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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사40:2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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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2014.7.20 열린교회(용인) http://www.yeolin.or.kr |
비상(8) 새 힘이 있어야 비상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40:27-31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연평균 자영업자 수는 565만 1000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 폐업 인구는 90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창업 1년 이내 폐업률 18.5%, 3년 이내 폐업률 46.9%로 나와 있습니다. 퇴직하여 자영업을 하다가 사기를 당한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퇴직자 사기의 1순위 대상자는 군인이고, 2위는 교사, 3위는 경찰 출신, 4위는 시·군 공무원이라고 합니다. 철저한 준비 없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은 비상하기 보다는 추락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MIT 스타트업 바이블(빌 올렛 지음)”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성공적인 창업으로 유명한 MIT 기업가정신센터장인 빌 올렛이 6년간 수많은 교수진과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 세계 각국의 뛰어난 창업팀과 함께 다양한 스타트업 과정을 진행하며 예비창업가들에게 꼭 필요한 '24단계 창업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MIT 출신이 세운 기업은 4만 개가 넘고, 이들 기업이 창출한 일자리는 300만 개, 총 매출은 2조 달러로 세계 11위 국가의 경제규모와 맞먹는다고 합니다. 하버드대도, 예일대도 이루지 못했던 놀라운 업적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MIT의 학생들을 창업 천재로 만든 놀라운 비법을 24단계 창업 프로그램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창업에 관한 탁월한 책이라고 하니까 창업하실 분들은 한 번 꼭 읽어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저자는 창업할 때 해야 할 고민을 6가지 주제로 제시합니다. 첫째, 고객은 누구인지. 둘째, 고객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셋째, 고객이 제품을 어떻게 구매하는지. 넷째, 수익 창출 전략은 어떻게 짤 것인지. 다섯째, 어떻게 제품을 기획하고 설계할 것인지. 여섯째, 사업 확장 전략을 어떻게 펼칠 것인지 등을 24단계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섯 가지 테마 중 세 가지가 고객에 관한 것입니다. 그만큼 창업에 성공하려면 고객에 초점을 맞추고 고객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추락하지 않고 비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우리가 비상하려면 문제가 발생할 때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집중해야 비상합니다.(27-28상)/패러다임 바꾸기
우리가 비상하려면 나타나는 현상만 보지 말고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2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야곱은 당시에는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오늘날은 바로 지금 성경을 읽고 있는 우리를 말합니다. 그들이 탄식하고 불평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망하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러니까 첫째가 “주께서 내게 길을 보여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문제를 해결할 길, 환란을 피할 길, 질병에서 치유될 길, 가난에서 해결될 길, 부채에서 해방될 길, 월세에서 탈출할 길, 매출이 오를 길을 보여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는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냥 내버려두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부당하게 사기를 당하고, 정당하게 일했는데 대가를 받지 못하고, 부정한 사람이 잘 살고, 간사한 사람이 승진하고, 정직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푸대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벨론 포로라는 문제에 집중하기 때문에 이런 불평과 원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문제만 보고 그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면 인생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 추락하고 실패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입에 원망과 불평을 달고 사는 사람들 결코 평생 행복하지 못합니다.
이들을 향해 이사야는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2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라고 말씀합니다. 이해 못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바벨론 포로라는 문제에 머물고 있는 시선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시간과 관계하여 하나님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시간을 창조하시고 시간을 주관하시며 애굽에서 해방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나, 다시 가나안에서 쫓겨나 바벨론 포로가 될 때나 하나님은 동일하게 존재하신다는 것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사업이 잘 될 때나 사업이 잘 되지 않을 때나,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나 퇴직했을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 때나 살아 계신 동일한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고 실패하고 추락할 때, 병들고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문제만 보고 원망과 불평불만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와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자신을 성찰하고 해결의 길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비상할 수 있는 길은 열리는 것입니다.
