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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돌이키지 아니하면

말라기 궁극이............... 조회 수 409 추천 수 0 2015.02.26 10: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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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말4:5-6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2000년대 설교 

4장 5절-6절


5절-6절: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시겠다는 말씀이 있지요. 언제 보내시느냐 하면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하도록 하고, 깨닫도록 하고, 고치도록 해서 보내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엘리야를 발견을 하면 그 즉시 ‘심판의 날이 가까웠구나’ 그렇게 감지를 해야 되겠어요. ‘심판을 피하고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되겠구나’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먼저 ‘이스라엘 세상이 신앙사상적으로 어떻게 흐르니까 엘리야를 보내더라’ 하는 것을 역사적으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주전 900여 년 전에 북조 이스라엘 왕 아합이 바알우상을 섬기는 지도자 여자 이세벨을 자기 아내로 끌어들여 온 이스라엘을 우상의 종교로 타락을 시킬 때 하나님 말씀에 신앙심이 뜨거운 엘리야를 보내서 이 엘리야가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 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땅을 재앙으로 치면서 우상을 섬기는 일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간절하게 외친 역사가 있었지요.


그 다음에 또 보면 예수님 도성인신 초림으로 오시기 전에 6달 먼저 태어나게 한 세례요한이 있었지요. 엘리야 정신을 닮았습니다.


이 때에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종교는 의식과 제도는 아주 엄했지만 그러나 신앙중심 사상은 완전히 물질적 세상적인 그런 신앙으로, 외식으로 흐르고 있었지요.


이 때 세례요한은 어린양 예수님을 소개하기도 했지만 회개해서 세례를 받고 새로운 마음과 정신으로 개혁을 해서 이스라엘이 대망하던 메시아를 영접하라고 광야에서 세례를 주면서 외쳤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엘리야의 신앙정신을 가진 엘리야가 한 명이 될는지, 두 명이 될는지, 여러 명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많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가 주님께로 바로 돌아오게 하는 사역을 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 말이요. 엘리야의 역할이더라 그 말입니다.


6절에 엘리야의 그 역할이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엘리야가 누구냐? 이름 엘리야가 아니라, 모양 생김새 엘리야가 아니라 신앙사역에서의 성질을 잘 말해주고 있지요.(6절에서)


아까는 시대적 역사적으로 계시된 인물로 보았지만 우리는 신앙 본질적 성질적 사역으로 잘 말을 해 주고 있으니 이 면을 우리는 깨달아 잘 알고 있어야 되겠지요. 모르면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이단 짓을 하게 됩니다.


기독교 안에, 교회 안에 주님과 대적노릇을 하는 자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들은 그 첫째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고집만 하게 되고, 두 번째는 ‘이름이 엘리야더라, 엘리야 같은 옷을 입었더라, 생김새가 엘리야를 닮았더라, 광야에서 토굴에서 혼자 산다더라, 영음을 잘 듣는다더라, 족집게처럼 잘 알아맞추더라’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다 그 말이요.


모르지요. 또 어떤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니 사단 마귀가 자기 앞잡이로 쓰려고 미리 구렛나루 수염이 난 사람을 잡아다가 약대털옷을 입혀서 이발도 안 하고 도사지팡이 같은 것을 손에 들려서 나타나게 한다면 ‘와,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면서 놀라서 따르는 사람도 많이 있을 수 있겠다 그 말이요.


그렇지 않아도 부분적이긴 하지만 ‘생활방식이 특이하다더라’ 그런 말을 많이 하지요? 생활방식이 특이하니까 진짜 교인인 것처럼 말이요. ‘옷을 어떻게 입었다더라, 신은 무슨 신발을 신는다더라, 음식을 어떻게 먹는다더라, 금식기도를 잘 한다더라, 기도에 응답을 잘 받는다더라, 부부생활을 안 한다더라, 얼음물에 목욕하고 눈밭에서 기도한다더라, 집회 때는 열흘 간 밥도 안 먹고 한다더라, 잠도 안 자고 한다더라, 얼굴 인상을 조금만 보아도 주님얼굴처럼 인자하다더라’ 그런 소리를 한단 말이요. ‘설교를 듣기도 전에 그 분 얼굴만 봐도 은혜가 된다더라’. 이게 다 귀신같은 소리지요.


