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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말3:1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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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2000년대 설교 |
3장 12절-18절
기도: 세상 마지막 날까지 저희들을 사랑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 이 시간에 말씀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처럼 저희들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만들어지는 사람으로 세상 마지막 그 날까지 온전을 향해서 더욱 나갈 수 있도록 축복을 해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모든 면에서 부족 되고 미달 되고 병적인 것이 많습니다. 저희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아버지 하나님이 온전하신 것처럼 모든 면에서 온전하고 탁월한 자가 될 수 있도록 축복을 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2절-15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왜 너희를 복되다 하느냐?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그렇다.
이 말씀의 뜻은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낼 수 있는, 냈다고 하는 그 자체보다도 그렇게 낼 수 있는 아름다운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는 뜻이 전제되어 있고, 두 번째는 하는 활동마다 사람에게 진리의 맛을 내고, 참 사람으로 바꾸어지게 하니 ‘너희를 복되다’ 이런 말이 나온다 그 말이요.
세상의 그 어떤 환난 역경에서도 능히 견디고 이길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지면서 나가니까 이방인들도 그런 것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칭찬을 한다 그 말입니다.
재앙을 받으면 불신자라도 하는 말이 ‘저것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잘못 믿어가지고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을 받는다’ 그런 말을 하게 된다 그 말이요. 그렇게 되면 그게 얼마나 수치스럽겠느냐? 그러니까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낼 수 있는 아름다운 신앙을 가진 사람이 되라 그 말이요. 그러면 불신세계까지 너희들의 이름이 난다 그 말입니다.
그리고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낼 수 있는 그런 신앙차원으로 올라가지 않고,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서도 완악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는구나’ 그랬지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사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냐 그 말이요. 쓸 데 없다 그 말이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봐야 별 볼일이 없다’ 그런 말을 한다 그 말이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부자가 된다거나, 병이 낫는다거나, 안 믿는 사람들보다 특별한 것이 보여져야 하는 것인데, 달라지는 것이 보여져야 하는 것인데 그게 없다고 한다 그 말이요.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복되지 않다고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교만한 자가 복을 더 많이 받더라는 것이지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지금 이런 말을 한단 말이요. 그 다음에 또 두 번째는 악을 행하는 자가 더 창성하고 번성하더라! 세 번째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는 말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온전한 신앙이 안 되면 그와 같은 말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어떻고, 믿는 사람이 어떻고’ 자꾸 그런 말을 하게 된다 그 말이요. 자기 신앙이 바로 올라가지 못하면 자기가 신앙으로 바로 올라가지 못한다는 그것에 마음을 갖는 게 아니고 자기가 잘 안 되는 그걸 하나님 쪽으로, 다른 사람 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그 말이요.
교만한 자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사람이지요. 악을 행하는 사람은 진리를 거스르고 세상을 따르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재앙이 없더라’ 하는 것은 제 고집 제 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아직 재앙을 안 준 상태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거지요.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내지 않고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면서 사는 신앙사상이 그렇다 그 말이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사람의 신앙이 그런 말을 한다 그 말입니다.
그런 신앙이 잘못된 것인데, 잘못되었다면 어떻게 그게 잘못된 것이라는 말이냐? 그러한 사람들의 신앙의 속을 분석해 보면 신앙을 가지되 첫째는 세상 물질적 구복주의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충성봉사를 해도 축복을 안 주더라’ 그런 소리를 하게 되지요. 그러니 물질축복 중심주의로 믿어나가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지요.
두 번째는 임시성 물질성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에 대한 그 소원 목적으로 사는 신앙입니다. 세 번째는 기독교 신앙은 궁극적인 신앙인데 궁극적인 그 결과를 모르고 믿는 신앙이 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현세만 알아본다 그 말이요. 현세에서 열매를 따먹으려는 신앙이 그렇다 그 말이요.
