기도할 믿음이 생긴다. 믿음으로 성공한 사람은 이제 문제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4. 당신에게는 주님의 영광과 신비를 바라보는 눈이 있습니까?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과 신비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세상을 대할 때 우리 속에서는 경이로움이 솟아난다. 경이로움이라는 두레박은 생기를 길어 올리고 활력을 쏟아 붓는다. 천둥소리와 번개가 내리치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한 때를 기억하는가? 우리가 커다란 대자연을 대면했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고 그 장관을 연출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만끽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더 이상 삶에 찌들거나 고민에 싸이지 않는다. 초월적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 이 세상은 잠깐 지나가고 고통이나 사람의 영광도 지나간다는 것을 믿게 된다. 영혼은 깊은 안식을 누리고 영원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 깃든다. 경이감은 질병과 심리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내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데 매우 큰 도움을 준다.
인생 생산성 5 (Life Productivity)
오늘의 말씀:16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26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눅19:16-26)
1.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긍정적인가 아니면 시비조인가?
우리 속에 상처가 많을수록 우리의 대화는 시비조로 변한다. 그러나 시비조의 언어는 듣는 사람을 긴장시키고 흥분시킨다. 동조하던지 반발하기 때문이다. 시비조의 언행은 미움을 유발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다.
모든 시비조의 언어는 사단적인 것이다. 왜냐면 그것은 표면상으로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지만, 이면적으로는 사람의 인격에 상처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은 살리고 적절하지 않고 부족한 것들은 보완해 나아가야 한다. 세상에는 완벽하고 모든 사람들을 만족케 하는 것은 없다. 항상 어느 것이든 시비거리는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본적으로 칭찬을 먼저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먼저 내린 다음에 개선하고 보완해야 할 것들을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2. 당신은 긍정적인 믿음의 힘을 믿는가?
사람은 부정적일 때 보다 긍정적일 때 성공할 확률이 더 크다. 뿐만 아니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긍정적으로 믿고 확신할 때 더 좋은 효과가 있다.
사람들은 생각에서도 매우 습관적이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갑작스럽게 생각하는 예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생각이 어제 했던 생각이다. 어제의 생각 대부분은 역시 그저께의 생각이다. 따라서 부정적인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긍정적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믿는 대로 된다’고 하신 말씀은 진리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사고를 하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덮어놓고 좋게만 보라는 뜻이 아니다. 거짓은 아무리 긍정적으로 믿어도 여전히 거짓일 뿐이다. 오직 진리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부정적인 사고는 대개 과거의 실패경험이나 비판 받은 경험 때문에 생겨난다. 이럴 경우에는 예수님의 보혈로 씻김을 받으면 된다.
3. 당신에게는 돈을 (불리는/없애는) 습관이 있습니까?
억만장자가 되기 전에 우선 돈을 불리는 습관을 길들여야 할 것이다. 만약 당신에게 돈이 새 나가게 하는 습관이 있다면 우선 그것부터 잡아야 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무척 절약 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물쓰듯 돈을 써댄다. 흔히 자신의 유흥이나 문화생활에 관해서는 무분별한 지출을 감수하는 경우가 있다. 당연히 문화적으로 살아가야 하겠지만 지출을 줄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부기를 배우고, 공인중개인 자격증을 따는가 하면, 나름대로 한두가지 전문지식을 습득하기도 한다. 결국에는 그런 것들이 쏠쏠한 수입을 주기도 하고, 예상되는 지출을 막기도 한다. 경제적으로는 꼼꼼할 필요가 충분히 있다.
4. 당신의 인간관계 중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실수가 되풀이되는 경우가 있다. 대개는 한번 실수하면 나중에 면역이 생겨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되지만, 실수가 반복된다면 그것은 일종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는 그 메시지를 읽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심지어는 ‘세상이란 항상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라고 단정지어버렸을 가능성도 있다.
항상 배은망덕을 느낀다든지, 물건을 살 때는 항상 다툰다든지, 부부간에 반복되는 문제, 꼭 비슷한 사건으로 헤어지게 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무슨 일이든 반복적으로 되풀이 되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거기에는 분명히 유의미한 메세지가 있다. 그 메시지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되풀이되는 문제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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