‘기도할 때 그 사람 뒤에서 후광이 난다더라’ 하면 ‘와, 진짜다’ 하면서 그리로 우 하고 쏠린다 그 말이요. ‘내가 예수다’ 하면 그만 그리고 쏠리고, ‘내가 다윗이다’ 하면 그리로 ‘우’ 하고 쏠리고, ‘나는 40일 금식기도를 했다’ 하면 ‘우’ 하고 그리로 쏠리다가 ‘나는 80일 금식기도를 했다’ 하면 그만 그리로 ‘우’ 하고 쏠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으니까 사단 마귀가 미리 준비를 시켜서 엘리야처럼 그런 모습으로 만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된단 말이요.


‘저 교회, 저 교파, 저 교단은 싸움만 해서 싫다’고 해서 ‘그러면 우리 교단은 안 싸우고 돈 강조도 안 한다’고 하니 그런 소리를 듣고 그만 그리로 ‘우’ 하고 몰린단 말이요.


거의 대부분 진리이치의 말씀, 성경을 깨닫는 신앙하고는 상관이 없이 예수님을 믿고, 그냥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이방신관을 뿌리 깊게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을 하나님처럼, 신처럼 만들어 놓고 진리의 깨달음과 상관이 없이 절대 복종하고 믿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성경을 볼 줄을 모르거나, 성경을 안 보거나, 성경을 본다는 사람도 문자적으로만 보고, 일반 도덕성적인 개념으로 보고, 이방신관적으로 예수를 믿는 게 많단 말이요.


그런 사람들을 가만 보면 몸도 빼앗길 가능성이 많고, 재산도 사기 당할 성분을 다분히 안고 있습니다. 사기꾼을 못 만나서 그렇지 성경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항상 신앙사기를 당할 성분을 안고 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그 신앙들을 보면 이름이 엘리야가 아닌 다른 이름이라 할지라도 엘리야처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역을 한 종들이 많다 그 말이요.


노아는 주전 2500여 년 전에, 주님이 나시기 전에 당시에 가인의 후손들의 악행은 말할 것도 없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들도 사는 목적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모두 세상 누림성의 죄를 지으면서 살 때 - 이게 악하게 사는 거라 그 말이요. 완전히 소원 목적이 세상 누림성으로 사는 것이 죄라 그 말이요. - 노아는 하나님의 설계대로 120년 동안을 믿음으로 방주를 지으면서 ‘앞으로 홍수심판이 있을 터이니 회개해서 방주로 돌아오라’고 전도하면서 외쳤다 그 말이요. 그러나 멸망 받을 자들은 콧방귀만 뀌고 듣지를 않았습니다.


또 예수님의 사도들 중에,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한다는 이유로 세상이 사도요한을 밧모섬에 가두었는데 주님께서 교회의 타락상과 진리성도들의 구원과 세상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이 사도요한에게 미리 보여주셔서 성도들로 하여금 믿음의 담대함과 영원한 소망을 갖도록 한다는 점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종들도 많이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엘리야의 역사를 속지 않고 더욱 확실하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즉 예수님 당신이 초림으로 오셔서 영적 계시적으로, 교훈적 계시적으로, 사역적 계시적으로 100% 완전하게 주님이 보여주셨습니다. 속지 말라고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은 부분적으로만 보여줬지만 주님은 다 보여줬다 그 말이요.


첫째는 영적 계시적으로라는 말은 예수님의 언행심사가 우리의 영을 위한 하나님의 온전을 향한 성화구원의 역사라는 말이요 - 성화구원은 기본구원이 전제가 되어 있는 겁니다. - 두 번째는 교훈적 계시적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언행심사가 하나님의 생명이치 도덕이치 영적인 진리이치가 들어 있는 말씀이요, 그 역사라는 말이요, 세 번째는 사역적 계시적이라는 말은 복음사역의 소원 목적이 이 세상목적을 위함이 아니라 영원 궁극적인 것에다 목적을 둔 사역이라는 말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진리만 잘 배우면 속지를 않습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주님을 잘 깨달으면 재림 전에 엘리야의 역할을 하는 자를 잘 알 수가 있다 그 말이요.


이제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진리이치를 깨닫는 면에 똑똑해져야 합니다. 어리석음을 버려야 합니다.


