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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벧후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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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4.11.10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489) |
사람 마음을 얻는 길 (베드로후서 3장 1-7절)
< 마음을 얻는 리더십 >
성경에서 남자 중에
가장 외모가 탁월한 사람으로 묘사된 사람은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입니다. 압살롬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흠 잡을 데가 없는 미남이었습니다. 특히
활력의 상징인 머리숱이 많아서 연말에 한 번씩 깎은 머리카락의 무게가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 약 2.6킬로그램이었습니다(삼하
14:25-26).
압살롬은 아이돌 같은 탁월한 외모로 사람들의 시선은 끌었지만 내면에는 검은 야심이 넘쳤습니다. 그가 친
누이동생을 겁탈한 이복 형 암논을 죽이고 달아났다가 몇 년 만에 돌아왔지만 아버지 다윗이 자기를 외면하자 권력 찬탈의 음모를 꾸미고 자신의
외모를 활용합니다. 그래서 억울한 백성들에게 다가가 품어주고 따뜻한 말로 위로하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척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백성들은 잘생긴 그의 스킨십에 넘어가 마음을 주었지만 성경은 그가 백성들의 마음을 도둑질했다고 기록합니다.
마침내 때가 이르러
헤브론에서 쿠데타를 일으키자 수많은 신하들이 순식간에 압살롬 편에 가담했고 백성들도 많이 따랐습니다. 쿠데타는 잠시 성공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압살롬이 비참하게 죽으면서 그 쿠데타는 실패로 끝납니다. 외모에 마음을 빼앗기면 결국 시간도 빼앗기고 육체도 빼앗기고
물질도 빼앗깁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극적인 역전인생을 꿈꿉니다. 바르게 역전인생을 꿈꾸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땀도 없이 불의하게
대박을 노리면 반드시 쪽박을 찹니다. 외모 때문에 자신감을 잃은 사람이 약간의 성형으로 자신감을 찾는다면 그런 성형은 찬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상품가치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성형을 하고 학력을 위조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내적인 빈곤을 외적인 포장으로만 감추려는 허영심은 삶을
더 천박하게 만듭니다.
요새 사람들은 무언가 자기 마음을 확 사로잡는 것을 찾아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마땅히 없으니까
마음들이 많이 공허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가끔 보면 마음을 확 사로잡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분을 만나면 따뜻해지고 생각만 해도 푸근해집니다.
마치 마음의 고향을 찾은 것 같습니다. 성도는 누군가의 마음의 고향처럼 느껴지는 영적인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결국 리더십을 얻고
인물이 됩니다.
< 사람 마음을 얻는 길 >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는 리더가 될 수 있을까요? 찬란한
꿈과 비전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도 있고 배려하는 태도와 매너로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순수한 헌신으로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본문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길로서 몇 가지 삶을 제시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 정직하고 진실한
삶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베드로는 사랑의 사도였던 요한 못지않게 사랑이 많았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에만 “사랑하는 자들아!”란 표현이 1절,
8절, 14절, 17절에 네 번 나옵니다. 이 구절에서 베드로는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둘째 편지를 쓴다고 했습니다. 첫째 편지는 베드로전서를
뜻합니다. 베드로는 그 두 편지를 수신인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려고 쓴다고 했습니다. 진실한 마음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돌아가신 한경직 목사님은 “교인이 되기 전에 진실한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진실하면 사람의 존경도 받고 하나님의
축복도 받습니다. 퇴계 이황은 깊은 학문은 물론 진실한 성품으로도 존경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값비싼 뇌물을 주면 돌려주고 떡이나 붓 같은 것은
보낸 사람의 정성을 생각해 받았습니다. 그는 “나는 절대 안 받아!”라고 하면서 고고한 척하지 않고 상대의 마음도 배려하며 늘 진실하게 살려고
했기에 존경받은 것입니다.
성도는 믿음생활을 오래 할수록 더 진실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더 진실을 잃고 양심이 무뎌질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진실한 마음을 자꾸 일깨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시편 84편 11절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진실하고
정직하게 행하면 좋은 것을 넘치게 받습니다.
