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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이기는 방법

마태복음 이한규 목사............... 조회 수 1043 추천 수 0 2015.01.19 23:5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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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4:1-11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2014.11.3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484) 

시험을 이기는 방법

 (마태복음 4장 1-11절)


< 바른 성공을 추구하십시오 >

 가끔 보면 곡식으로 떡을 만들어 먹는 정상적인 방법보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는 기적적인 방법을 더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편법 인생의 가능성은 그만큼 더 커집니다. 성도는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이로운 일인가?”보다 “그것이 의로운 일인가?”를 먼저 생각하면서 삶의 가치관을 ‘이로움’이 아닌 ‘의로움’에 두어야 합니다. 불의한 떡을 포기하면 굶어죽을 것 같지만 그때 오히려 하늘의 만나가 내립니다.

 속담 중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서울을 못가는 한이 있어도 모로 가지 말고 바로 가야 합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을 이루려는 ‘불의한 긍정주의’는 없어야 합니다. 무조건 “하면 된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면 된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하면 되긴 된다. 그러나 곧 망한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만, 내 가족만, 내 교회만 잘되면 된다!”고 하면 한국 교회는 미래가 없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 말씀은 흉년으로 힘들어진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마게도냐 교회가 가난해질 것을 감수하고 물질을 나눠 도왔듯이 고린도 교인들도 물질을 나눠 도우라고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권면하며 한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결국 이런 말씀입니다. “부요하신 예수님이 가난하게 된 것은 예수님의 가난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한 것처럼 너희도 남을 부요하게 하고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기 위해 예수님처럼 가난을 감수하고 나누라.” 그런데 그 말씀을 앞뒤 다 자르고 문맥을 다 잘라서 “부요하신 예수님이 가난하게 된 것은 예수님의 가난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한 것이니까 너희가 부자가 된다.”라고 원래 말씀의 의미를 180도 다르게 해석하면서 많은 성도들을 기복주의로 오도해 성장한 교회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신앙 자체’는 좋은 것입니다. 소극적인 신앙보다 적극적인 신앙이 낫고 부정적인 신앙보다 긍정적인 신앙이 낫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하면 된다!”고 하면 불의한 긍정주의와 기복주의로 오도될 때도 많습니다. 그러면 그런 교회가 성공과 성장의 축배를 들 때 전체 한국 교계는 더 욕을 먹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하면 된다!”고 하지 말고 “바로 해야 된다. 바로 하면 된다.”고 해야 합니다.

 원칙 대신 반칙으로 돈을 벌고 성공하면 그 돈과 성공은 결국 자신을 불행과 저주로 몰아갑니다. 그러므로 ‘적극적인 존재’가 되기 전에 ‘바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바른 존재 적극적으로 나아가야지 불의한 존재가 적극적으로 나가면 주변 사람들이 더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처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고 남의 양떼를 빼앗아서라도 교회를 성장시키면 그것은 결코 축복이 되지 못합니다.

 속담 중에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 속담은 “못 버는 한이 있어도 개같이 벌면 안 된다.”고 바꿔야 합니다. 바르게 돈을 벌기가 쉽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지혜와 창조성을 발휘하면 여전히 바르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있습니다. 그처럼 어떤 일을 할 때 ‘이로움’보다 ‘의로움’을 먼저 생각하고 자기 뜻대로 자기에게 좋은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을 하려고 하십시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하면 결국 자기도 영광스런 존재가 될 것입니다.

< 예수님이 받은 3가지 시험 >

 본문에는 예수님이 마귀로부터 3가지 시험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시험도 크게 보면 “이로운 길로 갈 것이냐? 의로운 길로 갈 것이냐?”에 관한 시험입니다. 예수님이 받은 3가지 시험은 어떤 시험입니까?

1.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시험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첫째 시험은 돌을 기적적으로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이 시험은 비정상적인 떡을 추구하지 말라는 교훈도 주지만 이 시험이 주는 더욱 중요한 교훈은 하나님의 능력을 잘못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돌들을 떡덩이가 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명은 ‘화려하고 신기한 기적을 통해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 인류 구원의 길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적적인 떡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란 신명기 8장 3절 말씀을 이용해 그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물론 떡의 추구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떡의 추구가 잘못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떡으로만’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떡 문제를 무시하지 않고 중시하는 종교입니다. 세계 지도를 보면 예수님을 잘 믿는 나라가 대개 잘 삽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성도의 실제적인 축복을 약속합니다. 그렇지만 떡으로만 살려고 하는 것은 사탄의 유혹입니다. 즉 떡도 추구하면서 말씀과 기도를 더 앞세워야 합니다. 먼저 돈 좀 벌어놓고 하나님을 일을 하겠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하면서 돈도 추구하십시오.

