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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676 추천 수 0 2015.03.05 11:2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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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1-2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2013년도 설교 

1장 1절-2절.


1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그러니까 복음의 시작은 누구로부터 시작이 되느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다. 그러면 기도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이냐? 예수님으로부터. 자기의 소원 목적은? 예수님으로부터 기준해서이다. 기도도 그렇고, 자기의 언행심사 모든 사고방식 소원 목적 이해타산 평가성 전부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기준이요 근원이요 제일이요 첫째다.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그래야 참 옳은 신앙이고,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이 된다. 이해되느냐? 제 멋대로 기도하고, 제 멋대로 예수전도하고 제 멋대로 설교하고 그게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이다.


전하는 면에서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 얻으리라’ 한다. 그러니까 구원의 시작은 예수님으로부터라는 것이다. 창조의 설계가 예수 그리스도요, 역사진행의 섭리가 예수 그리스도요, 세상창조의 시작과 끝이 예수 그리스도요, 우리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로 설정이 되어 있다. 그 설정을 벗어난 모든 언행심사는 전부는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러니까 자기의 소원 목적이나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이 되어서 만들어지면서 실상화 되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끝이 난다. 그리고 신령천국에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로 만들어진 그 본질로 하나님과 같이 산다. 이게 그리스도인이다. 이게 신앙이다.


오늘부터 자기를 그렇게 잡아야 합니다. 여기서 벗어난 건 다 사망이요 별 볼일 없다. 세상에서 날고 기어도 별 볼일 없다. 날고 기는 것도 하나님 허락에 있지 하나님께서 쳐버리면 그걸로 그 인생은 끝난다.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창조 되었고 설계가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사는 그 자들을 위해서 하나님은 역사진행을 시키신다. 그래서 세상의 주인공은 바로 나다.


모든 만물이 나의 다스림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다. 성경에 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길 만물이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게 성경이고, 예수 믿는 신앙이고, 그게 진짜다. 오늘날 주위에서 흔히 보는 그게 교회 하는 짓이 아니다.


성경 어디를 보면 교회가 휴거가 다 된 후에 찌꺼기 사람들이 남고, 이들이 이 땅에서 피터지게 싸우다가 그 다음에 이들이 불로 다 청소가 되고, 그 다음에 휴거된 성도들이 땅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세상을 창조한 그 목적이 누구를 주려고? 휴거한 주님과 같이 있던 성도 바로 너에게 주려고. 그렇게 돼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신앙의 정신이나 자기가 하나님 자녀라는 신분을 망각하고 길거리에 앉아서 ‘한 푼 줍쇼’ 하며 동냥거리로 세상에 살고 있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화가 날까? 자식이 거지노릇을 하고 있으니 그 아비의 얼굴이 어떻게 되느냐? 그러니 마귀가 맨 날 그런 교인을 따라다니며 흉보고 짓밟고 쥐어박고 이용해 먹는다. 이런 자는 실질적으로 거짓 종들에게 전부는 이용당한다. 그런 원통한 일이 어디 있느냐?


아무리 세상이 주인노릇을 하고 높은 사람이 많이 있지만 다니엘이나 요셉이나 에스더나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 당신이 이렇게 저렇게 다 하신다. 하나님의 허락에 다 달려있다.


세상이 아무리 자기 주관으로 떠들어도 하나님 당신이 사랑하는 자를 들어서 왕권행사를 하게 한다. 믿는 나는 그런 신분이고 그런 위치다. 그런데 이런 신분과 위치는 갖고 있는데 사실상 실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셔도 못 다스린다. 그래서 안 주실 수도 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이 세상 것을 전부 다 취하려 한다. 예수 믿는 사람도 안 믿는 사람들처럼 그게 욕심이 나서 예수 덕으로 그런 것을 취하려 하니 뭐가 되느냐? 그러니 신분은 신분대로 하락이 되고, 실력은 실력대로 세상 사람으로부터 웃음거리가 된다. 솔로몬이 지혜의 왕이 되니 그 지혜를 들으려고 금은보화를 싣고 온다. 그런 하나님 역사가 있는 것이다.


