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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성전을 세우라"(Build Your Temple)

고린도전 김영봉 목사............... 조회 수 941 추천 수 0 2015.01.27 23:51:45
.........
성경본문 : 고전3:16-20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14 년 2 월 23 일 주일 설교
"네 성전을 세우라"(Build Your Temple)
고린도전서 3:16-20


1.
우리 교회가 나다니엘 선교 센터를 세워 선교 사역을 하고 있는 곳이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있는 까깔첸이라는 동네입니다. 그곳에서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이짜말(Izamal)이라는 도시가 나옵니다. 센터에 단기 선교를 가게 되면 이 도시를 꼭 돌아보게 합니다. 이짜말은 유카탄 반도에 형성된 가장 거대한 마야 문명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의 별명이 '황색 도시'(the City of Yellow)입니다. 도시의 거의 모든 건물이 연결되어 있고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도시 전체가 노란 색으로 칠해져 있는 이유는 도심에 세워진 거대한 성당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칸 수도원으로 세워진 이 성당의 정원(Atrium)은 바티칸 광장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넓습니다. 16 세기에 스페인 사람들이 이 도시를 점령했을 때 마야 제단을 허물고 그 돌을 사용하여 성당을 세웠습니다. 그 이후로 메리다라는 상업 도시가 개발되기 전까지 이짜말은 최고위직 사제가 머무는 도시가 되었고, 그 위상을 상징하기 위해 모든 건물을 금색으로 칠한 것입니다.


마야 제단을 허물고 그 위에 성당을 세웠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아픔과 힘 없는 마야인들의 아픔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사랑과 희생의 복음을 총과 칼과 돈의 힘으로 전파하려 했으니, 제대로 복음이 전해질 리가 있었겠습니까?
남미 전체가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만, 유카탄 반도에 사는 마야인들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믿는 천주교는 기독교 신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조상들이 믿던 마야 종교와 합쳐진 미신적 신앙이 되어 버렸습니다.


마야인들은 총과 칼 앞에서 겉으로는 기독교를 믿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조상들이 믿던 미신을 그대로 지킨 것입니다. 그들의 몸은 굴복시켰지만 마음은 얻지 못한 것입니다. 마음은 오직 사랑과 희생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하게 만들어 주는 대목입니다.


그 성당을 구경하면서 제 눈에 인상깊게 보인 것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다는 성당 정원을 돌아보는데, 정원 둘레에 세워진 직사각형의 벽 한쪽에 성경 구절이 하나 새겨져있습니다. 교회력에 따라 읽은 오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고전 3:17)
이 말씀이 영어와 스페인어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 그 글자판을 보고는 한 참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마야인들의 제단을 허물고 그 위에 성당을 지어 놓고는 이렇게 무서운 경고문을 써 붙인 것입니다. 이 경고문이 무게를 가지는 이유는 성경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참 대단한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그 경고문으로 인해 마음이 심히 상했습니다. 성경말씀을 잘 못 해석한 것이며, 말씀을 오용했을 뿐 아니라, 어찌보면 악용했다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우선, 이 지상에 세워진 어떤 건물도 '성전'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습니다. 건물로서의 성전은 예루살렘에 세워져 있었던 성전 외에는 다른 것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약속하신 곳은 시온 산에 세워진 성전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인해 그 성전마져 시효를 다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요 2:19)


여기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두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만, 실은 당신 자신을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속 뜻은 이런 것입니다. 나를 죽여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이 말씀에서 드러나듯,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십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성부 하나님을 직접 만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성전으로 이 땅에 오셨고 또한 성전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예루살렘 성전에 와야만 하나님을 만나던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만나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 진실을 입증이라도 하듯, 예루살렘 성전은 주후 70 년에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파괴되었습니다. 유대교인들은 '통곡의 벽'에 서서 그 성전이 다시 세워지기를 눈물로 기도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부르기를 삼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배당을 성전으로 여기는 순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셔서 이루신 모든 일을 되돌려 놓는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바울 사도가 성전에 대해 언급했을 때 건물을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공동체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성당 건물을 훼손하지 말라는 경고문으로 이 말씀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사용하도록 지어지고 성별된 건물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의 본뜻은 그것이 아닙니다.