네 번째는 사람이 바로 바꾸어지지를 못했다. 예수 믿으면 사람의 속이 바꾸어져야 되는데, 소원 목적이 안 믿는 사람과는 달리 바꾸어져야 하는 건데 똑같다 그 말이요. 다섯 번째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의 의사성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말씀의 뜻을 모른다 그 말이요. 아버지의 마음을 모른다 그 말이요. 마음을 모르면 딴 소리를 한다 그 말입니다.
여섯 번째는 선인과 악인의 영원한 결과성을 모르고 있는 겁니다. 미래를 모른다 그 말이요. 사후의 세계를 모른다 그 말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대적을 하고, 세상을 쳐다보면서 ‘저 사람을 봐라, 하나님을 안 믿어도, 말씀대로 안 해도, 거역하고 거스려도 축복받고 잘 산다’ 그런 말을 하게 된다 그 말이요.
16절: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기념책에 기록했다: 그러니까 ‘인간 자기는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다 들으시는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중심을 다 아신다 그 말이요. 사람을 지으신 분이 왜 사람의 중심을 모르겠느냐 그 말이요. 각 사람의 중심 그걸 보시고 그 사람에게 아주 적합한 사건을 불러일으키시는 분인데 사람이 어떤 말을 해도 하나님께서 그 말을 못 들으시겠느냐 그 말이요. 다 아신다 그 말이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그 증거가 뭐냐? 그 증거는 첫째는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두 번째는 항상 영원 궁극적 신령천국에다 자기의 총 결산을 놓고 삽니다. 그런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 못 사는 거냐? 그건 아니에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 활동하고 노력하고 사업하고 먹고 살아도 자기의 총 결산은 영원 궁극, 사후의 세계에 놓고 살고, 불신세상의 사람들은 자기의 모든 노동 노력 삶의 대가를 현실, 임시성적인 세상에 두고 산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자기 눈앞에 뭐가 안 이루어지면 원망불평을 한다 그 말이요. 그러니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얼마나 현명하냐 그 말이요. 일반적으로 볼 때도 바로만 믿으면 그렇다 그 말이요.
세 번째는 하나님 말씀에 두렵고 떨림으로 순종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한다고 하는 것은 그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하는 뜻인데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힌다는 것은 첫째는 성도가 일반 이하로 인격이 떨어지면, 즉 죄를 지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더러워집니다. 떨어진다 그 말이요. 성도 자기가 떨어지는 거지요.
두 번째는 신앙성장을 못할 때 주 여호와 하나님이 욕을 먹게 됩니다. 교회는 오래 다녔는데, 학습세례 받고 다 했는데, 그렇다면 오래 다닐수록 깨닫는 것이 많아야 되고, 성장성이 많아야 되고, 직분을 맡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충성봉사가 나가고, 자타를 위해 덕을 세워 나가야 되는 건데 아무리 오래 믿어도 그게 없단 말이요. 그러니 욕을 먹는단 말이요.
먼저 깨닫고 배운 사람은 올라가야 되고, 올라가면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가르칠 줄 알아야지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고, 가르치는 것도 아무 것도 없다면 이게 무슨 꼴이냐? 욕을 얻어먹는다 그 말이요.
그리고 세 번째는 성도가 일반차원으로 놀 때,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은 생각 수준 인격 취미로 놀 때 주님이 욕을 먹는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은 암만해도 생각이 다르고, 마음이 다르고, 사는 면에서 그 중심상태가 일반사람처럼 그렇게 사는 게 아니지요.
네 번째는 진리이치를 항상 깨닫고 자기 인격에 성장성을 가져야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는 겁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인격을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생각, 거룩한 말, 덕스러운 말이 나와야지요. 예수 믿으면서 믿지 않았던 때에 사는 것처럼 노상 입에서 듣기 거북한 욕을 하고, 이웃사람과 싸웠다 하면 욕부터 하고 이래서는 안 된다 그 말이요. 하나님이 욕을 먹어요, 성령님이 근심을 한다 그 말이요. 그러니 하나님이 욕을 먹는다. 그래선 안 된다 그 말이지요.
