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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이상호 목사............... 조회 수 530 추천 수 0 2015.02.22 23:5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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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3:34-35 
설교자 : 이상호 목사 
참고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지금, 서로 사랑하라

요13:34-35                                          

13. 11. 24, 사랑의나눔주일


영국의 에딘버러 시에 보비라고 하는 개가 있었습니다. 이 개는 평소에 자기를 아끼고 사랑해 주던 주인이 죽어 땅에 묻히자 14년이나 주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주인의 묘비를 지켰습니다. 이 개는 주인과 함께 다니던 인근 카페에서 사람들이 먹다 버린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추운 겨울에도 죽은 주인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머리를 주인의 묘비에 기댄 채 꽁꽁 얼어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주인을 잊지 못해 14년 동안이나 주인의 묘를 지킨 보비를 주인과 나란히 묻어 주었고 그 근처에 보비의 동상도 함께 세워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곳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사랑이 메말라 가는 각박한 세상 속에서 사람도 아닌 개의 한결같은 사랑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지난 주 오수에 다녀왔습니다. 지리산 목회자세미나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렀습니다. 임실군 홈페이지에 보면 김개인은 오수 의견 비에 나오는 인물로 천 년 전 신라시대 때, 이곳 영천에 살았던 사람이다. 임실 오수에 있는 의견비에 대해서 고려 고종 때 최자(崔滋) : 1188∼1260)의『보한집(補閑集)』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 거령헌, 오늘날의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에 살던 김개인(金鎧仁)은 충직하고 총명한 개를 기르고 있었다. 어느 날 동네잔치를 다녀오던 김개인은 술에 취해 오늘날 상리(上里)부근의 풀밭에 잠들었는데, 때마침 들불이 일어나 김개인이 누워있는 곳까지 불이 번졌다. 불이 계속 번져 오는데도 김개인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나지 않자, 그가 기르던 개가 근처 개울에 뛰어들어 몸을 적신 다음 들불 위를 뒹굴어 불을 끄려 했다.


들불이 주인에게 닿지 않도록 여러 차례 이런 짓을 반복한 끝에, 개는 죽고 말았으나 김개인을 살렸다고 한다. 김개인은 잠에서 깨어나 개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음을 알고, 몹시 슬퍼하며 개의 주검을 묻어주고 자신의 지팡이를 꽂았고 나중에 이 지팡이가 실제 나무로 자랐다고 하며, 훗날 ‘개 오’(獒)자와 ‘나무 수’(樹)를 합하여 이 고장의 이름을 ‘오수’(獒樹)라고 부르게 되었다."


신라말이 되었건 고려초기가 되었건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의 이야기이니 우리나라 역사상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애완견이며 충견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모쪼록 오수는 한 때 임실군소재지보다 더 발전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혹시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항간에 들리는 말에 의하면 보신탕용 개를 기르는 사람들 중 일부는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는 펌프를 이용하여 개의 고막을 파열시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개의 체중은 곧 돈인데 귀가 예민해서 작은 소리에도 짖어대고 신경을 날카롭게 하면, 살이 잘 찌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살찌우기 위해 일부러 고막을 터뜨린다고 합니다.


또 어떤 도살업자는 소를 죽이기 전에 일부러 다리를 부러뜨려 한참을 끌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소는 그 고통으로 인하여 많은 물을 마시게 되고, 그만큼 체중이 불어나 많은 부당 이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분명히 사랑이 죽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한 모습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모든 것들을 도구로 삼을 수 있는 세상, 그곳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지금 이 시대에만 있는 현상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들이 범죄한 이후로 계속된 현상이었습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있으나 사랑의 참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사랑은 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사랑의 걸식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필리핀 지진에 이어서 태풍 하이엔으로 고통하는 필리핀 영상 보고)


찬송가 503장에서 이런 세태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1절. 세상 모두 사랑 없어 냉냉함을 아느냐 곳곳마다 사랑 없어 탄식소리 뿐일세.