2.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시험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 구절에서 ‘거룩한 성에 있는 성전 꼭대기’는 해발 750미터 높이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깎아지른 기드론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 장소일 것입니다. 사탄이 그곳에 예수님을 세웠다는 것은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서 끌려가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잠시 사탄이 주관하는 시험에 응하도록 세워진 것입니다.

 그때 사탄은 천사가 손으로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실 것이란 시편 91편 11-12절 말씀까지 인용하면서 예수님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리라!”고 유혹했습니다(6절). 사탄이 성경 말씀까지 인용하는 간교한 모습을 보십시오. 그 말씀은 성도가 용기 있게 절벽에서 뛰어내려도 천사가 받들어준다고 약속한 말씀이 아닙니다. 말씀을 아무 때나 자기 편의대로 적용하려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새처럼 날아 땅에 안착하면 표적을 중시하는 유대인들이 얼마나 감탄하면서 받들겠습니까? 사탄은 예수님의 공생애 초장부터 ‘십자가의 희생’보다 ‘화려한 비상’을 통해 사람들 앞에 등장하라고 유혹한 것입니다. 이 시험은 위험한 행동을 하면서 하나님이 그런 자신을 지켜주실 것이라고 믿는 ‘헛된 믿음’을 경고합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그런 헛된 믿음의 시험에 빠질 때가 의외로 많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동네에 작은 언덕길 위쪽에 약 10미터쯤 되는 낭떠러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주변에 공사하는 집에 쓰려고 갖다 놓은 모래가 그 낭떠러지 밑에 꽤 많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러자 10미터 아래의 모래 위로 뛰어내려 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서로 뛰어내려 보라고 하면서 아무도 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남 앞에서 과시하려고 거기서 뛰어내렸다가 다리가 아파서 며칠간 잘 걷지도 못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도 남 앞에서 과시하려고 있는 척 하다가 상처와 고난을 자초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인간은 그처럼 어리석습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는 믿음입니다.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인 표적만 추구하면 믿음의 시험은 계속됩니다. 즉 ‘바른 어떤 것’보다 ‘용한 어떤 것’을 찾으면 고난을 더 벌게 됩니다. 그처럼 교만하고 불의한 마음을 가지고 믿음을 시험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독을 먹어도 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성경 말씀을 내세워 농약을 먹고 안 죽는지 시험하면 안 됩니다. 부실 건물 지어놓고 무너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거나 차를 험하게 몰면서 사고 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거나 그린벨트 사놓고 건축허가가 나게 해달라고 떼를 쓰며 기도하는 것 등은 믿음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시험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자연 질서를 만드시고 존중하시기에 자연원리를 기적이란 특별원리로 수시로 깨드리기를 즐겨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여자 몸에서 아기로 태어나는 방법을 통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믿음을 상식과 질서와 자연의 법칙을 수시로 깨는 것이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잘못된 믿음의 시험을 거부하고 사탄에게 신명기 6장 16절 말씀을 인용해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시험을 기쁘게 받으려고 하되 거꾸로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즉 부당하게 행동하고 그런 자신을 하나님이 지켜줄 줄 믿고 기도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시험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의 하나님이지만 기적을 수시로 요구하는 사람의 요구에 무조건 응하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기적을 요구하면 기적을 더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오히려 기적을 더 얻습니다.

3. 천하만국의 영광을 주겠다는 시험

 본문 8-9절 말씀을 보십시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 구절에서 ‘지극히 높은 산’은 느보산이란 주장도 있지만 사실상 히말라야 산에서도 천하만국을 다 볼 수 없습니다. 결국 이 시험은 환상 중에 펼쳐진 시험인데 사탄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의 환상을 보여주며 자신에게 경배하면 그것들을 주겠다고 유혹한 것입니다.