둘째는 땅 끝까지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공간적 개념에서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공간적으로 제약이 없으신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왔다고 해서 예루살렘에만 계시고 바벨론에는 계시지 않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고통의 현장에도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실패의 현장, 우리의 질병의 현장에도 살아 계셔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냥 내버려 두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무엇인가 역사 속에 개입하셔서 창조사역을 하시는데 인간들이 하나님을 모르니까 불평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그들을 만드시고 보살피시는 하나님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역사를 섭리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여호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어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면 어떤 경우라도 불평과 불만 원망에 노예가 되어 주저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용광로가 없이 어떻게 금이 나오겠습니까? 훌륭한 선수가 되려면 고난의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세상의 현상만 바라보는 패러다임에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 관점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질병을 치료받기 전에는 과학적 패러다임에 의해 살던 사람도 기적으로 질병을 치유받으면 신앙적 패러다임으로 바뀌어 버리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구두쇠라고 안 좋게 보던 아이도 아버지가 마지막 죽을 때 사랑의 편지를 쓰고 알지 못한 유산을 남겨 주면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입니다.
곤충학자 찰스 코우만이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고치구멍을 뚫고 나오는 광경을 오랫동안 관찰했답니다. 나비는 작은 고치구멍을 뚫고 나오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답니다. 그는 긴 시간 애를 쓰고 있는 나비가 안쓰러워 가위를 가져와 고치구멍을 조금 뚫어 주었답니다. 그런데 나비가 화려한 날개를 펼치면서 창공을 날아다니겠지 하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나비는 날개를 질질 끌며 바닥을 왔다갔다하다가 죽어버렸답니다. 나비는 작은 고치구멍을 빠져나오려 애쓰는 가운데 날개의 힘을 키우게 되어 있는데, 자신의 값싼 동정이 그 기회를 없애버렸다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월세방 사는 것도, 때로는 병드는 것도, 때로는 실패하는 것도, 때로는 사고는 당하는 것도, 때로는 말할 수 없는 고난에 처하는 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해 못할 어려운 일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왜 이런 고난과 어려움을 주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어려운 현실만 보고 불평불만만 늘어놓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가 알지 못하고 예측하지 못하는 수많은 일들을 일어납니다. 좋은 일도 있지만 내가 예측하지 못하고 내가 가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날 때 하나님에 대하여 회의를 가지고 하나님을 떠날 것이 아니라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지금 나에게 남아 있을 것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 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비상해야 합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께 눈을 돌려야 합니다. 제련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남겨 두신 것을 가지고 무엇하기를 원하는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가지고 비상해야 합니다.
심리학자인 크래머 박사는 이런 사고를 “자산에 바탕을 둔 사고(Asset엣세트, 자산-based thinking, ABT)”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의 책 [긍정으로 리드하라]에서 성공하는 리더들은 무엇을 보고, 말하고, 행동할 때 이런 사고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골치 아프고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당하면 보통 사람들은 그 순간 지금 나에게 없는 것, 즉 결핍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실패하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 기술이 없어서, 주변 사람의 도움이 없어서라는 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를 그는 “결핍에 바탕을 둔 사고”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결핍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결국 어려운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는 요원해진다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리더들은 그와 반대로 “자산에 바탕을 둔 사고(Asset엣세트, 자산-based thinking, ABT)”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을 본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서 무엇이 효과가 있는지, 어떤 장점이 있는지, 어떤 잠재력이 있는지 들여다본다는 것입니다. 현실을 회피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곳에서 찾을 수 있는 자산에 집중하는 자가 그 늪에 빠져 나와 비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강원도 태백 산골짜기에 예수원이라는 공동체를 세운 분은 아처 토레이입니다. 그의 아버지 루벤 토레이는 중국 선교사였습니다. 그가 1945년 중국 내지로 트럭을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답니다. 병원에 와 보니 중상이어서 오른팔을 잘라 내야 했답니다. 그런 절망적 고통의 현실에서도 토레이 선교님은 원망하지 않았답니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두 팔을 주셔서 잘 살았는데, 이제 한 팔을 가져가시니 감사합니다." 아나이스 닌은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사물을 본다."라고 했습니다. 일어난 사건보다 그 사건을 어떤 태도로 접근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 후 중국이 공산화됨으로 그는 미국으로 귀국했답니다. 그러다 1952년 한국에서 사역하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6.25 전쟁 이후 한국에서 팔다리를 잃은 수없는 사람을 목격한 것입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에게 팔이 없도록 하신 것이 한국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준비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답니다. 그는 팔이 없는 사람들의 괴로움과 불편함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었답니다. 그래서 토레이 선교님은 의수, 의족 만드는 기술을 익혀서 서울, 청주, 대구에 재활 센터를 세우고 팔다리가 없어진 군인들과 사람들에게 팔(의수)과 다리(의족)를 만들어 주었답니다. 살인자가 되어 도망한 모세가 계속 자신은 민족 지도자로 살 수 없다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거절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출4:2)”고 물었습니다. 다 잃은 것 같지만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손에 남아 있는 지팡이를 쓰겠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아합을 피해 도망가다 사르밧 과부를 만났습니다. 먹을 것을 달라고 합니다. 그 때 그 여인은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왕상17:12)” 얼마나 비참한 가난입니까? 그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왕상 17:14)” 그 여인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왕상17:16) 하였습니다. 우리가 비상하려면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그 문제의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지금 있는 자산으로 비상해야 합니다. 진주는 보석입니다. 그러나 진주를 품고 있는 조개는 그것은 아픔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 아픔을 통해 진주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놓여 있는 수많은 고통과 문제, 장애 안에는 그만큼, 아니면 그보다 더 큰 이익이나 기회가 숨어 있습니다. 고난을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고난은 겸손하게 하고 고난은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줍니다. 몸의 열은 괴로움을 주지만 건강을 위한 희망입니다.
