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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올 수 있겠니?"(Are You Ready to Come Now?)

히브리서 김영봉 목사............... 조회 수 885 추천 수 0 2015.01.27 23:51:45
.........
성경본문 : 히12:22-29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14 년 1 월 26 일 주일 설교
와싱톤한인교회 김영봉 목사
"지금 올 수 있겠니?"(Are You Ready to Come Now?)
히브리서(Hebrews) 12:22-29



한 주 전, 저는 수양관에서 기도와 묵상으로 한 주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송구영신 예배와 새해 맞이 기도회에서교우들이 제게 주신 기도 카드를 가지고 중보 기도를 드리고, 올 해의 사역을 위해 영적으로 준비하고 왔습니다. 이럴 때면 늘 그렇지만, 이번에도 주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을 경험했습니다.


수양관에 도착하자 마자 작은 예배실에 앉았습니다. 수양관이 텅 비어 있어서 마음 놓고 예배실을 쓸 수 있었습니다.
예배실에 앉아 눈을 감으니 그곳이 마치 주님의 품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객지에서 방황하다가 고향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죽어서 주님 품에 안기는 것이 이런 것이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평화와 안식을 즐기고 있는데, 문득 마음에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럼, 너, 지금 올 수 있겠니?" 저는 속으로 "오시라면 가야죠.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첫 시간에는 우연한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기도의 자리를 찾을 때마다 같은 질문과 같은 생각이 드는겁니다. 머지 않아 깨달음이 왔습니다. "아, 주님께서 나에게 이 기도를 시키시는구나! 뭔가 이유가 있겠지!" 그래서적극적으로 죽음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묵상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질문을 "너는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는 뜻으로 받았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별로 어렵지 않게답할 수 있었습니다. 3 년 전, 전립선암을 선고받고 수술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실감나게 죽음의 얼굴을 대면해보았습니다. 그 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만한 믿음을 제게 주셨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기도하는 중에 주님께서는 다른 대답을 원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 앞에서 해결한문제를 왜 다시 꺼내시겠습니까? 그게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얼마 후에 깨달음이 왔습니다. "너, 지금 올 수있겠니?"라는 질문은 "내 품에 안기는 것이 그곳에 사는 것보다 더 복되다고 믿느냐?"라는 뜻이었습니다. "네가 그곳에서최고의 행복을 누려도 내 품에 오는 것만 못하다는 사실을 믿느냐? 그런 사모함이 네게 있느냐?"라는 뜻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제게 없지만, 주님 품을 사모하는 마음은 부족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할
때 두려움 없이 주님께 가겠다는 믿음은 있는데, 지금 누리는 것을 다 두고 주님 품에 가고 싶을만큼 그 품을 사모하고
하나님 나라와 영생을 사모하지는 않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믿는 것과 그것을 사모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주님 품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를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제 믿음에 생긴 큰 결함이라는 사실을깨닫게 해 주셨습니다.왜 이런 결함이 생겼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 제가 젊은 시절부터 싸워 온 믿음의 싸움 떄문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깊어짐으로 인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도 믿어지고, 천국이 있다는 것도 믿어지고, 영생도믿어지는 것이 바른 순서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순서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죽어서 천국가기 위해서 혹은 영원히살고 싶은 욕심 때문에 예수를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순간 천당 가는 티켓을 손에 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티켓만 놓치지 않으면 이 땅에서 어떻게 살든, 죽고 나서 천국에 간다고 믿습니다.


저는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라면서 제가 만난 많은교인들의 목표는 대개 죽어서 천국 가는 것에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설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전도도그런 식으로 했습니다. 매일 주님과 동행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들은 드물어 보였습니다. 그것 때문에수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질적인 성숙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천국 가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서천국을 보는' 것으로 순서를 바꾸는 데 희망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 문제 의식을 가지고 신학을 공부했고, 신학교에서 가르칠 때도 그것이 저의 주된 관심사였으며, 목회 현장으로
옮겨오고 나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믿는 사람의 현세적인 책임에 대해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했던 수 많은
설교들은 주제와 표현은 달랐지만 한 가지 메시지를 향해 있었습니다.


죽고 나서 갈 천국만 생각하지 말라. 예수님은 죽고 나서 천국에 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지금 이곳에서 천국을
보라고 하셨고 천국을 살라고 하셨다. 그렇게 살다 죽으면 천국은 자동적으로 간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힘써라. 그것이 잘 믿는 것이다.