지난 주에도 언급했습니다만, 이 편지의 서두에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의 분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건물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즉 공동체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16 절과 17 절 전체를 보면 그 사실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16-17 절)
여기서 '여러분'은 2 인칭 복수입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들의 모임이 성전이라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공동체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교회가 성전입니다. '파괴하다'라고 번역된 헬라어 '프테이로'(phtheiro)는 '파괴하다'(destroy)라는 뜻도 있지만 '해를 끼치다' (do harm)혹은 '어지럽히다'(deprave)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파괴한다"는 말은 "건물을 훼손한다"는 뜻이 아니라 "공동체를 허문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 즉 믿음의 공동체에 관하여 아주 중대한 진실을 발견합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였다면, 그 모임은 단순한 인간의 모임이 아니라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공동체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모였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였다면, 그곳에는 성령이 계시고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 (마 18:20)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이라면, 교회로 모일 때마다 주님의 임재를 인정하고 고백하고 기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의 임재를 인정하고 고백하고 그분이 일하실 자리를 내어 드릴 때, 그분은 당신의 숨겨진 임재를 드러내십니다. 바로 그 때 교회가 교회 될 수 있고, 교회로 모인사람들이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배로 모일 때 촛불을 밝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촛불을 보면서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재의 촛불'(light of presence)라고부릅니다. 예배가 끝나면 촛불을 끄고 애콜라이트(acolyte)으로 섬기는 분들이 불을 들고 나갑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가야 할 곳으로 먼저 가신다는 뜻입니다. 그러고 나면 예배자들이 따라 나갑니다. 이 촛불 예식은 아주 의미 심장한 것입니다. 예배 때만이 아니라, 속회로 모일 때, 성경공부로 모일 때, 혹은 가정 예배를 드릴 때, 촛불을 밝혀 두는 것은 주님의 임재를 기억하는 일에 아주 도움이 됩니다.


주님의 임재에 깨어 있도록 돕는,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빈 의자 하나를 모임 가운데 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성경책 하나를 펼쳐 놓는 것도 좋습니다. 모임에 참여한 이들에게 그 상징의 의미를 알리고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임의 분위기가 분명히 바뀌게 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믿음의 공동체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지를 알고 놀랍니다. 믿음의 공동체를 어지럽히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어지럽힐 것이며, 믿음의 공동체를 흔들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흔드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공동체를 이렇게 중요하게 여기실까요? 도대체 교회가 뭐길래 이렇게 심각한 경고를 주시는 것일까요? 말할 것도 없이, 교회는 당신의 아들의 피로 세운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는 이 땅에 두신 '주님의 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몸을 통해 지금도 구원의 사역을 지속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무리 초라해 보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를 눈동자처럼 아끼십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공동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하나님은 태초에 공동체를 창조하셨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존재로 지어졌습니다. 육(flesh)과 혼(mind)과 영(spirit)의 모든 차원에서 서로 사귀고 섬기며 살아야만 비로소 인간이 될 수 있고 인간답게 살 수 있습니다. 진정한 공동체를 경험하지 못하면 인간성이 파괴되고 병이 듭니다. 그 질병은 오직 진정한 공동체 안에서 전인적인 사귐을 나눌 때에만 치유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그러한 진정한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공동체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은 주님의 임재를 알아보고 인정하고 고백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 이르고 보니, 우리의 문제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알 것 같습니다. 지난 9 년 동안 우리 교회를 섬기며 교우들로부터 자주 들어 온 공통된 고민이 있습니다. 교회 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신통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고민이 그 하나이고, 교회에 나와 많은 사람을 알게 되었지만 정작 마음을 열고 대화할 친구를 찾기는 어렵다는 고민이 다른 하나입니다. 최근에도 몇 교우들로부터 같은 고민을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고 준비하면서 우리가 어느 면에서 부족한지를 알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일 때 우리 중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충분히 알지 못한 증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우리의 모임 안에 성령께서 활동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사람만 만나고 헤어진다면, 거룩한 변화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속회로 모일 때, 그 모임 안에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차라지 못하고 사람만 만나고 헤어진다면, 진정한 공동체를 경험할 수 없고 진정한 영적 친구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 각자가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


지난 주, 저는 '영에 속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 두 가지를 기억하자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 첫째는 우리가 이미 영에 속한 사람이 되었음을 매일 인정하고 고백하고 선언하자고 했습니다. 우리 자신의 눈에 영에 속한 흔적이 하나 없어도 주님께서 이미 그렇게 변화시켜 주셨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믿음 위에서 영에 속한 상태에 머물러 있도록 지속적으로 영적 생활을 하자고 했습니다.


