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하나님의 뜻에 일치함 ( Confirmity to the Will of God )
수도관상피정 은성............... 조회 수 2901 추천 수 0 2008.12.26 22:16:13| 출처 : |
|---|
http://www.koabbey.com/13666
하나님의 뜻에 일치함 ( Confirmity to the Will of God )
(기독교영성사전, 은성, PP. 700-701.)
사도 시대 이후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께 충성하는 생활을 하려고 노력해왔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함"이라는 표현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이다. 이러한 노력은 이 사람들이 살았던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작용하는 세계관의 특이성에 의해서 조정되었다. 그러한 공동체들 중 신플라톤주의적 사고방식을 사용한 공동체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완전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메시지도 완전하며(마 5:48), 물질에 대한 관심보다는 삶의 비물질적인 측면에 관심을 갖기를 촉구한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성욕을 성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금욕을. 부유함 보다는 자발적인 가난을 선호했다.
그러한 공동체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들을 배출했다. 예를 들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힙포의 어거스틴, 그리고 아레오파고 사람 디오니시우스"를 들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방식에서 행동하는 공동체들은 완전하라는 명령에는 몸과 영의 결합이 수반된다고 해석했다. 토머스 아퀴나스가 그러한 견해를 지닌 주요한 기독교 해석가였지만, 그가 활동한 중세 시대의 상황은 이전의 기독교가 지녔던 영적 관습들로부터의 분명한 결별을 배제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이러한 세계관의 변화로 인해 초래된 동기와 태도의 주요변화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개신교 종교개혁은 이 세상의 현실에 개입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는 성육신적인 견해를 복원했다. 따라서, 수도원적 영성에, 이 세상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일상적인세계에서 일하라는 소명 의식이 보완되었다. 칼빈과 그의 후계자들이 이 영성의 본보기적 인 인물들이다.
오늘날 철학이 그러한 주제를 향함으로써, 앎과 사랑, 자기-초월을 향한 인간적 글 충동의 요구에 충실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하나님의 뜻에 일치함의 영성을 양성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가톨릭교회에서 전형적으로 수도원적 이상을 모방한 영성을 강조하는 것과 개신교회에서 세상적인 개입에 기초를 둔 영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구분하는 전통적인 이분법이 다시 활력을 얻었다. 완전함이란 믿음에서 생겨나는 신지식에 대해 사랑으로 응답할 수 있게 해주는 생활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간주된다. 그러한 영성에서 배출된 인물이 도로시 데이 (Dorothy Day), 디트리히 본회퍼, 모리스 블론델 (Maurice Blondel), 그리고 떼제의 수도사들이다.
한 사람의 세계관과 종교적 전통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표현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삶을 일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된 요소가 있다. 따라서 기독교적 삶이 한 사람의 역사적인 상황으로 전락하지 않는다.
첫째 요소는 기도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개인 사이의 의사소통 방식으로 간주되어왔다. 성경에 의해 조성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향해 품으신 압도적인 사랑을 드러내주며, 그에 대한 응답을 이끌어낸다. 이 응답은 기도하는 사람의 특별한 역사적 관점의 영향을 받지만, 그러한 관점에서 생겨난 여러 가지 편견과 한계에서 그가 해방될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자유 안에서, 그 사람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의미를 결정한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둘째 요소는 이웃사랑이다. 이것은 하나님 사랑에 부수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대로 고유한 사랑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따라서 중세 시대의 영성은 환대를 강조했고, 종교개혁 영성은 사업에서의 공정한 거래를 강조했고, 현대 영성은 모든 집단들에 대한 조직적인 억압을 인식하게 하는 이웃 사랑의 개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개신교와 가톨릭교회와 정교회에서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이러한 인식에서 정치신학과 해방신학이 생겨났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여 살려는 모든 시도의 특징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여 생활하는데 요구되는 자기-초월에 의해 요구되는 내면성의 계발을 위한 훈련이다.
NANCY C. RHfG
하나님의 뜻에 일치함 ( Confirmity to the Will of God )
(기독교영성사전, 은성, PP. 700-701.)
사도 시대 이후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께 충성하는 생활을 하려고 노력해왔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함"이라는 표현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이다. 이러한 노력은 이 사람들이 살았던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작용하는 세계관의 특이성에 의해서 조정되었다. 그러한 공동체들 중 신플라톤주의적 사고방식을 사용한 공동체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완전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메시지도 완전하며(마 5:48), 물질에 대한 관심보다는 삶의 비물질적인 측면에 관심을 갖기를 촉구한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성욕을 성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금욕을. 부유함 보다는 자발적인 가난을 선호했다.
그러한 공동체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들을 배출했다. 예를 들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힙포의 어거스틴, 그리고 아레오파고 사람 디오니시우스"를 들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방식에서 행동하는 공동체들은 완전하라는 명령에는 몸과 영의 결합이 수반된다고 해석했다. 토머스 아퀴나스가 그러한 견해를 지닌 주요한 기독교 해석가였지만, 그가 활동한 중세 시대의 상황은 이전의 기독교가 지녔던 영적 관습들로부터의 분명한 결별을 배제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이러한 세계관의 변화로 인해 초래된 동기와 태도의 주요변화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개신교 종교개혁은 이 세상의 현실에 개입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는 성육신적인 견해를 복원했다. 따라서, 수도원적 영성에, 이 세상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일상적인세계에서 일하라는 소명 의식이 보완되었다. 칼빈과 그의 후계자들이 이 영성의 본보기적 인 인물들이다.
오늘날 철학이 그러한 주제를 향함으로써, 앎과 사랑, 자기-초월을 향한 인간적 글 충동의 요구에 충실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하나님의 뜻에 일치함의 영성을 양성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가톨릭교회에서 전형적으로 수도원적 이상을 모방한 영성을 강조하는 것과 개신교회에서 세상적인 개입에 기초를 둔 영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구분하는 전통적인 이분법이 다시 활력을 얻었다. 완전함이란 믿음에서 생겨나는 신지식에 대해 사랑으로 응답할 수 있게 해주는 생활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간주된다. 그러한 영성에서 배출된 인물이 도로시 데이 (Dorothy Day), 디트리히 본회퍼, 모리스 블론델 (Maurice Blondel), 그리고 떼제의 수도사들이다.
한 사람의 세계관과 종교적 전통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표현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삶을 일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된 요소가 있다. 따라서 기독교적 삶이 한 사람의 역사적인 상황으로 전락하지 않는다.
첫째 요소는 기도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개인 사이의 의사소통 방식으로 간주되어왔다. 성경에 의해 조성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향해 품으신 압도적인 사랑을 드러내주며, 그에 대한 응답을 이끌어낸다. 이 응답은 기도하는 사람의 특별한 역사적 관점의 영향을 받지만, 그러한 관점에서 생겨난 여러 가지 편견과 한계에서 그가 해방될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자유 안에서, 그 사람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의미를 결정한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둘째 요소는 이웃사랑이다. 이것은 하나님 사랑에 부수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대로 고유한 사랑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따라서 중세 시대의 영성은 환대를 강조했고, 종교개혁 영성은 사업에서의 공정한 거래를 강조했고, 현대 영성은 모든 집단들에 대한 조직적인 억압을 인식하게 하는 이웃 사랑의 개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개신교와 가톨릭교회와 정교회에서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이러한 인식에서 정치신학과 해방신학이 생겨났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여 살려는 모든 시도의 특징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여 생활하는데 요구되는 자기-초월에 의해 요구되는 내면성의 계발을 위한 훈련이다.
NANCY C. RHfG
|
|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
|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