이 싸움으로 인해 저는 죽고 나서 가는 천국과 영생에 대해 마땅히 쏟아야 할 만큼의 관심을 쏟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천국을 사는 것에 대해 너무 강조하다 보니, 죽고 나서 가는 천국에 대해서는 소홀히 했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것에 대해서 너무 강조하다 보니,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성도들의 영광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두지 않았습니다. 관심이 부족하다 보니 그것에 대한 열정도, 사모함도, 간절함도 부족했습니다.


저는 주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천국과 영생을 사모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마지막 날 새벽에는 예배실에홀로 앉아 한 참 동안 장례식 찬송들을 골라 불렀습니다. "해보다 더 밝은 저천국 믿음만 가지고 가겠네", "고생과 수고가다 지난 후",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저 요단강 건너 편에 찬란하게 뵈는 집",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나아갑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누가 보았다면 아마 제정신이 아닌 줄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찬송들을 부르다 보니 두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하나는 "혹시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려고 준비시키시나?"라는
생각입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죽음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질문은 "왜, 이 찬송들을 장례식에만 부르고 있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장례식 찬송을 계속 부르다 보니
제 마음에 천국과 영생에 대한 열망과 사모함과 소망이 회복되는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평상시에도 장례식 찬송을 자주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혹시 그렇게 하더라도 기분 나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 '찬송' 그리고 '말씀'이 영적 생활의 3 박자입니다. 말씀으로는 히브리서를 택했습니다. 히브리서 11 장은
'믿음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만큼, 이 편지는 믿음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믿음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 중에 제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가며 읽었습니다.그러다가 오늘 읽은 본문에서 저는 눈이 활짝 뜨이는 경험을 했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믿는 사람들에게 '흔들리지않는 나라'에 대해 말합니다.


여러분은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 사람들이 땅에서 경고하는 사람을 거역하였을 때에,
그 벌을 피할 수 없었거든, 하물며 우리가 하늘로부터 경고하시는 분을 배척하면, 더욱 더 피할 길이 없지않겠습니까? 그 때에는 그의 음성이 땅을 뒤흔들었지만, 이번에는 그가 약속하시기를 "내가 한 번 더, 땅뿐만아니라 하늘까지도 흔들겠다" 하셨습니다. 이 '한 번 더'라는 말은 흔들리는 것들 곧 피조물들을 없애버리는 것을뜻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들이 남아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25-27 절)


25 절의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 사람들'은 모세의 말씀을 거역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고,
'땅에서 경고하는 사람'은 모세를 가리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당신을 드러내실 때 땅이뒤흔들렸습니다. 그것처럼, 마지막 날에는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뒤흔드실 것입니다. 그 때, 흔들려 없어질 것이 있고흔들리지 않고 남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흔들리는 것들'은 영원하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반면, '흔들리지 않는 것들'은 영원한 것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는
'흔들리는 것들' 안에서 '흔들리는 것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흔들리는 생명들'입니다.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흔들리지 않는 것들'에 눈을 뜨게 됩니다.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존재가 있고, 흔들리지 않는 나라가 있으며, 흔들리지 않는 생명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믿는데까지 자라가야 하며, 그것을 사모하고 갈망하는 데까지 커져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거기까지 가면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주님 품에 안기는 것을 사모하고 열망하게됩니다. 이 땅에서 그 어떤 행복을 누린다 해도 주님 품에 거하는 것만큼 행복하지는 않다는 것을 사실로 믿게 됩니다.
바울 사도가 빌립보 교인들에게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1:23)라고 고백했는데,그 고백이 우리에게도 진실이 됩니다. 이 믿음이 있으면 "너, 지금 올 수 있겠니?"라고 물으실 때, 기쁘게 자리를 털고일어나 손을 뻗을 수 있습니다.