교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함께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여기서도 주님께서는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그들 가운데 함께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면, 주님이 가장 먼저 그 자리에 와 계십니다.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그 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모셔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자꾸 잊습니다. 주님의 임재는 영적인 것이고, 우리는 육신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의도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우리 기준으로 보고 우리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는 습성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진리이고 내가 판단하는 것이 옳다는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하여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지 못합니다. 내 생각이 옳다는 착각 때문에 정작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오늘의 말씀 후반부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거든, 정말로 지혜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리석은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신다" 하였습니다. 또 기록하기를 "주님께서 지혜로운 자들의 생각을 헛된 것으로 아신다" 하였습니다. (18-20 절)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지 말라고 경고한 다음에 이렇게 적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는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지혜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기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판단과 지식을 더 믿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에 주님의말씀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이 어리석은 일처럼 보였습니다. 초라한 인간 군상들이 모여 기도하는곳에 거룩하신 주님이 함께 하실 리는 없다고 판단하고 함부로 행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로 모일 때마다 주님의 임재를 보는 사람이라면, 교회를 분열시키는말과 행동을 지속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의 공동체에서 주님의 임재를 거듭 경험하는 사람이계모와 동거하는 부도덕한 삶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주님이살아계신 것을 경험한 사람이 어떻게 신전에 찾아가 음행을 즐기겠습니까? 그들이 그렇게 말하고행동한 이유는 교회로 모이고 기도회로 모이고 속회로 모일 때 주님께서 그곳에 와 계심을부정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의 말대로, 그들은 자기 꾀에 빠진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교회로 모일 때 혹은 속회나 다른 모임을 가질때, 그 안에 계시는 주님의 임재를 여러분은 얼마나 분명히 믿고 있으며 얼마나 의식하십니까?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는 겉모습과는 상관 없이 주님의 임재 때문에 거룩한성전이라는 사실을 얼마나 마음 깊이 느끼고 있으며 또한 믿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이름으로 모였을 때, 주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말하고 행동합니까?


혹은, 여러분 중에 고린도교회 교인들처럼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겨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여러분 자신의 판단에 따라서 말하고 행동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교회는 다른 세상 모임과 다를 바없고, 속회는 교인들끼리 하는 계모임과 별로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혹시 있습니까?


오늘 바울 사도가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문제에 관한 한,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주님으로 영접할 때 그분이 내 안에 오셔서 사신다는 사실은 어리석어지지 않고는 믿을 수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자리에 주님께서 임재하신다는 사실은 세상 지식에어리석어지지 않고는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고 그렇게 행하고 보면, 정말 주님께서 내안에 계시고 믿음의 공동체 안에 계심을 확인하게 됩니다. 영적 진리는 머리로 납득하는 것이아니라 믿음으로써 확인할 대상입니다.


엊그제 아내에게서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자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저에게전해 주었습니다. 남편이 직장 일로 일 년동안 파견 나와 있는 동안에 그 아내께서 교회의 여러가지 일들을 기쁘게 섬기십니다. 저도 압니다만, 그 얼굴 빛에서 기쁨이 느껴집니다. 즐겁게 섬기는모습이 너무 감동되어 그 자매께서 그분에게 물어 보았답니다. "어쩌면 그렇게 즐겁게, 기쁘게,열심히 섬기세요?" 그랬더니 그분이 그러시더랍니다. "교회가 얼마나 귀한데요. 그 귀한 교회를
위해 섬기는 것이니, 기쁘지요."


저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교회를 그렇게 귀하게여기는 분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왜 교회가 그렇게 귀합니까? 그 안에 주님의임재가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몸으로 사용하셔서 세상을 구원을 위해일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흠도 많고 탈도 많지만 그 안에서 일하고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면 교회를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면 섬길 수 있으며, 사랑으로 섬기니힘들어도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속회도 귀합니다. 속회는 작은 교회입니다. 모일 때마다 그 안에서 보이지 않게역사하시는 성령의 임재를 인정한다면, 그 귀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속회로 모인 사람들모두가 주님께서 그 모임 중에 계심을 인정한다면 속회 분위기가 몰라보게 달라질 것입니다.


이제 속회 개편을 끝내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속회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기를바랍니다. 과거에 교회 활동을 통해 받은 상처 때문에 속회에 참여하기를 주저하시는 분들도이번 기회에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그 상처는 주님을 보지 못한 까닭에 생긴 것입니다. 그상처는 진정한 공동체를 경험함으로써만 치유될 수 있습니다.


