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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43: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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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4.12.29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523 ) |
복된 인도를 받는 7대 자세
(시편 143편 1-12절)
< 실망을 이겨내십시오 >
세월이 참으로 빠릅니다. 빠른 세월을 잘 극복하지 않으면 인생이
비참해집니다. 특히 무책임하고 교만하게 살면 대가를 반드시 받습니다. 요즘처럼 인간관계의 단절이 심한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요새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개에 대한 애정이 대단해서 그런 사람들에 의해 ‘반려견’이란 용어까지 등장했습니다. 물론 ‘반려’라는
원뜻 그대로 개와 결혼해 배우자로 삼고 살겠다는 뜻은 아니겠지만 그런 용어까지 등장한 것을 보면 현대인들의 외로움과 상실감이 크다는
뜻입니다.
요새 애를 낳는 집은 줄고 있지만 개를 기르는 집은 늘고 있습니다. 조만간 15세 이하의 애보다 개가 많은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핵가족 시대를 지나 1인 가구가 늘면서 외로움을 덜고 위안을 얻으려고 개와 같이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심지어
외국처럼 개가 유산을 받고 개가 시장이 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사람한테 치이고 믿었던 친구가 배신하는
세상을 보면 오만정이 다 떨어져서 사람과는 부딪치기도 싫고 필요한 말 외엔 말도 하기 싫습니다.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 밥 먹듯이 배신하는데
개는 그런 배신이 없어서 더 좋습니다.” 사람에 대한 불신감이 대단합니다. 문제는 사람에 대해 극도의 불신감을 표현하는 편견적인 사람이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불신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현실입니다.
한때 ‘개’란 말이 들어간 욕은 가장 흔하고 심한 욕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새
개의 주가는 하늘을 찌릅니다. 주인의 많은 사랑을 받는 개는 심지어 사람까지 무시합니다. 이전에는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큰 문제였지만
앞으로는 개가 사람을 무시하는 시대도 올 것 같습니다. 그때가 되면 ‘개무시’란 비속어가 ‘사람이 사람을 심하게 무시하는 행위’란 뜻이 아닌
‘개가 사람을 무시하는 행위’란 뜻으로 쓰일 날도 올지도 모릅니다.
집에 오면 개는 꼬리 치며 좋아해주는데 아내는 한 품은
악귀처럼 달려들고 자식들은 돈 먹는 악귀처럼 달려든다고 합니다. 그처럼 사람에게서 실망하고 배신까지 당하니까 배신이 없는 개가 좋다고 합니다.
문제는 자신은 배신을 한 번도 안 한 사람처럼 여기는 ‘정신적인 무지’입니다. 사람은 다 연약한 존재이기에 배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배신과
불신을 극복하면서 최상의 길을 찾아나가며 사는 삶이 바로 성도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 복된 인도를 받는 7대 자세
>
살다 보면 다윗처럼 사방에 대적이 둘러싼 것과 같은 절망적인 순간을 만납니다. 그때 최상의 살 길을 찾으려면
하나님으로부터 최상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최상의 인도를 받습니까?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고백을 통해 절망적인 상황에서 최상의
인도를 받는데 필요한 7가지 자세를 생각해보겠습니다.
1. 겸손히 기도하십시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다윗은 자기 기도를 무조건 들어달라고 하지 않고 ‘주의
진실과 의’를 따라 응답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한 것은 자신의 진실과 의를 자신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도 죄와 허물이 많은
존재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바로 이어서 하나님 앞에 의로운 인생이 누가 있겠느냐고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했습니다(2절).
은혜는 항상 공의를 전제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방종이 되고 값싼 은혜가 됩니다. 다윗은 기도할
때 먼저 하나님의 공의대로 응답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 공의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심판을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기도할
때 무작정 달라고 기도하거나 자기중심적인 기도를 드리지 말고 하나님의 진실과 의를 앞세운 바른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바른 기도가 바른 인도를
선도합니다.
2.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다윗은 이 시편을 쓸 때는 원수가 그를 핍박하며 그의 생명을 땅에 엎어서
절망적인 암흑 상황이었고 또한 마음의 심한 상처로 참담한 상황이었습니다(3-4절). 그 상황을 어떻게 이겨냈습니까? 과거에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고 끊임없이 읊조리고 생각하면서 이겨냈습니다(5절). 그처럼 과거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은혜를 묵상하면 속상한 것이 많이 풀립니다.
