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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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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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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할 수 있는 관상기도 입문서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토머스 키팅/엄무광 2003. 1.6. 가톨릭출판사>
크리스찬 삶과 성장과 변형을 위한 지침
다음의 원칙들은 크리스찬의 영적인 여정을 현대적 용어로 다시 표현한 것이다. 이것들은 향심 기도의 수련의 개념적 배경을 제시하려고 한 것이다. 다음 것들은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를 하는 방식처럼 저어야 한다.
1. 삼위 일체, 은총, 육화의 신비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좋은 본성을 가졌다고 믿는 것은 크리스찬 신앙의 근본 요소이다.
이 선함의 핵심이 무한한 발전의 가능성, 즉 참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의 신성으로 변형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기초이다.
2. 우리의 선함의 기본적 핵심이 참 자아이다.
그 참 자아의 가장 중심이 바로 하느님이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것을 받아들
임이 영적 여정의 첫 도약이다.
3. 하나님과 우리의 참 자아는 별개가 아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은 아니지만 하나님과 우리의 참 자아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4. 원죄란 말은 인간의 상태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 상태는 각자가 하느님과 일치한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보편적인 체험이며 이 체험이 우리의 사색적인 자아 의식 안으로 들어온다. 이것은 우리에게 불완전, 분열, 고립, 죄악감 등을 일으킨다.
5. 원죄는 우리 각자가 잘못한 결과로 생긴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우리가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과, 심지어 참 자아로부터 떨어졌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러한 격리감이 문화 속에 팽배하여 우리가 어렸을 적에 우리 안에 심어졌으며 다음 세대에 계속 이것이 넘겨질 것이다. 원죄의 상태에서 생긴 깊은 불안감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긴급한 욕구가 일어나고 이 욕구를 잘 조절하지 못하면, 끊임없이 쾌락과 소유와 권력을 찾는 욕망이 일어나게 된다. 사회적 수준에서는 이것이 폭력과 전쟁과 구조적인 불의로 나타나게된다.
6. 원죄의 특별한 결과는,
잉태한 때로부터 인격 속에 끼여드는 여러 가지 습관, 어릴 적부터 자라면서 환경으로부터 받아 온 정서적 손상,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어린 나이에 알게 모르게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들, 그리고 지금은 무의식으로 들어갔지만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의 고통을 막기 위하여 발달시킨 방법들을 들 수 있다.
7. 이와 같은 이성적 판단이 결핍된 반응들이 합쳐져서 거짓 자아의 기초를 이룬다.
이것은 참 자아와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며, 거짓자아의 중심이 바로 거짓 자아 그 자체이다.
8. 은총은 우리 삶의, 순간 순간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현존과 활동이다.
성사란 예식적 행위로서 그 예식 안에 그리스도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현존하시어 크리스찬적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의 위탁을 확인하시고 지탱해 주시는 것이다.
9. 세례로써 우리의 거짓 자아는 예식상 죽고, 새로운 자아가 태어난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이루신 죄에 대한 승리가 우리의 임의에 맡겨진다. 우리의 각 개인의 독특성은 그대로 남아 있는 채, 다른 사람들과 하나님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는 우리의 감각이 죽음을 이기고 삶을 주는 세례의 물로 무너지게 된다.
10. 성체는 삶을 축하하는 것이다.
우주의 모든 물질적 요소들이 함께 모여 와서 인간의 의식 속에서 떠오르고 인간의 의식(意識)을 신적인 의식으로 변형하는 것이다. 이것은 크리스찬 공동체 안에 그리고 그 공동체를 통하여 신적인 것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성체가 되기 위하여 성체를 받아 모신다.
11. 그리스도께서는 성사 안에 현존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곤경과 중요한 사건들 속에 특별한 방법으로 나타나신다.
12. 개인적 죄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 주시는 것(은총)을 거부하는 것이 다.
이것은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의 진정한 욕구를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이것은 거짓 자아를 강화시킨다.
13. 우리의 선함의 가장 중심 부분은 아주 역동적이며 스스로 성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 성장은 거짓 자아의 착각과 정서적 고착 때문에 방해를 받는데, 이것들은 문화적 조건화와 개인적 죄로부터 부정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이다.
14. 성서를 읽고 전례 중에 말씀을 들으며, 기도 중에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그분이
주시는 영감에 우리가 응답하면, 어떤 상황에서 이 두 자아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아는 데 도움이 된다.