그런데 기념책에 기록하셨다고 그랬지요? 왜 기념책에 기록을 하느냐?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경외하고 존중히 여기는 그런 신앙을 기억한다 그 말이요. ‘기념’ 이라고 하는 것은 기억한다 그 말이요. 말하자면 그런 신앙은 일반신앙이 아니고 특별한 신앙이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시는 신앙이다 그 말입니다.
말라기 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으로부터 온 백성들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우습게 여기고, 말씀대로 사는 걸 번거롭다는 식으로 나갔는데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존중히 여기는 것은 특별한 신앙이다. 앞으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신다. 기억하신다. 기억한다는 것은 보호를 해 주겠다는 것도 들어 있다 그 말이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한다고 하는 것은 이런 옳은 신앙을 서로 권고해서 가진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지키고 순종해서 사는 것을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하는 식으로 신앙사상이 나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게 필요 없다는 식의 세상이다 그 말이요. 신앙의 중심사상이 그렇다 그 말이요.
17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정한 날은 만군의 여호와의 진노의 심판의 날이며, 또 구원의 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 자들에겐 진노와 심판의 날이로되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에겐 구원의 날이 됩니다.
우리 예수 믿는 기독자들이 이걸 알아야 되겠는데 내가 지금 심판을 받을 자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 건지, 그 날에 구원을 받을 자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 건지 자기의 예수 믿는 신앙사상, 신앙성분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교역자고 교인들이고 참 많다 그 말이요. 말하자면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바로 믿는 신앙이냐, 아니냐’ 하는 그 면에서 파악을 못한다 그 말이요. 파악을 할 수 있는 기준점이 없다 그 말이요.
확실하게 파악을 못하면서 ‘나는 천국 간다’ 하고 있고, 천국만 간다고 하느냐? ‘나는 상급을 많이 탄다’ 하면서 무조건 충성봉사로 덤비고 있다 그 말이요. 이건 참으로 큰일입니다.
우리가 기독교 보편적으로 간단히 말하면, 즉 기독교 안에서의 보편이 있는데, 기독교 밖과 기독교와 비교할 때는 이것은 보편이 아니고 특수지만 그러나 기독교 안에서 일반적인 면에서 보편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첫째는 일단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천국 간다고 하는 이게 기독교 안에서는 보편이라! 지옥 가고 천국 가는 건 예수님이 책임지고 있으니 예수 믿는 내가 그 면에 대해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지옥 가려고 해도 못 간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이 있기 때문에!
두 번째는 예수 믿는 내가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자라는 겁니다. 자라야할 신앙이 기독교 보편적인 신앙이라 그 말이요. 진리이치를 바로 깨달아서 영적인 기능 면과 지능 면으로 영인성장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으로 진리의 지식성이 자라고, 진리의 도덕성이 자라고, 진리의 능력성이 자라고.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성품을 입어나가야 된다. 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진리의 말씀 속에 이룰 수 있는 이치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본질적인 것을 모르면 앞에서 말한 것은 기독교 안에서 특수가 아닌 보편인데 그 일을 하지 않고 딴 짓을 하게 됩니다. 즉 기독교인들이 미신을 찾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처럼, 관상이나 사주팔자를 보는 사람들처럼 물질축복주의 사상, 신비주의 사상, 은둔주의 사상 등 이방신관을 가지게 되는데, 그러면서 열심히 충성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말이요. 모르고 그렇게 덤벼들어서 열심히 충성봉사를 하게 되면 자기는 악령의 운동을 하기가 쉽습니다. 악령운동에 협조 동참하는 일이 많다 그 말이요.