비상하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문제에 집착하며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 속에서 갖은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면서도 비상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실낙원의 저자 밀턴은 1652년 실명하였습니다. 아내는 떠나고, 아들은 죽었습니다. 자신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뻔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핍에 바탕을 둔 사고를 하며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자산에 바탕을 둔 사고로 실명한 상태에서 서사시를 쓰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말을 받아쓸 딸이 있었습니다. 딸로 하여금 한 구절 한 구절 받아쓰게 하여 "실락원"을 1667년에 완성하였고, 이어서 1671년 복락원과 투기사 삼손을 합본으로 완성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윈스턴 처칠"도 학교 다닐 때에 낙제한 사람이었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아이디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문사 편집장에게 해고를 당했고, 디즈니랜드를 세우기 전에 여러 차례 파산을 경험했습니다. '전쟁과 평화'의 작가 레오 톨스토이는 대학생 시절에 성적 불량으로 퇴학을 당했고,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다섯 번이나 실패하였습니다. 링컨은 사업가로서 2번 실패했으며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전까지 주 선거 및 전국 선거에서 6번이나 낙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점은 결핍에 바탕을 둔 사고가 아니라 자산에 바탕을 둔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골리앗 앞에 모든 백성이 절망할 때 다윗이 사용한 것은 박격포가 아니라 물맷돌(삼상17:40)이었습니다. 장정만 5천명이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릴 때 예수님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넉넉히 먹이시고 12바구니를 거두었습니다. 잃을 것에 집착하면 절망이 되지만 남아 있는 것이 하나님 손에 붙들림 받으면 희망이 됩니다. 남아 있는 것이 희망의 씨앗입니다.
인생을 단편적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하님은 말씀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롬 8:17)" 아무리 못생긴 씨앗도 생명만 있다면 아름다움 꽃을 피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내게 있는 것 부끄럽거나 초라하게 보며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난하다고, 못생겼다고, 키가 작다고, 학벌 없다고, 나이 들었다고, 병들었다고, 인기 없다고, 능력 없다고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현실을 보며 문제에 집착하며 불평 불만하지 말고 여호와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남은 자산으로 비상해야 하겠습니다.
