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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출처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02"
관상이란 하나님과 친밀한 삶"

장신대 유해룡 교수 인터뷰, "관상기도를 특별한 기도법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해다"

입력 : 2007년 05월 16일 (수) 15:52:55 / 최종편집 : 2007년 05월 17일 (목) 01:12:46 주재일 ( jeree )  

▲ 유해룡 교수는  "관상은 방법이 아니라 상태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뉴스앤조이 자료사진

관상기도를 묻는 기자에게 유 교수는 ‘관상기도는 없다’는 말에서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관상기도를 특별한 기도법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당부에서다. 그는 관상기도가 기도의 참된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특별한 기도를 한들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유 교수는 관상과 관상기도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상은 방법이 아니라 상태를 말한다. 성서뿐만 아니라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그리고 전 피조세계를 통해서 스스로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상적인 체험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삶은 형성한다. 그러기에 모든 기도는 본질적으로 관상적이라고 했다.
또 유 교수는 관상기도를 이교도적인 것으로 비판하는 이들의 문제제기 방식을 지적했다. 관상기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관상기도가 이교도적인 것이 아니냐고, 기존의 방법과 다른 기도 방식에 대해서만 비판하는데 왜 사람들이 관상기도에 관심을 갖는지, 그 원인부터 돌아봐야 바른 순서라고 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 교수가 말하는 관상이란 기도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과 빈틈없이 동행하는 삶이다. 관상적 체험을 전제하지 않는 기도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관상기도에서 뭔가 침체된 신앙생활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한다. 유 교수는 이러한 현상이 한국교회가 뭔가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했다. 유 교수가 말하는 관상기도와 한국교회의 문제를 들어보자. 유 교수와의 대담은 이광하 <뉴스앤조이> 편집장이 5월 11일 장신대 민들레영토에서 진행했다.
가톨릭과 비슷하다고 침묵기도 비판 받아
한국교회에 영성신학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유해룡 : 내가 공부하던 시절만 해도 영성신학을 전공한 학자가 개신교에서 활동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자연스럽게 활동하는 건 놀라운 변화다. 내가 무엇인가를 했다기보다는 개신교가 나 같은 사람이 말하는 영성신학을 필요로 했다고 본다.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공격을 많이 받았다. 강연회에 초청해놓고도 반발을 많이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우리 교단은 물론, 좀더 보수적인 교단에서도 강연을 한다. 나와는 성격이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곳에서도 곧잘 초청한다. 영성신학의 내용이 뭐냐를 따지기 전에 내가 주장하는 영성신학에 대한 필요가 절실한 현실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초기에 어떤 비판을 받았나.
유해룡 : 내가 가르친 기도운동에 관해서 공격했다. 기도의 내용이나 본질을 따진 게 아니라 형식이 기존 교회의 것과 다르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목회자들은 나에게 "로마 가톨릭에서 가져온 것을 개신교에 심으려 한다"고 반발했다. 뭐가 가톨릭적인 것이냐고 물었더니, 침묵기도를 강조하는 게 그렇다고 했다. 그들은 개신교적인 기도는 통성으로 부르짖는 기도라고 말했다. 부르짖는 기도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성서는 다른 곳에서 은밀한 곳에서 잠잠히 기도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성서는 기도의 형식을 말한 게 아닌데, 사람들은 편협한 생각을 갖고 형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거부반응 나타낸다.
개신교가 현대인들의 영적 갈급함에 대해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은 어떤 것이라고 보는가.
한국 개신교의 선교 초기에는 건물을 짓고 사람을 끌어 모아서 기초를 닦았다. 그런 흐름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들은 내면에 관심이 있기 시작했다. 당장 의식주 해결이 긴박했던 과거에는 예수 믿고 복 받으라는 말이 매우 적절했다. 그러나 지금 그런 메시지에 동의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다른 종교보다 중산층 비율이 높은 기독교인들은 전통적인 틀 안에서 신앙생활하는 것을 답답해 한다. 이들은 자기 내면을 성찰하면서 종교성을 회복하고 싶어 한다.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양적 부흥과 성장을 강조하니, 이들의 허전함과 갈급함이 채워지지 않는다.
보통 사회학자들은 현대인이 외향적이라고 말하지만, 헨리 나우웬은 내향적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쾌락에 빠지는 것은 내면의 갈급함에 대한 외적인 표현이다. 사람들이 내면의 문제를 자각했지만 답을 얻지 못해 자살 같은 것에서 해답을 얻으려 한다. 영성신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할 일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돕는 일이다.

