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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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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http://blog.naver.com/malsoom/61228302 |
2009년 2월 1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로마서 5장 17절
설교제목 : 들으라!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로마 10:17).
<책 이야기>
최근 읽은 책이 『읽어버린 지혜, 듣기』(Wisdom of Listening, 서정록 지음, 샘터사)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듣는다는 것’의 영성적 차원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저자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자 서정록 씨는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그 대학원에서 사회철학을 전공했습니다. 또 그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에게 큰 가르침을 얻었고, 북미 인디언과 제3세계 원주민에 대한 공부를 통해 마음이 크게 열리는 체험을 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개안(開眼)이 토대가 되어서 고대의 샤머니즘, 인디언의 문화와 정신세계, 우리 풍류에 대한 탐구를 해오면서 ‘듣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서로는 <백제금동대향로-고대 동북아의 정신세계를 찾아서>, <지금은 자연과 대화할 때> 등이 있습니다.(저자 소개 참고).
이 책에서 저자는 ‘영성적 문명권’과 ‘현대문명권’을 대비시켜 놓고 있습니다. 저자가 생각한 이 두 문명 사이의 극명한 차이는 ‘듣기’와 ‘보기’에 있었습니다. 즉 영성적 문명권이 ‘듣기’의 세계에 주목하는 반면, 현대문명권은 ‘보기’의 세계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크게 공감이 가는 대목입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대체로 영적인 문화권에서는 귀와 소리를 중시해 왔고, 문명권에서는 눈과 시각적인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눈이 있다.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TV와 각종 영상물, 만화와 애니메이션 등이 그것을 말해준다. … 그러나 과도한 시각, 영상문화의 문제점들이 표면화되면서 다시 귀와 소리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 그것은 밖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에게로 되돌아가려는 것이다. … 그 길에는 정보와 지식보다는 삶의 의미와 지혜, 영적 성숙이 기다리고 있다.” 귀 기울여 경청할만한 메시지들이 들어 있는 대목입니다.
또한 이 책에는 <성경의 듣기-기도는 신의 음성을 듣는 일>이라는 별도의 차례를 만들어서 우리 기독교의 듣기 전통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내용입니다. △구약성경에 ‘듣기’와 관련된 말이 1천번 이상 등장하고, 신약에는 425번 이상 듣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 △예수님께서는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는 점, △모세가 훗날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사막에서 “침묵과 듣기와 기도로 성숙해 졌기” 때문이라는 점, △사무엘이 엘리 제사장과 함께 있을 때, 성전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이야기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성경에 수 없이 나오는 ‘들으라!’는 외침은 결국 세상의 길, 물질의 길을 가지 말고, 신이 인도하는 대로, 신의 말씀이 가리키는 대로 내면의 길, 영적인 길을 가라는 말이다.” 이어서 저자는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 시를 소개했습니다.
“나의 기도가 좀 더 마음을 모으고 내면을 향하게 될 때 / 나는 점점 더 말수가 적어진다 / 마침내 나는 완전히 침묵하고 / 듣기 시작한다//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 나는 처음에 기도는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그러나 뒤에 나는 기도가 단순히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 듣는 것임을 배웠다 // 기도라는 것은 자기가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다 / 기도는 침묵하는 과정이며 / 나아가 침묵 속에 들어가 / 마침내 신이 나의 말을 들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성경 이야기>
이제 성경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로마 10:17).】
오늘 성경말씀은 로마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 특히 로마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인들을 향해서 하신 사도바울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전혀 인정하지 있는 로마의 사람들을 향해서 애타는 심정으로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면서, ‘들음’의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이니, 제발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는 ‘들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단지 바울의 입에서 나오는 말소리를 귀를 통해서 듣는 차원을 말하는 것이었을까요? 결코 아니었습니다. 사도바울이 부탁한 들음은 그런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바울의 ‘들음’은 마음으로 듣는 것이었고, 영혼으로 듣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온 몸으로 듣는 것’이었습니다.
‘온 몸으로 듣기’란 이런 것입니다. 어떤 이야기가 귀속으로 들려온 후, 가슴속을 따뜻하게 데우고, 머릿속을 명철하게 각성시킨 다음, 손과 발이 그에 걸맞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떼는 일련의 과정, 그것이 바로 ‘온 몸으로 듣기’인 것입니다. 그렇게 온 몸으로 듣는 이에게서 생겨나는 것이 ‘믿음’이고 ‘신앙’이고 ‘영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의 신앙인이 생겨나는 일은 하늘이 놀라고 기뻐할만한 기적의 사건인 것입니다. 들음의 세계는 그런 것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정리하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들으라!”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반드시 ‘숨겨진 뜻’이 있습니다. 그 ‘숨겨진 뜻’에 귀를 기울이며 사는 이가 바로 하느님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이며, 신앙인이며, 영성의 사람입니다. △최근 들어 우리 나라는 물론 전 세계의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데, 이 현상의 뒷면에는 엄청난 ‘하늘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깊은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크고 작은 질병을 앓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중대한 하늘의 뜻이 서려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생과 역사의 이런 저런 일들의 이면에 서려 있는 하늘의 뜻에 귀를 기울이면 사는 사람이 바로 ‘믿음의 사람’이며 ‘신앙의 사람’이며 ‘영성의 사람’입니다. 이를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들으라!”는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귀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언제나 어디서나 하늘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축도 : 이제는 우리에게 진리의 길을 몸소 보여주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언제나 어디서나 사랑의 마음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진리의 상담자로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동행이 여기 고개 숙인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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