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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독거와 침묵 (Solitude and Silence)<여정의 시작>

수도관상피정 Deniel............... 조회 수 2429 추천 수 0 2008.11.02 08:48:30
.........
출처 :  
제목 : Creating Life with God  기독교 전통과 영성기도
          (The Call of Ancient Prater Practices)
저자 : Deniel Wolpert (다니엘 월퍼트),  엄성옥 역.

        여행의 동반자 : 사막 교부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왜 침묵이 필요하며, 침묵 속에 홀로
         기도할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는 자신에 대해 초연하기
         시작하며,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허락해 준다.”

   아마 당신에게는 다음과 같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얼마 동안 기도하기로 결심합니다. 하루 중 어느 때에 교회에 가서 기도하거나, 당신의 집에 특별한 기도 장소를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당신이 즐겨 찾는 외부 장소가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이런 장소로 가서 30분 동안 하나님과 함께 지내기로 마음먹습니다.
   시간이 되면, 당신은 학교나 직장에서 시간을 내어 당신이 정한 기도의 장소로 가서 자리 잡습니다. 그런데 그때 급히 전화를 걸어 주어야 할 일이나, 라디오를 켜 놓았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당신은 가서 그 문제를 해결합니다. 다시 기도의 장소에 돌아왔으나, 이번에는 옷차림이 편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면서 편안한 스웨터를 입으면 기도가 잘 될 것 같은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다시 그 자리를 떠나 옷을 갈아입습니다.
   다시 기도하려고 돌아왔으나 마음이 평온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신은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및 분 동안 생각한 후에,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구절을 찾아 읽습니다. 그런데, 그 때 휴대폰이 울립니다. 당신은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은 충동을 견디지 못하여 전화를 받습니다.
   10분 동안 통화를 하고 나니, 정신이 산만해집니다. 당신은 그날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시계를 보니, 30분으로 정해놓은 기도 시간 중에서 25분이 흘렀습니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지금은 기도하기에 적절한 시간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저녁 때 다시 기도하쳤다고 맹세하고 나서, 남은 하루를 일상적인 일을 행하면서 바삐 보냅니다.
   하나님에 대한 명백한 사실, 교회에서 항상 어린아이들이 지적하여 어른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사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 한층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며, 나무나 사람들이 존재하는 방식으로 현존하시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우상을 만들고 숭배합니다. 우리는 만지고 느끼고 붙잡을 수 있는 유형적인 것을 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불기둥을 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 모세가 혼자서 산에 올라간 후에 그들이 홀로 남아 두려움을 느꼈을 때, 금속에 불과한 금송아지가 약간의 안전감과 희망을 제공해 주었습니다(출 32:1-6).
   따라서, 만일 우리가 기도하려 한다면, 이러한 어려움들,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하려고 생각할 때에 다가오는 도전들에 대처하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 방법은 침묵과 독거의 동산에서 배양되는 경청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는 이 능력은 기도의 핵심이 되는 기술입니다.

사막으로 들어감

   초대 교회 시절, 많은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머지않아 자기들이 다시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오고 있었습니다. 이 소망은 신자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러한 견해는 시들기 시작했습니다. 교인들은 죽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해가 흘렀으나 예수는 재림하시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자리를 잡으면서, 사람들은 세상의 분심(分心)거리들, 그리스도의 마음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어려움들을 한층 더 크게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커지면서, 팔레스타인과 이집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행동 방식을 추구했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 사막으로 들어갔습니다. 결국 이 사람들은 현재 우리가 사막 교부들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기도하고 구원의 경험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독거와 침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들 사막에서 생활한 기도의 사람들이 받은 은사들이 그들의 삶에 대한 말이나 이야기 속에 담겨져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서, 우리는 그들도 우리가 기도할 때에 직면하는 것과 동일한 어려움들에 직면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도 기도할 때에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고 분심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던 일을 마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기도할 완벽한 장소를 찾아 돌아다니고픈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말을 수집해 놓은 것은 이러한 유혹들에 대한 저항, 이 어려운 삶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을 위한 가르침과 격려의 책이 되었습니다.