15. 하느님은 피조물이 즉시 완전해지고 우리가 그분의 사랑으로 값어치 있는 존재가 되라고 요구하시면서 멀리 계시어 우리가 도저히 그분께 가까이 갈 수 없는 그러한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공포로 복종을 시키는 폭군도 아니구 감시하는 경찰도 아니고 쉽게 유죄판결을 내리는 무서운 재판관도 아니시다. 우리는 그분이 상과 벌을 주시는 분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거룩하신 사랑의 활동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16. 하나님의 사랑은 동정적이구 부드러우며, 빛을 비추구 완전히 내어 주며,
대가를 바라지 않구, 모든 것을 일치시키는 사랑이다.
17.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면, 우리의 거짓 자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떠나 보낼 수 있게 하며, 그리하여 참 자아로 가는 여정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 안에 있는 참 자아로 가는 여정이 하느님 사랑으로 가는 길이다.
18. 이 체험에서부터 깊은 영적 평화와 기쁨이 넘쳐흐르면서 참 자아에 대한 자각이
성장하는데, 이것은 거짓 자아가 무너지고 죽어가는 데 따르는 정신적 고통을 이겨 낼 수 있게 한다.
거짓 자아를 움직이던 힘이 사라지면서, 우리의 참 자아는 하느님의 사랑의 힘의 작용과 더불어 새로운 자아를 세워 나간다.
19. 새로운 자아의 건설에는 수많은 실수가 있고 때로는 죄로 점철된다.
이러한 상황이 아무리 심각하다 하더라도, 무한히 좋은 참 자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이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빌구 우리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용서를 빌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마음가짐으로 새로워진 신뢰감과 힘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20. 끈질기게 없어지지 않으며 무기력하게 만드는 죄악감은 거짓자아에서 온다.
참 자아는 개인적인 죄나 사회적 불의 때문에 용기를 잃게 하지는 않으며 그 대신 삶을 바꾸도록 이끈다. 이것이 바로 회개로의 부르심이다.
21. 영적 여정이 진전하면 다른 사람들을, 특히 함께 사는 사람들을 무조건 받아들임이 나타난다.
22. 믿음의 공동체는 영적 여정 중에 표양과 시정과 상호 관심이라는 지원을 준다.
무엇보다도, 성찬이라는 전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신비에 동참하면서 침묵의 기도를 함께 하면, 변형과 하나님과의 일치를 공동으로 추구하는 일에 그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준다. 그 공동체 안에 그리스도의 현존이 각자에게 나타나 눈에 뜨이게 되는데, 특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공동으로 봉사하거나 기도회와 전례를 위하여 모여서 함께 할 때 특히 더욱 나타난다.
23. 인간이 생존, 안전, 애정, 존경, 지밴, 권력 등과 같은 본능적인 욕구를 절제함으로써 진정한 인간적 욕구가 초점 안으로 들어온다.
이러한 욕구들 중 원천적인 욕구가 다른 사람들과 친밀을 이루려는 욕구이다. 친밀이란 사고와 감정과 문제와 영적인 영감과 같은 것들을 서로 나눔으로써 점차로 영적인 친구로 발전해 가는 것을 말한다.
24. 영적 친구 관계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결혼 관계에서나 독신 생활에 서도 행복으로 이끄는 기본적 요소이다.
몇 사람과 친밀 관계를 유지하는 경험을 쌓으면 하느님과 또는 어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가는 능력을 확대시켜 주고 깊게 해준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성적 에너지는 보편적인 동정으로 변형시켜 준다.
25. 내적인 여정과 상호간에 위탁하는 정도에 따라서
그 공동체의 영적인 빛이 드러난다.
한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서로간에 자리를 마련하고 내어 주는 것이 이 위탁의 절대 필요한 부분이다.
26. 관상기도는 전통적 의미로 볼 때에 변형의 과정이 완성되도록 시작시키고
완성시키게 하는 역사(役事)라고 할 수 있다.
27. 성서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우리의 과거 삶 안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이 관상기도의 기초다.
기도 중에 사고와 감정을 자발적으로 떠나 보내게 되면 이것이 관상 기도에서 진전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관상 기도는 얼마나 사고와 감정이 기도 중에 일어나지 않았느냐 하는데 있지 않고 그것들로부터 이탈할 수 있느냐에 있다.
28. 육체와 정신과 영의 좋은 것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올바르게 이용하는 것이 참된 영적 수련의 목표다.