4절. 기갈중에 있는 영혼 사랑 받기 원하며 아이들도 소리질러 사랑 받기 원하네"

이런 세태 속에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새 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34절 말씀입니다.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주신 이 말씀의 의미와 교훈을 함께 나누도록 하시겠습니다.


1. 사랑은 때를 초월해야 합니다. 지금 사랑하라.


주님께서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선포하신 때는 본문 말씀이 위치해 있는 요한복음 13장에 의하면 유월절 전날 주님께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가까운 시점이었습니다.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때, 세상의 온갖 악의권세들이 고개를 들고 힘을 모아서 예수님을 대적하며, 예수님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서 마지막 발악을 하는 때였습니다. 예수님이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메시야라고 하더라도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스스로 인간의 몸을 입으신 분이셨습니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듯 인간이 되신 예수님께도 죽음은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수난을 앞에 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로 변하기까지 기도하신 주님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죽음의 검은 그림자가 예수님 앞에 성큼 다가온 그때, 주님이 겪으셔야만 하는 십자가가 시시각각 다가오는 때였습니다.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서 대신 지셔야 할 아픔이었고 고난이었습니다. 이 고난은 온 인류가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로서 예수님이 겪으셔야만 하는 무서운 형벌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53장 5절-6에서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위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하나님의 구속적 사역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주님은 가장 비참한 죽음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인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 주님에게는 채찍과 징계와 수난과 멸시가 준비되던 때, 모든 인간의 죄악을 짊어지시는 십자가의 죽음이 미리 세워진 비석처럼 골고다에 준비되던 때였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상황은 주위를 염려할 처지가 아니고, 그 누구를 위로할 때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 누군가로부터 따뜻한 위로의 한 마디가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때에 주님께서는 눈을 돌려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보셨습니다. 염려와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는 자기의 사람제자들을 보신 것입니다. 자기를 염려해야 할 그 때에 제자들을 보시는 주님의 모습, 그 속에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때를 초월하셔서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자기에게 죽음이 밀려오는 그 시간에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기독교의 사랑은때를 초월하는 사랑입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이웃 사랑이 우선이고, 죽음의 순간에도 연약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말씀 속에는 더 깊은 주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모든 순간에서 사랑의 지배를 받으며, 또 사랑하며 살라는 무언의 명령이 바로 그것입니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 속에는 그렇지 않은 때에는 물론 당연히 사랑하며 살라고 하시는 주님의 숨은 명령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의 사도들이 되어서 언제든지,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의 전달자가 되어 주님께서 주신 새 계명에 따라 사랑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2. 사랑은 벽을 초월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말씀하시기 전에 벌써 행동으로 어떤 것이서로 사랑하는 것인가를 보여주셨는데, 바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세족식 사건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4-5절입니다.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제자들과 식사를 하시는 자리에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입니다. 그 제자들 중에는 지금 예수님을 유대인들과 대제사장에게 팔기로 작정하고 그 기회만을 엿보는 제자, 가룟인 유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 모든 일들을 알고 계셨고, 누가 자기를 팔자인가도 알고 계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6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팔아넘기려고 모의하고 그 계획을 치밀하게 진행하고 있는 배신하는 제자까지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에 아마 유다의 발을 가장 정성스럽게 씻어주셨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음모와 배신의 벽을 넘어 실현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좋아하는 사람들만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누구든지 예수님에게 나오는 자는 다 예수님 사랑의 반경에 들어 있었습니다. 현대인들은 보이지 않는 벽으로 인해서 고통을 받고 있고, 그 벽으로 인해서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서로를 단지 경쟁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살아갑니다.