세상살이도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런데 예수는 열심히 믿는다고는 하지만 사람이 안 돼 있으니 그만큼 통치력은 없어진다. 그만큼 잘 믿으면, 그만큼 속사람이 영능의 실력화 돼 있다면 어디를 가든지 그만큼 영리하다. ‘축복 축복’ 안 해도 속사람이 깡깡하기 때문에, 지혜롭고 총명하기 때문에 머리가 된다. 리더가 된다. 우리가 예수 믿는 거는 그 안에 그렇게 들어있는 거다. 우리교회에서 배우는 것은 내가 지금 그 면에 굉장히 신경을 쓰는 거다. 그래서 다른 교회와 같지 않다.


우리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이 누구로 설정이 되어 있느냐? 예수 그리스도로. 세상 사람들이야 어머니가 설정하고 아버지가 설정하고, ‘세상에서 뭘 시킬 거다’ 하는 거지만 그거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인간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이 아닌 부모의 주관성에 있는 것이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설정된 긍정적으로 들어간 목적이 아니고 부정적으로 들어간 네 목적이다. 부정적으로 들어있으니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으로 긍정적으로 들어있는 것과 정 반대이니 예수 그리스도를 벗어나지 못한 부정적 면에서 심판이 들어가고 형벌이 들어가는 그런 설계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설정된 자기의 존재목적 창조목적 삶의 목적이라면 여기는 예수 그리스도로 설정된 구원이 그대로 들어간다. 그것이 이제 나중에 부활의 실체로 나오는 거다. 그걸 미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실상체로 보여줬다. 그게 진짜다.


그 실상적 정신 사상 그것이 자기 속에서 감화성으로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게 성령님의 감화다. 그런 소원 목적으로 인간 자기의 재세기간의 목적이 존재목적이 들어가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머리가 될 사람이다. 그러나 이게 없다면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아무리 목사라도 별 볼일 없는 목사고 거짓이고 이단자구나. 예수 믿으면서 사교노릇을 하는구나.


크게 보면 세상은 하나님의 역사대로 되는 거지만 그러나 보는 눈이 있어야 사람을 인도할 것이 아니냐? 그런데 가르쳐 주면 그게 안 믿어진다. 그냥 사람소리로 들린다. 자기에겐 이게 예언이다. 성경에 보면 부모가 자식에게 예언하는 거 많다. ‘하나님의 본질에 입각한 거기에 맞느냐, 안 맞느냐’에 따라 축복이 들어가고, 앙화가 들어가는 거다. 성경에 미리 예언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믿어지느냐? 그렇다면 네가 회개하고 고치라는 거다. 회개 안 하고 고치지 않으면 그게 그대로 너에게 들어가는 거다.


자기 인생의 노정이, 자기가 세상에 태어나서 실패와 성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대로 꽃피게 하라. 육신은 시들어져도 속의 열매는 여물어져서 다음 세대에 심어지게 하라.


모든 만물은 씨로 뿌리고, 꺾어서 심으면 나게 돼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씨로 들어가기도 하고 교훈으로도 내려간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심겠느냐? 이 세상에 와서 잘 먹고 잘 살다 가는 게 인간의 성공이냐? 아니다. 그건 성공이 아니다. 우리의 성공은 영원한 곳에서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그게 성공이다. 이렇게 산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 밥 빌어먹는 것이 아니다. 밥 빌어먹는 것도 자라는 과정의 훈련 연단으로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 오셔서 제자훈련을 시키자니 예수님이 집이 없고 가난한 것이지 원래가 그런 분이 아니다. 신령계와 물질계가 다 당신의 것이다. 나를 훈련을 시키려고 당신도 그렇게 어렵게 사신 것이다. 당신의 만능의 능력을 당신을 위해서는 안 써먹는다. 우리의 교훈을 위해 그렇게 쓰신 것이다. 나를 위해서 그렇게 쓰신 것이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도 살게 하는 거지만 ‘너를 위해 내가 특별히 이적기사도 행한다’ 하는 뜻이 그 안에 들어있다. 그런 우리 주님이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통하여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입고 영능의 실력자가 되는 것과 천국의 누림성까지 전부는 예수 그리스도로 설정이 되어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우리가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말이다. 아들이 된다는 그 말속에는 천국을 상속받는 내가 된다는 것이다.


