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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인격과 덕을 갖춘 사람이 됩시다.

고린도전 han............... 조회 수 941 추천 수 0 2015.01.27 08: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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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전10:23-31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성숙한 인격과 덕을 갖춘 사람이 됩시다.

본문: 고전 10: 23-31

영국에 어느 대학에서 1등, 2등 다투는 학생 둘이 있었습니다. 1등 하는 사람은 동양 사람이고, 2등 하는 사람은 영국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조금의 점수 차이로 동양 사람이 1등만 했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야, 너 어떻게 해서든지 1등 좀 해봐라』고 늘 얘기했습니다. 한 번은 늘 1등만 하던 친구가 며칠 동안 계속 학교에 안 나왔습니다. 그래서 2등 하던 영국 친구가 알아 봤더니 교통사고로 그 친구가 입원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소식을 들은 그의 친구들은 『야 잘됐다. 이번에는 네가 일등 하게 생겼구나』라고 좋아했습니다. 나중에 학기가 끝나니까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학교에 못 나왔던 그 학생이 또 1 등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에 그가 일어나서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내 경쟁자가 꽃다발을 가지고 와서 위문해 주었고 학교에서 공부한 것을 전부 필기해서 날마다 찾아와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랬었기 때문에 내가 병원에 누워 있었어도 나는 공부를 다 할 수가 있었고 또 1등이 되었다. 난 공부벌레가 되어서 성적은 좋았지만 인격적으로는 저 사람이 나보다 몇 배 나은 사람이다.』

그렇게 얘기할 때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2등 하던 친구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성숙한 인격과 덕을 갖춘 사람이 되자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겠습니다.

성경에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잠22:11)하였습니다.

마음 속의 죄악을 모두 내어버리고 깨끗하고, 정직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살려고 마음이 정결해지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은 아주 덕성스러운 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덕망 있는 말을 함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만왕의 왕되신 예수님께서 친구가 되어 주시고, 함께 해주십니다.

영국 성공회의 베버리지 주교가 임종을 맞이했을 때 그의 기억력은 매우 감퇴되어 가장 가까운 친척들까지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한 사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저를 아시겠습니까?』 『당신이 누구요?』 또 그의 아내가 물었습니다.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당신은 또 누구요.』 라고 대답할 뿐입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예수 그리스라고요?』 마치 그 이름이 그에게 강심제 역할이라도 한 것처럼 기운을 회복하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물론이지요. 나는 지난 40년간 그와 사귀어 왔답니다. 그분은 나의 유일한 희망이랍니다.』

미국의 유명한 복음전도자 무디 목사가 동료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저는 '인격의 실체'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냥 얼굴만 봐서는 도저히 모르겠거든요.도대체 인격의 본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무디 목사의 생각을 잘 알고 있던 동료는 반문했습니다. 『글쎄, 그것이 무엇인지 나도 모르겠소』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무디 목사가 말했습니다. 『제가 알기로 평소 사람의 실체는 잘 알 수가 없지요. 그 사람이 어둠 속에 있을 때 나타나는 것이 진짜 모습입니다』

한 인간이 참으로 보기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발견해내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한 잊을 수 없는 인격과 마주하는 셈이 됩니다.

『한 사람의 진면목은 함께 여행을 했을 때, 식사를 할 때, 도박판에 앉았을 때, 그리고 위급함이 나타났을 때이다.』라고 합니다. 보통 때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여행을 해 보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보입니다. 발바닥도 보이고 머리 꼭지도 보입니다. 위기 상황일 때, 그 사람의 진면목이 더욱 더 잘 보입니다. 그 때의 모습이 그의 평소 모습입니다.