 사탄은 제한된 시간과 범위 안에서만 일정 권세를 부여받은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다 줄 것처럼 말하는 교만한 모습을 보십시오. 이 시험은 권력욕에 대한 시험입니다. 사람이 출세하고 권력을 가져서 화려한 조명과 시선을 받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그처럼 세상 권력과 영광을 추구하다가 망한 인생이 한둘이 아닙니다.

 어떤 목사님이 40일 금식기도를 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병 고치는 은사를 주셔서 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병든 성도를 잘 돕고 싶어서 능력 있는 목회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이해되지만 문제는 화려한 은사와 능력을 추구하다가 믿음이 주는 참된 실체와 열매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 번째 사탄의 시험에 대해 신명기 6장 13절 말씀을 인용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했다.” 그처럼 예수님이 단호하게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자 사탄이 예수님을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들었습니다(11절). 물론 사탄이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었기에 누가복음 4장 13절에서는 얼마 동안 떠났다고 말씀합니다. 그처럼 사탄은 끊임없이 시험을 통해 성도를 넘어뜨리려고 하는데 그 시험을 잘 물리쳐야 합니다.

< 광야 시험이 주는 교훈 >

 본문은 시험에 관한 몇 가지 교훈을 줍니다. 첫째, 시험은 복된 체험 후에도 올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본문 1절 말씀에서 ‘그때에’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후에’란 뜻입니다.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마태복음 3장 16-17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셨고 이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그처럼 복된 체험 후에 시험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신비한 체험을 너무 자랑하고 과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기도 많이 해도 시험을 당한다는 교훈입니다.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당할 때는 40일 금식기도 후였습니다(2절). 사람들은 흔히 금식기도를 하면 영성이 깊어져 마귀와 문제가 물러간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모세가 물도 없는 시내산에서 40일 동안 금식기도한 후에 산에서 내려올 때 얼마나 성령이 충만했던지 얼굴에 광채가 났고 손에는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십계명 돌판 두 개도 들려있었습니다. 그 정도의 체험이면 아주 신령하게 산신령처럼 변할 것으로 오해하지만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그때 모세는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는 모습을 보고 홧김에 돌판을 내던져 박살을 냈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하나님이 주신 두 돌판만은 옆에 조용히 내려놓고 다른 돌을 집어던지든지 해야지 그게 어떤 돌판인데 그렇게 던져 박살을 냅니까? 그처럼 인간은 40일 금식기도를 해도 산신령이 될 수 없고 400일을 금식기도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영성자랑도 지극히 주의해야 합니다.

 셋째, 시험은 본격적으로 일하려고 할 때 온다는 교훈입니다.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기도한 후 예수님이 본격적으로 공생애를 시작하려고 할 때 마귀가 시험하러 오는 것을 보십시오. 그처럼 시험은 대개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옵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왔다.”는 말은 “이 시험을 이기면 하나님이 크게 쓰시겠구나!”란 뜻도 됩니다. 위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한결같이 시험과 고통을 이겨냈다는 점입니다.

 시험은 강한 팔과 어깨를 줍니다. 시험을 잘 이겨내야 좋은 일꾼이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능력 있는 일꾼을 원하시기에 본격적인 일을 시작하기 전에 시험을 허용하실 때가 많습니다. 공생애 직전에 예수님도 시험을 당하셨다는 것은 큰 인물이 되기 위한 시험이 면제되는 사람은 없다는 뜻입니다. 누구에게나 시험은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집 뒤에는 반드시 해답편이 있듯이 시험에는 반드시 시험을 이기는 길도 있습니다.

< 시험을 이기는 방법 >

 어떻게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까? 본문을 통해 2가지만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말씀을 앞세워 살아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기록되었으되’란 말씀이 4절, 7절, 10절에 모두 나옵니다. 예수님은 세 번의 시험을 모두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말씀은 사탄을 물리치는 최적의 도구입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거기서 엄청난 파워가 나옵니다. 그때부터 반전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문제는 사탄의 하수인도 말씀을 왜곡해 인용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마귀 대왕이 부하 귀신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넘어뜨릴 때는 가급적 성경을 많이 인용하라.” 그처럼 이단들도 성경을 인용하며 접근할 때가 많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과 신학 안에서 자신을 제한하고 성찰할 줄 아는 겸손한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가끔 보면 극심한 고난을 이겨낸 성도가 이단들이 내세우는 영성의 유혹에는 너무나 쉽게 무너지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가장 큰 약점입니다. 지금도 ‘영적인 것’이라고 하면 정신없이 쫓아다니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예언해준다고 하면 쫓아가고 치유해준다고 하면 쫓아갑니다. 치유를 사람이 주는 것입니까? 또한 “당신에게 사명이 있다.”는 한마디만 들어도 가정과 일터를 팽개치고 신학교를 가겠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사명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신학교에 가는 것만이 사명이 아닙니다.