복음이라는 말속에는 선재적 그리스도께서 말씀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인간세상에 오신 것을 말하는데, 그러면 말씀이 육신의 몸을 입고 왔다면 육신의 몸으로 사시는 그 분의 모든 언행심사가 무엇이냐? 말씀이다. 그러니까 그 말씀이 말씀하시는 그 속의 내용을 언행심사로 전부 다 표현해내는 것이다. 성경 66권이 말씀하시는 그 의도성을 예수님의 언행심사로 다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치판단이나 평가성이나 추구성이나 소원 목적성을 알면 성경이 깨달아지게 돼 있다. 깨달아지면서 자기가 또 그렇게 되어 들어간다. 이게 하나님의 역사다.


세상 어느 역사에서 이런 역사를 볼 수 있느냐? 없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성령 하나님의 역사다. 지금도 그 역사를 하고 계신다. 하고 계시는데 그 역사에 누가 감화 감동을 빨리 입고 빨리 일어나고 빨리 살아나고 영능의 실력화 시켜나갈 것이냐? 성경이 자기에게 효력발생이 되게 할 자가 누구냐? 성경을 단순히 역사로만 보면 안 된다. 역사는 계시다. 이 역사계시를 들고 자기에게 현재적으로 찾아와 말씀을 하시는 거다.


말씀이 육신의 몸으로 인간세상에 오셔서 인간을 죄에서 풀어내고, 죄에서 풀어낸다는 것은 감옥 속에 있는 사람들이 죄 지은 그건 안 믿는 사람들도 아는 것. 그런데 그것보다 그런 죄를 짓기도 하지만 그런 죄를 짓지 않은 죄인 즉, 선악과를 따먹은 그런 모든 사고방식, 선악과를 따먹고 선악과로 살찌고 선악과로 뼈가 되고 선악과로 그 몸이 되고 그 정신으로 사는 아예 그 삶으로 된 그 사람을 즉, 선악과를 따먹은 거기서 하나하나 풀어낸다. 그게 우리의 이룰구원이다.


영 주격적으로 보면 먼저 신의 성품으로 영을 중생시킨 그게 딱 들어있고, 이건 기초고, 거기서부터 그 다음에 말씀으로 되는 면에서, 진리교훈으로 되는 면에서 성격적이거나 성질적인 모든 면에서 풀어낸다. 다시 말하면 선악과를 따먹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그 사람의 정신 마음 이해타산 할 것 없이 뽑아낸다. 해방이다.


그러니까 목사님들의 말씀의 질도 그렇게 들어가야 한다. 왜?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불러서 그렇게 시켰으니까. 그런데 ‘예수 믿어 병 낫고 부자 되고’ 하는 건 예수님 말씀에 하나도 해당이 안 된다. 마귀의 종들이 예수이름을 등용시켜서 이방인들이 구하는 걸 구하게 한다. 이건 예수님의 종이 아니다. 질이 그렇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으로 영인의 성장과 영능의 실력화 시켜서 신령천국을 유업으로 줘서 누리게 되어 있다. 자기의 일생의 마지막은 그렇게 들어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설정으로 그렇게 들어가 있다.


나를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본질로 만들어 주심이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이요, 자기가 입은 이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천국에서 지옥’ 하는 구원은 예수님이 아예 만들어 놓았고,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녀다운 면모를 효력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을 입히는 거다.


그런데 왜 온전한 성품이라고 하느냐? 그 이상 더는 없는 성품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 빼고 넣고 할 게 없는 거다. 그래서 하나를 알아도 온전, 백을 알아도 온전이다. 만들어진 만큼 온전이다. 자기에게 입어진 그게 구원이다. 그걸 구원이라고 하는 거다. 그런데 거짓과 이단자들은 이걸 모른다.