첫째로 집회 때 이적이 나타나니 그것만 보고서 ‘와, 저 사람은 시대적 엘리야다’. 두 번째는 ‘세상 학적, 종교적 명예가 아주 무거운 걸 보니 와, 저 사람은 시대적 엘리야다’. 세 번째는 ‘큰 건물과 조직을 가졌으니 와, 저 사람은 시대적 엘리야다’. 네 번째는 ‘누구보다도 많은 무리가 모였고, 많은 헌금이 쏟아져 나왔고, 불신세계까지, 심지어는 공산권 세계에서까지 알아주니 와, 저 사람이 시대적 엘리야다’ 하는 이런 비진리적 이질적 세상적 우상적 타락적 마귀적인 신앙사상을 버려야 합니다.


역사 속에 온 엘리야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 말씀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동족들에게 환난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앞으로 신앙사상적인 엘리야도, 신앙사상적인 면에서의 사상적 엘리야도 계시록에도 나타나 있듯이 환난 핍박을 많이 받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역을 하고서 나중에는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겁니다. 계시록에 나와 있지요.


6절 본문의 말씀에서 역사적 측면으로 나타난 인물에서 신앙사상적인 면을 우리가 생각을 해 본 겁니다.


역사적인 면을 말씀을 드렸는데 그러면 그렇게만 깨달으면 다 깨달은 것이냐? 또 깨달을 것이 없는 것이냐 하면 얼마든지 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서 역사적 인물적으로만 깨닫는데서 멈추지 말고 진리이치로서의 하나님의 온전으로 되는 성화구원에 유익이 되도록 많은 깨달음을 가져야 바른 신앙생활을 성경대로 하고 갈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6절의 말씀에 아비는 무엇이냐 하면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그랬으니 아비는 양육자요 보호자요 인도자입니다. 자녀는 또 무엇이냐 하면 양육을 받을 자요, 보호를 받을 자요, 인도를 받을 자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아비와 자녀들의 마음들이 모두 떨어져 있어요. 아비의 마음과 자녀들의 마음이 사랑으로 결합이 아니고, 인격의 결합이 아니고 서로 불목상태로 의사가 통하지 않는 채로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양쪽의 마음을 화목 시키고 결합을 시키려면 아비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라야 하고, 또 자녀들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어느 한 쪽만 알면 일방적이 돼 버립니다.


어떻게 아비의 마음을 자녀들에게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할 것인가? 순서적으로 아비의 마음을 먼저 나타내야 하느냐, 아니면 자녀들의 마음을 먼저 나타내야 하느냐? 어느 쪽이 먼저 ‘내 마음이 이렇습니다’ 하고 나타내야 되느냐 그 말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중간 중보의 역할을 100% 만족하게 하신 분입니다. 죽기까지 고난으로 100%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자녀들에게 먼저 나타내 주셨지요? 또 죽기까지 100% 순종으로 아버지께 대한 사랑으로 나타내 주었습니다. 자녀들 입장에서 볼 때 말이요.


이론적으로 보면 아버지의 마음이 먼저 나타났고, 자녀들의 마음은 나중에 나타났고. 그러나 중보사역을 보면 동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더라 그 말이요.


이 숨어있는 사랑의 오묘한 이치를 아는 자녀들은 사랑으로 아버지와 인격적 애정적 결합을 해서 의사의 대립성이 없이 순종으로 화목으로 나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그리고 교훈적 사역적 측면에서 보면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 목적과 추구성을 잘 아는 하나님의 종이, 택한 자녀들의 소원 목적 추구성을 잘 아는 종이 하나님과 의사단일성으로 화목케 하는 역할로 인도를 하는 겁니다. 이게 이제 신앙 사상적으로 보는 엘리야의 사역이라 그 말이요.


창조주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아는 종이, 타락된 인간의 마음을 잘 아는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의사단일의 소원 목적으로 화목케 하는 역할로 인도를 하는 겁니다.