2. 우리가 비상하려면 부족한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 힘을 얻어 비상해야 합니다.(28하-29) /심리 한계 뛰어 넘기
사람이 비상하지 못하고 원망하며 불평불만에 사로잡혀 주저 않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힘이 없으니까 전쟁에서 패배하고 포로가 되고, 병원균을 이길 힘이 없으니까 질병에 지고, 사업에서 성공할 힘이 없으니까 사업에 실패하고 좌절합니다. 죄를 이길 힘이 없으니까 죄악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비상하지 못합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은 [힘]이라는 저서에서 세 가지 종류의 힘을 말했습니다. 첫째는 물리적인 힘입니다. 무력의 힘, 총의 힘, 칼의 힘, 무력의 힘입니다. 두 번째는 경제적인 힘입니다. 세 번째로, 영향력적인 힘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이 힘이요, 지혜가 힘이요, 양심과 도덕이 힘이요, 사랑의 힘 등입니다. 이런 힘으로 안되면 사람은 심리의 한계에 감옥에 들어가 버리는 것입니다. 의욕이 없고 불평만하는 것입니다. 할수 있다고 하면 60% 이룰 수 있는 사람도 할 수 있을 것같다고 하면 50%, 할 수 없다고 하면 30%도 못 이루는 것입니다. 실제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1년 동안 높이 뛰기 훈련을 시켰답니다. A 그룹은 목표치를 150cm, B 그룹은 180CM 목표치를 두고 1년 연습을 시켰는데 B 그룹이 결과적으로 15CM를 더 높이 뛰더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물리적 힘, 경제적인 힘, 정신적인 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러셀은 알지 못하는 영적인 힘이 있습니다. 영력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는 신비한 힘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힘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2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해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28절 다시 보세요. 영원하신 하나님 땅 끝까지 창조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피곤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입니다. 곤비하지 않으신 하나님입니다. 명철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지쳐서 피곤해지거나 힘이 빠지는 일이 없으시고 지혜가 끝이 없고 깊으신 분이십니다.
시간적으로 영원하시고 공간적으로 안 계신 곳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피곤하거나 곤비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처럼 피곤을 느끼며 쉬 지치는 분이 아니시다는 말씀입니다. 지혜가 무궁하신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모르는 무한한 지혜로 섭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들은 왜 포로로 잡혀 왔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로 그 과정을 통과해서 메시야적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당한 것을 짧은 지혜로 잘 알지 못합니다. 왜 회사가 망했는지? 왜 주식으로 고통을 당하는지? 왜 질병이 다가왔는지? 왜 사고가 닥쳤는지? 왜 부채로 날마다 고민해야 하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남편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삽니다. 그러나 고통 가운데도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몰라 원망하고 불평하고 범죄하여도 쉬 지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지쳐서 우리의 문제를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범죄하고 또 범죄하고 또 범죄합니까? 우리는 몇 차례만 당해도 쉬 지쳐서 외면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도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신다 해도 피곤해하시고 지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하나님은 피곤한 자 기운을 잃은 사람을 어떻게 하십니까? 다시 29절을 보십시오. 지친 사람들에게 힘을 부어 주시고, 약한 사람들에게는 기운을 북돋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자신의 이름을 넣어 읽어 보겠습니다.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힘을 주십니다.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피곤한 자를 짓뭉개고, 지친 자를 밀어내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험난한 세상에서 실패하고 지친 사람들에게 완전히 탈진하여 힘이 빠져 버린 사람들에게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면 새 힘을 얻는 것입니다. 영적 힘을 주십니다. 인간은 진정한 힘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생동감이 넘치고 지치지 않고 소망 가운데 새힘 얻어 비상할 수 있습니다. 기진해 있을 때 기력을 회복해 주십니다. 엘리야가 사역을 하다 지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며 새 힘을 주십니다. 요한이 밧모섬에서 힘을 잃고 지쳐 있을 때 다니엘을 지쳐 쓰러져 있을 때 하나님은 일어나라고 새 힘을 주었습니다. 가족도 외면한 38년 된 병자가 절망 가운데 쓰러져 있을 때 우리 예수님을 그를 찾아 가 새 힘을 주시고 치료시켜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범죄한 후 지쳐있을 때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의 부당취득하고 죽음을 피해 도망갈 때 우리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고 그들을 찾아가 위로해 주시고 새 힘을 주어 비상하게 하였습니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 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27세에 억만장자가 된 폴 마이어는 가정 형편으로 대학에 들어갔지만 3개월 만에 그만두었습니다. 그는 말을 더듬었습니다. 보험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입사 원서를 냈지만 무려 57번이나 거절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았답니다. 일어나고 일어났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인생에서 실패하는 사람의 90%는 진짜로 패배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만두었을 뿐이다."라고 합니다. 그가 비상하게 된 계기는 바로 어느날 우연히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막11:22-23)" 라는 말씀을 접하고 철저히 성경구절대로 살 것을 결심한 때부터였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는 자를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새 힘을 주어 비상하게 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라는 신비한 힘입니다. 믿고 경험하는 자만이 알 수 있는 오묘한 힘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 모든 죄로부터 담대하게 일어서는 새로운 힘입니다. 다윗은 이 힘으로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비상하였습니다. 모세는 이 힘으로 홍해를 가르고 비상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힘으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비상하였습니다.