또 하나는 내가 일반 도덕성을 기준으로 세워놓고 성경 하나님 말씀을 끌어다가 그 일반 도덕성의 기준에 맞는 운동을 하게 됩니다. 예수이름을 가지고 그렇게 열심히 충성봉사를 한다 그 말이요.
그러면서도 ‘내가 최고다’ 하지만 이것은 다 기독교 본질적인 예수님의 복음이 아닙니다. 모두 다 인간기준, 세상기준으로 하는 겁니다. 이런 것은 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날에 진노와 심판의 대상입니다.
충성봉사를 하는 것도 사람의 온전의 목적에서 이루어지면서 해야 바로 된 것인데 그것이 아니고 ‘사역목적으로 일을 크게 해서 상을 많이 받자’ 하는 식으로 충성봉사를 한다 그 말이요. 이것은 기독교 외식운동으로 이런 이방 세상적 종교적 운동 역시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고, 예수 믿는 믿음을 바로 가지려면 기독교 신앙에 대한 본질을 바로 알려고 하고, 또 바로 가르쳐주고, 예수님을 바로 믿어야 하는 거지요.
그런데 진노와 심판의 대상이 되려고 하는 건지는 몰라도 이 면에 대해 신경을 써서 예수 믿는 사람도 드물고, 성경 66권의 말씀에서 이탈되었던 말았건, 비진리가 되었건 말았건 그 면에 대한 관심이 없고 ‘내가 제일이다’ 하고 제일을 알아주는 그런 식으로 나가면 된다고 하는 신앙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다 심판의 대상입니다.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낀다’고 했지요? 하나님께서 아끼는 자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입니다. 좋게 말하면 특별하게 믿는 자라 그 말이요.
특별하다고 할 때 나쁘게 특별한 사람들은 기독교 보편에서 보면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것으로 바로 돼야 하는 건데 그게 아니고 세상기준에 맞추어서 나가는 이것이 하나님 앞에 부정적으로 특별한 신앙이지요. 심판의 대상이지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특별한 소유의 주체는 첫째는 천국을 소유적으로 상속을 받을 자이고, 두 번째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운동 구원운동으로 잡고 쓰시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온전으로 인격성이 바로 만들어진 참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아끼신다 그 말이요.
하나님께서는 큰집을 지었다고 해서 아끼는 게 아니고, 쇼 판을 벌여서 사람을 많이 끌어 모았다고 아끼는 것도 아니고, 세상지식을 많이 가졌다고 아끼는 것도 아니고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 진리 자체화로, 내가 천국의 성분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인격의 사람으로 바로 만들어졌느냐? 그런 사람을 아낀다 그 말이요. 안 만들어졌으면 심판의 대상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안 믿고 간에 목이 곧고 교만하고 불순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결코 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예수 믿으면서도 교만하고 목이 곧고 불순종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 말이요. 그런 사람들도 심판이라! 불신자들과 똑같은 심판을 받는다 그 말이요. 이 말은 지옥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심판 받는 걸 말하는 거라 그 말이요. 모두 자기의 날(日)로 판을 치고 살았기 때문에, 또 그런 식으로 믿었기 때문에 심판입니다.
이것이 안 믿어지면 미래가 현재가 되는 그 날이 닥쳐와 봐야 자기가 실감이 나게 되는 겁니다.
18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돌아온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인데, 하나님의 기념책에 기록된 하나님께서 특별히 아끼시는 특별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서 모면된, 구원된 신앙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본문을 보니까 의인과 악인을 분별해 내지요? 두 번째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는 자를 또 분별해 냅니다.
분별해 낸다고 하는 것은 사람을 볼 줄 아는 실력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이 실력은, 즉 사람을 바로 보는 분별력의 지식은 일반 세상적 사회적 철학적 기준적 지식이 아닙니다. 영적 신앙적인 영분별과, 영적 신앙적 성분을 분별하고, 사상을 분별할 줄 알고, 정신을 분별할 줄 알고, 진리이치로서 보는 진리지식이 기준이 되어 가지고 사람을 보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볼 때 사람의 중심을 본다 그 말이요. 그러니 우리도 진리지식의 기준을 가지고 보게 되면 사람의 중심을 보게 됩니다.
