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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맛나게 하십시오

마태복음 이한규 목사............... 조회 수 591 추천 수 0 2015.02.03 23: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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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1-6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2014.12.1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504 ) 

세상을 살맛나게 하십시오 (마 1장 1-6절)


< 복음의 힘과 능력 >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가르치는 사람을 존경해서 스승의 그림자도 안 밟았습니다. 성경은 가르침에 수고하는 자를 누구보다 존경하라고 말합니다(딤전 5:17). 다니엘 12장 3절 말씀을 보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가르침의 중요성을 잘 말해줍니다.

 요새 우리나라 고등학교 3학년 학생 흡연율이 세계 1위라고 합니다. 그런 통계를 접할 때마다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느낍니다. 어려서부터 속셈, 컴퓨터, 피아노, 미술 등부터 먼저 가르치면 그 부모의 욕심이 결국 자녀를 고통에 빠트립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교육하면 잠시 방황은 있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와 인물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을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해서 가르치라고 했습니다(신 6:8-9). 적당히 신앙교육을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신앙교육을 하라는 말입니다.

 2000년 전 베들레헴 한 여관에 떨어진 복음의 씨는 처음에는 작고 초라해서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그 씨가 점점 자라서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유대와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마침내 로마를 점령했습니다. 그 복음이 유럽과 영국을 점령하고 대서양을 넘어 신대륙을 점령하고 태평양을 건너 마침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에 의해 복음이 전 세계로 전파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힘과 능력입니다.

 자녀에게 복음의 씨를 심어주면 후에 어떻게 자라 어떤 열매를 맺을지 잘 몰라도 분명한 것은 현재보다 미래가 좋아질 것이란 사실입니다. 복음은 갈수록 좋게 만드는 것입니다. 구약 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지만 신약 때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구체적이고 좋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지는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혹은 첫 단계에서 부족한 모습이 있어도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 메시야 계보가 교훈하는 삶 >

 모든 것에서 첫 인상이 중요한데 신약성경의 첫 페이지는 그리 화려하지 못합니다. 처음부터 지루한 족보가 나오면서 독자들의 흥미를 반감시킵니다. 그러나 이 족보 속에는 놀라운 교훈이 많이 담겨있습니다. 신학교 들어가 말씀을 처음으로 깊이 연구하면서 지루하게 생각되던 족보에서 ‘복음의 진수’를 발견하고 나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계보가 교훈하고 도전하는 삶은 무엇입니까?

1. 믿음을 계승시키는 삶

 신약 성경이 예수님의 족보에서 시작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위한 복음인데 유대인들은 족보를 생명처럼 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헬라어 ‘그리스도’란 말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으로 히브리어 ‘메시야’란 말과 동의어입니다. 마태는 복음서를 쓰면서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란 말부터 함으로 메시야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온다는 유대인들의 믿음을 첫 장 첫 절에서 충족시켰습니다. 그리고 바로 상세한 족보를 나열합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예수님의 계보는 이스라엘의 조상이자 언약의 조상인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여러 아들 중 오직 이삭만 언급된 것은 육적인 장자와 영적인 장자는 다르다는 뜻입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도 장자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야곱의 열두 아들을 언급할 때도 ‘장자인 르우벤과 그의 형제들’이라고 언급하지 않고 ‘4남인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것은 ‘육적인 신분’보다 ‘하나님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선택해 복된 가문의 창시자를 만듭니까? 대개 보면 헌신하는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을 후대에 잘 전수하는 자를 선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후대에게 믿음을 계승시키는 신앙교육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는 신앙교육을 생명교육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교회학교 교사직을 자기 사업보다 더 중시하면서도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대통령이 장관이 되어달라고 하자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즉 아무리 바빠도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주일에는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해달라는 조건이었습니다. 가정교육과 신앙교육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란 뜻입니다.