우리고 해도 해도 안되는 부족한 내 능력으로 좌절하며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 힘을 얻어 비상해야 하겠습니다.
3. 우리가 비상하려면 환경을 바라보며 서두르지 말고 여호와를 앙망하여 새 힘을 얻어 비상하여야 하겠습니다.(30-31) /유효 기간이 없으신 하나님
3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쉽게 지치고 쓰러집니까? 왜 힘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하게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까? 왜 비상하지 못하고 뛰어가지 못하고 걸어가지 못하고 주저앉아 원망과 불평 속에 살아갑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 본문을 보면 여호와를 앙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고 쉽게 쓰러지고 쉽게 원망의 포로가 되고 쉽게 좌절하고 불평불만의 늪 속에 갇혀 버립니다.
앙망한다는 말은 "기다리다” “찾다” “바라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말은 원래 여러 가지 물건을 비틀어서 하나로 묶을 때 사용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기다리고, 소망하고, 바라보다"는 말은 몸을 비틀 만큼 힘겨운 것이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힘겹고 어렵다 해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드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면 어떻게 됩니까?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처럼 지치지 않는 창조적 새 힘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문자적으로 말하면 “힘을 바꾸어 주신다”는 뜻입니다. 낡은 건전지를 새 것으로 바꾸어 끼듯이 새 에너지를 공급해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지치지 않도록 재충전을 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을 앙망하는 대가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새 힘은 환경을 바라보고, 상황을 바라보고, 현상만 바라보면 얻지 못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지식도, 사람도, 돈도, 재능도, 환경도, 생명도 다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효기간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여호와를 앙망할 때 새 힘을 얻는 것입니다.
갱도가 무너져 갇혀 있다고 해도 전화선이 있고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이 있다면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가뭄으로 잎이 마른다 해도 깊은 뿌리가 시냇가에 박혀 있으면 때가 되면 무성한 나무가 되어 맛있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불씨가 남아 있으면 바람 불면 큰 불로 활활 타오르는 것입니다. 현실은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있다할 지라도 여호와를 앙망하는 신앙만 잃지 않고 끝까지 가지고 있다면 언젠가 독수리처럼 비상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새들의 왕 독수리일지라도 폭풍이 치고 폭우가 내리는데 비상하는 것은 아닙니다. 독수리가 높이 날아오르는 것은 독수리 자신의 힘도 중요하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상승기류(上昇氣流)입니다. 위로 올라가는 더운 공기를 탈 때 독수리는 힘들이지 않고 높을 창공을 날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환경을 만들어 주시고 여건을 만들어 주셔서 비상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돌아오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며 여호와께서 부어주시는 새 힘, 여호와께서 만들어 가시는 역사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썰물이 있으면 반드시 밀물의 때가 옵니다.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고 어둠이 깊어질수록 새벽이 가까이 왔다는 징조입니다. 하나님께서 비상할 수 있도록 상승기류를 만들어 줄 은총의 때가 있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며 그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변화가 없을 지라도 아침저녁으로 여호와를 앙망하는 것입니다. 모닝 모놀로그, 슬리핑 모놀로그를 여호와를 앙망하는 말을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1년째도, 5년째도, 10년째도, 60년째도, 69년째도 여호와를 앙망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는 나의 반석이시며 나의 요새시라
주는 나를 건지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는 나의 여호와 나의 구세주“
70년을 기다리며 소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뒤틀리는 고통이 따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38장 14절에는 "나의 눈이 쇠하도록 앙 망하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눈이 쇠할 정도로 그렇게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린다는 말씀입니다. 앙망하는 사람에게는 비상할 수 있는 새 힘을 주십니다. 프레임을 바꾸어 버리는 힘을 주십니다. 판세를 바꾸어 버리는 새 힘을 주십니다. 다윗은 17년 동안 하나님을 앙망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새 힘을 얻어 왕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40세에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앙망하기 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민족을 구원하려고 하다 결국 비상하는 것이 아니라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도 여호와를 앙망하고 기다지지 못하고 첩을 얻어 이스마엘을 낳음으로 비상하지 못하고 추락하는 경험을 해야 했습니다. 사울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을 앙망하지 못하고 자신의 방법으로 제사를 드리다가 비상하지 못하고 추락해 버렸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은 어떤 힘입니까?