영적인 갈망이 특별히 강한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은 속회를 통해서 그 갈망을 다충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속회에 참여한 이들의 영적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다 만족시킬 수없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밴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세 명에서 다섯 명 정도의 교우들이보다 더 친밀한 영적 교제를 나누는 것이 밴드입니다. 매일 주님과 동행하기를 힘쓰고, 그 삶을돌아보며 영성 일기를 쓰고, 그 일기를 서로 나누고 기도해 주는 영적 사귐을 나누는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가 가장 강력하게 활동하는 영역이 바로 밴드입니다. 모인 사람들 사이의 친밀도가높을수록 주님의 임재가 더 진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저는 우리 교회 안에 수 없이 많은 밴드가 형성되기를 소망합니다. 밴드의 수가 곧 영적열망을 가진 분들의 수와 비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영적 수준은 영적 열망을품고 매일 영적 생활에 진지하게 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냐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목회자들이 밴드로 묶여 영적 교제를 나누고 있고, 사모님들도 그렇게 하고있습니다. 속회에서 혹은 성경공부반에서 그런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흐름이 더 널리,더 깊이 퍼져 나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 모든 교우들이 누군가와 영적 친구가되어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삶을 나누는 변화가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앞에서 두 번 인용한 바울 사도의 말씀을 뒤집어 쓰고 싶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썼습니다.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이것은 믿음의 공동체를 훼손하는 사람에게 경고하기 위해서 부정적으로 표현한것입니다. 이것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됩니다.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세울 것입니다.


성전을 세우면, 그 성전 안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변화되고 세움받고 또한 쓰임 받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훼손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에서 만족할 것이아니라, 성전을 세우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임재를 벗어나지 않도록성전을 든든히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도 든든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성전을 세웁시다. 주님의 임재를 늘 경험하고 살도록성전을 세웁시다.
교회로 모이기를 힘쓰십시다. 교회로 모일 때마다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심을기억하십시다. 교회로 모일 때마다 주님께서 하실 일을 기대하고 기도하십시다. 교회를 귀하게여기고 사랑하십시다.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통해 주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속회로 모이기를 힘쓰십시다. 모일 때마다 주님의 임재를 인정하고 주님이 역사하시는속회가 되도록 노력하십시다. 그것을 경험하면 속회를 귀하게 여길 것이고, 속회를 위한 섬김이기쁠 것입니다.
성경공부반으로 혹은 기도모임으로 함께 모이기를 힘쓰십시다. 모일 때마다 그곳에주님이 계심을 기억하십시다. 주님께서 모임 안에서 활동하시도록 주권을 내어드리고 자리를내어 드리십시다. 진정한 영적 가족을 경험할 것이며, 성령께서 이루시는 변화를 목도할것입니다.


삶을 함께 나눌 영적 친구를 찾아 밴드를 형성하십시다.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겉으로는아닌 것 같지만 마음 속으로는 뭔가 진짜를 갈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있는그 영적 갈증이 다른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세 사람이면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성장을꿈꾸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삶을 나누십시오. 주님의 놀라운 터치를 경험하실 것입니다.


부디, 우리가 모일 때마다 보이지 않는 성전이 영광스럽게 세워지고 그로 인해 저와우리의 삶도 세워지는 은총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로 인해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주님의손에 의해 아름답게 빚어져 '영에 속한 사람'으로 자라가기를 소망합니다. 뿐만 아니라, 죽음의문턱까지 같이 갈만한 친구를 얻을 것이며, 우리 교회는 진정으로 '영에 속한 교회'로 변화될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생명의 강물이 우리 공동체를 통해 세상을 흘러나가게 될 것입니다.