어떤 인간적인 성질이나, 과거 삶의 어떤 부분들은 결코 거부되어서는 안 되며 이것들을 각 단계에서 펼쳐지는 자아 의식 속으로 융화시켜야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각 발달 단계에서 좋았던 것은 간직하고 부족했던 것만 뒤에 남겨 둘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과 같아지는 길은 온전한 인간이 되는 길도 된다.
29. 영적 여정의 초기에 영적인 수련은 삶의 관상적 차원의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봉헌하고 헌신하는 삶) 기초를 쌓는 데 아주 기본적이다.
매일 하는 수련에는 관상 기도 시간과 거짓 자아를 떠나 보내는 프로그램을 포함해야 한다.
30. 정기적으로 고독 속에 침묵으로 들어가면 정신이 평정되고, 내적 침묵이 형성되며, 자아 지식의 역사(役事)가 시작된다.
31. 고독이란 어떤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구 하나님께 완전히 맡겨 드리는 태도를
말한다.
하나님께 온전히 속하게 되면, 자신의 삶과 은총을 점점 더 다른 사람들과 나누게 된다.
32. 영적 가난의 지복(至福)은 참 자아를 더욱더 인식하는 데서 생겨난다.
그것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태도이며 동시에 모든 것과 일치한다는 느낌이다. 많이 갖든 적게 갖든 내적 자유를 누리고 자신의 삶을 단순화시키는 것이 영적 가난을 가지고 있다는 표시이다.
33. 순결과 독신 생활은 다르다.
독신 생활은 우리의 성욕을 성기로 표현하는 것에서 금욕하겠다는 위탁이다. 순결이란 성적 에너지와 여기서 오는 남성 혹은 여성적 자질을 받아들이면서 이 에너지를 영성 생활에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적 에너지의 사용을 절제하고 조절하는 수련이라고 할 수 있다.
34. 순결은 사랑하는 힘을 증진하고 확대한다.
이것은 모든 것의 고결함을 감지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다른 사람들의 품의를 존중하
며, 그 사람을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려는 데 이용하지 않게 된다.
35. 순명이란 하나님을 그대로 무조건 받아들이고 또 그분이 우리 삶 안에 나타내신
것을 그대로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분명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온순한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의 뜻이 나타내시는 것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우리의 분별력이, 우리 내면으로 이끌어 주시는 은총의 빛을 받아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증거를 가려내게 하고 또 결정하게 한다.
36. 겸손이란 하느님과 자신과 또 모든 현실에 대하여 갖는 솔직한 태도이다.
그것은 우리가 무력함 속에서 평화를 느끼고 우리의 소홀함 속에 쉴 수 있게 해준다.
37. 희망은 하나님의 자비와 도움을 계속 경험하여서 솟는다.
인내는 희망을 행동에 옳긴 것이다. 인내는 포기하거나, 좌절하거나, 도피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린다.
38. 우리의 거짓 자아를 해체하고 죽이는 것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동참하는 것 이다.
그분의 거룩하신 사랑의 힘으로 해주시는 변형으로 우리의 새로운 자아를 세우는 것이 그분의 부활하신 생명에 동참하는 것이다.
39. 처음 시작할 때에는 정서적 장애들이 우리의 자유를 묶어 두기 때문에
우리의 새로운 자아가 자라는 것에 방해가 된다.
그 뒤에는, 자기 조절에서 우러나는 미묘한 만족감으로 해서 오는 영적 자만심이 큰 방해가 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아 성찰이 하나님과의 순수한 일치를 막기 때문에 방해가 된다.
40. 인간적 노력은 불러 주시는 은총에 힘입은 것이다.
하나님과의 일치에 다다른 정도는 우리의 노력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 사랑의 순전한 선물이다.
41. 예수께서는 상상과, 기억과, 정서를 다스리는 어떠한 묵상이나 신체 단련 방법을 가르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체질이나 자연적인 성향에 따라서 알맞은 영적인 수련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성령께서 그분의 직접적인 인도에 우리 자신을 맡기도록 요구하실 때에 이 방법(묵상이나 신체 단련 방법)들을 버릴 용의가 있어야 한다. 성령은 어떠한 방법과 수련도 능가하신다. 그분이 주시는 영감에 따르는 것이 완전한 자유로 이르는 완전한 길이다.
42. 예수께서는 당신의 표본으로 제자들에게 길을 보여 주셨다.