언젠가 어느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은상 군이 자신의 부모를 토막내고 시체를 유기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대로 죽이고 시체를 21토막을 내서 서울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지하철 구내의 쓰레기통과 외곽 지역에 토막난 시신을 유기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서 범인의 심리를 상담했던 이훈구 교수는 이 군과 상담을 하고 사건 전체를 돌아보면서 이것을 책으로 출판하였는데, 이 끔찍한 일을 저지른 이유와 동기는 아주 간단했습니다. 21살이 되도록 부모로부터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를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과 애정에 대한 결핍증이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 것인데, 부모들은 모두가 사회적으로 저명한 의사 부부였습니다. 그리고 형 역시 어느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수재였습니다. 그러나 이 군은 늘 가정에서 천덕구러기였으며 비교의 희생물이었습니다. 부모에게는 이 군이 수치스러운 존재로 느껴졌습니다. 또 부모가 이 군에게 실수를 하고 잘못을 했어도 미안하다고 말할 필요가 없는 소외된 존재였습니다. 이런 가정의 그늘 밑에서 이 군은 사랑에 굶주려 갔고, 가족들의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서 고통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이렇게 무서운 사건으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수많은 벽이 존재합니다. 나라와 나라, 사람과 사람, 심지어는 친구와 친구 사이에, 가족과 가족, 아내와 남편사이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갈등과 오해의 벽이 높이 쳐져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모든 장벽을 허무는 것이 사랑이라고 직접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몸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서로 사랑하라는 이 새 계명을 따라 살아가므로 우리 앞에 있는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서 사랑을 드러내는 주님의 참된 제자들이 되십시다.


3. 사랑은 나를 초월해야 합니다.


여러분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은 일차적으로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선에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염려해야 할 시선으로 자기를 보지 않습니다. 더 나약하고, 깊은 영적인 고독과 근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보시는 주님의 눈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계명을 듣기 전에 주님의 눈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눈에는 자신보다 다른 이들이 가득 차 있었고,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픈 자에 대한 관심, 지친 영혼에 대한 관심, 고독한 사람에 대한 관심,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관심입니다. 나를 보아야 할 그 시간에 나보다도 타인을 돌아보시는 주님의 관심은 우리가 지켜야 할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 관심 속에사랑의 실천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께서는나를 초월하셨습니다.


본문 34절에서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나 외에 그 누군가가 있어야 합니다. 나 혼자서 하는 사랑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중심이 된 사랑은서로 사랑이 아니라,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은 이기적인 사랑을 넘어서서 이타적인 사랑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시베리아 고산지대에 주로 서식하는 벨딩줄무늬 다람쥐 얘깁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천적인 오소리 등이 접근할 때면 위험 신호를 다른 다람쥐들에게 보내야 하는데, 이 신호를 보낼 때 나는 소리로 위치가 발각되어 천적으로부터 공격받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연구에 의하면 신호를 보낼 경우, 그렇지 않을 때보다 공격받을 확률이 평균2.5배정도 높다고 합니다. 이런 위험을 무릅쓰면서 그들은 숨거나 도망치기보다는 목숨을 걸고 다른 동료에게 신호를 보냅니다. 이렇게 신호를 보낸다는 것은 다른 다람쥐보다 먼저 천적을 발견했다는 것이며, 따라서 먼저 도망친다면 다른 다람쥐보다 살아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타적인 사랑과 희생으로 동료들을 위험으로부터 구하고 자신은 천적의 공격을 받아 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 작은 미물이 보여주며, 오직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기적 사랑의 노예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새 계명에 따라나를 넘어서서 사랑을 표현하는 주님의 참 제자들이 되십시다.


맺는 말


이 시대는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도,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나라들 사이에서도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찾아보기가 너무도 어렵습니다. 모두가 경쟁의 대상이고 내 이익을 위한 수단이요 도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죄로 인해 무정하게 변질되어버린 사랑을 회복시키시려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사랑은 때를 초월해야 하며, 벽을 초월해야 하고, 나를 초월해야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사랑을 실천하므로 사랑을 목말라하는 이 세상에서 주님의 참 제자로 사십시다.


찬송

503장 세상 모두 사랑 없어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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