아멘!
교회의 머리가 되신 주님,
저희의 눈을 밝혀 주시고
저희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소서.
교회로 모일 때
주님의 임재를 보게 하시고
주님의 역사를 보게 하소서.
속회로 모일 때
주님의 임재에 예민하게 하시고
주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소서.
영적 갈증을 숨기고
홀로 괴로와하지 않게 하소서.
마음을 열고
누군가의 영적 친구가 되게 하셔서
든든한 성전이 세워지게 하시고
늘 성전 안에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속회자료> 2014 년 2 월 23 일 주일 설교
"너의 성전을 세우라"(Build Your Temple)
1. 찬송을 부르며 시작합니다. 220 장(통 278)
2. 한 사람이 대표로 기도합니다.
3. 고린도전서 3 장을 읽습니다. 교회에 대해 바울 사도가 사용한 비유들을 살펴 보고 그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10 분)
4. 말씀의 요약 (웹싸이트에 있는 말씀 요약을 읽습니다. 10 분)
5. 말씀의 나눔 (한 질문에 대해 15 분 정도를 할애하십시오. 전체 나눔 시간이 90 분을넘지 않게 하십시오.)
1) 오늘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으면 한 가지만 나누어 주십시오.
2) 교회로 모일 때 당신은 어떤 기대를 가집니까? 성령의 임재와 활동에 대해 얼마나예민합니까?
3) 속회로 모일 때 당신은 얼마나 예민하게 그리고 얼마나 진실하게 주님의 임재를생각합니까? 앞으로 어떻게 달라져야 하겠습니까?
4) 밴드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세명 내지 다섯 명의 영적 친구를 찾아 밴드를형성하여 영적 생활을 함께 하지 않겠습니까?
6. 기도
1) 교회와 속회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주님의 임재에 예민해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2) 영적 친구를 찾아 밴드를 형성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7. 중보기도
돌아가면서 기도 제목을 나누십시오. 각자 다른 사람의 기도 제목을 적어 두고 매일 한번씩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8. 찬송을 부르며 헌금을 드립니다. 208 장(통 246)
9.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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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34 갈라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 갈4:4-7  정용섭 목사  2015-02-03 666
11633 마태복음 이혼하지 말라 마5:31-32  한태완 목사  2015-02-02 671
11632 사도행전 내게 있는 믿음 행3:1-10  강종수 목사  2015-02-01 632
11631 요한복음 무엇에 주리고 목마르십니까 요7:37-39  한태완 목사  2015-02-01 982
11630 사사기 엔학고레 삿15:15-19  강승호 목사  2015-02-01 738
11629 요한복음 장애를 통한 은혜 요9:1-3  김용목 목사  2015-01-31 570
11628 요나 어찌하여 역사를 이렇게 주관하십니까, 하나님 욘4:1-11  한완상 형제  2015-01-31 377
11627 에스라 70년 포로생활과 바사왕 고레스 스1:1-4  한인섭 목사  2015-01-31 1325
11626 마가복음 귀신을 몰아내는 예수님 막1:21-28  강승호 목사  2015-01-31 456
11625 요한복음 말고 이야기 요18:1-27  백소영 교수  2015-01-31 430
11624 창세기 웃으면서 기쁘고 즐겁게 삽시다. 창21:1-7  한태완 목사  2015-01-30 790
11623 시편 깊은 만남이 주는 축복 시20:1-4  이한규 목사  2015-01-30 763
11622 시편 진실한 자의 3대 고백 시19:12-14  이한규 목사  2015-01-30 456
11621 시편 하나님을 알려주는 2대 계시 시19:1-11  이한규 목사  2015-01-30 401
11620 로마서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롬5:12-17  이한규 목사  2015-01-30 842
11619 요나 사명을 회피하지 마십시오 욘1:1-10  이한규 목사  2015-01-30 638
11618 시편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십시오 시18:17-31  이한규 목사  2015-01-30 564
11617 시편 높은 데서 멀리 보십시오 시18:1-16  이한규 목사  2015-01-30 521
11616 시편 능력 있는 기도자가 되려면 시17:1-15  이한규 목사  2015-01-30 539
11615 시편 진정 행복한 사람은 시144:15  한태완 목사  2015-01-29 973
11614 말라기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절질 하였나이까? 말3:7-11  김경형 목사  2015-01-29 381
11613 시편 경청하는 자가 되자 시41:1-13  최장환 목사  2015-01-28 556
11612 시편 빠르게 하기보다 천천히 시38:1-22  최장환 목사  2015-01-28 418
» 고린도전 네 성전을 세우라"(Build Your Temple) 고전3:16-20  김영봉 목사  2015-01-27 941
11610 고린도전 나무처럼"(Like a Tree) 고전3:1-9  김영봉 목사  2015-01-27 1016
11609 고린도전 그 나라의 사람이 사는 법(The Way of the Kingdom People) 고전1:18-25  김영봉 목사  2015-01-27 989
11608 히브리서 지금 올 수 있겠니?"(Are You Ready to Come Now?) 히12:22-29  김영봉 목사  2015-01-27 885
11607 이사야 소리 없이 강한 헌신” (A Silent But Strong Dedication) 사42:1-4  김영봉 목사  2015-01-27 2692
11606 요한복음 첫 사랑의 기억"(A Memory of First Love) 요21:15-17  김영봉 목사  2015-01-27 2003
11605 마태복음 신실한 소수자"(Faithful Minority) 마2:1-12  김영봉 목사  2015-01-27 2183
11604 고린도전 영원을 꿈꾸는 사람 고전7:29-31  강승호 목사  2015-01-27 471
11603 고린도전 성숙한 인격과 덕을 갖춘 사람이 됩시다. 고전10:23-31  한태완 목사  2015-01-27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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