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과 인생(人生)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선수들이 기대(期待) 이상으로
선전하여 목표했던
금메달 10개는 이미 이루었으니,
종합순위도 예상보다 올라갈 것이 분명하다.
초강대국 틈에서 이런 성적도 대단하지만,
중국의 금메달 막후 공신(功臣)들 속에
우리나라 코치들이 많았다는 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고맙고 그저 대견할 뿐이다.
나는 평소 스포츠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래도 8월은 올림픽이 있어서
행복(幸福)했던 것은
올림픽은 스포츠를 넘어서
인생을 축소(縮小)한 한 편의 드라마요
또 인류의 한 마당 화합의 장이기에,
잘해도 울고 못해도 울고
선수들처럼 나도
몇 번이나 눈물을 훔쳤는지 모른다.
어떤 메달이든 그것을 따기까지
아니 그 곳에 가기까지
긴긴 세월동안 상상(想像)할 수 없는
땀과 희생이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민호 선수는 아테네 올림픽에서
초과한 몸무게를 줄이느라
무리 한 끝에 동메달에 그쳐 귀국 후,
방황도 잠시 4년 내내 지옥 같은 훈련과
체중 감량의 고통을 이겨내고
이번 대회에 나가자마자 배고픈 사자처럼
포효하며 다섯 경기 내리 한 판 승을
거둔 후 펑펑 목을 내놓고 울었다.
사재혁 역도선수는 걸어 다니는 병원이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수술을 네 번이나
받았지만 불굴의 의지로
하루에 5만kg씩 들어 올리며 흘렸던 땀방울이
헛되지 않아 마침내 16년 만에 한국은
금메달을 들어 올려 전날
아쉽게 실격(失格)패한
이배영의 눈물을 말끔히 씻겨 주었다.
장미란 선수는
새로운 신화(神話)를 쓰고 있다.
또래 여자들이 화장할 때 송진가루를 묻히며
말 못할 고통과 번뇌를 초인적인 인내와
신실한 신앙심으로 극복하여,
마침내 한 맺힌 금메달의 꿈을 이루었건만
그녀는 만족하지 않고 벌써 다음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뉴스메이커가 된
펠프스 선수에 대한 이야기는 국경을
넘어 인간승리(人間勝利)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보통 성인들이 섭취하는
칼로리의 다섯 배에 해당되는 1만2천kcal에
해당되는 음식(飮食)을 하루 동안
먹어치운다고 한다.
말이 그렇지 이러한 칼로리를 소화할 수
있었다는 것은 먹는 양에 비례하여
얼마나 엄청난 훈련(訓練)이
있었단 말인가.
적어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려면
이들이 아니더라도,
어떤 종목이든 차근차근 계단(階段)을
밟아 와야만 가능하다.
조금이라도 얍삽한 방법을 쓰면
한 순간(瞬間)도
버틸 수 없는 것이 올림픽이다.
인생 올림픽에서 금메달은
이러한 올림픽과는 차원이 다르고 더 엄격하다.
겉으로 볼 때는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는
치열한 싸움은 비슷한 양상(樣相)이겠지만,
본질적으로
인생 올림픽에서는 결과보다는
과정(過程)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차이다.
아니 인생 올림픽에서는
엄밀하게 말해서
금(金)메달이 있을 수가 없고,
설령 있다 해도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다만 그 곳에 오기까지
얼마나 성실하게
땀을 흘렸는가를 볼 뿐이다.
겉보기엔
아무리 열매가 많아 보여도
그것을 얻기 위한 과정이 정직(正直)하지 못했다면,
도핑 검사에서 탈락된 선수처럼 모든 수고는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꼼수 부리지 않고
세상과 타협(妥協)하지 않고,
정도(正道)를 향해
오직 자신과 외롭게 싸우며 그 곳에 서 있기에,
그들이 아름답고
또 그러한 생을 살아가는 이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곤 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감동을 받았던 것은 펠프스보다
여자 수영 마라톤에 출전한 남아프리카 선수였다.
그녀는 교통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었는데,
의족(義足)을 벗고 한 쪽 다리로
10km를 수영하여
25명 중 16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뿐만 아니라,
고환암 판정(判定)받은 수영선수도 있었고
혈소판이 감소하는 희귀병과 투병중인 펜싱선수,
한쪽 눈을 실명한 사격선수 등
불가능에 도전한 선수들이
의외로 많이 있었다.
과연 이들에게
금메달이란 어떤 의미(意味)를 둘까.
인생(人生)은 결코
금메달을 위한 제전이 아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도전(挑戰) 자체가
진정한 메달이요
인생임을 그들을 알고 있었기에
출전했음에 감격해하고
감사하는 모습이
천사보다 아름답게 보였던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안타깝게 했던 두 선수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금메달만이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음을 교훈해 주었다.
왕기춘 선수는 결승 상대에게
경기 시작 13초 만에 메치기 한판으로
매트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는 굵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금메달을 딸 만큼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이미 갈비뼈가
부러졌음에도 아픔을
이겨내며 경기에 출전(出戰)했던 것이다.
왕 선수와 함께
우리 국민 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가슴 치게 했던 이배영 선수는
또 어쩌란 말인가.