 130년 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뿌린 작은 복음의 씨는 사람들에게 신사고를 주어 가난과 우매에서 벗어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술과 노름으로 패가망신한 가정들을 계몽하고 변화시켜 가정과 사회를 안정시켰고 여성들의 의식을 깨우쳐 여성의 중요성을 일깨웠고 절약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또한 천민들도 사람대접을 하고 동일한 교육 기회를 주면서 대대로 이어져온 가문의 불행을 끊고 반전의 역사를 꿈꿀 수 있게 했습니다.

 복음은 세상과 인생을 변화시키는 최대 원천입니다. 그래서 후대에 믿음을 계승시키는 신앙교육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 철부지처럼 보이고 큰 인물이 될 것 같지 않지만 믿음과 기도로 키우면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거룩한 비전을 심어주면 아이들은 반드시 큰 인물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2. 과거를 용납하는 삶

 예수님의 족보에는 족보에 잘 넣지 않는 여자가 네 명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 네 여인 중 룻을 제외한 나머지 여인들이 다 불륜을 저질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세리를 친일파처럼 경멸했고 창녀는 세리보다 더 경멸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에는 라합이란 이방인 창녀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다말은 유다의 장자인 엘의 아내였으나 엘이 죽자 창녀로 변장해 시아버지인 유다를 유혹해 득남한 집요한 여인입니다(창 38:6).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도 남편이 전장에 나갔을 때 다윗과 정을 통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여인들이 기록된 것은 예수님의 족보가 진짜라는 것과 복음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메시야 족보에 이런 죄인들이 있다면 대개는 슬쩍 빼거나 최대한 미화시키려고 하겠지만 마태는 그들의 이름을 당당히 집어넣었습니다. 그처럼 복음은 창녀도 용납하고 어떤 과거도 용납하는 위대한 것입니다. 살면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자꾸 과거를 들추지 마십시오. 지금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과거의 아픈 기억과 상처도 복음 안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과거에 큰 상처와 피해를 입혔던 가해자도 용서하십시오.

 남을 너무 쉽게 판단하지도 마십시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밝혀집니다. 남의 죄와 허물을 지적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과제는 자신의 죄와 허물을 성찰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편견을 깨고 반대편 사람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쁜 사람들과 친구로 잘 지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꾸 나쁜 말을 전파하고 나쁜 영향을 끼치는 친구는 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멀리 해도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다 허물과 약점이 있고 자기가 싫은 행동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용납하는 넓은 마음을 훈련하십시오. 그 훈련을 잘하면 축복의 지경이 넓혀지는 은혜가 따릅니다. 사랑은 좋은 점이 있기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싫은 점이 있어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조건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기에 싫은 점과 부족한 점을 덮어주고 더 나아가 보충해주려고 해야 합니다.

 그처럼 타인 용납도 잘해야 하지만 자기 용납도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음 안에서 용납해주신 자신을 자신도 용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상처와 불행을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복음 안에서는 과거의 상처가 오히려 희망의 증표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절망과 두려움에 젖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찾아와 몸의 상처를 보여주셨을 때 제자들의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상처는 패배의 표시가 아니라 희망의 증표였습니다.

 상처를 희망의 증표로 만들어 가십시오. 예수님의 상처를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며 상처 때문에 절망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선한 마음과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도 주님의 상처를 바라보며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십시오. 인생은 선택입니다. 절망보다 희망을 선택하고 슬픔보다 기쁨을 선택함으로 복음 안에서 ‘과거의 상처’를 ‘승리의 증표’로 바꿔내는 영혼의 연금술사들이 되면 상처는 어느새 상급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3. 차별을 철폐하는 삶

 복음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남녀 차별이 아주 심했습니다. 남자들은 기도할 때마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문서나 족보에는 여자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에 4명의 여자 이름이 기록된 것은 복음 안에서는 남녀 차별이 없음을 잘 보여줍니다.