사부 안토니가 말했습니다 :
  물고기가 마른 땅에 올라오면 죽는 것처럼, 수도사들도 수실을 떠나 있거나, 세상 사람들과 함께 거주하면, 홀로 기도하려는 결심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물고기가 바다로 돌아가야 하듯이, 우리가 외부에 머물러 있어 자신을 내적으로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을 망각하지 않으려면 우리도 수실로 돌아가야 합니다. (Wisdom of the Desert, 29)

   이러한 격려의 말에는 다음과 같은 분명한 불변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 만일 그대가 삶 속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찾기를 원한다면, 침묵하며 기도 안에 머무십시오. 이러한 내적 정적을 통해서만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중심에 계신 하나님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침묵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가 홀로 고독하게 기도하는 침묵 속에 들어갈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홀로 침묵할 때에 우리는 자신에 대해 초연하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허락합니다. 하나님은 매우 은혜로우시며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훼방하시거나 무례하게 우리의 일에 개입하시지 않습니다. 혹시 우리가 하나님을 무시하는 편을 택해도, 하나님은 그것을 허락하십니다. 그것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겸손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한다면(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가르치시고 변화시키실 가능성에 대해 우리 자신을 개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만들어온 바쁜 세상 안에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옛날 사막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처럼, 우리도 세상이 우리를 압도하지 못하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러한 장소에 않아 침묵할 때, 우리의 정신을  창조주께 향할 때, 하나님이 우리 세계의 중심이 되시는 것을 허락하는 과정이 시작됩니다. 보통은 우리가 그 중심적 위치를 차지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의 속도를 조정합니다 : 우리가 일정을 정하고, 언제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그러나 독거의 실천은 이 순서를 완전히 뒤집어 놓습니다. 갑자기, 활동이나 일상적인 잡일들의 목록이 없고 우리의 일정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도 없는 팅 빈 공간과 시간이 우리 앞에 놓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며, 하나님께서 언제 나타나실 것인지, 또는 하나님이 과연 나타나실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특히 유능하고 성공한 사람들은, 그와 같은 겸손한 자세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어찌 하나님이 감히 우리를 기다리게 하신단 말입니까! 그것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적절하지 못합니다. “오늘은 등이 아파서 정말로 집중할 수 없다” 사막의 지혜는 서서히 그러한 생각을 제거합니다.

한 형제가 파스토르(Pastor) 사부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
   "나의 정신 속에 분심하게 만드는 생각들이 밀려와서 나를 위험하게 만듭니다." 사부는 그를 야외로 데리고 가서 "웃옷을 벗고 가슴으로 바람을 맞아 보거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형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부는 "그대가 바람을 맞을 수 없다면, 분심하게 만드는 생각들이 그대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대가 해야 할 일은 그 생각들을 부인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Wsdom of Desert, 43)

  침묵이란 하나님의 음성인 생각들과 느낌들을 듣고 인정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의 세계를 이루는 생각들과 느낌들의 끝없는 흐름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두 가지의 차이점을 어떻게 구분합니까? 그러한 분별은 경험에서 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심어 주시는 갈망과 우리의 이기적인 소원에서 생겨나는 것을 쉽게 구분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잠재적인 혼동 때문에 우리는 경청하는 기술, 이 글에서 묘사하는 모든 방법의 기초가 되는 기술을 계발해야 합니다. 이러한 방법들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서서히 자신의 수다스러운 내적 대화 너머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합니다.

경청하는 학습

   나는 기도의 여정 중 어느 지점에서, 사흘 동안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지내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물과 슬리핑백 외에는 텐트나 책이나 필기도구 등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않을 작정이었습니다. 나는 홀로 침묵 속에서 시간을 보내려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즉시 나타나셔서 나에게 말을 거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산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산 밑 주차장에서부터 꼭대기까지 거리는 약 5km였습니다. 나는 기운차게 출발했습니다. 곧 하나님과 대화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크게 흥분해 있었습니다.
   마침내 산꼭대기에 도착하여, 슬리핑백과 물병을 곁에 두고 앉아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곧 다리가 저리고 등이 뻣뻣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아닌 온갖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견elf 수 없어서, 시계를 보았습니다. 겨우 20분이 지나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없고 계시도 없이, 허리만 쑤시는 상태로 이틀이 지났습니다.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기도에 대한 많은 견해들, 그리고 기도의 사람으로서의 나의 존재에 대한 생각들이 땅에 굴러 떨어졌습니다. 분명히 기도는 내가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일으키거나 존재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셨지만, 나는 하나님을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원할 때에 하나님으로 하여금 나에게 말씀하시게 만들 수 없었습니다. 나는 들어야 했으며, 그것은 내가 무엇을 언제 들어야 할지 알지 못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렇게 사흘 동안 산꼭대기에서 지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들리지 않았고, 모습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및 그 방법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 나의 정신적인 습관들과 온갖 분심들을 헤치고 듣는 것 ; 내가 듣고 싶지 않을 때에도 듣는 것-나의 몸이 쑤실 때, 시간적으로 좋지 못할 때,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려 하지 않을 때. 내가 깨달은 것들 중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 만일 내가 기도에 충실하다면, 만일 효과가 없을 것처럼 보일 때에도 기도한다면, 나는 결국 하나님이 현존하신다는 것에 주목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사막 교부들이 발견했으며 수백 년의 세월을 거쳐서 나에게 이야기해주는 교훈은 이것입니다 : 만일 그들이 그곳에 머문다면, 즉 마귀들의 공격을 받고 정신이 분심될 때에도 수실에 머물면서 계속 기도한다면, 결국 예수께서 그들의 마음과 정신 속에 들어오실 것이며, 그분의 구원하시는 은혜가 그들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시는 그분의 말씀을 들을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에 새 법을 기록하실 것입니다(램 31:33).