얼마 전 뉴스에 유명한 여배우가 음주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돼 자신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는 얘기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즐겨 읽는 『탈무드』에는 사람을 평가하는 세 가지 기준이 나옵니다. 그 첫째는 키이소오(돈주머니), 둘째는 코오소오(술잔), 셋째는 카아소오(노여움)입니다.먼저 그 사람의 인격을 측정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돈』을 줘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그 돈을 어떻게 쓰고 처리하는가를 보고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돈 못지 않게 사람을 흔드는 게 있는데 그것이 『술』입니다.사람들이 술에 좌우되어 숱한 일들이 생기고 사고를 저지릅니다.술로 인해 인생을 망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그 후는 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말이 있습니다.그리고 『노여움』입니다. 분노가 어떤 경우에 쓰느냐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짜증이 심할 때 느긋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탈무드 이야기입니다. 존경받는 랍비인 가온 엘리야는 가끔 극기훈련을 통해 고행을 하였습니다. 개나리 보따리 하나를 메고 고행을 하러 움직일 때면 그를 알아 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한번은 가올 엘리야 랍비가 극기훈련을 마치고 고향 빌나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훈련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지도 못한데다 병까지 났습니다. 힘들게 걷던 그는 한 농부가 모는 마차를 얻어 탔습니다. 그런데 그 농부는 술에 취하여 꾸벅꾸벅 졸면서 마차를 몰았습니다. 위험하다고 여긴 가온 엘리야 랍비는 대신 마차를 몰고 농부를 자도록 했습니다. 동네에 들어오자 한 사람이 이를 보고 『메시야가 오신다』고 외쳤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메시야 어디 있냐고 묻자 그 사람은 『가온 엘리야 랍비가 마차를 몰 정도면 마차에 탄 분은 틀림없이 메시야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정도로 인정받는 인격이 부럽습니다.

한 때 저는 수석 수집에 열을 올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더 이상 수석을 즐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1994년도인가 지리산지역에 큰 물난리가 났을 때에 소위 수석을 한다는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어이없는 태도 때문입니다. 그 때 지리산에 갑작스런 물난리가 나서 사람들이 수십 명이 죽고 굉장한 난리가 났었습니다. 그런데 그 물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수석을 하는 사람들이 그 계곡으로 달려갔습니다. 수재민을 도우려고 간 게 아니라 큰물이 한번 지나가고 나면 그 물과 함께 계곡이 완전히 뒤집혀져서는 바닥에 있던 진기한 돌들이 바깥으로 나오기 때문에 그 돌을 줍기 위해서 그 물난리가 난 현장으로 앞다투어 달려갔던 겁니다. 지금 사람이 죽은 그 계곡에서 통곡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수재민, 유가족들 옆으로 지나가면서 『큰물이 지나간 것이 정말 잘됐다』는 듯이 기뻐하면서 진기한 돌을 이리저리 찾아다니는 수석꾼들의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탔습니다. 제가 그만 그 모습에 질려 버렸습니다. 아무리 돌을 찾아다니는 수석이 좋은 취미라고 해도 그런 무신경, 그런 무감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같이 즐기는 취미라면 당장 그만 두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뒤로는 아예 수석하던 취미를 끊어버렸습니다. 성도여러분, 그 때 그 돌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저 사람들 수재를 만난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우리 취미활동 아닙니까? 우리가 저 사람들에게 해를 입혔습니까? 방해를 합니까? 우리는 그저 우리끼리 취미만 즐길 뿐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가만히 따지고 보면 그 분들이 뭐 꼭 꼬집어 잘못을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무슨 법에 저촉되는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히거나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큰물이 지나가면 좋은 돌이 올라온다기에 서둘러 달려와서 돌을 주으러 다닌 것뿐이지 무슨 나쁘고 악한 일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이 그런 행동에 대해 편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분명히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법에 저촉되는 위법행위를 한 것도 아닌데 우리의 마음이 불편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보면 옳고 그름의 잣대만 가지고서는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습니다. 법으로 따져보면 불법사실이나 위법사실이 없습니다. 돈 많은 사람이 자기 재산을 더 늘리기 위해서 돈 되는 아파트를 스물 다섯 채를 샀습니다. 그건 하나도 법에 저촉되는 일이 아닙니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집을 샀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지난번 어느 총리서리는 자기 아들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미국시민권을 얻도록 결정을 했습니다. 거기에 무슨 뇌물을 쓴 것도 아니고, 불법을 동원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행동이 사회의 지탄을 받아서 결국은 총리로 인준 되는데에 실패를 했습니다. 왜 불법을 자행한 것도 아닌데 그런 지탄을 받아야 했습니까?