 남녀차별이 심했던 우리나라 개화기에 여성들의 숨통을 열어준 것도 복음이었습니다. 지금도 복음이 없는 나라들은 대개 여자들이 구속되어 삽니다. 심지어는 천으로 얼굴을 가리게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여성을 비롯해 모든 속박 당한 사람의 지위를 높여주었습니다. 지금 잘사는 나라들을 보면 대부분 여성들을 높여주는 나라입니다. 가정에서도 문제가 있는 가정을 보면 대개 아내들이 무시당합니다. 가정에 온기를 주는 아내를 존중할 때 아내는 지혜롭고 책임감 있는 아내가 되면서 그 가정은 더욱 복 받는 가정이 됩니다.

 복된 삶을 살려면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없는 사람’도 존중해주십시오. 요즘은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을 오히려 무섭게 비난하고 무시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없는 사람’도 존중해주어야 하듯이 ‘있는 사람’도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있게 된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 또한 선대의 땀으로 후대가 잘살게 된 것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있는 사람 중에도 좋은 일에 자기 소유를 잘 쓰고 잘 나눌 줄 아는 사람도 많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아쉽다면 그것 때문에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더욱 노력해서 당대와 후대의 길을 열려고 노력하십시오. 그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가진 것이 있게 되면 특권의식을 버리려고 의식적으로 힘쓰십시오. 죽을 때는 다 똑같이 무소유가 된다는 사실을 일찍 깨닫고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남을 무시하면 언젠가는 자신이 무시 받는 비참한 때가 반드시 오지만 남을 존중하면 언젠가는 자신이 존중받는 위치에 반드시 올라서게 됩니다.

 항상 겸손하게 남의 삶과 모습과 존재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주십시오. 예수님은 세리와 창기들과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경시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한 한 맺힌 차별의 사슬을 끊어주신 것입니다. 그처럼 차별의 아픔을 끊어주고 남을 바라볼 때마다 그의 현재의 처지와 삶과 모습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면서 그들에게 평화와 기쁨을 주려고 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누구보다 복된 사람으로 높여주실 것입니다.

4. 선교마인드를 가진 삶

 예수님의 족보에 있는 네 여인 중 밧세바를 제외한 세 여인은 이방인이었습니다. 다말과 라합은 가나안 여인이었고 룻은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신명기 23장을 보면 이방인은 10대까지 이스라엘의 총회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처럼 여겼습니다. 맹인도 세리가 준 동전은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받지 않겠다고 그냥 내던졌습니다. 그처럼 천대받던 이방여인의 이름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것은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선교마인드를 도전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인종문제와 지역문제로 생긴 적대감입니다. 그런 적대감으로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대량학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적대감이 복음으로 치유되도록 인종과 지역을 초월하는 선교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사랑이 자기 안에만 머물면 힘이 없게 됩니다. 사랑의 힘이 폭넓게 드러나게 하는 것이 진짜 선교입니다.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입니다. 아무리 유능하고 돈이 많아도 선교마인드가 없으면 향기 나는 인생이 되지 않습니다. 슈바이처는 학식이나 의술이 아닌 헌신적인 삶 때문에 존경받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과 기쁨은 봉사하고 헌신할 때 주어집니다. 요즘 결혼을 안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헌신이 싫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헌신이 없으면 인생은 참된 사랑을 모르는 불행한 인생이 되고 활기참 뒤에 급히 따라오는 공허함만 있게 됩니다.

 자신을 죽이고 사랑의 폭을 넓혀 가십시오. 내가 죽으면 남도 행복해지고 나도 행복해지지만 내가 죽지 않으면 남도 불행해지고 나도 불행해집니다. 폭넓은 사랑은 결국 자신의 축복으로 귀결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누가 내 편인가?”에 관심이 많지만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내가 누구 편이 될까?”하는 것입니다. 누구 편이 되어야 합니까? 힘과 권력과 다수와 물질이 있는 사람의 편에 서려고 하면 점점 왜소한 인생이 되지만 힘과 권력과 다수와 물질이 없는 사람의 편에 서려고 하면 점점 위대한 인물이 됩니다.