즉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다른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도와 주어라 하신 것이다. "너희는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듯이 서로 사랑하여라" *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토머스 키팅/엄무광 2003. 1.6. 가톨릭출판사>
크리스찬 삶과 성장과 변형을 위한 지침
다음의 원칙들은 크리스찬의 영적인 여정을 현대적 용어로 다시 표현한 것이다. 이것들은 향심 기도의 수련의 개념적 배경을 제시하려고 한 것이다. 다음 것들은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를 하는 방식처럼 저어야 한다.
1. 삼위 일체, 은총, 육화의 신비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좋은 본성을 가졌다고 믿는 것은 크리스찬 신앙의 근본 요소이다.
이 선함의 핵심이 무한한 발전의 가능성, 즉 참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의 신성으로 변형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기초이다.
2. 우리의 선함의 기본적 핵심이 참 자아이다.
그 참 자아의 가장 중심이 바로 하느님이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것을 받아들
임이 영적 여정의 첫 도약이다.
3. 하나님과 우리의 참 자아는 별개가 아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은 아니지만 하나님과 우리의 참 자아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4. 원죄란 말은 인간의 상태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 상태는 각자가 하느님과 일치한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보편적인 체험이며 이 체험이 우리의 사색적인 자아 의식 안으로 들어온다. 이것은 우리에게 불완전, 분열, 고립, 죄악감 등을 일으킨다.
5. 원죄는 우리 각자가 잘못한 결과로 생긴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우리가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과, 심지어 참 자아로부터 떨어졌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러한 격리감이 문화 속에 팽배하여 우리가 어렸을 적에 우리 안에 심어졌으며 다음 세대에 계속 이것이 넘겨질 것이다. 원죄의 상태에서 생긴 깊은 불안감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긴급한 욕구가 일어나고 이 욕구를 잘 조절하지 못하면, 끊임없이 쾌락과 소유와 권력을 찾는 욕망이 일어나게 된다. 사회적 수준에서는 이것이 폭력과 전쟁과 구조적인 불의로 나타나게된다.
6. 원죄의 특별한 결과는,
잉태한 때로부터 인격 속에 끼여드는 여러 가지 습관, 어릴 적부터 자라면서 환경으로부터 받아 온 정서적 손상,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어린 나이에 알게 모르게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들, 그리고 지금은 무의식으로 들어갔지만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의 고통을 막기 위하여 발달시킨 방법들을 들 수 있다.
7. 이와 같은 이성적 판단이 결핍된 반응들이 합쳐져서 거짓 자아의 기초를 이룬다.
이것은 참 자아와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며, 거짓자아의 중심이 바로 거짓 자아 그 자체이다.
8. 은총은 우리 삶의, 순간 순간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현존과 활동이다.
성사란 예식적 행위로서 그 예식 안에 그리스도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현존하시어 크리스찬적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의 위탁을 확인하시고 지탱해 주시는 것이다.
9. 세례로써 우리의 거짓 자아는 예식상 죽고, 새로운 자아가 태어난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이루신 죄에 대한 승리가 우리의 임의에 맡겨진다. 우리의 각 개인의 독특성은 그대로 남아 있는 채, 다른 사람들과 하나님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는 우리의 감각이 죽음을 이기고 삶을 주는 세례의 물로 무너지게 된다.
10. 성체는 삶을 축하하는 것이다.
우주의 모든 물질적 요소들이 함께 모여 와서 인간의 의식 속에서 떠오르고 인간의 의식(意識)을 신적인 의식으로 변형하는 것이다. 이것은 크리스찬 공동체 안에 그리고 그 공동체를 통하여 신적인 것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성체가 되기 위하여 성체를 받아 모신다.
11. 그리스도께서는 성사 안에 현존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곤경과 중요한 사건들 속에 특별한 방법으로 나타나신다.
12. 개인적 죄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 주시는 것(은총)을 거부하는 것이 다.
이것은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의 진정한 욕구를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이것은 거짓 자아를 강화시킨다.
13. 우리의 선함의 가장 중심 부분은 아주 역동적이며 스스로 성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 성장은 거짓 자아의 착각과 정서적 고착 때문에 방해를 받는데, 이것들은 문화적 조건화와 개인적 죄로부터 부정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이다.
14. 성서를 읽고 전례 중에 말씀을 들으며, 기도 중에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그분이
주시는 영감에 우리가 응답하면, 어떤 상황에서 이 두 자아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아는 데 도움이 된다.