어느 날, 스코틀랜드에 사는 13살의 앤드류 카네기 가족에게 미국에 사는 숙모가 미국
이민을 제안하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편지를 받고 그의 부모는 재산을 팔아 이민 준비를 했지만 여비 20프랑이 부족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친구를 찾아 말했습니다. “핸더슨! 이번에 미국이민을 가려는데 20프랑이 모자라. 미국에 가도 언제 갚을지 약속할 수 없는데 빌려 줄 수
있어?” 그때 핸더슨 부인이 기꺼이 도와주어 미국 이민을 갈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 도착한 후 그의 어머니는 삯바느질과 파출부
일을 하면서 20프랑을 갚으려고 돈을 모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귀가한 카네기의 손을 잡고 어머니가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얘야! 오늘은 참
기쁜 날이다. 아마 내 생애에 최고로 기쁜 날인 것 같다.” 카네기가 물었습니다. “엄마! 뭐가 그렇게 기쁘세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핸더슨 부인에게 빌린 20프랑을 오늘에서야 다 갚았다. 너는 앞으로도 핸더슨 부인에게 감사하는 것을 잊지 말아라.”
그때
카네기는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정직한 분이고 감사할 줄 아는 분이구나!” 정직과 감사! 그 두 가지가 바로 카네기의 성공비결이었습니다.
카네기는 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 감사하면서 진실하게 살려고 애썼습니다. 그래서 억만장자가 되었고 그와 함께 일했던
비전동지 40명을 백만장자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진실과 정직은 사람을 묘하게 끄는 힘이 있습니다. 결국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2. 말씀 중심적인 삶
사람이 이단에 빠지면 기복주의와 거짓말에 미혹되면서 점차 자신도 거짓말을 잘하고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신천지는 이단 중에도 질이 아주 나빠서 자기 정체를 감추고 스파이처럼 기존교회에 침투해 무너뜨리는
것을 전도로 여깁니다. 거짓된 행동으로 진리를 전파한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입니까? 목적을 이루려고 거짓된 수단을 쓰게 하면 그가 가르치는 진리도
사실상 거짓이기에 그런 공동체는 즉시 떠나야 합니다.
성도는 이단자나 거짓 예언자나 거짓 치유자의 미혹에 절대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강하게 말씀했습니다. 원수는 사랑해도 이단자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단에 빠지면 가정이 깨지고 인생이 파멸되고 영혼까지 파멸됩니다. 자기 영혼을 굳게 지킬 줄 모르면 남의 마음을 얻는 힘과
매력이 생길 수 없습니다.
어떻게 이단의 거짓에 미혹되지 않습니까?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이 구절에서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은
구약성경을 뜻하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은 신약성경을 뜻합니다. 이단에 미혹되지 않으려면 성경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말씀은 영혼을 지켜주는 최상의 방벽입니다.
어느 날, 디엘 무디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너무 기뻐서 마치 자신이 천사가 된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잘 지내다가 몇 달 후 어떤 죄를 짓고 우울해졌습니다. 그 죄로 괴로워하다가 산에 올라가 기도하던 중에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는 생각했습니다. “이젠 됐다. 다시 승리하며 살 수 있겠다.” 그런데 몇 주 뒤에 또 어떤 시험에 들면서 죄로 더러워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다시 한 동안 우울해졌습니다.
그렇게 우울하게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동네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부흥 강사를
통해 은혜를 받고 신비한 천국 체험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두 주쯤 지나니까 부흥회 때 받은 은혜와 신비체험의 감격은 사라지고 또 죄를 짓는
자신을 보면서 그는 생각했습니다. “내 양심은 화인 맞은 것일까? 나는 버림받은 사람인가?”
그렇게 우울한 상태에서 한 동안
방황하던 어느 날, 그가 성경을 보다가 로마서 10장 17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때 그는 깨달았습니다. “그렇다! 성경을 읽고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최고구나.” 그때부터 매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읽으면서 견고한 믿음과 영력을 얻어 세계적인 부흥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말씀 안에 꾸준히 거하는 것이 영혼을 지키는 제일
비결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거짓 선지자가 아무리 미혹해도 말씀 안에 있으면 승리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자신의 두 서신을 통해 진실한 마음도
일깨우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한 것입니다. 말씀 안에 있다는 것은 말씀에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사람은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 됩니다. 대개 보면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 결국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을 얻습니다.