 어느 날, 한 유명 정치인이 큰 시련을 당했다가 하나님을 만나 진심으로 회심했습니다. 그리고 집 근처에 있는 50명도 안 되는 작은 교회에 등록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노련한 정치인들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 정말 순진한 사람이네. 큰 교회에 등록하면 표가 얼만데.” 옆에서 보좌관들과 측근들도 은근히 부추겼습니다. “의원님! 작은 교회에 다니면 사람이 작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어요?”

 그 정치인은 교회생활을 해본 경험이 거의 없어서 그런 계산을 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에 등록했는데 의외로 그 교회에서 잘 적응했습니다. 소수의 교인들과 교제하면서 가족처럼 따뜻한 사랑을 받으니까 정치계의 정글에서 쌓인 피로가 주일마다 씻기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봉사의 재미를 알고 겸손하게 교회 청소도 하게 되었습니다. 월요일에 세상에 나가 정치인으로 활동할 때는 가끔 강력한 결단을 내래는 단호한 정치인의 모습도 보였지만 주일에 교회에 와서는 늘 겸손하게 봉사하고 즐겁게 교제했습니다.

 그 순수한 정치인이 작은 교회에 등록함으로 교인들의 표를 많이 얻지 못해서 큰 손해가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교인이 적어서 교인들의 표는 덜 얻어도 그의 겸손한 헌신이 입소문으로 알려지면 일반인들이 감동해서 오히려 훨씬 더 많은 표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한 큰 정치인이 작은 교회에서 섬기면 일반인들의 눈에는 그가 작게 보이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 크게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욕심과 계산적인 태도 때문에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지 못해서 역사에 남을 진짜 큰 인물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큰 정치인이나 경제인이 초대형 교회에 다니면 그것은 그러려니 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별로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냉소가 없으면 다행인 것이 일반 정서입니다. 반면에 그런 큰 인물이 작은 교회를 섬기면 오히려 일반인들은 그를 더욱 크게 볼 것이고 결국 그는 소중한 바닥민심을 얻게 됩니다. 역사도 그런 인물을 오래 기억해줄 것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의 겸손한 헌신을 반드시 기억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많은 계산적인 사람들이 놓치는 ‘작은 것을 아끼는 삶의 축복’입니다.

 우리 교회는 작은 것을 아낄 줄 알고 작은 사람의 편에 설 줄 아는 큰 인물들을 많이 배출해야 합니다. 그런 감동적인 인물이 나올 토양마련을 위해 앞으로 축복을 주시면 일정 규모 이상이 되지 않도록 계속 분립교회를 개척시켜야 합니다. 세계 선교도 잘해야 하지만 그 전에 선교마인드를 가지고 교회를 분립하는 일도 잘해야 합니다.

 분립교회를 영어로는 ‘도터 처치(daughter church, 딸 교회)’라고 합니다. 왜 ‘썬 처치(son church, 아들 교회)’라고 하지 않습니까? 교회가 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딸을 시집보내는 개념으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딸을 시집보내면 요새는 딸이 더 효도합니다. 대형교회가 재정과 인사권을 가진 프랜차이즈 교회를 세우는 것은 참된 분립교회 개척이 아닙니다. 심하게 말하면 목회자의 권력욕에 성도들이 병정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결국 그 교회와 목회자는 효도받기는커녕 언젠가 하나님과 사회로부터 큰 매를 맞습니다.