이것과 함께 주목해 볼 대목이 있습니다. 그 앞에 나오는 22 절부터 24 절의 말씀입니다.그러나 여러분이 나아가서 이른 곳은 시온 산,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여러분은축하 행사에 모인 수많은 천사들과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집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완전하게 된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재자이신 예수와 그가 뿌리신 피 앞에 나아왔습니다. 그 피는 아벨의 피보다 더훌륭하게 말해 줍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믿는 사람들입니다. '시온 산'은 천국을 의미하는 비유입니다. '축하
행사'는 천국의 축제를 가리킵니다. '장자들의 집회'도 역시 천국을 가리킵니다. '의인의 영'은 천국에 사는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이 모든 비유들은 천국을 가리킵니다. 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상징합니다.무슨 뜻입니까? 믿는 사람들은 죽고 나서 가게 될 천국과 영생을 이미 이 땅에서 경험하고 살게 되어 있다는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두 가지의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첫째, '흔들리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을 뿐 아니라 그것들을 사모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둘째,
'흔들리지 않는 것들'이 이미 주어졌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믿음을 통해 그 맛을 보고 살아갈 수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두 믿음이 결합되어야 온전한 믿음이 됩니다.


불행하게도, 두 가지의 믿음이 자주 따로 놉니다. 과거만이 아니라 지금도, 많은 이들이 죽고 나서 가는 천국만을
생각합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라고, "저 하늘에는 슬픔이 없네. 거기는 기쁨만 있네"라고 찬송하면서, 죽고나서 갈 천국만을 바라봅니다. 그럼으로 인해 믿음으로 누리는 천국을 놓쳐 버립니다. 반면, 저같은 사람은 "내 모든 죄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찬송을 즐겨 부르며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도록 힘써 왔습니다.


그럼으로 인해 마침내 가게 될 천국의 영광을 주목하지 못합니다. 이번 기도의 여정을 통해 주님께서는 저에게 부족했던한쪽을 보완해 주셨습니다.

마지막 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기 전, 그동안 저에게 일어났던 이야기를 Facebook 에 간략하게 썼습니다.주님께서 "너, 지금 올 수 있겠니?"라고 물으시면 "예, 그것이 제게는 더 복된 일입니다"라고 답할 믿음을 품고 싶다고
썼습니다.얼마 후, 7 년 전에 유방암 수술을 하고 한국에 돌아간 후, 지금까지 전이된 암과 지루한 싸움을 하고 있는 집사님이제 글을 보고는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다셨습니다.


목사님, 전 항암치료 후 힘들 때마다 마음 속에 "이렇게 힘든데 나랑 가겠니?"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그럴 때면 늘
"주님, 지금은 아니예요"하고 많은 말로 투덜대곤 합니다. 언제쯤이면 순종하며 "네!"라고 할 수 있을까요?이 글을 읽고는 "아차!" 싶었습니다. 저의 말이 그 집사님과 같은 상황에 있는 분들에게는 의도하지 않은 다른메시지로 들리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그 집사님에게 답글을 써서 저의 뜻은 다른 데 있음을 전했습니다.


이세상에서 누리는 그 어떤 행복보다 주님 품에 거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믿음은 이 땅에서 우리가 마땅히 싸워야 할싸움을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천국과 영생에 대한 참된 믿음과 열망은 이 땅에서의 삶을 소홀히하거나 포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열심히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살게 만드는 것임을 말씀 드렸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빈정거리는 사람들이 자주 그럽니다. "천국이 있고 영생이 있다면 당신들은 왜 더 오래 살려고발버둥 치는 것입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믿는다는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이생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생명의 길이를
어떻게든 연장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은 맞지 않는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믿고 또한 그 나라의 영원한 행복을 진실로믿는다면, 때가 되었다 싶을 때 기쁘게 떠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의 길이를 다 채울때까지는 우리에게 주신 생명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한 번의 생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가장 귀한 선물 중 하나입니다. 생명을 포기하거나 소홀히 대하는 것은 귀한 선물을 주신 분에게 다시 집어 던지는 것과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일정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하마터면 교통 사고를 만날 뻔했습니다. 웨스트 버지니아의 시골길, 한적한 세
갈래길에서 맞은 편 언덕을 타고 나타난 차가 총알같은 속도로 제 앞에서 좌회전하여 스쳐 지나갔습니다. 존 덴버의 어느노래에서 웨스트 버지니아를 'almost heaven'이라고 불렀는데, 제가 heaven 에 almost 갈 뻔 했습니다.