이 하나님 온전성은 하나님의 예정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감화 감동의 역사로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으로 이렇게 만들어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라’ 할 때는 나를 위해서 기본구원으로 나를 살려주시고, 이건 영 중생이요 이게 구속이다. 이렇게 해서 아담의 유전 죄가 내려오는 이걸 스톱시켜 놓고 하나님의 성품을 입을 수 있도록 기초 기반을 닦아 놨다. 이게 영 중생이다.


우리 영이 중생된 사람은 그의 이성이 선악과를 따먹어도 그 영은 못 따먹고 안 따먹는다. 그래서 예수 믿는 우리가 죄를 지어도 지옥에 가는 건 안 된다. 처음 인간은 죄를 지으면 영이 죽지만 예수 믿는 자는 그 영이 질적으로 색깔적으로 하나님의 질과 100% 똑같다. 그래서 영이 중생한 자가 나쁜 생각을 가지고 선악과를 따먹더라도, 죄를 지어도 그 영은 안 죽는다. 다만 두들겨 맞는다. 그게 지옥 맛이다.


우리 모두 인간으로 지어진 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이 바로 이 안에 들어있다. 어디 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러니까 하나님의 온전이라고 하는 그 안에 다 들어있다. 온전이란 하나님을 닮은 거. 예수님을 보면 아버지가 보인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예수를 닮으면 하나님의 속성으로 닮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주님으로 하나님의 성품으로 닮아져야 한다. 안 닮아지는 만큼 자기에게는 앙화요 고통이요 근심 걱정이요 아픔이다.


그렇게 되지 않는 인간이라면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의 존재 가치가 어디서 나올까? 나올 길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지 않는 인간이라면 어디서 인간의 존재 가치를 보겠느냐? 못 본다.


인간의 존재 가치가 돈을 많이 가지면 되느냐, 속의 사람 됨됨이에 있느냐? 인간의 가치는 속에 있다. 껍데기만 보면 100% 실패다. 손해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껍데기 보고 잘 살았다고 해도 그거는 실패다. 인간 존재기간 동안에 세상에 사는 목적에서 실패다.


그래서 사람을 사귀는 것도 교훈도 전부는 그 목적에 딱 들어맞아야 하고 맞게 살아야 한다. 그게 행복이고 기쁨이고 즐거움이고 모든 근심 걱정 세상만사를 다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이러면 얼마나 재미있겠느냐? 그런데 세상 사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도 속고 남도 속이고, 속은 줄도 모르고 자기 것이 옳은 줄 알고 남 속이고. 그러니까 돈에 속고 사랑에 울고.


인간의 존재가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 이건 속에서 나오는 거다. 속사람이 바로 되게 살려면, 하나님의 역사가 되게 살려면 일단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살고자 하는 여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여기에는 이제라도 내가 목숨이 끊어지면 바로 거기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냐? 그런데 이게 뜻이 아닌 곳에 뭔가가 자꾸 이렇게 하려니 얼마나 힘이 드느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느라고 하다 보니 온 가정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데 왜 어떤 사람은 그걸 못 이겨가지고 못 헤어 나오고 그렇게 고통을 당하고 애를 먹이고 그렇게 사느냐?


지금 세상의 법이 예수 믿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죽이느냐? 아무리 시집이라도, 아무리 우상을 섬기는 집안이라도 예수 믿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때려죽이고 하는 게 있느냐? 그러면 법이 와서 잡아간다.


예수 잘 믿으려면 가정생활 인인관계 살림살이가 지혜롭게 돼 나가야 한다. 그게 옳은 거다. 그런데 예수를 믿어도 잘못 믿고, 엉터리로 믿고, 거짓 종들에게 속으니, 맨 날 집에 들어올 줄을 모르니 안 믿는 남자가 헤어지자고 하지 누가 살자고 하겠느냐? 그렇게 예수 믿는 여자라면 남자라면 헤어져야 한다. 인간창조의 목적에서 벌써 어긋난 것이다.