침묵할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하십시오

   독거와 침묵을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모두는 홀로 사막으로 들어가거나 산꼭대기로 올라가가는 부름을 받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또 침묵을 실천하기 위해서 그러한 행동들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침묵이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 침묵을 시작하려면 어느 정도의 훈련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침묵과 독거는 이글에서 탐구하려는 모든 기도 방법의 기초입니다. 그러한 기도 방법들을 실천하고 그로 인해 힘을 얻으려면 침묵 속에 머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독거를 실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루 중 자연스럽게 침묵할 수 있는 시간이 언제인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무척 바쁜 사람들에게도 홀로 있는 순간,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이러한 순간들을 무시하거나, 그 순간들을 채울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그 순간들을 감상하거나 음미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내면을 향하고 우리의 느낌들에 주의를 집중하는 데 이러한 순간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시간은 탁월한 잠재적 침묵 시간입니다. 비록 운전을 하는 데 집중해야 하지만, 그 시간은 우리가 홀로 침묵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보통 우리는 이 시간을 음악을 들으면서 보냅니다. 다음에 운전을 할 때에는 다른 일을 시도해 보십시오. 운전을 하는 동안 어떤 기계장치도 켜지 마십시오. 그 시간을 기도하는 데, 단지 고요히 지내는 데 사용하려 한다고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그리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십시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과 감정들을 지켜보십시오. 당신의 산만한 생각들에 주목하십시오. 당신의 정신 상태, 마음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당신은 평화롭습니까? 당신은 화가 나있습니까? 슬품니까? 당황하고 있습니까? 그날 당신은 하나님에 대해 생각했습니까? 목적지에 도착하면, 운전하는 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동행하셨음에 감사하십시오. 혹시 "좋은 경험"을 하지 못해도, 당신 자신을 꾸짖지 마십시오. 다음에 다시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하루 중 다른 때에도 이러한 훈련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이러한 질문을 시작하고 그 대답에 주목하게 되면, 내면생활에 대한 호기심이 배양됩니다. 당신은 자신의 존재 상태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의 샘에서 물을 마시려고 잔잔한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침묵은 원수가 아니라 환영받는 손님이 됩니다. 침묵과 사귀는 동안에,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한층 쉬워질 수 있는 기회에 주목하십시오.

침묵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십시오.

   당신은 이미 침묵을 즐기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홀로 지내는 고요한 시간을 좋아하며, 당신의 생각과 느낌들이 오로지 당신에게만 속해 있는 순간들을 즐기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즐거움은 침묵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라는 초대, 기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또 다른 기도 방법을 계발하라는 초대를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깊음으로의 초대를 기도를 향한 보다 큰 동경으로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을 떼어놓는 것 이전보다 더 쉽게 여겨집니다. 아니면, 기도를 위한 피정 광고에 관심을 기울이며, 거기에 참석할 시간을 할애합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부르심, 신적 현존으로 당신을 이끌어 들이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에게 주목하며, 그것들로 인해 감사하십시오.
   침묵이 자연스럽게 임하든지, 아니면 하나의 도전으로 임하든지 간에, 각 사람은 경청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거룩한 세계인 하나님 나라의 경이를 더욱 더 개방하시는 것을 허락할 수 있습니다.