앞으로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 나오던, 몇 사람이 나오던 하나님 아버지와 의사단일로 화목케 하는 그 역사를 하는 종은 엘리야의 사역을 하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가 또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적인 면을 두고 교회적으로 보면 말세가 되어 옴을 볼수록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말씀, 진리로 하나님의 본질적인 의사단일성의 신앙을 가져야 하나님과 인격적 결합으로 하나가 되고 화목이 될 터인데 인도자는 인도자대로 비진리적으로 나가고, 교인들은 교인들대로 비진리적입니다. 전부는 세상적 물질적이고, 모두는 따로따로 제각각이더라 그 말이요. 비진리적 이질적으로 하나님과도 제각각입니다. 하나님 것으로 하나가 아니라 그 말이요. 교회적으로 보면 그렇다 그 말이요.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적인 면을 두고 그걸 전제로 하고 교회를 보니 오늘날 교역자는 교역자대로, 교인들은 교인들대로, 선생이면 선생대로 모두 제각각입니다. 교인들도 그 교회 교역자, 인도자의 신앙사상을 따르는 것이 별로 없어요. 제각각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는 가정적으로 들어가서 보면 아비와 자녀들과 세상적 물질적 소원 목적적으로 역시 제각각입니다. 아까는 아비와 자녀들의 마음을 주님의 중보적 사역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서, 그 다음에 종들의 세계를 보고, 그 다음에 교회들의 세계를 보았고, 이제는 가정적인 면의 그 세계를 보는 겁니다.


가정적으로 보면 소원 목적이 아비와 자녀들과 제각각이란 말이요. 영적 신앙적 진리적 의사단일성의 결합도 없습니다. 인격적 애정적 결합도 없고, 신앙도, 소원 목적도 비진리적 세상적으로 모두 제각각이에요. 교회 나가는 가정도 그렇다 그 말이요.


아비는 아비대로 ‘나는 어른입네’ 하며 우두머리 노릇을 하려고 하고, ‘권력자입네’ 하고, ‘선배입네’ 하며 ‘너는 나를 따르라’ 하고, 안 따르면 억압과 강압으로 누르지요.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세상오락과 취미대로 살려고, 세상목적의 자기 살 길 찾느라고 고삐 빠진 송아지처럼 세상천지를 모르고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우리에게 향한 뜻은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의 온전으로 되는 겁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딤후3:11-17로 보면 성경 전체가 주는 교훈의 목적이 우리의 온전이더라 그 말이요. 이것을 내어버린 신앙, 가르침, 인도자는 무슨 짓을 하겠느냐 그 말이요. ‘예수이름으로 부자 되게 해 달라, 병 낫게 해 달라, 사업 만사형통되게 해 달라, 크게 만들어 달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하나님 자녀들의 마음을 모르면 의사적 인격적 애정적 결합으로 화목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 의사적 대립을 일으킵니다. 이걸 성경에는 ‘어그러지고 패역한 족속’ 이라고 그랬단 말이요. 벼락불이 떨어지는 심판을 받게 된다 그 말이요.


그런고로 가정적으로 볼 때, 또는 속화되고 타락된 교회적으로 볼 때 아비는 교만을 버리고 겸손의 아이로 낮아지고, 낮아진 심정의 자녀는 신앙의 아비처럼 자라야 되는 겁니다. 이게 엘리야의 신앙정신 사상입니다.


돌이키지 아니하면 내가 와서 저주로 땅을 칠까 하노라: 저주로 땅을 친다는 것은 곧 재앙을 말합니다. 첫째로 땅이 저주를 받는다면 자연은총 물질은총이 끊어집니다. 인간은 이게 있어야 사는 것인데 저주를 받으면 육적인 배고픔과 기근을 당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땅을 자기의 육신으로 말한다면 자기의 몸이 저주를 받고 질병으로 재앙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고로 저주로 두려운 재앙을 만나기 전에 돌이켜야 하는 겁니다. 돌이키면 생명과 평강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말하는 건 아닙니다. 믿는 사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는 거란 말이요. 이스라엘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 겁니다.


돌이킨다고 하는 것은 잘못 나가고 있는 것을 돌이키라는 말인데 ‘무엇 무엇을 내가 못했습니다, 행동 활동을 못했습니다. 앞으로 잘 하는 것으로 마음을 고쳐먹겠습니다’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보다도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을 부득부득 어기고 하는 것을 돌이켜야 하는 겁니다. 누구부터냐? 첫째는 ‘제사장 너부터, 인도자 너부터 고치자’ 그 말이요. 말라기 선지자가 제사장부터 말하고 있지요?


하나님을 무시하는 마음을 고치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은 행동으로 나타나지요? 오늘날 종들은 구약의 제사장은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그런 역할을 하는 사역인데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역자들이 많습니다. 고치자 그 말이요.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태도지요.