▲ 침묵기도 훈련 중인 예수원 성도들. ⓒ 뉴스앤조이 자료사진

현대인의 내향성에 대해 정통적인 개신교가 적절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 원인이 있다면.
유해룡 : 도날드 블러쉬나 옥스퍼드 대학의 맥그라스 같은 학자들은 개혁신학의 한계성을 지적했다. 도날드 블러쉬는 그의 저서 경건의 위기(The Crisis of Piety)라는 책에서 현대 개신교가 점점 생명력을 상실해가고 있는데 그 주요한 이유는 경건생활의 결여에 있다고 한다. 개혁신학이 회심자를 만들어냈지만 회심한 사람이 이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안내하지는 못했다.
또 신앙인들이 세상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훈련도 제공하지 못했다. 개혁신학이 '이신칭의'를 근간으로 삼고 있지만 이신칭의에 대한 적합한 응답을 위하여 기꺼이 이신칭의를 내면화 하는 성화와 관상생활(contemplative life)이 선행되어야 한다. 칭의가 내면적인 성숙으로 이어져야 한다. 또 영성수련을 하면 공적주의라는 비판, 중세 가톨릭적이라는 비판을 받기 때문에 훈련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본훼퍼는 제자의 길(Cost of Discipleship)에서 성화하지 못한 칭의를 "값싼 은혜(cheap grace)"라고 비판했다. 본훼퍼의 값싼 은혜란 영적인 훈련을 하나의 '공적사상'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에 대한 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교회 장점이라면 자생적으로 성장했고 신앙을 토착화한 것인데, 신학 있는 교회를 세우는 데는 실패했고 본다.
15년간 영성수련을 지도했는데, 그동안의 성과라고 한다면.
유해룡 : 나의 뿌리가 장로교이기에 먼저 내가 배운 것과 장로교 전통과 접촉점을 찾는다. 될 수 있으면 새로운 것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관상기도가 바로 그런 것 중 하나다. 나는 가급적이면 관상기도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그런 말을 쓰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소위 영성수련을 지도하지만, 나는 관상기도를 훈련시킨 적은 없다.
관상이라는 말이 한국에서 와서 와전되었다. 관상은 방법이 아니라 상태를 말한다. 관상이란 하나님과 친밀한 삶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기도는 원칙적으로 모두 관상적이다. 기도는 마술 방망이 같은 수단이 아니다. 관상적인 기도가 아니면 그건 기도가 아니다. 그런데 왜 한국교회는 관상기도에 목말라 할까. 그건 우리가 하는 기도에 뭔가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지난 1999년 설문조사를 해서 논문을 쓴 적 있다. 서울과 일산 지역 교인 5~6만 명을 대상으로 기도 생활에 대해 물었다. 매일 시간을 떼어놓고 기도를 하느냐는 질문에 약 70%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기도생활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런데 그 이유가 내 예상과 달랐다. 나는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답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대답을 한 사람을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도가 습관적인 반복에 머무는 것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또 침묵기도를 한다는 사람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통성기도는 교회에서 하는 거다. 교인들이 교회에서만 살지 않는다. 소리라도 지르면 좋을 텐데. 사람들의 이러한 답답함을 해소하려는 움직임이 교계에서 일어나는 관상기도 훈련이라고 본다. 그것이 하나님과 만남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기도가 나타난 것도 아니다. 관상기도에 대한 관심은 답답한 기도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동안의 성과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적 있는데, 유익하고 좋았다는 반응이 나왔다. 힘들지만 새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의 기도 스타일도 변하고, 중요한 것은 졸업생 중 목회를 그런 자세로 펼치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점이다. 목회하는 방법이 아니라 목회자의 태도를 말하는 거다. 조금씩 새로운 물결이 일어나지 않나 싶다.