그룹 침묵의 실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러한 언급-하나님의 사랑의 통치가 가장 중요한 것이 되는 사회라는 고대의 개념-은 공동체라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어떠합니까? 내가 참석하는 주일 학교, 성경공부, 또는 언약 그룹(covenant group)은 어떠합니까? 만일 기도하는 데 있어서 침묵과 독거가 그처럼 중요하다면, 이러한 그룹들은 어디에 적합합니까?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그룹 안에서 침묵을 실천할 기회를 원합니다. 예를 들면, 그룹 모임에 침묵 시간을 배정할 수 있습니다. 단체로 식사를 하는 동안에 침묵을 실천하기로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함께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침묵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대신에, 침묵하면서 여행하기로 언약할 수 있습니다.
   역설적인 것은, 사막 교부들이 침묵을 더욱 추구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생활하는 동굴 가까이에 도시들이 생겨났기 때문에, 어떤 수도사들은 자기의 수실 입구에 방책(防柵)을 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충고나 영적 지도를 받기 위해 그들을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들은 주로 두 가지 이유에서 그들을 찾아왔습니다.
   첫째, 사막 교부들의 영적인 능력이 구원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그들에게로 이끌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세상에 기도와 구원의 열매들을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이 사막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독거를 향하는 성향보다 중요했습니다.
   둘째, 사람들은 영적 여정에서 도움을 필요로 했습니다. 홀로 영적 여행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길"(Way)을 가는 사람들과 집단들은 당연히 서로 위로와 도움과 지원을 구합니다.
   침묵과 독거와 관련하여, 한 그룹은 여러 가지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함께 침묵하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비록 각각의 구성원들이 구두로 상호 작용하는 것은 거의, 또는 전혀 경험하지 못하지만, 오랫동안 집단적으로 기도해 온 사람들은 하나의 유대감과 지원 의식이 발달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2박3일의 수련을 1년에 2차례씩 가졌습니다. 우리는 침묵 가운데 있었습니다. 우리가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수련이 끝날 무렵이면 서로가 더욱 가깝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습니다. 단 한번 만이 아니라 수차례의 수련을 통하여 확인하였습니다. 우리가 침묵 속에 들어감에 따라서 한 분이신 하나님, 우리 모두 속에서, 우리 모두를 통하여,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사이에서 흐르시는 성령과 결합되기 때문에 이러한 친밀감이 형성됩니다.
   둘째, 하나의 그룹은 침묵의 경험을 나누고 되새길 수 있는 장소가 됩니다. 예를 들면, 어떤 그룹이 침묵 하면서 식사를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회원들이 그 경험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기도를 통해서 얻은 자신의 통찰들을 표현함에 따라서, 이러한 나눔의 시간은 풍성하고 유익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침묵 속에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의 기도 생활에서 발생하는 것을 분명히 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그룹은 영적 여행을 하는 우리를 지원하고 격려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건조한 시기에 직면하거나 길이 없어진 것처럼 보이거나,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신실한 여행자들의 존재가 중요합니다. 종종 어떤 사람의 말은 우리가 기도를 그만두지 못하게 해주기도 할 것입니다.
   나눔의 시간은 경청하고 반응하는 시간입니다. 회원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잘못을 고쳐주려 하거나 충고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선택한 기도 방법을 경험해본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글 뒷부분에서 그룹 과정에 대해서 보다 상세히 다루려 합니다. 사막의 지혜는 영성생활에 있어서 그룹의 가치를 확인해 줍니다 :

사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만일 세 명의 수도사들이 함께 살고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종일 침묵 속에 기도하고, 또 한 사람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에 대해 감사하며, 나머지 한 사람은 호의를 가지고 그 두 사람의 시중을 들고 있다면, 이 세 사람은 동일한 일을 행하고  있는 것처럼 서로 동등합니다." (Wisdom of the Deserts, 42-43)

   기도의 여정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거룩한 경청을 촉진하는 방법인 침묵과 독거가 여정의 핵심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도전하며 기쁨과 흥분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사막 교부들의 말은 세월을 가로질러 지금도 울려 퍼집니다 :

사부 롯이 사부 요셉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 "아버지여, 저는 제 능력에 따라서 저의 작은 규칙을 지키고 금식하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침묵 속에 관상합니다. 저는 제 능력에 따라서 제 마음의 생각들을 깨끗이 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제 무엇을 더 해야 합니까?" 사부 요셉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늘을 향해 두 손을 폈는데, 그의 손가락들은 마치 열 개의 등불 같았습니다. 그분은 "완전히 불로 변화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Wisdom of the Deserts,   50).

기도의 훈련

   독거와 침묵은 이 글에서 묘사하고 있는 대부분의 기도 방법의 기초입니다. 다음은 관상의 기초가 되는 이 두 가지 방법에 익숙해지도록 도와 줄 일반적인 조언과 지침입니다.