얼떨떨한 정신으로 운전을 하고 오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내가 죽는다면?' 그러면 저자신으로서는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다 싶었습니다. 이미 기도원에서 그 문제를 정리하고 내려왔습니다. 주님 품에안기는 것이 저에게는 더 행복해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가족들에게 그리고 교회에게 줄충격과 아픔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니, 나 하나 좋다고 그것을 바랄 일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제서야,빌립보서에서 바울 사도가 한 말씀이 이해가 갑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더 나으나, 내가 육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할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확신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발전과 믿음의 기쁨을 더하기위하여 여러분 모두와 함께 머물러 있어야 할 것으로 압니다. (1:23-25)



'흔들리지 않는 것들'을 믿고 또한 그것을 믿음 안에서 맛보고 살아가면 크게 두 가지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첫째,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고 기뻐합니다. 바울 사도가 "항상 기뻐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살전55:16-17)라고 하셨는데, 그럴 수 있는 능력은 '흔들리지 않는 것들'을 믿고 누리는 데서 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결론도 동일합니다.그러므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으니, 감사를 드립시다. (28 절)


둘째, '흔들리지 않는 것들'을 믿고 또한 그것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은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갑니다. 억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것과 믿는 것이 우리를 그렇게 만듭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리하여,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그를 섬깁시다. (28 절)


영원한 것, 흔들리지 않는 것, 참된 것이 있음을 믿을 뿐 아니라 그것을 맛보고 누리고 나면, 무엇을 위해, 누구를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이제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그분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냐고 물으실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에 바로
이어지는 13 장에 서두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서로 사랑하기를 계속하십시오. 나그네 대접하기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어떤 이들은 나그네를 대접하다가,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대접하였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되, 여러분도 함께 갇혀 있는심정으로 생각하십시오. 여러분도 몸이 있는 사람이니, 학대받는 사람들을 생각해 주십시오. 모두 혼인을 귀하게여겨야 하고, 잠자리를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음행하는 자와 간음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돈을 사랑함이 없이 살아야 하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1-5 절)
여기서 저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방법에 대해 다섯 가지 예를 들어 말하고 있습니다.
1) 사랑하기를 계속하라.
2) 나그네를 대접하라.
3)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 돌보라.
4) 성적 순결을 지켜라.
5) 탐욕을 버리고 자족하라.


우리는 이 리스트를 한 없이 연장할 수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믿고 그 나라를 살게 되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생각과 말과 행실, 모든 면에서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만이아니라 가정과 직장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것들'에 대한 믿음이 깊고체험이 진할수록 그 변화는 더 깊어지고 또한 강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흔들리지 않는 나라'에 대한 믿음이없는 분들이 계십니까? 혹은 그 나라에 갈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십니까? 죽음의 문턱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행동할 것같습니까? 영생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도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습니다. 꼭 믿음이 있어야 죽음에 대한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들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증언하는대로 '흔들리지 않는 나라'가 과연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불행하게도, 죽고
나서 모두 그 나라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이런 말을 하기 싫습니다. 그러나 제가 믿고 싶은대로 믿을 수는 없는일이 아닙니까? 오늘 읽은 말씀의 마지막 구절은 빼어 버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태워 없애는 불이십니다. (29 절)그렇다고 빼어 낼 수도 없고 외면해서도 안 됩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에서 오셔서 그 나라를 우리에게 알려주신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나라에 준비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품이 구원이지만, 준비되어 있지 않은사람에게는 심판이요 재앙입니다.


그 나라에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 나라에 우리를 준비시키는 것은 오직 믿음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셔 들이고 그분의 보혈로써 죄 씻음을 받고 그분의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께서 "너, 지금 올 수
있겠니?"라고 물으실 때, "오, 주님, 이 때를 기다렸습니다"라고 말하며 응답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그 나라에 이르렀을때, 그 품에서 위로와 안식과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부디, 언제든지 주님의 부름에 준비된 믿음에 이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주님의 은혜로써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약속 받고 또한 그 나라에 준비된 분들도 많으십니다.
주님께서 "너, 지금 올 수 있겠니?"라고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과연, 주님 품에 안기는 것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사건이라는 믿음으로 그 초청에 기쁘게 응하겠습니까? 아니면, 마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그초청에 응하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우리는 이미 그 나라에 서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미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미
흔들리지 않는 나라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에 대한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모함이 더욱 커지도록 힘쓰십시다.그 믿음이 커지는만큼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항상 기뻐할 것이며,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그분의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영원하신 주님,
저희에게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보게 하시고
믿게 하시며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그 믿음을 더하소서.
모든 것을 가진 사람처럼
이 땅에서 살게 하시고
주님 부르실 때
아무 것도 없는 사람처럼
기쁘게 떠나게 하소서.
아멘.