성도 여러분, 이런 일련의 사례들을 볼 때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꼭 법이나 옳고 그름의 잣대로만 판단할 수 없는 다른 원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행위가 정당하냐 아니냐, 불법이냐 적법이냐?하는 기준만 가지고는 따질 수 없는 또 다른 원리, 또 다른 기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아닌 또 하나의 기준을 따라 세상을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또 다른 또 하나의 기준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 23절에서 말하는 『모든 것』이라는 말은 『무슨 행동이든지 다』 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것』이란 말은 『정당한 것, 혹은 죄가 아닌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당한 일이라고 해서 다 유익한 것이 아니고, 죄가 아닌 행동이라고 해서 다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그런 말입니다. 이 성경이 쓰여질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는 크게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부류는 유대적인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서 어릴 때부터 우상숭배하는 것과 그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나 음식을 철저히 꺼리고 금하는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를 믿은 후에도 우상이나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 것은 아주 꺼림직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안에는 이런 유대적인 배경과는 전혀 관계없이 그저 예수를 믿을 뿐이지 그 고기가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긴지 아닌지 별 따지지 않고 먹는 고린도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당시 고린도 시장에는 우상에게 분향을 하고 난 뒤에 시장에 팔려지는 고기와 그냥 도축된 고기가 같이 섞여서 팔리고 있었는데 문제는 유대적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고린도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집에 초대되어 가서는 음식을 먹다가 고기가 나오니까 딱 숟가락을 놓고는 이렇게 따져 묻는 데에서 일어났습니다.

『당신, 이 고기 어디서 샀소?』 『시장에서 샀는데요.』 『 이 고기가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긴지 그냥 나온 고긴지 알아보고 샀습니까?』 『아니요. 그냥 단골로 가는 집에 가서 샀는데요.』그러자 유대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일어나면서 『이런 불결한 고기를 가지고 손님 대접을 한다고....집사님 당신 신앙이 있는 거요 없는 거요. 이런 것 하나 제대로 확인해보지도 않고서...』하고는 일어나서 가 버리는 일이 일어난 겁니다. 자 보세요. 유대적 배경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입장에서 정당한 질문을 했고, 정당한 행동을 했습니다. 자기 양심에 거리끼는 것에 대해서 정당한 질문과 정당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그 정당한 행동 때문에 그 음식을 대접한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좋은 마음으로 정성껏 대접을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못 먹을 음식을 남에게 대접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무안을 당하고 얼마나 그 마음에 상처를 안았겠습니까? 특별히 좋은 마음에 대접을 하고 나선 사람이 불신자라면 그 사람이 바로 그 일 때문에 앞으로 예수 믿는 사람이나 복음 앞에 마음이 문을 열 수 있겠습니까? 결국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안 먹으려고 하는 내 정당한 행동 때문에 한 사람의 소중한 영혼을 잃을 수도 있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28절입니다. 만일 고기를 내 놓는 의도가 시험을 하려고 하는 것이거나 또 분명히 유대적 배경을 가진 사람은 우상의 제물로 쓰여졌던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무시하는 마음으로 내 놓는 것이라면 그건 절대로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건 덕의 문제가 아니고 신앙의 문제요, 옳고 그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걸 우리 상황으로 바꾸면 아마 이런 것이 될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제대로 된 신자는 통일교 회사에서 나온 제품을 사먹지 않습니다. 일화에서 나온 맥콜...이나 삼정톤 같은 음료수는 마시지 않습니다. 그 회사가 통일교가 직접 운영하는 회사이고 그 제품의 수익금이 그대로 통일교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추석에 어떤 분이 인사하러 온다고 일화에서 나온 삼정톤 선물셋트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 선물을 받아들고는 『아니 이 사람 정신이 있는 거요 없는 거요. 지금 내가 교회 집사인데 이걸 우리 먹으라고 사오는거요. 우린 이런 것 안 먹어요. 그냥 가지고 가세요...』