사람에게 경험은 매우 중요합니다. 경험은 시야를 크게 해주면서 삶의 지혜를 줍니다.
얼마 전에 어렸을 때 살던 서울 옥인동을
가보았습니다. 약 20여 년 전 결혼 초창기에 아내와 함께 그곳을 잠깐 들렸을 때도 길과 동네가 어렸을 때보다 아주 작아보였습니다. 그때는
몸집이 커져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20년 만에 가보니까 길과 동네가 20년 전에 보았을 때보다 더 작아보였습니다. 성인이 된
뒤로는 몸집은 커지지 않았는데 왜 동네가 더 작게 보였을까요? 몸집은 안 커졌어도 시야가 더 커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왜
어르신들의 말을 깊이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까? 경험을 통해 크게 보는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경험이 중요하고 특히 은혜의 경험은 더욱
중요합니다. 속이 상하면 과거에 있었던 하나님 은혜의 손길을 기억하고 읊조리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그때의 은혜가 앞으로도
있을 줄 믿습니다. 늘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열심히 살게 하소서!” 그처럼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고 읊조리면서 내일의
은혜를 확신하면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으로 속도 풀리고 최상의 길도 열리게 될 것입니다.
3. 주님을
사모하십시오
다윗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를 향해 손을 펴면서 목마른 사슴이 물을 사모하듯이 주를 사모했습니다(6절). 다윗은
고난을 통해서도 영혼이 피곤했지만 거꾸로 영혼이 피곤할 정도로 간절히 하나님을 사모했습니다. 그런 자신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주의 얼굴을
숨기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7절).
다윗이 주를 향해 손을 편 것은 자신이 빈손이란 표시이고 항복했다는 표시입니다.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면 손에 소유가 가득하고 남을 항복시켜야 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려면 “하나님! 저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아무 것도 아닙니다.”라고 항복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을 지나치게 신뢰하고 자기 소유와 능력을 의지하면 절망적인 상황에 처할 때 영혼이 급격히
무너집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 앞에 항복하면 어떤 절망적인 상황도 금방 딛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4. 말씀을
들으십시오
본문 8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이 구절을 보면 다윗도 새벽기도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고난 중에도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신에게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들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또한 말씀을 통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려달라고 하면서 자기 영혼을 주께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한 말씀이 언제 임합니까? 하루의 첫 시간에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겠다고 다짐할 때 임합니다.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이 채워질 때 물질과 명예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하게 되고 더
나아가 환경으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즉 영혼을 물질과 명예로 채우려고 하면 집착과 불안에 빠지지만 말씀과 은혜로 채우면 자유와 평안을 얻게
되고 동시에 최상의 길로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5. 주님께 피하십시오
다윗은 원수의 손길에서 벗어나려고 하나님께
피해 숨었습니다(9절). 그처럼 힘들 때 사람을 찾아다니지 말고 미신과 기적을 찾아다니지도 마십시오. 특히 자기가 피난처라고 주장하는 이단은
더욱 멀리하십시오. 절망적인 순간에 사람을 찾아다니는 행위는 오히려 ‘하나님을 피하는 행위’입니다. 절망적인 순간에는 밖으로 나다니기보다 무릎
꿇고 기도하고 현재 섬기는 자리에서 더욱 섬기려는 것이 진짜 ‘하나님께 피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피하는 행위’와 ‘하나님께 피하는
행위’를 잘 구분해야 이단과 사탄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속이 너무 상하면 술을 퍼마시거나 차를 과속으로 몰거나 이불
덮어쓰고 누워있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합니다. 그래도 속은 거의 풀리지 않습니다. 술을 퍼마시면 속만 버립니다. 차를 과속으로 몰면 그때 사고도
제일 많이 납니다. 이불 덮어쓰고 누워있으면 더 우울해집니다. 그때 친구를 찾으면 괜히 찾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대부분입니다. 속상할 때는
사람을 찾고 의지하지 마십시오. 그때 찾고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힘들 때나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께 피하는 선택을 하면 최상의 길로
인도될 것입니다.