<속회자료> 2014 년 1 월 26 일 주일 설교
"지금 올 수 있겠니?"(Are You Ready to Come Now?)
1. 찬송을 부르며 시작합니다. 473 장(통 545)
2. 한 사람이 대표로 기도합니다.
3. 히브리서 12 장과 13 장을 돌아가면서 교독합니다. 진정한 믿음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10 분)
4. 말씀의 요약 (웹싸이트에 있는 말씀 요약을 읽습니다. 10 분)
5. 말씀의 나눔 (한 질문에 대해 15 분 정도를 할애하십시오. 전체 나눔 시간이 90 분을 넘지 않게하십시오.)
1) 오늘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으면 한 가지만 나누어 주십시오.
2) 당신은 죽음에 대해 준비되어 있습니까? '흔들리지 않는 나라'에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3) 믿음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것들'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한 두 가지만 예를 들어 이야기해보십시오.
4) '흔들리지 않는 나라'에 대한 믿음과 체험이 당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습니까? 어떻게바뀌고 싶습니까?
6. 기도
1) 죽음에 대해 준비되고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2) 이 땅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7. 중보기도
돌아가면서 기도 제목을 나누십시오. 각자 다른 사람의 기도 제목을 적어 두고 매일 한 번씩 그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8. 찬송을 부르며 헌금을 드립니다. 479 장(통 290)
9.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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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26 마가복음 귀신을 몰아내는 예수님 막1:21-28  강승호 목사  2015-01-31 456
11625 요한복음 말고 이야기 요18:1-27  백소영 교수  2015-01-31 430
11624 창세기 웃으면서 기쁘고 즐겁게 삽시다. 창21:1-7  한태완 목사  2015-01-30 790
11623 시편 깊은 만남이 주는 축복 시20:1-4  이한규 목사  2015-01-30 763
11622 시편 진실한 자의 3대 고백 시19:12-14  이한규 목사  2015-01-30 456
11621 시편 하나님을 알려주는 2대 계시 시19:1-11  이한규 목사  2015-01-30 401
11620 로마서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롬5:12-17  이한규 목사  2015-01-30 842
11619 요나 사명을 회피하지 마십시오 욘1:1-10  이한규 목사  2015-01-30 638
11618 시편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십시오 시18:17-31  이한규 목사  2015-01-30 564
11617 시편 높은 데서 멀리 보십시오 시18:1-16  이한규 목사  2015-01-30 521
11616 시편 능력 있는 기도자가 되려면 시17:1-15  이한규 목사  2015-01-30 539
11615 시편 진정 행복한 사람은 시144:15  한태완 목사  2015-01-29 973
11614 말라기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절질 하였나이까? 말3:7-11  김경형 목사  2015-01-29 381
11613 시편 경청하는 자가 되자 시41:1-13  최장환 목사  2015-01-28 556
11612 시편 빠르게 하기보다 천천히 시38:1-22  최장환 목사  2015-01-28 418
11611 고린도전 네 성전을 세우라"(Build Your Temple) 고전3:16-20  김영봉 목사  2015-01-27 941
11610 고린도전 나무처럼"(Like a Tree) 고전3:1-9  김영봉 목사  2015-01-27 1016
11609 고린도전 그 나라의 사람이 사는 법(The Way of the Kingdom People) 고전1:18-25  김영봉 목사  2015-01-27 989
» 히브리서 지금 올 수 있겠니?"(Are You Ready to Come Now?) 히12:22-29  김영봉 목사  2015-01-27 885
11607 이사야 소리 없이 강한 헌신” (A Silent But Strong Dedication) 사42:1-4  김영봉 목사  2015-01-27 2692
11606 요한복음 첫 사랑의 기억"(A Memory of First Love) 요21:15-17  김영봉 목사  2015-01-27 2003
11605 마태복음 신실한 소수자"(Faithful Minority) 마2:1-12  김영봉 목사  2015-01-27 2183
11604 고린도전 영원을 꿈꾸는 사람 고전7:29-31  강승호 목사  2015-01-27 471
11603 고린도전 성숙한 인격과 덕을 갖춘 사람이 됩시다. 고전10:23-31  한태완 목사  2015-01-27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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