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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슥8: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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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구하라 목사 |
참고 : |
찬송가 515장(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제 본문에서 우리는 금식에 대한 질문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 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의 부하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이르되 내가 여러 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하리이까 하매(7:2-3)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과 궁전을 불태우며 짓밟았던 그 오월에 슬퍼하며 행해왔던 금식을 계속해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선지자의 대답은 오늘 본문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 질문은 단순히 금식의 가부를 묻는 내용만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심판의 시기가 끝날 때가 되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이제는 회복의 때를 희망해도 되지 않는가 하는 간절한 소망이 이 질문 속에 담겨 있습니다. 벧엘 사람들, 아니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을 모르시지 않았던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3절)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함으로 인해 예루살렘을 떠나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돌아오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가리켜 ‘진리의 성읍’이라고 일컫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의 거리들은 다시금 사람들로 붐비게 될 것이며 이스라엘은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쓰라린 눈물과 탄식의 장소가 이제는 회복과 기쁨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바야흐로 회복의 시대가 도래할 것입니다. 회복의 시대를 앞두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성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있었던 선지자들의 입의 말을 이날에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9절)
9절에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라는 표현은 13절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방인 가운데에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가 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손을 견고히 할지니라(13절)
9절과 13절에서 사용된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라는 표현은 학개 선지자가 성전 재건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독려하던 말이었습니다.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개 2:3-4)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 재건사업에 참여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전 재건사업에 참여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솔로몬 시절에 지어진 성전의 화려함과 그 영광스러움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새로 짓고 있는 성전이 형편없이 초라해보였습니다. 그 초라함으로 인해 억장이 무너지고 마음이 찢어지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시며 성전 재건을 독려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의 진정한 가치는 외양의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새로운 시대를 앞두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들려주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주역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데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새로운 시대는 단지 그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억압했던 이방세력에 대한 심판의 때가 왔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의 의미가 이제 이스라엘의 경제를 살리고, 군사력을 강화해서 주변 이방 국가들에게 이스라엘의 회복된 국력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의미이겠습니까? 이스라엘의 회복을 갈망했던 백성들은 그러한 회복을 기대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회복의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도래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거짓일까요? ‘스스로 굳세게 하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굳세게 하라는 말씀인 것입니까?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16-17절)
‘스스로 굳세게 하라’는 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올바른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국력의 회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듯,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회복의 의미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삶 속에서 실천하는 데 있어서 너희는 스스로 굳게세 하라, 이것이 오늘 본문이 가르쳐주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벧엘 사람들이 선지자에게 던진 금식에 대한 질문의 답변은 19절에 나와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넷째 달의 금식과 다섯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지니라(19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고 있는 참혹한 시련의 세월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어떤 심정으로 금식을 시행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금식과 함께 그들이 간구하는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렇게 눈물과 통곡으로 간구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너희들의 그 “금식이 변하여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될 것이라고 위로하고 계십니다.
시대의 아픔을 품고 슬퍼하며 금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은 다른 데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사는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진실과 화평을 좇아 살 때 주어지는 것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미쉘원가족여러분, 올해 들어 우리는 참 많은 아픔을 겪었고, 또 겪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기에 우리는 이 시대의 아픔과 슬픔을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때로는 탄식으로 기도하며 때로는 금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의 아픔을 품는 것과 동일하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진리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좇는 사람이 될 때 우리 시대의 아픔은 아픔으로만 끝나지 않고, 내일 우리의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의미 있는 교훈이자 유산이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역사의 고난 속에서 슬퍼하며 금식했듯이, 우리 또한 눈앞에 있는 현실에만 천착하지 않도록 도와주셔서 이 시대와 시대의 아픔을 품고 함께 아파하며 기도하게 하여주옵소서. 뿐만 아니라 어떠한 시대를 지나든지 이 시대 속에서 올바른 믿음의 길 가기를 잊지 않게 도와주셔서, 우리의 자녀들에게 보다 가치있는 내일을 물려줄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이것이 오늘 하루를 사는 우리의 지혜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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