이런 자는 신앙도 물질도 정신도 마음도 모두 다 자기 육 위주로 자기 목적을 위해 살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그 정신은 없습니다. 전부는 찌꺼기로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 ‘먼저 하나님’ 하는 이것이 들어가 있는 게 아니고 자기 볼 장 다 챙겨놓고 나머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찌꺼기로 하나님을 섬기는 거다 그 말이요. 이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번거롭고 귀찮다는 태도라 그 말이요.


왜 그런 정신이 되느냐 하면 하나님의 소원 목적을 모르면 하나님을 무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본 역사를 모르면 하나님을 무시하게 되고, 자기 직분의 배후에 무엇이 약속이 돼 있는지 모르면 또 하나님을 무시하게 됩니다. ‘생명과 평강이니라’ 하는 게 들어 있는데 그걸 모르니 하나님을 무시하게 되고.


이런 것을 다 고치려면 하나님의 말씀, 진리지식을 가져야 합니다.(6절) 이것을 옳고 그름의 기준적인 척도로 삼고 백성들에게 바른 판단 평가성이 되게 해 주라는 겁니다. 그러니 진리지식을 가져야 되는 거지요. 그리고 무너졌는데 또 무너질 에돔족의 물질적 지상낙원을 꿈꾸지 말라는 겁니다.(1장)


야곱의 고집에 하나님이 져주리만큼 사랑하신 조상들의 신앙을 잘 관찰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과 평강의 언약을 놓치지 말고 너의 얼굴에 똥칠이 되기 전에 고치자는 겁니다.


이제 큰 두 번째는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가증된 일들을 고치라는 거지요. 첫째로 이방우상 섬기고 이방인들 딸들과 결혼을 하고 있었지요. 두 번째는 자기 아내를 학대하고 버리고 또 딴 여자를 취한다고 했지요. 이것은 가정적으로 거룩한 역사는 없고, 신앙의 가정이 무너진 겁니다. 아비는 아비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콩가루가 된 겁니다. 가정은 가장부터 부모가 진리신앙을 바로 가져야 가정이 바로 섭니다.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 자녀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한 것은 교역자로도 보고, 가정의 부부와 자녀들로도 보고, 아주 올라가서는 하나님과 백성들로도 보고. 중보의 사역은 주님이 다 했으니까 그 기준을 놓고 보자 그 말이요. 그러니까 가정의 가장부터 부부는 진리로써 하나가 돼야 해요. 그래야 대화가 통하고, 생각 마음이 통하고, 가정이 바로 섭니다.


큰 세 번째는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도둑질하는데 이것을 고치라는 겁니다.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창고에 들이라는 거지요.


세상 전부는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거지요?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 몸도 하나님께서 지으셨고 피로써 구속을 했습니다. 모두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아홉은 네가 형제를 위해 쓰라 그 말이지요. 그러나 하나는 하나님 나의 것이니 쓰지 말고 그 하나를 하나님 창고에 들이라 그 말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곳에다, 즉 창고에 넣으라고 했지요. 진리복음이 있는 곳에 내라 그 말이요. 그곳이 하나님의 창고와 마찬가지라 그 말이요. 하나님 창고에 들일 것은 십일조와 헌물!


구약에 보면 바쳐진 이것이 제사장들이나 성전에서 일을 하는 자들이나 백성들의 생명과 평강의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해 쓰여졌다 그 말이요.


그런데 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생명과 평강의 축복을 가로막는 것이다 그 말이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했으니까! 그러니 저주가 내리게 되는 겁니다. ‘왜 도둑질을 해서 너와 너의 집과 온 이스라엘에게 저주가 내리게 하느냐’ 그 말이요. ‘네가 이것을 똑바로 하라’는 겁니다.


아홉은 네 형제와 가정을 위해 쓸 것이고, 하나는 하나님의 것이 있다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철두철미한 진리의 신앙정신으로 살아보라는 겁니다. 뒤끝이 어떻게 되나?