독수리처럼 올라가는 힘입니다. 새 힘을 얻으면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며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합니다. 아무리 멀리 뛰어도 지치지 않는 힘입니다. 인생의 골짜기를 걸어도 산 정상에 올라가도, 한국에 있어도 미국에 있어도,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어떤 일을 어디에서 당해도 지치지 않는 힘입니다. 아무리 오래 걸어도 피곤하지 않는 힘입니다. 수많은 일을 만나며 90년 100년 살아도 피곤하지 않는 힘입니다. 신앙생활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소망이 넘칩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와 도움을 받는 삶이 이어집니다. 나는 약하지만 여호와의 힘으로 넉넉히 이기게 됩니다. 백지는 그것만으로는 찢어지기 쉬운 것입니다. 약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벽에 붙는다면 강해집니다. 새로운 힘이 생깁니다. 성령의 능력을 주십니다. 독수리가 날개쳐 높이 올라가면 공기가 다릅니다. 경관이 다릅니다. 지상에서 보는 경관과는 전혀 다릅니다. 소년 같은 바벨론, 장정 같은 바벨론도 지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앙망하고 나아가면 지치지 않고 결국 넘어지지 않습니다. 올라가는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달려가는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성취하는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원망하거나 불평 불만의 늪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현실이 다가온다 하여도 부정적이고 소극적이고 비관적이 되지 않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낙관적인 신앙인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확실하게 고백하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희가 나를 믿으면 내가 하는 일을 할 것이요, 또한 나보다 더 큰 것도 행하리라.』(요 14:12) 이 말씀을 믿고 나아갑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면 모세처럼 80살이 되어도 절망하지 않고 수많은 백성들을 이끌고 120살까지 힘차게 광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면 바울처럼 믿음으로 미래의 푯대를 향하여 끊임없이 올라갑니다(빌 3:14).
세계 역사상 교회 음악 작곡가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 '요한 세바스챤 바하'의 인생을 보십시오. 황무지같은 가정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그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어릴 때 돌아가셨습니다. 마리아와 결혼하였지만 일곱 자녀를 낳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시 결혼하여 11명의 아들과 9명의 딸을 두었지만 그 중 10명의 자녀가 어려서 죽었습니다. 그의 자녀 가운데는 정신박약아가 있었다고 합니다. 노년에 자신도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고 말았고 뇌일혈로 쓰러져 반신불수까지 되었습니다. 그는 처절한 가난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의 영혼을 완전히 사로잡을 만큼 웅장하고 장엄한 찬양과 경배와 감사의 노래들, 그야말로 불후의 명작들을 만들어내었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과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늘 말하기를 "모든 음악의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보내고 사람에게 즐거운 감정을 솟아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음악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다고 믿었고 음악을 그의 영광을 위해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 만민의 죄를 홀로 감당하시고 누구든지 못 박혀 돌아가신 구주만 믿으면 구원 얻게 된다는 것을 굳게 믿으며 그 황무지 같은 인생 속에서도 장엄하고 경건한 음악의 꽃을 피웠습니다. 그는 자신이 작곡한 칸타타나 오라토리오의 마지막 부분에 항상 S.D.G라는 글자를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의 첫 번째 글자들입니다. 그리고 오르간 연주만을 위한 작품들의 첫 부분에는 I.N.J 즉, '예수 이름으로'라고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신앙의 힘이 황무지에서도 장미꽃을 피게 하였습니다. 현대 음악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바하의 가문에서는 약 200년 동안에 걸쳐 저명한 음악가 50여명이 나왔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서도 비상하는 신앙생활을 하려며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첫째 우리가 비상하려면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집중해야 비상할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가 비상하려면 부족한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 힘을 얻어야 비상할 수 있습니다.
셋째, 우리가 비상하려면 환경을 바라보고 서두르지 말고 여호와를 앙망하여야 새 힘을 얻어 비상할 수 있습니다.
열린교회/열린교회/201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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