6. 주의 뜻을 행하십시오
본문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이 고백은 다윗이 왜 멋지고 복된 인물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다윗은 고난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도 “하나님! 제게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시고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를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또한 다윗은 자기 기도를 무조건 들어달라고 하지 않고 자기를 공평한 땅으로 인도해달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 심은 대로 거두게 하소서! 그것만 해도 족합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려는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심는 자에게 심은 것보다 넘치게 거두게 하십니다. 그처럼 기도할 때 그저 복을 많이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행하겠다는 마음과 함께 많이 심겠다는 결단을 가지고 기도하면 최상의 길로 인도받는 최상의 은혜가 주어질 것입니다.
7. 주의
종이 되십시오
본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 이 구절에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주의 의로”라는 고백도 보통 은혜가 되는 고백이 아닙니다. 다윗은 무조건 기복적인 기도를
드리지 않고 기도하면서도 주의 이름이 높아지고 주의 의가 실현되기를 원하면서 주의 구원과 인자하심을 구했습니다. 또한 기도를 마칠 때도 “저는
주의 종입니다.”란 철저한 종 의식을 가지고 기도를 마쳤습니다(12절). 하나님이 그 기도를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왜 하나님은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했고 그의 왕권이 영원하리라는 다윗 언약을 주시면서 다윗의 후손을 통해 메시야가 오게 하는 엄청난 축복을
주셨습니까? 그가 종 의식에 투철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왕이 된 후에도 자신을 ‘주의 종’으로 여겼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복된 모습은 왕이 종
의식을 가지고 겸손하게 행동하는 모습입니다. 종에게는 자신도 없고 자신의 것도 없습니다. 그처럼 자기 것이 없고 자기감정까지 십자가에 못 박는
주의 종 의식만 분명해도 속상한 마음과 상처는 상당히 줄어듭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주의 종’ 하면 목사를 가리키지만 사실 모든
성도가 다 주의 종이란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주의 종이란 자세를 가지라는 말은 영성과 신분을 자랑하라는 말이 아니라 자기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말입니다. 종에게는 자기 소유가 없고 주인이 맡겨주신 것만 있을 뿐입니다. 교만한 왕처럼 행하면 종처럼 비참해지지만 겸손한
종처럼 행하면 왕처럼 존귀해집니다. 결국 ‘아무 것도 없는 종’임을 자처하면 ‘모든 것을 다 가진 왕’처럼 여겨지게 됩니다.
항상
겸손한 주의 종 의식을 가지고 자기 자리를 충실하게 지키려고 하십시오. 주의 종 의식을 가진 사람이 제일 피해야 할 것은 여기저기 나다니는
것입니다. 자기 것이 비록 초라해도 자기 것을 중시하고 남의 옷을 걸치려고 얄팍한 성공 세미나를 너무 찾아다니지 마십시오. 성도가 원하는 목자는
‘세미나 말씀’을 듣는 목자가 아니라 ‘세미한 말씀’을 듣는 목자입니다. ‘자기 손에 맞는 도구’와 ‘자기 형편에 맞는 방법’과 ‘자기 재능에
맞는 일’을 찾아 그 일을 하는 것이 진짜 성공입니다. 그러면 실패해도 성공한 것입니다.
현재 자기에게 주어진 역경과 고난과
약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주어진 것입니다. 남의 것만 좋게 보지 말고 자기 것을 좋게 보십시오. 학력은 부족해도 ‘말씀을 가까이하는
삶’은 학력보다 귀합니다. 외모가 부족해도 ‘기뻐하며 웃는 얼굴’은 외모보다 귀합니다. 좋은 옷은 없어도 ‘감사와 친절의 옷’은 좋은 옷보다
귀합니다. 재능은 없어도 ‘기도하고 순종하는 태도’는 재능보다 귀합니다. 말은 못해도 ‘진실한 마음과 행동’은 말보다 귀합니다. 성공은 못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겪은 실패’는 성공보다 귀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키가 작고, 머리카락도 없고, 결혼도 못했고, 일설에
의하면 간질병과 백내장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수시로 깊은 고난에 처했고 감옥도 들락날락했습니다. 그는 외적으로는 실패자의 모습이었지만 그 모든
약점과 실패를 극복하고 가장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말재주가 없어 당대의 대 설교자는 되지 못했어도 글재주를 통해 성경 13권 혹은
히브리서를 포함하면 성경 14권을 남겼습니다. 그처럼 아무리 현재 가진 것이 부족해도 그것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성공적인 삶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믿고 문제 때문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 감사를 늘 읊조리십시오 >
문제가 생겼을 때 믿음으로 그 문제를
잘 극복하면 그 문제는 결국 성공으로 이끄는 통로가 됩니다. 문제는 새의 날개와 같습니다. 어깨에 지기 힘들어도 그것이 있어야 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배의 돛과 같습니다. 귀찮고 무거워도 그것이 있어야 항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기차의 화통과 같습니다. 더럽고 지저분해도 그것이 있어야
전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시계의 추와 같습니다. 매달고 있기 힘들어도 그것이 있어야 시계가 작동합니다. 문제를 악몽으로만 여기지 말고
믿음으로 그 악몽을 의식적으로 깨뜨리십시오.