개혁주의 신학과 충돌 없어

▲ 유 교수는 "관상의 목적은 특별한 시기와 장소가 아니라 일상에서 하나님과 만남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자료사진

유해룡 : 시중에는 통합적으로 관상기도를 소개하고 가르치는 책이 별로 없다. 저마다 자기가 속한 전통에 입각해서 서술한다. 그게 틀린 건 아니지만, 스펙트럼이 작은 흠이 있다. 관상기도를 크게 보면 유념적 방법과 무념적 방법으로 나뉘고, 서방 전통과 동방 전통에 따라 또 다르다. 그래서 책으로 공부하는 건 대단히 어렵다고 본다.
근본적인 본질을 추구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관상의 목적은 특별한 시기와 장소가 아니라 일상에서 하나님과 만남을 추구한다. 그게 관상적 삶이다. 이런 이해를 가지고 책을 선택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어떤 책이 내게 도움이 되겠다는 식으로 고르라는 말이다.
전통적으로 관상은 하나님과 일치를 추구한다고 설명한다. 개신교 전통에서는 하나님과의 일치보다는 차별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을 일치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으로 본다. 이런 전통 속에서 관상기도를 위험하다고 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유해룡 : 중요한 질문이다. 관상에 대한 오해는 일치라는 말에 대한 오해에서 시작한다. 기독교 역사에서 어떤 신비주의자는 인정받았지만 어떤 신비주의자는 배척됐다. 오늘날 살아남은 신비주의자들의 특징을 보자.
일치를 해석하는 두 종류의 견해가 있다. 첫 번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본질적인 일치를 추구한다. 존재론적인 일치, 인간이 신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의지와 사람의 의지,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의 일치다. 이때는 인간은 인간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이다. 전자는 동양 전통이라면 우리는 의지와 의지의 일치를 추구한다. 관상 체험의 극치는 사랑이다. 그런데 관상기도에서 하나님과 일치를 추구한다고 하면 마치 자신이 도사가 된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죽었다 깨어나도 네 못된 성격은 그대로라고 충고한다. 속사람이 그 모양이라고 해도 하나님을 본받고 싶은 열망은 뜨거울 수 있다. 그게 바로 관상이다. 오히려 관상적인 삶을 추구 할수록 자신의 죄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프란체스코 같은 성자들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는 거다. 이러한 관상은 개혁주의 신학과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 관상을 비판하는 글을 보면, 관상에 대한 이해에서 뭔가 하나 빠져 있다. 오해하기로 작정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다.
장신대에서는 영성수련을 수업 시간에 배울 수 있지만, 일반 성도들의 경우는 배움의 기회가 부족하다. 목회자들이 성도들의 영성수련에 대한 열망을 해소해주지 못하고 있다.
유해룡 : 어떻게 보면 열망은 성도들이 더 강한 듯하다. 목회자들은 기능적인 일을 수행하며 사람들을 어떤 목적을 향해 끌고 가려고 한다. 그래서 갖가지 프로그램이나 행사가 곧 목회의 본질인 것처럼 매어 달리는 경우가 흔하다. 목회의 방향과 그 본질을 고려하지 않은 갖가지 프로그램이나 행사 등은 외향적인 성과는 기대할 수 있지만, 내적인 성숙에는 미치지 못하는 임시변통적인 행사로 끝나게 된다. 목회자 자신도 이런 행사에 매어달리다 보면 하나님을 향한 근본적인 갈망과 몸부림을 지속적으로 품기가 더 어렵다. 그렇지만 그런 부담이 덜한 교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열망을 더 강하게 품을 수 있다. 목회자들이 목회를 일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구도자적 태도로 목회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과 함께 하려는 목마름이 지닐 수 있다.

