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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시25:1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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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 참고 : | 2014.12.15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514 ) |
시편(35) 회개하는 삶의 5대 축복 (시편 25편 11-22절)
<회개는 복된 삶의 시발점 >
지난주일 저녁에 중학교 때 의형제를 맺은 친구 4명을
만났습니다. 그때 서울 옥인동의 옛 집터를 가보자 거기는 길로 변해있었고 집 근처에 있던 옛날의 럭키 사장 집은 GS 리더십센터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거기서 맹아학교와 농아학교를 지나 청운초등학교로 가던 길을 걸으면서 50대 중반의 친구들이 어린이처럼
좋아했습니다.
옛 추억을 조금 더 느끼고 싶어서 다시 아내와 함께 화요일 오후에 인왕산에 갔습니다. 초등학교 1-2학년 때
아버님을 따라 매일 갔던 인왕산을 약 45년 만에 다시 찾은 것입니다. 중학교 때는 내수동에 있는 보인중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아내도 내수동에
살았기에 오고가면서 봤을지 모릅니다. 아내가 살던 집터는 땅을 깎아 도로로 만들어서 현재 도로에서 공중 10미터쯤 위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옛날을 회상하며 기분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옛날을 회상하며 좋은 기억을 떠올리면 가슴이 뭉클하고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반면에
옛날을 회상하고 한 맺힌 회한을 가지면 더 삶이 쓸쓸해집니다. 그래서 회상이 회한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과거의 한 맺힌 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인생의 한 과정으로 여기면 됩니다. 그 한 맺힌 일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깊이 만나게 되었을 가능성도 큽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습니까? 과거의 좋은 기억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예수님의 부름을 받던 때의 기억, 예수님을 따르면
체험했던 수많은 아름다운 기억,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잠잠케 하고 변화산에서 변화된 예수님의 모습 등에 대한 기억은 그의 삶에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의 기억, 멀리서 바라본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 대한 기억, 그리고 디베랴 바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기억들도 삶이 힘들 때마다 큰 힘과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처럼 좋은 일에 대한 회상은 큰 힘과 위로와 행복을
줍니다. 그런데 그런 ‘회상’보다 더욱 힘과 위로와 행복을 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죄악된 삶을 버리고 새롭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을 결단하는 ‘회개’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달이 한 해를 되돌아보게 하는 마지막 달인 12월인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또한
예수님이 오신 날이 1년 중 가장 밤이 깊은 동지 어간인 것도 얼마나 좋습니까? 어둠이 깊으면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뉘었습니다. 개인의 이력도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과 영접한 후로 나뉩니다. 성탄도
성탄 전과 성탄 후가 나뉘는 삶이 되게 해서 성탄절은 새로운 삶을 다짐하고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는 날이 되게 해야
합니다.
새로운 출발은 과거를 잘 승화시킬 때 이뤄집니다. 그처럼 과거를 잘 승화시키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회상을 ‘회한’이 아닌 ‘회개’로 승화시키고 새롭게 희망의 나라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찬란한 꿈과 비전을 품고 달려 나가는
삶처럼 복된 삶은 없습니다. 대림절은 지난 1년을 회상하고 회개함으로 새로운 1년을 준비하는 절기로 삼아야 합니다. 복된 삶의 시발점에는 항상
‘회개’가 있습니다.
< 회개하는 삶의 5대 축복 >
다윗이 어떻게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까? 회개의
중요성을 알고 회개하는 삶에 탁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시편에는 회개 고백이 많이 나옵니다. 본문 11절에서도 다윗은 회개의 중요성을
알고 선하신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큰 죄를 용서해달라고 했습니다. 그처럼 회개하면 어떤 축복이 따릅니까?
1. 선택의
축복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회개는 단순히 죄를
지었다고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회개의 보다 큰 의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회복’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을 경외할 때 생기는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는 택할 길을 가르침 받는 축복입니다.
인생은 선택입니다. ‘최고의 선택’은 ‘최고의 하나님 경외’를 통해
주어집니다. 결국 회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근본일 뿐만 아니라 축복과 성공의 근본입니다. 살면서 어느 길이 옳은지, 누구와
결혼해야 할지, 어떤 직장을 가지고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에 관한 선택의 문제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문제에 대한 최선의 해답은
‘좋은 상담’에 있지 않고 ‘하나님 경외하는 삶의 회복, 즉 회개하는 삶’에 있습니다.
