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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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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불가능해지고 마음이 돌같이 될 때에 기도와 사랑을 진정으로 배웁니다.
분심(分心)한 적이 없다면 기도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기도의 비결은 하나님을 열망하고 하나님을 뵈옵기를 갈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열망은 언어나 감정보다 훨씬 깊은 단계에 있습니다. 때로는 쓸데없거나 해롭기까지 한 생각으로 가득 차 번민하는 사람이 그 마음의 깊은 고통 때문에 명확한 개념과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사랑을 쉽게 실천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기도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분심이 일어도 그것을 떨쳐 버릴 수 없을 때에 속상해 보았자 아무소용이 없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기도 생활에 있어서 분심은 흔히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첫째로 할 일입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무모하고 허무한 생각에 시련을 당하고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은 명상 생활의 기본적인 시련 중의 하나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에 매달리듯 이런 시련을 피하기 위하여 책을 읽고 또 그 글귀에 매달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단순한 영적 독서로 대치하면 엄청나게 많은 결과를 잃을 것입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분심과 싸워 이기고 자기의 무력함과 무능력을 조금이라도 배우면 많은 이득을 얻을 것입니다. 책이 묵상을 돕기보다는 마취제의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면 아마 책은 묵상을 망치고 말 것입니다.
분심이 생기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것입니다. 묵상을 할 때에 정신과 기억력과 상상력은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현존에로 인도하기 위해서만 작용을 합니다. 여러 해 동안 묵상을 해 왔다면, 기도를 하려고 자리를 잡으면 즉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아 말없이 아련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따라서 정신과 기억력과 상상력은 할 일이 사실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음만 바쁘고 정신과 기억력과 상상력은 한가합니다. 그래서 얼마 동안 지나고 나면 잠재의식의 문은 열리고 온갖 신기한 형상이 나타나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현명하다면 그런 것들에 신경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욕심 부리지 말고 편안히 하나님만을 쳐다보십시오. 성가시게 구는 영화 토막 같은 것들은 저 멀리 뒷전으로 물러갈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의식한다면 그것은 그것들을 물리친다는 사실을 의식할 뿐입니다.
성자(聖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분심은 일반적으로 전혀 해롭지 않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열심한 사람들이 묵상을 하면서 자기를 학대합니다. 음탕하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어서 거기에'동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고통을 받는 주된 이유는 이런 연속되는 생각을 지워 버리지 못하는 무력감이 야기하는 정신적 긴장이 모든 것을 몇 백배 더 악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유머 감각이라도 있으면 그들은 너무나 신경과민이 되어 묵상을 완전히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머는 그런 경우에 아마도 가장 보탬이 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진짜로 위험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진짜 해를 끼치는 분심은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과 함께하는 깊고 평화로운 일에서 별리 떼어 하루 일과와 관계되는 근심 걱정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많은 것을 대면하게 됩니다. 그럴 때에 묵상은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 마음으로 편지를 쓰거나 강론이나 연설문 혹은 책을 쓰거나, 심지어는 모금을 기획하거나 건강관리를 할 위험성이 큽니다.
이런 일들을 이미 겪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런 일들은 그에게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회상시킬 것이며 활동을 너무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줄 것입니다. 외적 활동을 줄이지 않으면 묵상할 때에 물질로부터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해 보았자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경황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핵심은 기도하려는 마음이며 하나님을 찾으려는 열의,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열의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님을 사랑하려는 원의가 있으면 해야 할 일을 이미 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일치하려는 생각 없이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에 대해서 명료하게 생각할 수는 없어도 하나님을 원하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분심이 아무리 심하다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편안하게 하나님께 집중하려고 노력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번거로워도 우리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현존은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그곳에 계십니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거기에 계시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존재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현존하신다는 생각이야말로 분심의 폭풍 속에 있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정화하는 가장 안전한 방비책입니다. *
분심(分心)한 적이 없다면 기도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기도의 비결은 하나님을 열망하고 하나님을 뵈옵기를 갈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열망은 언어나 감정보다 훨씬 깊은 단계에 있습니다. 때로는 쓸데없거나 해롭기까지 한 생각으로 가득 차 번민하는 사람이 그 마음의 깊은 고통 때문에 명확한 개념과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사랑을 쉽게 실천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기도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분심이 일어도 그것을 떨쳐 버릴 수 없을 때에 속상해 보았자 아무소용이 없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기도 생활에 있어서 분심은 흔히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첫째로 할 일입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무모하고 허무한 생각에 시련을 당하고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은 명상 생활의 기본적인 시련 중의 하나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에 매달리듯 이런 시련을 피하기 위하여 책을 읽고 또 그 글귀에 매달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단순한 영적 독서로 대치하면 엄청나게 많은 결과를 잃을 것입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분심과 싸워 이기고 자기의 무력함과 무능력을 조금이라도 배우면 많은 이득을 얻을 것입니다. 책이 묵상을 돕기보다는 마취제의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면 아마 책은 묵상을 망치고 말 것입니다.
분심이 생기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것입니다. 묵상을 할 때에 정신과 기억력과 상상력은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현존에로 인도하기 위해서만 작용을 합니다. 여러 해 동안 묵상을 해 왔다면, 기도를 하려고 자리를 잡으면 즉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아 말없이 아련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따라서 정신과 기억력과 상상력은 할 일이 사실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음만 바쁘고 정신과 기억력과 상상력은 한가합니다. 그래서 얼마 동안 지나고 나면 잠재의식의 문은 열리고 온갖 신기한 형상이 나타나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현명하다면 그런 것들에 신경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욕심 부리지 말고 편안히 하나님만을 쳐다보십시오. 성가시게 구는 영화 토막 같은 것들은 저 멀리 뒷전으로 물러갈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의식한다면 그것은 그것들을 물리친다는 사실을 의식할 뿐입니다.
성자(聖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분심은 일반적으로 전혀 해롭지 않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열심한 사람들이 묵상을 하면서 자기를 학대합니다. 음탕하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어서 거기에'동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고통을 받는 주된 이유는 이런 연속되는 생각을 지워 버리지 못하는 무력감이 야기하는 정신적 긴장이 모든 것을 몇 백배 더 악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유머 감각이라도 있으면 그들은 너무나 신경과민이 되어 묵상을 완전히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머는 그런 경우에 아마도 가장 보탬이 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진짜로 위험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진짜 해를 끼치는 분심은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과 함께하는 깊고 평화로운 일에서 별리 떼어 하루 일과와 관계되는 근심 걱정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많은 것을 대면하게 됩니다. 그럴 때에 묵상은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 마음으로 편지를 쓰거나 강론이나 연설문 혹은 책을 쓰거나, 심지어는 모금을 기획하거나 건강관리를 할 위험성이 큽니다.
이런 일들을 이미 겪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런 일들은 그에게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회상시킬 것이며 활동을 너무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줄 것입니다. 외적 활동을 줄이지 않으면 묵상할 때에 물질로부터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해 보았자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경황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핵심은 기도하려는 마음이며 하나님을 찾으려는 열의,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열의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님을 사랑하려는 원의가 있으면 해야 할 일을 이미 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일치하려는 생각 없이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에 대해서 명료하게 생각할 수는 없어도 하나님을 원하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분심이 아무리 심하다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편안하게 하나님께 집중하려고 노력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번거로워도 우리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현존은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그곳에 계십니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거기에 계시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존재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현존하신다는 생각이야말로 분심의 폭풍 속에 있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정화하는 가장 안전한 방비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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