하나님 백성과 세상사람들과 다른 것은 세상사람들은 열 가지 전부는 나의 것이라고 그러지요? 세상 전부는 나의 것으로 하고 다 차지하려고 살고 있지요. 그러니까 세상을 다 자기 것으로 여기고 자기 주머니 속으로 넣으려고 하지 하나님의 것은 하나도 없다 그 말이요. 하나님 것으로 여기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통치를 받는 성도는 아홉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으로 자타의 구원을 위해 쓰는 것이고, 하나는 하나님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그 말이요. 성도는 그렇다 그 말이요.


그런데 고맙게도 하나님의 것이지만 하나님의 창고에 들어놓으면 나에게 축복으로 창고가 넘치도록 돌아온다는 사실입니다.


십분의 일을 넣고 내 창고가 넘친다면 몇 곱으로 되는 것이지만 실은 그 때는 몇 곱이 아니고 주시는 분의 마음대로 원대로입니다. 말하자면 ‘너 다 가져라’ 그 말이요.


우리가 이걸 영적인 면에서 보면 첫째는 나의 마음창고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넘친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 집 식구들의 마음창고들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넘친다는 사실입니다. 넉넉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는 창고가 된다 그 말이요.


창고를 채워준다고 하는 것은 ‘너 실컷 먹고 마시고 써라’가 아니잖아요. 창고가 넘치도록 준다는 것은 나누어주라는 것도 들어 있잖아요?


마음창고에 축복을 받으면 그 다음에 덤으로 오는 축복은 하나님 아버지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위해서 영화롭게 하기 위해 알아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따질 건 아니다.


그런고로 저주로 땅을 치기 전에 우리가 고치고 살아야 되겠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생명과 평강의 복을 받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 말이요.


(말라기 끝)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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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53 출애굽기 천상에는 하나님, 천하에는 부모님 출20:8-12  강종수 목사  2015-03-01 526
11752 여호수아 축복의 땅을 바라보라 수18:1-10  이승남 목사  2015-03-01 681
11751 스가랴 두루마리 환상 슥5:1-11  구하라 목사  2015-02-28 372
11750 스가랴 다섯번째 환상 슥4:1-14  구하라 목사  2015-02-28 289
11749 스가랴 네 번째 환상 슥3:1-10  구하라 목사  2015-02-28 244
11748 스가랴 예루살렘 재건의 환상 슥2:1-13  구하라 목사  2015-02-28 403
11747 스가랴 만군의 여호와 슥1:1-21  구하라 목사  2015-02-28 1060
11746 시편 고난 중 찬양 시22:23-31  강승호 목사  2015-02-28 914
11745 갈라디아 감격의 신앙생활 갈4:15  한태완 목사  2015-02-28 1062
11744 마가복음 존재와 삶 막8:31-38  강승호 목사  2015-02-27 418
11743 누가복음 영적 삼일운동 눅3:1-6  이장규 목사  2015-02-27 814
» 말라기 너희가 돌이키지 아니하면 말4:5-6  김경형 목사  2015-02-26 409
11741 말라기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니리 말4:1-6  구하라 목사  2015-02-26 450
11740 말라기 너희는 나를 괴롭혔다 말3:1-18  구하라 목사  2015-02-26 324
11739 말라기 회개의 촉구 말2:1-17  구하라 목사  2015-02-26 357
11738 말라기 하나님의 경고 말1:1-14  구하라 목사  2015-02-26 503
11737 마가복음 아리마대 요셉 막15:42-47  강승호 목사  2015-02-25 1067
11736 마가복음 나중 됨으로 먼저 됨을 막10:28-30  김부겸 목사  2015-02-24 527
11735 로마서 들으라! 롬5:17  김부겸 목사  2015-02-24 343
11734 창세기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세요 창32:22-32  김부겸 목사  2015-02-24 537
11733 창세기 하나님의 영이 깃든 … 창1:1-2  김부겸 목사  2015-02-24 375
11732 마태복음 신앙을 지키는 사람 마25:1-12  최장환 목사  2015-02-24 763
11731 에스겔 행복의 조건 겔21:1-12  최장환 목사  2015-02-24 467
11730 마태복음 자기 맡은 책임을 다하라 마18:14  한태완 목사  2015-02-23 850
11729 요한복음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 요1:1-7  이상호 목사  2015-02-23 888
11728 창세기 인권(人權)은 신권(神權) 창1:26-28  이상호 목사  2015-02-22 277
11727 요한복음 지금, 서로 사랑하라 요13:34-35  이상호 목사  2015-02-22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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