상담 중에 가장 많은 상담은 선택 문제에
대한 상담입니다. 상담하러 와서 한참 사연을 말하고 선택 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하지만 사실상 ‘남의 조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결단’입니다. 대개 보면 상담을 받으러 온 자신이 문제의 해답을 이미 알 때가 많습니다. 그 해답을 남을 통해 확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해답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시어머니 문제나 배우자 문제도 거의 상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더 필요한 것은 자신이 아는
해답대로 실천하며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결단 대신 다른 하위의 해답과 방법을 찾으니까 상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선택할 때는 사랑과 용서와
나눔을 실천하는 길을 기초로 삼아야 하기에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기초가 굳건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선택하게 되고
그때 하나님은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2. 평안의 축복
하나님을 경외하면 평안이 주어지고 자녀의
지경이 넓혀지는 축복도 얻습니다(13절). 즉 하나님께 인생의 운전대를 온전히 맡기면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얻게 되고 하나님은 그 삶과 가정을
최선의 길로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차에서 편히 잘 자는 사람은 대개 운전자를 믿고 자신을 잘 맡기는 사람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사고가 나면
죽기밖에 더 하겠어? 하나님이 죽게 하시면 죽고 살게 하시면 사는 것이지.”라고 생각하고 맡기면 평안을 잃지 않습니다.
저는 결혼
초 아내에게 직접 운전연수를 시켜주었습니다. 아내의 운전연수는 남편이 보통 안 시켜줍니다. 조금 운전할 줄 안다고 아내를 야단치면서 부부싸움으로
발전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인천 대공원에서 큰소리 한번 없이 운전연수를 잘 시켜주었습니다. 저의 인격과 덕성이 탁월해서가
아닙니다. “차를 들이박아도 괜찮다. 사고 나서 죽어도 괜찮다.”라고 하면서 어떤 상황도 편하게 받아들이기로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운전자가 난폭하게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면 동승자는 운전자에게 맡기는 것을 잘해야 합니다. 직접 운전하는 사람과 옆에
앉은 사람은 보는 각도가 다르고 체감 속도 및 체감 제동 거리가 달라서 더 위험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감안하지 않고 옆에서 자꾸
불안해하면 운전자도 짜증나고 은근히 자기를 믿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배신감도 듭니다. 그래서 차 동승자의 제일 임무 중의 하나가 운전자를 믿어주는
것입니다.
성도의 제일 임무도 인생의 운전대를 잡고 계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깊은
평안이 임합니다. 믿음은 평안과 비례합니다. 더 나아가 편안한 잠과도 비례합니다. 잠을 잘 못자는 것은 조금 더 믿음을 훈련하라는 싸인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망하면 망하리라! 하나님 안에서 될 대로 되라.”하고 나가면 죽거나 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가장 멋진 작품
인생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3. 교제의 축복
회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이뤄지고 결국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14절). 살다보면 가끔 큰 두려움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합니까? 두려움 자체와 싸우기보다 두려움보다 더 크고 강력한 분인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것이 최상의 해결책입니다.
작은
두려움들은 사람이 함께 해주면 대개 해결됩니다. 어둡고 한적한 장소에 혼자 있으면 두렵지만 그때 부모나 친구나 동행자가 있으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큰 두려움은 사람이 함께 해도 해결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과의 친밀함으로만 해결됩니다. 결국 두려움을 이기는 최선의 길은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길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해지려면 특히 자기 사정을 기도로 아뢰는 일을 잘해야 합니다. 자녀가 자기
사정을 터놓고 아뢸 때 부모와 더 친밀해집니다. 자녀가 문제를 혼자 처리하려는 것은 한편으로는 대견한 일이지만 모든 문제를 다 혼자 처리하려는
것은 대견함을 넘어 부모에게는 자신을 믿지 못하는 모습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에게 말했다가 더 어려워질 때도
많기에 사람에게 자기 고민을 털어놓지 않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그러나 부모에게만은 자기 고민을 잘 아뢰고 하나님께는 더욱 잘 아뢰어야 합니다.