일반세상적 기준적 지식으로 보는 의인과 악인은 행동과 활동으로 찾아낸다 그 말이요. 그래서 이들이 아무리 의인이고 악인이라 해도 행동 활동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 사람이 의인인지 악인인지를 몰라요. 이게 일반적인 기준적 지식이다.
일반적 기준적 지식을 자기의 기준으로 삼고 있으면 사람의 중심을 보지 못하고, 속을 보지 못한 채 행동을 보고 논하고 활동을 보고 논하는 사람이 된다. 사람을 잘못 보는 거다 그 말이지요.
일반적으로 세상사람들이 다 인정을 하는, 즉 나만 인정이 아니고 너도 나도 다 인정을 하는 다른 사람을 위한 행동과 활동을 했다고 그러면 그런 사람을 의인이라고 그러지요? 옳은 사람이라고 그런다 그 말이요.
그러나 그 행동과 활동을 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이 겉으로 옳은 행동 활동을 하는 그 사람 속에 있는 것인데, 그것은 사상이요 정신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 원인과 동기와 목적이, 그 정신 사상이 하나님의 기준에 맞느냐, 안 맞느냐’ 하는 이것은 일반지식의 기준을 가지고는 알지를 못 해요. 불가능합니다. 모르기 때문에 그래요. 전혀 감을 못 잡는 겁니다.
그리고 겉보기에 옳은 행동을 했다고 해도 그 행동 활동을 한 영원 궁극적 결과에 대해서는 자기와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결과가 오는 것이라고 하는 이것을 전혀 모른다 그 말이요. ‘내가 이런 행동 활동을 하면 나와 다른 사람에게 사후의 세계에 가서 어떤 결과로 나타나 있을 것이다’ 하는 이걸 모른다 그 말이요. 일반세상은 그걸 모르는 겁이다. 학박사라도 일반지식이 기준이 된 학박사는 그걸 몰라요. 불가능해요. 하나님의 지식이 아니고는 모르는 거지요.
악인의 행동 활동은 의인의 행동 활동과는 정 반대입니다. 사람을 해하는 행동 활동을 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볼 때 악인이지요. 그리고 악한 행동, 악한 일을 한 거기에 대해서 악한 일을 행한 자기도 궁극적 결과에 가서 어떻게 된다고 하는 그 면에서는 전혀 모르고, 또 ‘저 사람이 악한 일을 했다’고 단정을 짓는 그 사람도 일반지식의 기준을 가지고 악한 사람이라고 할 때는 그 악한 행동이 영원 궁극적 결과에 가서 어떻다고 하는 그걸 모른다 그 말이요. 악을 행한 그 사람만이 아니고 ‘저게 악이다’ 라고 비판한 그 사람도 악을 행한 사람의 궁극적인 결과를 모른다 그 말이요. 악에 대한 궁극적 결과를 모른다 그 말이요.
그리고 일반사람들은 행동으로 나타나기 전에는 의인인지 악인인지 전혀 모릅니다. 행동 이전에 사람을 질적으로 알아보는 지식이 없습니다. 또 같은 시간에 많은 사람을 위한 의행을 안 하고 한 사람을 위한 의행을 했다면 이는 악을 행한 악인이 되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 손해를 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인정을 하는 의행을 해야 의행이라고 하지 많은 사람에게 손해를 주고, 피해를 주고 한 사람을 위해 의행을 했다면 이를 의행으로 알아주지 않고 악행으로 안다 그 말이요. 쉽게 말하면 다수결이다.