개인을 위한 지침

* 먼저 독거와 침묵 속에서 시간을 보내려는 당신의 의도를 확인하십시오. 이 글에 수록된    모든 기도는 의도적인 행동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을 보다 깊이 의식하고 경험    하기를 원한다는 긍정적인 진술을 우리 자신과 하나님께 해야 합니다.
* 당신이 독거와(또는) 침묵 속에 거하는 때가 언제인지 관찰 하십시오 : 산책할 때, 혼자     운전할 때, 집에 홀로 있을 때, 체육관에서 운동할 때.
* 그러한 때에 의식적으로 기도하려는 당신의 목적을 상기하십시오. 당신의 삶 속에서 예수    님의 현존에 주목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부탁하십시오. 당신의 영성생활에 대해    있을 수 있는 특수한 질문이나 염려를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 하나님의 대답을 들으십시오. 아무런 대답이 없어도 염려하지 말고, 침묵하면서 다시 하    나님을 계속 생각하십시오. 당신의 기도생활에 관해 당신이 원하는 것에 얼마 동안 주목    하십시오. 아마 당신은 자신이 더 많이 기도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지도 모릅    니다. 또는 당신의 삶이 여러모로 변화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 자신이     더 많은 침묵과 독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에 상응하여 행동하십시오. 피    정을 계속하고, 이 글에서 묘사한 몇 가지 다른 기도방법을 실천하면서 홀로 하나님과 함    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십시오.

그룹을 위한 지침

* 먼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침묵하겠다는 서약을 하십시오. 이 서약은 개회기도 때에 하    거나, 조직적인 활동의 일부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룹 전체가 회원들을 위한 독거와 침    묵 시간을 만드는 방법을 선택하거나, 지도자가 그 방법을 제안합니다. 그 다음에, 회원들    은 그대로 실천합니다. 예를 들어, 15분 동안 산책을 하거나 실내에서 침묵하면서 기도하    거나, 혼자서 다른 침묵 기도 방법을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회원들이 함께 모여 독거와 침묵의 경험에 대해 의견을 나눕니다. 회원들 모두가 발언하    되, 서로의 문제를 바로잡으려 하거나 다른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을 재해석하려 하지 않    습니다. 지도자는 충분한 독거의 경험이 있어야만 필요한 경우에 건설적인 반응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 회원들은 영적 여정을 지원하는 수단으로서 서로를 위해 기도합니다. 독거와 침묵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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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5 수도관상피정 위빠싸나 명상, 마음챙김...심리치료 박성현 교수 2008-11-11 4503
1304 수도관상피정 관상기도: 깊은 사귐의 기도: 권명수 2008-11-11 3910
1303 수도관상피정 예수기도 (The Jeuse Prayer) [1] 다니엘 2008-11-11 3253
1302 수도관상피정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다니엘 2008-11-11 2498
1301 정치건강취미 왜 비만이 무서운가? 닥터헬프 2008-11-05 2937
» 수도관상피정 독거와 침묵 (Solitude and Silence)<여정의 시작> Deniel 2008-11-02 2429
1299 수도관상피정 명상의 위대성과 위험성 file 박석 2008-11-02 3345
1298 수도관상피정 동방교회의 예수기도 카리톤 2008-11-02 2395
1297 수도관상피정 묵상(관상)의 전통 file 리차드포스트 2008-11-02 3530
1296 경포호수가에서 외로운 당신 [1] 피러한 2008-11-01 3050
1295 사회역사경제 하나님은 한국을 위한 간단한 해결책을 가지고 계십니다 대천덕 신부 2008-10-30 2616
1294 사회역사경제 성경으로 보는 한국경제의 방향 기상 2008-10-30 2787
1293 수도관상피정 [은성수도원]침묵 중에 나누는 진실한 대화 전강민 2008-10-27 4181
1292 수도관상피정 동방교회의 예수기도 발라모의 2008-10-26 2520
1291 수도관상피정 갈멜의 산길 file 토마스 머턴 2008-10-16 3054
1290 수도관상피정 기도, 묵상, 관상. file 토마스 머턴 2008-10-16 2535
1289 영성묵상훈련 참자아 거짓자아 file 토마스 머턴 2008-10-16 3543
1288 수도관상피정 마음이 흩어짐 토마스 머턴 2008-10-16 2434
1287 수도관상피정 마음의 기도 file 토마스 머턴 2008-10-16 2467
1286 경포호수가에서 당신마저 죽으면... 피러한 2008-10-09 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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