기도응답을 꼭 얻겠다는 집념을 가지고 아뢰기보다 기도응답과 상관없이 아뢰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이뤄집니다. 그 친밀한 교제가 문제해결과
축복의 최대 원천이 됩니다. 성도의 문제는 ‘문제’라기보다는 ‘기도제목’입니다. 문제해결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께 그저 자기 사정을 아뢰며
친밀함을 쌓아 가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4. 자유의 축복
본문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이 구절을 보면 ‘회개하는 것’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눈으로 항상 여호와를 바라보는 것’이 거의 유사한 개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처럼 회개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면 각종 얽매임과 집착에서 자유한
은혜를 얻게 하실 것이라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그렇게 믿음 안에서 자유하면 시시한 것 가지고 싸우지 않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알고 나서 지위, 학벌, 명예, 재산 등을 배설물로 여기고 자유한 영혼이 되었습니다(빌 3:8). 살면서 높은 지위나 물질이나 명예도
정당하게 추구하되 그것들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과 성도다운 삶이 훼손되면 그것들을 깨끗이 포기하고 이렇게 말하십시오. “그래! 당신이 가져!”
얼마나 마음이 편하고 자유합니까? 무엇을 잃었다고 울지 말고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하십시오. 과거에 집착했던 것을 배설물로 여길 정도까지
믿음이 커지고 은혜를 받아야 자유와 행복을 잃지 않습니다.
어느 날, A 교회에서 섬기던 한 부목사가 원치 않는 사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담임목사보다 설교를 잘한다는 교인들의 입방아가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새로 교회를 개척했는데 A 교회에서 교인 몇 명이 따라왔습니다.
그러자 A 교회의 담임목사가 열을 올리며 엄청나게 욕했습니다. 그것은 자유한 모습이 아닙니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그런 일들로 너무 열을 받으면
교회가 아무리 커도 그는 불행한 인생이고 실패한 인생입니다.
반면에 다른 어떤 교회의 담임목사는 부목사들이 교회를 잘 섬기다가
개척하면 최소한의 개척멤버라도 같이 따라가게 합니다. 그리고 개척하는데 수고한다고 상당한 지원금도 줍니다. 더 나아가서 따라가는 교인들을 불러
이렇게 말해줍니다. “여러분! 앞으로 목사님 모시고 교회를 잘 섬기세요.” 얼마나 자유하고 행복한 목사입니까? 예수님을 믿고 얻어야 할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바로 자유입니다.
5. 기도의 축복
본문 16-22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먼저 그는 외롭고 괴로운 자신에게 찾아오셔서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하고(16절), 죄로 인해 생긴 자신의 근심과 고난과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자신의 모든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합니다(17-18절). 또한 자신을 많은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해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주님을
바라보는 자신을 성실하고 정직한 손길로 보호해달라고 기도합니다(19-21절).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까지
합니다(22절). 다윗은 자기 죄가 국가적인 위기도 초래했다는 무한책임의식을 가졌습니다. 한 사람의 죄가 국가적인 위기도 초래하지만 한 사람의
회개가 국가적인 위기 극복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본문 16-22절에 나오는 다윗의 기도는 간단히 말하면 ‘은혜를 구하는 겸손하고
책임적인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이 기도의 능력을 체감하지 못합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능력 있는 기도가 되려면 남 탓을 하지 않고 남을 위해 기도하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까지 기도의
폭을 넓히는 책임적인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회개하는 심령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결국 고통 중에 가져야 할 가장
복된 자세 중의 하나는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을 만나거나 상처 받는 말을 듣거든 분노하는 대신에 자신의
죄와 허물을 한 번 더 살피는 계기로 삼으십시오. 어디든지 발전이 없는 이유는 자기 잘못을 성찰할 줄 아는 인물의 부족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을 인정해주십니다. 참된 믿음도 자기 죄를 인정할 때부터 시작됩니다. 일이 안된다고 분노하지만 말고 그때 자기 죄를 성찰하며
가슴을 치십시오. 특히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새로운 삶을 결단하면 하나님은 그의 앞날을 복되고 영광스럽게 하실
것입니다.