15. 하느님은 피조물이 즉시 완전해지고 우리가 그분의 사랑으로 값어치 있는 존재가 되라고 요구하시면서 멀리 계시어 우리가 도저히 그분께 가까이 갈 수 없는 그러한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공포로 복종을 시키는 폭군도 아니구 감시하는 경찰도 아니고 쉽게 유죄판결을 내리는 무서운 재판관도 아니시다. 우리는 그분이 상과 벌을 주시는 분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거룩하신 사랑의 활동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16. 하나님의 사랑은 동정적이구 부드러우며, 빛을 비추구 완전히 내어 주며,
대가를 바라지 않구, 모든 것을 일치시키는 사랑이다.
17.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면, 우리의 거짓 자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떠나 보낼 수 있게 하며, 그리하여 참 자아로 가는 여정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 안에 있는 참 자아로 가는 여정이 하느님 사랑으로 가는 길이다.
18. 이 체험에서부터 깊은 영적 평화와 기쁨이 넘쳐흐르면서 참 자아에 대한 자각이
성장하는데, 이것은 거짓 자아가 무너지고 죽어가는 데 따르는 정신적 고통을 이겨 낼 수 있게 한다.
거짓 자아를 움직이던 힘이 사라지면서, 우리의 참 자아는 하느님의 사랑의 힘의 작용과 더불어 새로운 자아를 세워 나간다.
19. 새로운 자아의 건설에는 수많은 실수가 있고 때로는 죄로 점철된다.
이러한 상황이 아무리 심각하다 하더라도, 무한히 좋은 참 자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이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빌구 우리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용서를 빌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마음가짐으로 새로워진 신뢰감과 힘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20. 끈질기게 없어지지 않으며 무기력하게 만드는 죄악감은 거짓자아에서 온다.
참 자아는 개인적인 죄나 사회적 불의 때문에 용기를 잃게 하지는 않으며 그 대신 삶을 바꾸도록 이끈다. 이것이 바로 회개로의 부르심이다.
21. 영적 여정이 진전하면 다른 사람들을, 특히 함께 사는 사람들을 무조건 받아들임이 나타난다.
22. 믿음의 공동체는 영적 여정 중에 표양과 시정과 상호 관심이라는 지원을 준다.
무엇보다도, 성찬이라는 전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신비에 동참하면서 침묵의 기도를 함께 하면, 변형과 하나님과의 일치를 공동으로 추구하는 일에 그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준다. 그 공동체 안에 그리스도의 현존이 각자에게 나타나 눈에 뜨이게 되는데, 특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공동으로 봉사하거나 기도회와 전례를 위하여 모여서 함께 할 때 특히 더욱 나타난다.
23. 인간이 생존, 안전, 애정, 존경, 지밴, 권력 등과 같은 본능적인 욕구를 절제함으로써 진정한 인간적 욕구가 초점 안으로 들어온다.
이러한 욕구들 중 원천적인 욕구가 다른 사람들과 친밀을 이루려는 욕구이다. 친밀이란 사고와 감정과 문제와 영적인 영감과 같은 것들을 서로 나눔으로써 점차로 영적인 친구로 발전해 가는 것을 말한다.
24. 영적 친구 관계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결혼 관계에서나 독신 생활에 서도 행복으로 이끄는 기본적 요소이다.
몇 사람과 친밀 관계를 유지하는 경험을 쌓으면 하느님과 또는 어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가는 능력을 확대시켜 주고 깊게 해준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성적 에너지는 보편적인 동정으로 변형시켜 준다.
25. 내적인 여정과 상호간에 위탁하는 정도에 따라서
그 공동체의 영적인 빛이 드러난다.
한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서로간에 자리를 마련하고 내어 주는 것이 이 위탁의 절대 필요한 부분이다.
26. 관상기도는 전통적 의미로 볼 때에 변형의 과정이 완성되도록 시작시키고
완성시키게 하는 역사(役事)라고 할 수 있다.
27. 성서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우리의 과거 삶 안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이 관상기도의 기초다.
기도 중에 사고와 감정을 자발적으로 떠나 보내게 되면 이것이 관상 기도에서 진전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관상 기도는 얼마나 사고와 감정이 기도 중에 일어나지 않았느냐 하는데 있지 않고 그것들로부터 이탈할 수 있느냐에 있다.
28. 육체와 정신과 영의 좋은 것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올바르게 이용하는 것이 참된 영적 수련의 목표다.