이럴 때 그 선물을 가지고 온 사람의 마음이나 입장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화에서 나온 음료수를 먹고 안 먹고는 내 자유입니다. 먹는다고 해서 그게 죄가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먹는다고 해서 그게 내 신앙의 정조를 지키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이단집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안 하고 싶다는 것이 내 마음이고 내 자유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자꾸 이런 문제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만 생각합니다. 일화제품을 먹는 것은 죄다, 이단을 도와주는 것은 죄다. 그렇지만 사실 그건 성경에 죄라고 나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거짓말 하는 것은 명백한 죄입니다. 우상을 섬기고 그 앞에 절하는 것은 분명한 죄지요. 그런 것은 분명 옳고 그름의 문제로 생명처럼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일화 음료수를 마시는 것, 이런 것은 내가 안하고 싶어서 안하는 내 자유에 속한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실 수도 있고 안 마실 수도 있는데, 이단에게 좋은 일 하는 거니까 안하는게 좋겠다...라고 생각해서 안하는 것이지 옳고 그름을 따질 문제는 아닙니다. 또 한국사회에 가장 예민한 문제인 술 담배 문제.. 이것도 성경에서 죄다, 이걸 먹으면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이렇게 나와있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신앙생활의 유익을 위해서 술, 담배 이런 것은 안 하는 것이 더 낫겠다..라고 생각해서 안하는 자유에 속한 문제이지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할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자유함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입거나 시험에 빠져들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는데 있습니다. 일화음료수를 냉정하게 거절한 그 자유함 때문에 그 선물을 가지고 온 사람이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그 일로 인해서 무안을 당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에 대해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게 된다면 그 자유한 행동은 결코 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생각입니다. 술 담배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오늘 한국교회에는 술 담배문제에 대해서 자유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경에 술 마시는 것이 죄라고 말하지 않았다, 담배를 피는 것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 자체가 없다....』 그렇게 말하고 『또 다른 나라 신자들은 다 담배도 술도 다 하는데 왜 유독 우리나라교회만 그렇게 철저히 하지 말라고 강조하느냐? 나는 그리스도안에서 자유하다...』

그렇게 말하면서 술 담배를 즐기는 사람들까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아직까지 한국교회, 또는 한국사회 안에는 신자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것 때문에 시험에 들고 마음에 큰 상처를 안게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술 마시는 신자보다는 술 마시지 않는 신자를 더 신자로 인정하고 존경하는 분위기가 더 우세하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내 자유함만을 내세우다가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신자나 불신자 모두에게 마음에 비웃음과 조롱, 그리고 시험에 빠지도록 하는 것은 결코 성도가 취할 행동이 아닙니다. 고전 8장 9절을 봅시다. 그렇습니다. 내 자유함이 약한 형제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서 행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배려』라는 말로 줄일 수 있습니다.

 성도는 한 가지 행동이나 말을 할 때에 내 생각, 내 기준, 내 입장에서 정당하고 타당하면 아무 말이나 어떤 행동이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말을 듣거나 그 행동을 보는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하고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성도의 삶의 원리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불법이나 부당한 일로 인해서 형제들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시험에 빠지게 하는 일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하거나 일부러 해를 입히기 위해서 의도를 가지고 행동을 하는 일을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런 일이 있다면 하나님이 명백히 심판하고 판단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다른 형제들에게 시험에 들게 하거나 상처를 입히는 것은 바른 말을 하고 정당한 말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말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할 때 자주 자주 일어납니다. 생각해보세요. 『뚱뚱한 사람을 보고 뚱뚱하다, 살쪘다』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히 옳은 말이기는 하지만 직접 앞에 두고 할 말은 아닙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를 보고 『야, 너는 왜 그리 공부를 못하냐?』 가난한 사람을 보고 『당신 왜 그리 가난해?』 이런 말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앞에 두고 할 말은 아닌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 정당한 일을 할 때에도 나의 유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익이 되는지를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나아가서 생각할 뿐 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내 자유를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정당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이 되는지? 내가 자유롭게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덕을 세우는 것이 되는지를 잘 살펴서 나의 정당함보다는 다른 사람의 유익이 되는 쪽으로 내 행동과 말을 선택해서 해야 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는 성도에게 있는 자유를 남을 위해 사용하고,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일을 위해 때로 즐거이 그 자유를 제한할 수도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남에 대한 사려 깊은 배려야 말로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귀한 모범입니다.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잠17: 27)

심리학자 듀에인 슐츠는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성품에 관한 다

섯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1) 자신을 벗어난 자아의 확장입니다.