3. 건전한 종말론적인
삶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성경에는
종말과 재림에 관한 약속의 말씀이 많습니다. 그런데 말세가 되면 정욕을 따라 행하는 사람이 그 약속을 부인하고 조롱합니다. 정욕적인 사람에게
제일 무서운 사실은 ‘종말이 있다는 사실’과 ‘종말 후에 주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종말과 재림을 부인하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조롱합니까? “주의 강림 약속이 어떻게 이뤄지겠느냐? 그 약속은 헛된 약속이다.”라고 하면서 구약의 위대한
조상들도 죽은 후에 부활한 적이 없고 그 진리는 천지창조 이래로 변함이 없었다고 조롱했습니다(4절). 그런 조롱에 대해 베드로는 그들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얼마든지 말씀으로 새로운 변화를 만드실 수 있다는 진리를 일부러 외면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5절). 즉 앞으로 있을
심판을 여러 주장을 내세워 외면하면서 주님의 재림과 종말을 억지로 부인하려고 하지 말고 종말의식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사람에게
종말의식이 없어지면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방탕한 인생이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러면 미래가 없게 됩니다. 세상에서 제일 매력 없는 사람은 미래가
없다고 느껴지는 사람이고 제일 매력 있는 사람은 미래가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언젠가 죽는다.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건전한 종말의식을 가지고 미래를 잘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실제로 사람 마음을 가장 크게 사로잡는 삶은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드나베의 삶’입니다. 자기만 챙기려고 하는 모습을 보일수록 매력도 떨어지고 인간관계도 떨어지고 리더십도 훼손되지만 남과 나누려고 하는
모습을 보일수록 매력도 커지고 인간관계도 좋아지고 참된 리더십도 얻습니다. 그런 매력적인 드나베의 삶을 누가 가장 잘 실천합니까? 건전한
종말의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람은 이 땅의 것을 다 놓고 조만간 죽고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건전한 종말의식을 가진 사람은
나눔에 결코 인색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 마음을 얻는 행복한 삶 >
지금 많은 현대인들은 허전한
마음을 채워줄 것을 찾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좋은 제품을 개발해 그 마음을 채워줄 것처럼 광고하지만 광고는 ‘제품을 잘 알리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마음을 사로잡는 것’도 해야 합니다. 특히 어떤 회사와 제품이 이미 많이 알려졌다면 더욱 알리려는 광고보다 마음을 사로잡는 광고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마음을 사로잡습니까? 화려하고 기발한 광고로는 눈을 사로잡고 제품은 팔 수 있어도 마음까지 사로잡기는
힘듭니다.
제품을 잘 팔아도 사람 마음을 얻지 못하면 장기적으로는 망합니다. 현대 차 제품은 솔직히 좋은 편이지만 인터넷을 보면
현대 차가 망했으면 좋겠다는 한국인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제품은 민심을 얻었지만 회사는 민심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제품의 질로 밀어붙이면
단기간의 회사유지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제품도 민심을 얻고 회사도 민심을 얻어야 위기 때 그 위기를 비교적 쉽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제품 품질과 광고만으로는 민심을 얻지 못합니다. 엄청난 광고료가 제품을 팔게는 해도 기업 이미지를 좋게 하지
못한다면 광고에는 성공했어도 홍보에는 실패한 셈이 됩니다. 일전에 현대자동차가 미식축구 결승전인 슈퍼볼 중계에서 광고를 할 때 몇 십 초 광고에
몇 백 만 불을 썼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 눈을 사로잡아 제품은 더 팔아도 사람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때
그 동안 벌었던 것을 무섭게 토해내야 합니다.
얼마 전에 현대 차가 미국에서 차 연비 조작으로 총 3억 불 정도의 벌금을
냈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대충 넘어갈 일을 3천억 원의 벌금을 낸 것입니다. 그 벌금을 낼 수익을 얻으려면 차를 몇 십 만 대 팔아야 합니다.
왜 그렇게 판사와 배심원들이 매몰차게 징벌적인 벌금을 매깁니까? 회사가 민심을 얻지 못했으니까 판사와 배심원들이 그렇게 고자세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힘과 돈과 법으로 밀어붙이는 것’보다 ‘바닥 민심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특히 외국 기업은 그 나라 민심을 얻는
일을 중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권력과 언론에 돈을 바치는 ‘치사한 로비’를 지양하고 이익의 일부환원을 통해 민심을 얻는 ‘따뜻한 로비’를
지향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믿는 경영인이라면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을 힘써 돌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거룩한 로비’에 나서야 합니다.
교회는 당대의 재벌이면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얻었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거룩한 경영인 배출을 최대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만약
현대 차가 ‘따뜻한 로비’로 미국민들의 마음을 얻었다면 민심의 풍향계를 따라 판사와 배심원들이 매몰찬 징벌적인 벌금을 때리기보다는 경고성 벌금
정도만 물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3억 불 벌금이 천만 불 정도로만 경감되어도 2900억 원을 앉아서 버는 셈이 됩니다. 그만큼 ‘보통
일반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제품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기업은 커질수록 ‘기업의 전체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 ‘기업의 어떤 제품을 알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과제입니다.