< 피해의식을 잘 극복하십시오 >
1978년 제가 살던 옥인동 집이 도로정비를 위해 수용될 때
당시 시세가 평당 120만원 정도였는데 평당 24만 원의 보상이 나왔습니다. 그 보상비로 갈 곳이 없어서 당시에 서울 가장 끝에 있던 명일동의
연립주택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때 제기 살던 동네에서는 럭키 사장 집으로 길을 내려고 우리 집이 도로로 수용되었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그 소문이 사실일 수도 있지만 ‘있는 사람’을 씹는 안주로 삼아 공분을 일으키려는 사람에 의해 왜곡된 소문일 수도
있습니다. 살다 보니까 왜곡된 소문을 퍼뜨려 정치적 목적달성에 활용하려는 사람도 참 많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떻게 그
상황을 소화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소문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있는 사람’에 대해 잠깐 분노가 생겼지만 얼마 후 냉철함을 되찾고 인생을
피해의식에 젖어 살면 안 되겠다고 자각했습니다.
살다 보면 피해를 줄 수도 있고 피해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피해를 당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를 만성적인 피해의식으로 발전시키지 않고 자신만은 앞으로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힘쓰겠다고 결단하고 나눔의 비전을
키우는 원료로 삼는 것입니다. 피해가 피해의식으로 발전하지 않게 하는데 신앙심처럼 도움이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피해를 잘 소화시키면 하나님의
넘치는 보상이 반드시 따른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의 가정이 적은 보상금을 받고 명일동으로 밀려난 것이 결국은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은혜를 받고 믿음도 커지면서 피해를 피해의식으로 발전시키지 않게 하는 능력도 커졌습니다. 그때부터
‘없는 사람’은 물론 ‘있는 사람’도 이웃으로 보는 눈이 생겼고 없는 사람의 아픔도 보였지만 있는 사람의 아픔도 보이게 되었습니다. 즉 사람은
다 차별과 편견 없이 품어야 할 이웃들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또한 그때 은혜를 받으면서 ‘없는 것’은 선에 가깝고 ‘있는 것’은
악에 가깝다고 여기는 편견을 극복하는 능력도 커졌습니다. 대기업 회장의 딸이 비행기 안에서 횡포를 부려 큰 공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반면에
대기업 회장의 딸이 안 가도 되는 군대에 자원해서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결국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각 사람의 ‘사람됨의 문제’이고 ‘고귀한 책임감의 문제’입니다.
피해의식으로 인한 편향된 사고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안목이
언제 생깁니까? 믿음이 커지고 말씀으로 은혜를 받을 때 생깁니다. 아무리 아픈 기억과 상처도 예수님의 빛이 그 삶에 임하면 그 아픔과 상처를
통해 새 살이 돋고 더 큰 창조적인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빛이 비치면 지옥과 같은 곳도 천국처럼 변합니다. 살면서 당하는 수치와 피해와
상처는 하나님의 보좌로 인도하는 웜홀 역할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살면서 당한 피해를 피해의식으로 발전시키지 말고 오히려 평화와 나눔을
향한 거룩한 도전과 결단으로 승화시키십시오.
또한 피해의식은 불평을 통해 체질화될 때가 많기에 불평이 입에서 나올 것 같으면 금방
침묵 모드 및 기도 모드로 들어가는 훈련을 힘써 하십시오. 네 탓으로 돌리는 마음보다 네 덕으로 돌리는 마음을 키우고 미운 일을 깨끗이 잊고
미운 사람을 깨끗이 용서하는 훈련도 잘하십시오. 그래서 눈빛이 예수님의 눈빛이 되게 하십시오. 그런 놀라운 삶의 변화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기초적인 시발점이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를 통해 예수님과 친밀해지면 오물 냄새가 나는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백합화 냄새를 풍기며
살 수 있습니다. 피해를 당하고 상처를 입어도 그때 자기를 성찰하며 회개하고 더욱 예수님을 붙잡고 살면 됩니다.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절기인
대림절은 자기성찰을 통해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새롭게 주님의 뜻과 꿈과 비전을 따라 살겠다고 결단하는 절기로 삼아야 합니다. 항상 다윗처럼
회개하는 삶에 탁월해서 선택의 축복, 평안의 축복, 교제의 축복, 자유의 축복, 그리고 기도를 축복을 얻어 누리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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