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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롬6: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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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 참고 : | 2014.12.11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512) |
온새기(1512) 큰 은혜를 받는 길 (롬6:1-5)
1. 은혜를 남용하지 마십시오
은혜만 믿고 죄 짓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1절). 죄는
치명적인 것입니다. 인간사회의 모든 아픔과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죄입니다. 그처럼 죄는 축복을 결정적으로 막기에 축복을 진정 원하면 죄의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합니다. 그처럼 죄가 모든 문제의 원인이지만 죄로 짓눌려 너무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로마서 5장 20절 말씀처럼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내포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자기 편한 대로 적용해 죄를
합리화하면 안 됩니다. 즉 죄를 짓고 나서 “이 죄도 하나님이 또 은혜로 덮어주실 거야.”라고 하면서 죄 짓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한다!”는 말씀을 잘못 적용해서 죄를 가볍게 생각하고 다시 죄 가운데 빠지면 안 된다고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자유의 의미를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법과 권위와 질서를 깨는 것을 자유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자유에는 더욱 큰
책임이 뒤따릅니다. 진정한 자유는 자유를 얻은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그 자유를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승화시킬 때 주어집니다. 믿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기에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욱 거룩한 삶을 살려고 힘써야 하나님의
은혜도 더욱 넘치게 될 것입니다.
2. 자기를 철저히 죽이십시오
성도는 세례를 받는 순간부터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3절). 그러므로 축복을 얻을 생각만 하지 말고 먼저 주님과 함께 기꺼이 죽으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로 사는 길이
열립니다. 사람이 완전히 죽으면 아프지 않지만 덜 죽으면 아픕니다. 오늘날 성도에게 있는 대부분의 마음의 고통은 사실상 덜 죽어서 생겨난
것입니다. 나무가 타다 말면 볼품도 없고 쓸모도 없습니다. 그처럼 성도도 완전히 죽지 않고 죽는 흉내만 내니까 고통도 심해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몸과 마음을 다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과 대충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스트레스를
받을까요? 대충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더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요새 “큰 교회는 부담이 없어서 좋다!”고 하면서 큰 교회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담이 없어서 좋은 길은 대개 보면 축복의 길이 되기보다는 인생과 시간을 낭비하는 자멸의 길이 될 때가
많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축복받는 제일 구호는 다음과 같은 구호입니다. “거룩한 부담을 지자!” 신앙생활의 요체는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에게서 배우는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부담을 지려고 할 때 하나님도 그를 위해 기꺼이 부담을 져주십니다. 그런
신비한 은혜를 모르고 눈앞의 편안함만 추구하다가 더욱 중요한 평안과 내일의 축복과 천국의 상급을 잃는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예수 믿고
인물이 되려면 선한 결단을 하고 그 결단을 밀고 나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도 그만큼 거질 것입니다.
3. 넘치는 희망을
가지십시오
자신을 죽이면 주님과 함께 부활합니다(5절). 결국 주님과 함께 죽기로 결심한 성도는 최종 승자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셨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축복은 예수님이 살아나셨고, 지금도 살아계시고, 주님과 함께 죽으면 주님과
함께 부활한다는 것이 확실하게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이 있다면 누가 그 사람으로부터 기쁨과 희망을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왜 성도가 힘들게 살면서도 넘치는 희망과 기쁨이 있습니까? 주님이 살아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예배드리려고
멀리서 옵니다. 목회자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감동합니다. 그래서 가끔 말합니다. “집사님! 멀리서 오시니 정말 큰 힘이 됩니다. 항상
감사해요.” 그러면 그런 분들은 대개 말합니다. “목사님! 뭘요. 멀다는 것이 핑계지요. 더 잘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러면 그 한 마디가
목회자에 있는 마음과 육신의 암 덩어리를 단번에 날려버릴 정도로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목회자는 말씀을 통해 성도들에게
힘을 주고 성도들은 태도를 통해 목회자에게 힘을 줍니다. 그렇게 서로 힘을 줄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 공동체에 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왜
성도가 잘하면서도 더 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합니까? 자신을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알고, 주님의 살아계심을 분명히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면 최상의 헌신을 해도 항상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전과 희망이 있는 사람은 잘하면서도 “더
잘하지 못해 죄송해요.”라는 하는 사람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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