인격이 성숙할수록 나를 넘어서 남에 관심을 가지는 이타적인 사람이

었습니다.

2) 따뜻한 관계입니다.

가족과 친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감정을 더 잘 표현하는 사람

들이었습니다.

3) 정서적인 안정감입니다.

실패도 받아들이고 슬픔 속에서도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 정서적

인 안정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4) 일에 대한 책임감입니다.

일에 대한 책임감은 곧 인생의 의미와 지속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

니다.

5) 철학이 있는 인생입니다.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목적을 부여함으로 미래지향적인 인생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자신만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삶을 바른 일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가진 것을 인정받기보다는 하는 일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것이 진정한 성공자요, 축복입니다.

진정한 축복은 이 땅에서 성공과 기분 좋은 일만을 만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변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야곱의 변화를 통해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야곱이 에서를 피해 하란 땅으로 가는 길목,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야곱아, 내가 너를 축복해 주겠다. 너의 가고 오는 길을 지켜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하란 땅에 이릅니다. 그런데 하란 땅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축복받은 만남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외삼촌 라반이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런데 야곱이 사기꾼이라면 라반은 고등 사기꾼입니다. 우리 눈으로 볼 때는 축복받은 야곱이 어찌하여 갈등과 고통을 만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야곱의 사기꾼 기질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고등 사기꾼 라반을 붙이신 것입니다. 야곱이 라반과의 갈등을 통해서 자기 안에 있는 그 사기꾼 기질을 발견하고 그것을 고쳐갔을 것입니다. 야곱이 결정적으로 변화된 곳이 얍복강에서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천사와 씨름하게 됩니다. 천사에게 자기를 축복해 달라고 합니다. 사실 야곱은 이미 많은 물질적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축복해 달라고 합니다. 천사는 야곱이 구하는 그 축복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곳에서 야곱을 축복합니다. 다시는 네 이름을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고 불러라.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닮은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 바로 그것이 축복입니다.

야곱이 이 땅에 살면서 어려움을 만난 것, 그것은 저주가 아닙니다. 야곱이 이 땅에서 물질적으로 거부가 된 것, 그것은 진정한 축복이 아닙니다. 진정한 축복은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그는 많은 고난을 통해서 그렇게 변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났던 지난 해의 일들이 이렇게 우리를 변화시키는데 사용되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변치 않아야 하고 우리의 인격은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계속 변해야 합니다. 변치 않는 사랑과 변하는 인격, 그것이 진정한 축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과 성품을 본받고 배워야 합니다.

찬송가 286장, <통> 218장 『주 예수 내 맘에 오사』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 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날 붙들어 주시고 내 마음에 새힘을 주사 늘 기쁘게 합소서

2. 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내 소원 다 아시고 내 무거운 짐 맡아주사 맘 편하게 합소서

3. 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날 정결케 하시고 그 은혜로 내 맘에 채워 늘 충만케 합소서

4. 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내 앞길 인도하여 이 세상을 심판할 때에 날 흠없게 합소서