어느 날,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한 소년이
호랑이에게 쫓기는 꿈을 꾸었어요. 꿈에서 한참 도망치다 낭떠러지를 만났어요. 더 도망칠 수 없어서 돌아섰는데 앞에서 호랑이가 달려와요. 그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할래요?” 그때 학생들이 갖가지 대답을 했습니다. “눈싸움을 하며 노려볼래요. 푹 쓰러져서 죽은 척 할래요. 슬쩍 피해
호랑이를 낭떠러지로 떨어뜨릴래요.” 그때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그 꿈에서 깰래요.” 그 대답이 바로 선생님이 원하는
대답이었습니다.
저는 가끔 악몽을 꿀 때 무의식적으로 훈련된 자아통제 프로그램이 작동해서 “이 꿈에서 깨자!”고 하면 곧 깹니다.
현실에서도 그렇게 자기를 통제하면 됩니다. 즉 악몽과 같은 현실이 펼쳐져도 믿음을 가지고 마음과 생각부터 악몽에서 깨어나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조만간 악몽적인 현실도 깨지게 됩니다. 아무리 큰 위기에 처해도 돌파할 수 있는 길은 반드시 있습니다. 돌파가 안 되면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고 천국에 입성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와 장벽이 있어도 찬란한 꿈과 비전을 향해 달려가는 길에서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벌써 금년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얼마나 빠르게 가는지 모릅니다. 금년에는 세월호 사건 때문에 ‘세월’이란
단어가 더 서럽게 들립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은 서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설날이 ‘서러운 날’에서 유래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 서러움의 강도는 커집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도 찬란한 천국 입성 날짜가 가까이 왔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너무 서러워하지 말고
늘 젊게 살려고 노력하십시오.
나이가 들어도 젊게 사는 한 가지 좋은 방편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와 후대의 축복을 예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가 속했거나 기도해주는 비전공동체가 하나님의 뜻을 멋지게 펼치도록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조력하며 사는 것입니다. 언젠가 그
비전이 이뤄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늙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늙게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과거의 불행과 상처에 연연하는 것은 늙게 사는
것입니다. 과거의 상처를 잊고 용서하고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나가십시오. 과거의 한을 잘 태워버려야 미래의 꿈이 잘
불타오릅니다.
어느 날, 한 부인이 상담가를 찾아와 자기는 남편과 도저히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상담가가 이유를 묻자 그녀가
대학노트 한 권을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에는 지난 15년간 남편이 했던 수많은 잘못된 말과 실수와 약점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여주며
그녀가 말했습니다. “이런 남편하고 어떻게 삽니까?” 그때 그 상담가가 말했습니다. “진짜 문제는 이 노트 안에 있네요. 이 노트를 먼저
태워버려야 행복을 찾을 것입니다.”
왜 정신이 병들게 됩니까? 과거의 불행과 한과 상처를 계속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유령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과거의 망령이 생각 속에 떠오르는 것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옛날에 못 먹고 못 살 때는 육신적인 배고픔 때문에 정신적인 배고픔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너무 생각만 많으면 안 됩니다. 생각할 때는 감사하는 마음을 기본 바탕 화면으로 깔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다는 에벤에셀의 감사를 늘 읊조리며 사십시오.
금년에도 문제와 시련이 수시로 복병처럼 달려들었지만 지금까지 삶이 유지된
것을 감사하십시오. 지난 슬픔은 모래에 새기고 지난 기쁨은 대리석에 새기십시오. 가장 복된 마음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다윗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고 감사하며 살았기에 결국 최상의 길로 인도받았습니다. 항상 다윗처럼 겸손히 기도하고,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피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 최상의 길로 인도받고 당대와 후대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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