 인물이 되려면 자기가 가진 것을 잘 시집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실제적인 실천덕목으로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드나베의 삶’을 열심히 훈련해야 합니다. 전방 선교사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금방 “선교사님! 알았습니다. 그 일은 제가 맡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힘을 드릴 수 있는 인물의 꿈을 가지십시오. 어려운 선교지에서는 선교사들이 아무 일도 안 하고 그곳에 있기만 해도 크게 수고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선교사들이 전방에서 외롭고 힘들게 뛰는데 후방에서 편하게 자기만 위해서 산다면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 세상을 살맛나게 하십시오 >

 요새 경제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럴수록 더욱 어려운 사람을 살피고 사랑의 폭을 넓혀 선교 사명을 이뤄 가려고 하십시오. 자신의 삶이 위태롭게 느껴질 때도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고 선교에 힘쓰면 하나님은 그의 지경을 넓혀주시고 많은 사람들을 덮어줄 수 있는 큰 우산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교회는 이기적인 가치관을 거부하고 물량주의와 외형주의를 경계하며 선교마인드로 무장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커졌다고 자랑해도 선교할 줄 모르면 무의미한 것입니다. 100여 년 전에 영국 교회는 엄청난 전성기였지만 지금은 건물마다 텅텅 비었습니다. 한국 교회가 선교마인드로 무장하고 새롭게 개혁되지 않으면 그 길을 답습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교회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습니까? 그것을 위해 먼저 자기개혁부터 해야 합니다. 자기로부터 시작된 개혁이 진짜 개혁입니다. 내가 변해야 가정도 변하고 교회도 변하고 나라도 변합니다. 남만 개혁하려고 하면 소리만 커지지만 내가 변하려고 하면 세상도 조금씩 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가?”를 먼저 고민하십시오. 자기개혁의 몸부림이 세상 변화의 씨앗입니다. 개혁은 시스템이나 제도 변화보다는 지속적인 자기 갱신으로 됩니다. 나를 돌아보지 않고 남만 손가락질하면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목욕탕에서 작은 샴푸 병이 없어져서 찾아보니까 어떤 사람의 가방 안에 있었습니다. 제가 “이거 제 것인데요.”라고 하자 그가 주인이 없는 줄 알아서 그냥 자기 가방에 넣었다고 했습니다. 점잖게 생기고 여유도 있어 보이는 사람이 그러니까 치사하게 보였습니다. 그가 작은 죄를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사람은 작은 죄 때문에 더 치사하게 되고 비참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 작은 죄가 큰 죄가 되면서 사회를 망치게 됩니다.

 요새 많은 사람들이 살맛이 없다고 합니다. 성도는 그런 세상에서 누군가를 살맛나게 해주려고 해야 합니다. 교인이 많은 게 자랑이 아니라 바르게 사는 교인이 많아야 합니다. 기도원에서 구국기도만 잘하지 말고 이웃을 실제로 돕는 것을 더 잘해야 합니다. 힘이 부족해도 복음 안에서 세상을 살맛나게 하는 꿈을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초대 교인들은 대부분 사회 기층민들로서 정치력도 없었고 사회적인 지위도 없었지만 의에 굶주렸고 성령 충만했기에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요새 불의하게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불의한 높은 자리보다 의로운 낮은 자리가 차라리 낫습니다. 출세를 못하는 한이 있어도 변질되지 않는 소금처럼 늘 믿는 사람답게 살려고 힘쓰십시오. 소금은 녹아져 형체까지 없어져야 맛을 내듯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헌신해 많은 사람들을 살맛나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자신을 높여주시는 반전의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항상 주님이 다시 오실 길을 닦는 자세로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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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42 시편 리더를 위한 3가지 기도 시21:1-13  이한규 목사  2015-02-03 552
11641 시편 참된 예배자의 축복 시20:5-9  이한규 목사  2015-02-03 1117
11640 시편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십시오 시18:32-50  이한규 목사  2015-02-03 499
11639 빌립보서 겉모습과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 빌2:3-8  한태완 목사  2015-02-03 808
11638 고린도전 만물의 무상 앞에서 [1] 고전7:29-31  정용섭 목사  2015-02-03 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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