[후렴] 사랑의 주 사랑의 주 내 맘속에 찾아 오사 내 모든 죄 사하시고 내 상한맘 고치소서 아멘

얼마 전 이화여대 김 모 교수의 6,25피난길 이야기가 신문에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한강 인도교가 폭파되고 나자 이 김 교수도 다른 사람들처럼 한강변에 나와서 강을 건널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그는 작은 배 한 척을 만나서 배에 오를 수 있었는데 생사를 건 피난민들이 너무 많이 몰리는 바람에 배가 뜰 수가 없었습니다. 사공은 이래서는 안되고 누군가는 내려야 한다고 소리를 쳤지만 그 상황에서 그 누구도 그 배에서 내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공은 결국 배를 띄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배에 타고 있던 몸집이 아주 큰 신사가 조용히 내리더니 한강변 석양길로 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그 신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김교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 후 그 신문에서 글을 읽은 독자들이 그 한강변의 주인공이 누구냐?고 하는 질문이 빗발치듯 쏟아졌습니다. 김 교수는 독자들의 성화에 못이겨 그 주인공의 이름을 공개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평양신학교를 나와 목사가 되지 않고 방송작가의 길을 걸었던 주태익이라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성경을 통해서 배운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를 훌륭히 실천했던 것입니다. 모두가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현장에서 먼저 생명선에 자리를 잡은 자기의 권리를 기꺼이 내어놓은 사람, 마땅히 지킬 수 있고, 또 지켜야했던 자신의 자리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즐거이 내어놓을 수 있었던 진정한 자유인이었던 그 분의 이야기는 세상 모든 인류를 위해서 하늘의 보좌를 내어놓은 주님의 이야기와 너무 많이 닮지 않았습니까? 남에 대한 배려 때문에 즐거이 나의 자유함을 내어놓을 수 있는 이 성숙함이야말로 오늘 이기적인 사람들로 가득찬 이 사회 속에서 우리주님이 진짜 찾아보기 원하시는 진정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조선왕조 세종조에 병조판서와 예문과 대제학까지 역임하고 또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로서 많은 일화를 남긴 윤회라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그분이 어렸을 적의 일입니다. 오랜 여행에 의복은 낡아지고 여비마저 떨어져 버린 그는 어느 날 해가 저물자 이름 모를 어떤 주막집에 들어갔습니다. 우선 주인을 찾아 돈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하룻밤 재워 달라고 하니, 주인은 궁기가 주룩 흐르는 윤회를 아래위로 몇 번 훑어보더니 재워 줄 방이 없노라고 합니다. 하는 수 없이 주막집 처마 밑에서나마 하룻밤 자고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헛간의 벽에 기댄 채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주인집 아들 녀석으로 보이는 꼬마가 큼직한 구슬 하나를 들고 나와서 손바닥에 굴리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 보고 있는데 녀석은 실수하여 그만 구슬을 땅에 떨어뜨립니다. 구슬은 굴러 장독대 돌 사이로 들어갔고 녀석은 잃은 구슬을 찾느라고 한참 법석을 떨더니 마침내 포기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잠시 후 커다란 거위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그 구슬을 꿀꺽 삼키는 것이 아닌가. 잠시 후 주막 안방에서는 야단 법석이 났습니다. 엄청난 값어치가 나가는 흑진주를 도둑맞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참 수선을 떨던 주인 내외는 결국 구슬을 훔친 사람은 오늘 새로 나타난 윤회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마침내 주인 내외는 날이 새면 윤회를 관가에 고발한다면서 도망가지 못하게 아예 기둥에다 꽁꽁묶어 놓습니다. 이렇게 까닭 없이 봉변을 당한 윤회는 주인에게 부탁합니다. 자기 곁에 거위도 함께 붙들어매 달라고. 마음 한구석에 미안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는 주인은 선심 쓰는 셈 치고 그의 말을 들어 줍니다. 다음날, 관가로 자기를 끌고 가려고 채비를 차리는 주인을 보고 윤회는 우선 거위 똥을 한번 살펴보라고 합니다. 이상하게 여긴 주인이 그것을 살펴보니 그 속에 흑진주가 있는 것이 아닌가. 윤회는 그때야 그간의 사정을 모두 말해 주었습니다. 주인이 얼마나 미안하고 겸연쩍었겠는가. 이에 주인은 사과를 겸해서, 야 이 사람아 그런 줄 알았으면 어제 저녁에 말을 하지 왜 지금에야 그 이야기를 하는가라고 말합니다. 이에 윤회는 만약 그때 말을 했다면 당신들은 틀림없이 거위를 죽이지 않았겠는가, 내 잠깐 고생하면 거위를 살릴 수 있겠기에 일시 수모를 참았노라고 말했다는 고사가 전해 오고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덕을 세우는 것은 중요합니다.

성도여러분 모두가 성숙한 인격과 서로 덕을 세우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모든 인생에 죽음을 예비하시고 내게 영생을 주신 주님, 성숙한 인격과 덕을 갖춘 성도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땅을 살면서 눈에 보이는 소유나 명예에 나의 모든 것을 바치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을 바라보며 능력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게 하소서. 허영의 욕망에서 벗어나 진실한 내면을 갖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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