관상 없는 활동은 세상을 오염할 수 있어

▲ 유해룡 교수가 지은 <하나님 체험과 영성수련>. ⓒ뉴스앤조이

유해룡 : 토마스 머튼만 만나더라도 그런 생각은 불식된다. 오히려 관상적 삶을 살면, 사회 변혁에 대해 지나치게 래디컬할 수 있다. 관상적 전통이 강했던 중남미 예수회 신부들이 좌익 운동에 천착했다. 하나님이 민중해방운동을 하라고 명령했다고 본 거다. 토마스 머튼도 관상 생활을 하다가 인생 후반기에 종족과 민족 갈등, 종교 갈등, 핵 문제 등과 싸웠다. 머튼은 자신의 책 <관상과 활동>에서 "관상이 없는 활동은 자기 자신의 오염을 세상에 퍼트린다"고 말했다. 지난 세월 민주화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이 자기 시대가 오면 챙겨먹으려 한 것은, 관상 없이 활동해 나르시시즘에 빠졌기 때문일 수 있다.
수맥이 연결되어 있듯이 내면 깊이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난 체험은 나 밖에서 하나님을 만난 체험과 통한다. 이렇게 내 안과 밖에 통하면 다른 이의 아픔과 고난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관상을 정신적 유희를 즐기는 방법으로 이해할지 모르겠다. 관상은 내적인 안락함을 추구하는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안에서는 하나님의 명령과 맞닥뜨려야 하는 엄청난 투쟁이다. 관상이 뉴에이지가 지향하는 평안함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했다면, 그건 관상에 대한 몰이해다.
일반인들이 관상기도를 배울 수 있는 기초적인 안내나 지침 같은 게 필요하지 않을까.
유해룡 : 그런 글은 이미 썼지만 보는 사람만 본다. (웃음) 관상 수련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과 관심 있는 사람들이 심포지엄을 해도 좋다. 각자 자기 영역에서 이야기하기에 충돌하는 것 같지만 만나서 대화해보면 충분히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몇몇 목회자들은 대화의 장을 마련할 계획인 걸로 알고 있다.
영성신학이란 다양한 전통을 통합하면서도 본질과 근본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해룡 : 이상적인 이야기다. 관상이 본래 그런 걸 이상으로 삼는다. 예수회처럼 세상에서 수도 생활을 하는 수도회가 있는가 하면, 갈멜수도회처럼 폐쇄적인 공간에서 수도 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다. 둘 다 통합적이며 근본적인 본질을 추구한다.
사회생활을 하는 교인들이 관상수도회의 수도자들이 추구하는 방식의 관상기도를 배우려 할 때는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유해룡 : 그렇다. 서로 부름이 다르다. 그렇지만 부름이 다양하더라도 관상적 삶의 본질은 같다. 바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려는 갈망이다. 바쁜 일상을 사는 교인들도 한시적으로는 수도적 삶을 맛볼 수 있다. 자기 소명을 찾기 위해, 혹은 편협한 삶에서 새로운 세계로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 누구나 물러섬(retreat)이 필요하다. 내가 인도하는 프로그램에서도 물러섬을 강조한다. 학생들은 계속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완전 침묵하고 자기 자신 내면으로 깊게 들어가도록 이끈다. 그것만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추구할 것은 물러섬과 나섬이 조화를 이루는 삶이다.
관상기도의 다양한 전통 중에 현대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요한 흐름이 있다면
유해룡 : 기독교 역사에서 다양한 전통이 있었는데, 어떤 수련 전통은 그대로 살아서 지금도 영향을 주고 있다. 현대에는 헨리 나우웬 같은 이들이 영성 전통을 통합하고 대중화했다. 렉치오 디비나(거룩한 독서) 같은 수련법도 수도회 전통 가운데 현재 재발굴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또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성 수련이 있는데, 나도 채택하고 있다. 가톨릭에서 하고 있는 향심기도에도 개신교인들도 많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타 심리학적 영성 훈련도 많다. 애니어그램이 그러한 방법 중 하나다.
영성 수련은 지도자가 중요한데, 일반 목회자는 영적 지도자로 수련하고 현장에 나가지는 않는다. 영성 지도를 하는 사람으로서 필요한 교육과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유해룡 : 영성은 보통명사가 아니고 전문 영역이고 고유 명사다. 미국에는 영성지도자협회도 있다. 영성신학에서 거부하는 것은 상담 분야처럼 자격 기준을 둬서 자격증을 주는 것을 거부한다. 클리닉을 열어서 돈을 버는 일도 거부한다.
목회자들이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상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교육 받는 것은 필요하다. 신학교에 이러한 교육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데 난제는 시대가 복잡해지니까 가르쳐야 할 과목이 더 많아져, 새로 무슨 과목을 만드는 일이 어렵다.

그래서 나는 교양 수준으로 가르치기보다는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전문가를 어느 정도 양성하면 이후에는 평신도 지도자를 교육하는 일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저변을 확대하는 데 적어도 5년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런 과정을 운영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잘못 인도해 수련자가 고통 받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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