그는 결승경기에서
용상 3차시기에 다리경련으로
실패한 뒤 바닥에 길게 쓰러지고 말았다.
지난 4년의 모든 수고가
물거품 되는 순간,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아쉬웠으면 쓰러지면서도
바에서 손을 놓지 못했을까.
적어도 이들에겐 끝까지 투혼(鬪魂)을
보여 주었던 자체가
금메달보다 값진 것이 아니었던가.
인생(人生)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어차피 인생은 법(法)대로 되지 않아...’
그들처럼 아무리 열심히 준비했어도
하늘이 따라 주지 않는다면,
이룰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실패를 통해
알아가면서 사람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겸손(謙遜)해지기 시작한다.
아무리 철부지라도
큰 소리 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부터 말을 줄이고
허리를 숙이게 된다.
누가 그랬던가.
밥상에 밥이 있어도 먹어야 내 밥이요,
누구와 결혼을 약속했다 해도
신혼여행 갔다 와야,
‘아, 그 사람 결혼했구나.’
라고 말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6초전 동점을 만들었음에도 패한 불합리 같은
변수(變數)가 세상엔 왜 이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본다면,
그런 일 들 조차 없다면
인간은 얼마나 교만(驕慢)하게 살아갈까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배영 선수가 베이징으로 떠나기 전,
자신의 불운(不運)을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도사같이
이런 말을 했다.
‘역도라는 말에는
'길 도(道)'자가 들어간다.
즉 역도(力道)란 힘이 들어가는 수행’이라는 말하면서,
역도는 힘뿐만 아니라 성품까지 가다듬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역도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運動)은 물론이요,
인생살이가
아무리 억울(抑鬱)해도
아무리 내 생각과 다른 결과가 나와도
힘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실패해도 성공자처럼 살아갈 수 있고
성공했음에도 실패자처럼
사는 것이 인생이다.
물론 최선(最善)을 다 했음에도
실력이 부족하여
메달을 따지 못했다면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알 수 있는 계기요,
또한 성장의 기회로 삼으면 손해 볼 것이 없다.
여자 펜싱 사상 첫 메달을 안겨주었던
남현희 선수는 은메달이라 아쉽다는
말 대신 오히려 밝은 미소로
‘게임 운영능력이 내가 한 단계 아래인 것 같다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재범 유도선수는
결승(決勝)까지 다섯 판을 하는 동안 32분이나
걸리면서 한계를 느끼며 패배했다.
이전에 이원희 선수는 99가지 기술을 갖고
있음에도 체력에 달려 고전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우리 야구팀이 7승을 했음에도
믿을 수 없다는
외국 언론들의 평(評)을 우리는 정말로
귀 담아 들어야 한다.
그렇게 평한 것은
우리 팀은 기본(基本)이 약하다는 것과
전략부재를 들어 말한 것 같다.
아마와 프로의 차이(差異)가 여기에 있다.
마라톤에서 프로 선수는 반환점을
돌때 지치기는커녕
전략에 따라 페이스를 유지하며
더 힘차게 달리지만,
아마추어에게는 체력부터
이미 바닥이 나 자포자기 상태가 된다.
모든 경기에서 후반부 세트가
전 경기를 좌우하듯이,
인생에서도 후반전(後半戰)이 더 중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남들이 갖지 않는 어떤 것이 있다고
함부로 말하고
경거망동하게 행동한다면,
그리도 애썼던 그 사람의 전반부 인생까지
한 순간에 고스란히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승자(勝者)는 없다’는 말처럼
수많은 스타들이 이번
올림픽에서 쓴 맛을 봐야했다.
최후 승리자는 끝까지 가 봐야 한다.
21일 탁구 여자 단식 16강에서
김경아 선수와
미국의 왕첸 선수의 경기가
있었는데 승리는 귀화선수에게 돌아갔다.
두 선수 다 바닥에 엎드려 울었다.
모습은 비슷하나
정반대의 의미(意味)를 갖고 울고 있었다.
‘역시 올림픽은 달라’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우열곡절의 사연도 많지만
승자와 패자는 언제나 구별되어진다.
지극히 작은 차이로
승자(勝者)가 결정되는 올림픽,
또 영원한 승자가 있을 수도 없는 올림픽이기에
선수들에겐 올림픽 이후의 과제가
더 중요하다.
그것은 상대보다 더 무서운
자신을 엄(嚴)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이라는 무형의
상대와 싸워 이겨야
인생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기 때문이다.
주여,
올림픽을 통해
많은 것을 얻습니다.
메달을 딴 선수마다
멀쩡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듯
부상 속에서도 투혼을
발휘했는데,
저는
인생올림픽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부끄러울 뿐입니다.
메달이 목적이 아니기에
더욱 두렵습니다.
저는 전반부 인생을 바로 뛰지 못했기에
후반부가 더욱 중요합니다.
썩지 않는 면류관을
받을 그 날까지
날마다
자신과 싸움으로
후반부가 더욱 빛나게 하소서.
2008년 8월 23일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사진작가ꁾ 투가리님 우기자님 이요셉님 정기로의동행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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