그리고 의행을 했던 악행을 했던 사회적 여론에 따라서 의행이 악행이 되기도 하고, 악행이 의행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 지도자가 바뀌면 그렇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세상사람들은 첫째로 의인 악인을 행동에서 보더라! 둘째로 여론의 다수결에서 결정이 되더라! 세 번째는 의인 악인의 그 궁극적 결과를 모르더라! 네 번째는 의행과 악행이 나오는 그 출처를 모르더라!
성경대로 말한다면 세상사람들이 의인과 악인을 보는 기준적 지식은 인류시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나온 기준적 지식입니다. 따라서 일반세상의 기준적 지식의 가치적 시간적 그 효력성은 물질적 세상적 임시적 가견적인 소원적 목적적인 지식입니다. 그러니까 그 개념적 지식성서 나온 개념은 그 소원 목적을 아무리 오래 가졌다 해도 신령세계, 천국에까지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사람들은 ‘내가 이게 품은 지식이, 가진 기준적 지식이 천국에까지 가는 건지, 안 가는 건지’ 이것조차도 모른다 그 말이요. 아무리 좋은 것을 부르짖어도, 자기 말로는 시간적으로 영원히 좋다고 부르짖어도 그 개념적 사상은 물질에서 탈피를 못하고 물질 안에 들어 있는 거다 그 말이요. 모든 게 그렇다 그 말이요.
일반사람들이 ‘영원 영원’ 하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말은 ‘영원’ 인데 ‘영원’ 이라고 하는 그 사상적 개념은 일반세계에서 멈춰지는 것뿐입니다. 그 이상은 더 가지 못하는 겁니다. 왜냐? 영은 죽어 있고, 그들이 가진 지식은 진리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게 다 이치라 그 말이요. 진리지식을 가지고 이치로 보면 그 이상은 못 가는 것임을 알 수 있는 겁니다.
불신세상은 항상 그 소원 목적이 세상뿐 아닙니까? 이치가 그렇다 그 말이요. 심지어 기독교인들 중에도, 성경을 가지고 가르치는 ‘내로라’ 하는 지도자들도, 인도자들도 일반적 세상적 기준적 지식의 개념을 가지고 말을 한단 말이요. 그러니까 일반세상적 사상의 개념은 일반지식이 기준이라 그 말이요.
그럼에도 그걸 가지고 성경을 보니 그들의 말은 세상적으로 되는 겁니다. 세상적으로 가르치고, 세상적으로 가르친 그 운동은 전부 세상 종교적 활동이라 그 말이요. 이치가 그렇단 말이요. 자기는 ‘믿습니다, 믿음 믿음, 믿사오니’ 하는데 그것이 세상적 종교적 활동이라! 이런 것이 아주 비일비재하다 그 말이요.
그걸 우리가 ‘나쁘다, 안 좋다, 이단이다’ 단순히 그렇게만 보지 말고 그 한계가 그렇단 말이요. 한계가 거기까지밖에 미치지를 못 해요. 그러니 그런 지식을 가지고, 일반지식의 기준과 사상을 가지고 성경을 백 날 봐도, 천 번을 읽어도 말하는 것은 세상이야. 세상범위를 넘지를 못 해요. 개념이 그렇고, 사상이 그렇고! 이런 자들이 ‘예수 잘 믿어 복 받아라’ 하는 이게 어디 복을 말하는 거요? 물질적 세상적 임시적인 복관이란 말이요.
그러니까 이 성경을 가지고 진리 이치적으로 그런 가르침이 어떤 것이라는 것이 알아지는 거라 그 말이요. 하나님 말씀의 기준에서 진리 이치적으로 그걸 아는 거다 그 말이요.
진리이치에 의해서 이단도 잡아내고, 거짓도 잡아내고, 적그리스도 잡아내고, 사교도 잡아내고, 거짓적인 성분도 잡아내고, 악령도 잡아내고. 아무리 성령을 받아 별 짓을 했다고 해도 그것이 성령인지 악령인지 다 잡아낼 수가 있는 거지요.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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