예수 바로 믿는 건 인간의 가치관이 뚜렷하고 가족관이 뚜렷하고 사회관이 뚜렷하고 국가관이 뚜렷하다. 지금 이게 뚜렷한 인간이 없어서 세상이 이 난리다.


모든 만물의 존재 가치는 인간 내가 하나님의 온전을 향해서 살 때에만 쓰임의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내가 바로 살 때, 내가 만물을 바로 이용 활용할 때 만물이 나에게 쓰임이 되는 존재 가치가 뚜렷해진다. 그렇지 않고 내가 사람이 못 된 채 만물을 쓰게 되면 만물이 존재하는 쓰임의 가치가 틀어진다.


옳은 사람이라야 만물의 쓰임도 옳게 들어간다. 나쁜 사람 손에 들어가면 만물의 쓰임이 나쁘게 쓰여진다. 만물이 지어진 목적이 그렇게 쓰여지라고 지어진 것이 아니다. 내가 창조목적대로 살지 않는다면 만물의 존재 가치는 나에게 있어서 무시가 된다.


그 분이 만든 창조물 가운데 내가 살고 있고, 그 분이 만든 창조물들을 내가 사용하고 있다면 이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해되느냐? 맨날 ‘복 받자’ 하는 소리만 듣고 있다가 이 말을 들으면 머리라 팽팽 돌 것이다. 이건 하늘의 철학이다. 하늘이 이치다. 세상 개똥철학이 아니다. 세상철학은 근거가 없다. 사람을 세우는 근거가 없다.


나는 창조주와 연관관계로 살면서 그 분 앞에 내 존재 가치가 드러나도록 살아야 한다. 그 분의 말씀대로 살 때 내가 그 분 앞에 드러난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날 만드신 그 분으로부터 무시당해 발에 짓밟히고 버림받고 살면 되겠느냐? 성경에 너를 어떻게 해 주겠다? 너를 어떻게 해 주겠다? 첫째가 되고 머리가 되게 해 주겠다. 이게 자기에게 향한 약속이다. 거짓말이 아니다. 이걸 보통은 말하기를 육 주격으로 말하지만 영 주격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인간은 육신적으로 살아도, 활동은 육신적으로 해도 그 사람 속에서 영 주격으로 들어가 있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들어간다.


2절: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선지자 이사야 글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 창조주 그 분께서 인간 내 앞으로 당신의 사자를 보내주신다고 한다. 어떤 일을 하는 사자를 보내주신다고 하는 것이냐? 나의 길을 예비해 주시는 사자라고 한다. 사람 자기 사는 길이 어때서 나의 사는 길을 예비해주는 사자를 보내준다는 거냐?


자기 길을 자기가 잘 갈 것 같으냐? 사자를 만나기 전에 자기의 길이 잘 될 것 같으냐, 자기 생각대로 가다가 엎어지고 자빠질 것 같으냐?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잘 가고 있으니 그게 나의 인생길이 아니었던가?’ 누구든지 자기가 인간으로 지어진 존재의 목적을 모른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내 소원 목적대로 내가 잘 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자기는 도덕성을 가진 인격자로서, 가치판단을 가진 자유자로 지어진 존재로서 원하던 원치 않던 심판이 따르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이다. 누가? 자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인간으로 만들어진 창조자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창조자의 목적이 있는 고로 그 목적대로 사는 것을 가르쳐주는 그 사자를 내 앞으로 보내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감사한 것이다. 일반 이치적으로 보면 ‘너를 똑똑한 자로 만들어 주겠다’ 하고 일반 선생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선생이 문제고, 목사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게 보통 큰일이 아니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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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69 스가랴 스스로 굳세게 하라 슥8:1-23  구하라 목사  2015-03-05 413
11768 스가랴 금식 슥7:1-14  구하라 목사  2015-03-05 303
11767 스가랴 8번째 환상 슥6:1-15  구하라 목사  2015-03-05 236
» 마가복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1:1-2  김경형 목사  2015-03-05 676
11765 로마서 고난과 좌절이 귀하다 롬16:1-16  최장환 목사  2015-03-04 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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