어떤 인간적인 성질이나, 과거 삶의 어떤 부분들은 결코 거부되어서는 안 되며 이것들을 각 단계에서 펼쳐지는 자아 의식 속으로 융화시켜야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각 발달 단계에서 좋았던 것은 간직하고 부족했던 것만 뒤에 남겨 둘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과 같아지는 길은 온전한 인간이 되는 길도 된다.
29. 영적 여정의 초기에 영적인 수련은 삶의 관상적 차원의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봉헌하고 헌신하는 삶) 기초를 쌓는 데 아주 기본적이다.
매일 하는 수련에는 관상 기도 시간과 거짓 자아를 떠나 보내는 프로그램을 포함해야 한다.
30. 정기적으로 고독 속에 침묵으로 들어가면 정신이 평정되고, 내적 침묵이 형성되며, 자아 지식의 역사(役事)가 시작된다.
31. 고독이란 어떤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구 하나님께 완전히 맡겨 드리는 태도를
말한다.
하나님께 온전히 속하게 되면, 자신의 삶과 은총을 점점 더 다른 사람들과 나누게 된다.
32. 영적 가난의 지복(至福)은 참 자아를 더욱더 인식하는 데서 생겨난다.
그것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태도이며 동시에 모든 것과 일치한다는 느낌이다. 많이 갖든 적게 갖든 내적 자유를 누리고 자신의 삶을 단순화시키는 것이 영적 가난을 가지고 있다는 표시이다.
33. 순결과 독신 생활은 다르다.
독신 생활은 우리의 성욕을 성기로 표현하는 것에서 금욕하겠다는 위탁이다. 순결이란 성적 에너지와 여기서 오는 남성 혹은 여성적 자질을 받아들이면서 이 에너지를 영성 생활에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적 에너지의 사용을 절제하고 조절하는 수련이라고 할 수 있다.
34. 순결은 사랑하는 힘을 증진하고 확대한다.
이것은 모든 것의 고결함을 감지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다른 사람들의 품의를 존중하
며, 그 사람을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려는 데 이용하지 않게 된다.
35. 순명이란 하나님을 그대로 무조건 받아들이고 또 그분이 우리 삶 안에 나타내신
것을 그대로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분명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온순한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의 뜻이 나타내시는 것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우리의 분별력이, 우리 내면으로 이끌어 주시는 은총의 빛을 받아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증거를 가려내게 하고 또 결정하게 한다.
36. 겸손이란 하느님과 자신과 또 모든 현실에 대하여 갖는 솔직한 태도이다.
그것은 우리가 무력함 속에서 평화를 느끼고 우리의 소홀함 속에 쉴 수 있게 해준다.
37. 희망은 하나님의 자비와 도움을 계속 경험하여서 솟는다.
인내는 희망을 행동에 옳긴 것이다. 인내는 포기하거나, 좌절하거나, 도피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린다.
38. 우리의 거짓 자아를 해체하고 죽이는 것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동참하는 것 이다.
그분의 거룩하신 사랑의 힘으로 해주시는 변형으로 우리의 새로운 자아를 세우는 것이 그분의 부활하신 생명에 동참하는 것이다.
39. 처음 시작할 때에는 정서적 장애들이 우리의 자유를 묶어 두기 때문에
우리의 새로운 자아가 자라는 것에 방해가 된다.
그 뒤에는, 자기 조절에서 우러나는 미묘한 만족감으로 해서 오는 영적 자만심이 큰 방해가 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아 성찰이 하나님과의 순수한 일치를 막기 때문에 방해가 된다.
40. 인간적 노력은 불러 주시는 은총에 힘입은 것이다.
하나님과의 일치에 다다른 정도는 우리의 노력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 사랑의 순전한 선물이다.
41. 예수께서는 상상과, 기억과, 정서를 다스리는 어떠한 묵상이나 신체 단련 방법을 가르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체질이나 자연적인 성향에 따라서 알맞은 영적인 수련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성령께서 그분의 직접적인 인도에 우리 자신을 맡기도록 요구하실 때에 이 방법(묵상이나 신체 단련 방법)들을 버릴 용의가 있어야 한다. 성령은 어떠한 방법과 수련도 능가하신다. 그분이 주시는 영감에 따르는 것이 완전한 자유로 이르는 완전한 길이다.
42. 예수께서는 당신의 표본으로 제자들에게 길을 보여 주셨다.
즉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다른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도와 주어라 하신 것이다. "너희는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듯이 서로 사랑하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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