 말씀을 모르면 두려움도 많아지고 잘 속게 됩니다. 이단교주가 새벽에 전화해서 “내가 지금 기도 중에 당신이 불 못에서 신음하는 환상을 봤다.”고 하면 얼마나 겁납니까? 믿음이 강해도 그런 얘기를 들으면 찜찜합니다. 그처럼 영혼을 두려움으로 미혹해 재산을 털어가는 이단들에게 넘어가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말씀 위에 서면 하나님이 그 삶을 책임져주십니다. 엉뚱한 말에 귀를 기울이면 시험 가능성은 커지고 많아지지만 말씀 위에 굳게 서서 꿈과 비전을 향해 열심히 뛰면 어떤 시험도 능히 물리칠 수 있습니다.

 둘째, 십자가를 지려고 해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화려한 제안이 담긴 세 번의 시험은 모두 “십자가를 지지 말라!”는 시험입니다. 지금도 사탄은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십자가를 지지 말라! 사명을 감당하지 말라!” 사명이 없는 사람의 최대 목표는 편안히 부담 없이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편안’이 ‘평안’을 주지는 않습니다. 사명을 따라 살 때 평안을 누리고 인생이 빛나게 되고 영원한 상급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 때문에 십자가를 지면 기뻐하십시오. 십자가를 피하라고 하는 시험에 넘어가면 사탄에게 지게 됩니다. 본문 3절과 6절을 보면 사탄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란 말을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기적을 펑펑 일으키고 영웅이 되고 영광을 받아야 하지 왜 십자가를 지는 고생길로 가려고 하느냐고 시험한 것입니다. 그런 시험에 넘어가면 육신은 편해져도 영혼은 망하게 됩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버리자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뱀이 되었지만 지팡이를 쥐자 홍해를 가르는 능력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모세의 지팡이와 같습니다. 십자가를 버리면 망하고 십자가를 지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마귀는 공생애를 시작할 때도 십자가를 지지 말게 유혹했고 공생애를 끝내고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도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 27:40).”고 유혹했습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대중을 이끌고 다니는 인기 있는 영웅의 길로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웅의 길을 거절하고 십자가를 선택하심으로 결국 구원의 사명을 이뤄내셨습니다. 승리의 길은 십자가를 지는 길에 있습니다. 자기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면 그때부터 영혼은 살고 인생의 무거운 짐이 가볍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과 사명은 ‘며칠 피는 화려한 꽃’에 있지 않고 ‘생명을 지속시키는 열매’에 있어야 합니다. 억울해도 참고 힘들어도 견디면서 십자가를 지고 나가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믿음과 정성과 희생을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본문 9절에서 마귀는 자기에게 절하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했을 때 주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은 딱 두 번 했습니다. 본문에서 한번 했고 또 한 번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했던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려고 시도 때도 없이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의 길을 방해할 때만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시고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극과 극은 신기하게 통합니다. 죽는 길이 사는 길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길이 십자가를 벗는 길입니다. 때로 어려운 시험이 있어도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믿고 감사하며 십자가를 지려고 하면 얼마든지 그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시험이 없는 것이 축복이 아닙니다. 시험이 있지만 시험 중에도 기쁨을 잃지 않고 결국 시험을 이기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런 사람이 강한 팔과 어깨를 가지고 주어진 사명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살면서 수시로 다가오는 시험을 잘 이겨내고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며 사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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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71 요한복음 영적 맹인이여, 눈으 뜨라 요9:39-41  강종수 목사  2015-01-18 518
11570 에스겔 성전에서 나오는 은혜의 생명강수 겔47:1-12  이상호 목사  2015-01-17 692
11569 마태복음 순종이 효도다 마21:28-32  이상호 목사  2015-01-17 514
11568 마가복음 예수님처럼 어린이를 대하자 막10:13-16  이상호 목사  2015-01-17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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