삼성이 애플과 벌였던 소송을 보십시오. 그 소송에서 왜 삼성이
실체적 진실 이상으로 수세에 몰렸습니까? 미국 배심원들이 삼성에 엄청난 징벌적인 벌금을 매겼기 때문입니다. 삼성이 미국에서 좋은 일을 해서
민심을 얻었다면 역효과가 무서워서라도 배심원들은 함부로 그렇게 징벌적인 벌금을 매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열심히 번 돈을 천문학적인
합의금과 소송비용 등으로 그렇게 날리면 얼마나 허무한 일입니까? 그래서 글로벌 기업은 제품의 품질로만 승부하려고 하지 말고 좋은 일을 통해
민심을 얻는 일도 잘해야 합니다. 계산적인 마음을 가지고 좋은 일을 하기보다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면 기업 이미지도 좋아지지만 나중에 위기 때 말없는 후원군들을 통해 더 큰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결국 민심을 얻는 것은 기업의 미래를
위한 최후의 담보물이 됩니다.
왜 한때 대기업들이 언론을 소유하려고 그렇게 애를 썼습니까? 기업에 우호적인 언론을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기존 언론사들의 엄청난 반발로 대기업이 직접 언론을 만들지 못하니까 중앙일보처럼 친인척을 통해 우호언론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호언론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는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진짜 민심을 얻지 못합니다. 사심과 계산 없이 좋은 일을 음지에서 하려고
해야 진짜 민심을 얻습니다.
요새 기도할 때마다 월새기(월간 새벽기도) 문서선교 비전을 위한 기도가 많이 나옵니다. 언제가 때가
되면 월새기가 영어판과 중국어판으로 반드시 나올 것입니다. 원래는 1년 정도 월새기를 발행하고 12권의 발행된 책을 보여주면서 미국 출판계의
거물이나 유력한 기독교 지도자를 만나 월새기 영어판 발행을 위한 사심 없는 후원을 타진할 계획이었습니다. 영어판도 한 권에 1불에 공급하면
그것만으로도 마음을 얻기 쉽기에 후원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문서선교의 뜻을 가진 월새기 후원자를 분명히 얻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목요일 새벽에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이런 음성을 마음속에 들려주셨습니다. “이 목사야! 월새기 영어판
발행을 위해 미국 출판계의 거물이나 유력한 기독교 지도자만 만날 생각만 하지 말고 시야를 넓혀 민심을 귀하게 볼 줄 아는 글로벌 기업이나
기업가도 찾아봐라. 내가 그 일을 위해 준비해놓은 사람이 있다.” 그런 내적인 음성을 접하고 마음이 환해짐을 느끼면서 월새기 영어판 발행이
급속히 가까워질 수도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사람 마음을 얻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물론 외형이나
거짓말로 마음을 사로잡기보다는 진실과 헌신으로 마음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공부하며 살아본 경험이 있어서 미국이 헌신의 영웅을 찾는
나라임을 잘 압니다. 미국은 누군가의 헌신을 비꼬아 보지 않습니다. 사실 헌신을 비꼬아 보지 않고 질투 없는 존경심을 표할 줄 아는 국민이
선진국민입니다. 그런 나라에서는 슈퍼볼 중계에서 30초 광고비로 200만 불을 쓰는 것보다 뜻 있는 어떤 일에 그 돈을 쓰는 것이 훨씬 더
민심을 얻게 합니다.
차만 사라고 하지 말고 마음도 사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민심을 얻는 기업이 결국은 장래성도 있게 되고
위기도 잘 극복하게 됩니다. 지금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허전합니까? 자기 마음을 사로잡아줄 영웅을 절실하게 원하는 시대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주신 자원으로 그 마음들을 채워준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그처럼 누군가의 마음을 채워주려고 하면 그의 마음을 얻게 되면서 그것이 축복으로
귀결됩니다. 결국 행복은 축복의 산실입니다.
물질은 어느 때 허무하게 흩어집니다. 대중의 인기도 거품입니다. 그 현실을 직시해야
낙심과 상처가 줄어듭니다.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에 인생을 구축하면 흔들림과 허무함은 필연적입니다. 신기루와 같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물질주의로부터 자신을 구분해내십시오. 집착하면 곧 병과 절망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힘써 나눔을 실천하면 행복을 얻게
되고 그 행복이 축복을 선도하게 됩니다.
작은 것이라도 열심히 나누면 공허가 치유되고 인생에 빛과 기쁨과 보람이 넘치게 됩니다.
가난한 나라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을 보면 보기만 해도 얼마나 마음이 밝아집니까? 가난한 삶이 낫다는 말이 아니라 행복은 물질이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행복은 물질을 얻을 때보다 사람의 마음을 얻을 때 주어집니다. 정직과 진실, 실천적인 말씀생활, 그리고 건전한 종말의식을
가지고 힘써 땀을 흘리면서 많은 재화를 창출하고 많이 나누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행복하게 사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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