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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4대 목적

시편 이한규 목사............... 조회 수 805 추천 수 0 2015.03.07 23: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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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33:1-22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2015.1.12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532 ) 

인생의 4대 목적 (시편 33편 1-22절)


<사람에게 기대지 마십시오 >

 어떤 부인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착했지만 그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존경심이 들지 않으니까 남편을 비난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뒤늦게 교회를 다니고 말씀을 들으면서 남편에 대한 습관적인 비난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후회했습니다. “내가 하나님만 해줄 수 있는 일을 가지고 남편에게 너무 지나치게 기대했구나? 어리석었던 지난 세월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댈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실망시켜도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따라 하나님이 그에게 그런 허물과 약점이 있게 하셨음을 이해하십시오. 그런 이해심을 가지고 기대는 하되 의존적인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바라보면 인생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게 되고 가정과 자녀도 흔들립니다. 그때 공허함과 외로움도 찾아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말하면 그때가 하나님께 더욱 기대고 하나님만 바라볼 기회입니다.

 살다 보면 무엇인가를 잃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때로 잘못된 선택으로 돈을 크게 잃어도 정신만은 잃지 마십시오. 돈을 잃는 것은 어떻게 보면 최소한의 것을 잃은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잃고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목적을 찾으면 위기는 기회가 되고 잃은 것 이상으로 넘치게 다시 찾게 됩니다.

 인생의 목적은 성공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착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면 실패도 진짜 실패가 아닙니다. 그 실패를 통해 진짜 성공이 이뤄질 때도 많습니다. 인생의 실패와 공허와 상처와 문제는 하나님의 뜻과 영광이란 인생의 목적을 다시 찾으라는 신호입니다. 인생의 성패는 속도가 아닌 방향에 있습니다. 어떻게 바른 방향을 찾습니까? 표지판을 잘 봐야 합니다. 인생이 바라보아야 할 최대의 표지판은 하나님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자기 편안과 유익이 되면 길을 잃게 됩니다. 자기만 위해 산다면 돈을 벌고 권세를 얻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편안’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맑은 날만 있다면 세상은 사막이 됩니다. 인생도 좋은 날만 있다면 영혼이 메마르게 되고 지루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극적인 것을 찾다가 미혹될 때도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편안’이 아닌 ‘평안’입니다. 어떻게 평안을 얻습니까? 자기를 극복하고 남을 위해 편안을 희생할 줄 알아야 평안도 주어지고 시야도 커지고 지경도 넓혀집니다.

< 인생의 4대 목적 >

 자기에게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의 크신 뜻 안에서 자기를 바라보십시오. 회개가 무엇입니까? 죄에서 돌아서는 것만이 회개가 아닙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인생의 참된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이 무엇을 추구하고 살아야 할지를 깨닫는 것도 회개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본문에 나오는 시편 기자의 노래를 통해 인생의 목적이자 최고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4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이 구절에서 “여호와를 즐거워하라!”는 말은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라! 세상 즐거움보다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추구하라!”는 말입니다. 세상 즐거움이란 마귀의 제일 무기를 물리치는 최고의 영적인 무기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요리문답 제 1조에는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삶을 살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즐겁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언제 즐겁게 됩니까?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하나님은 가장 즐겁게 됩니다.

 좋은 일을 해도 자기가 영광을 받으면 찜찜하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자기도 즐겁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 사원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고, 기업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업하고, 주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림해야 합니다. 그처럼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이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제일 목적입니다.

 또한 본문 1절에서 시편 기자는 즐거움을 찬송으로 표현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감정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감정적인 신앙도 필요합니다. 왜 힘이 약한 여자들이 힘이 강한 남자들보다 더 오래 삽니까? 육신의 힘은 약하지만 감정의 힘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솔직하게 표현하면 건강 가능성도 커집니다. 물론 체면도 차려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체면을 차리려고 하지 마십시오. 울 때는 울고 웃을 때는 웃고 즐거울 때는 즐거워하면서 옆에 같이 있는 사람에게 편한 사람이 되어주십시오.

2.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수금은 거룩한 음악에 사용된 구약 시대의 악기 중 가장 고귀하게 여겼던 현악기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도 잘해야 합니다. 찬양할 때는 새 노래로 찬양하고 즐거운 소리와 아름다운 연주로 찬양해야 합니다(3절).

 어떤 공동체는 ‘새 노래’를 문자 그대로 ‘새 노래’로 해석해서 새로운 복음성가를 열심히 만들고 거의 복음성가만 부릅니다. 그러나 ‘새 노래’란 ‘새로 만든 노래’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 만든 복음성가도 좋은 것이 많지만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전해져 내려온 옛 찬송가 중에도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결국 ‘새 노래’란 ‘새로 만든 노래’란 뜻이 아니라 ‘새롭게 부르는 노래’를 뜻합니다.

 노래는 자주 듣거나 부르면 싫증이 납니다. 찬송도 너무 익숙해지면 처음 부를 때의 감격을 잃고 습관적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부르지 말고 늘 감격하며 부르라는 것이 새 노래로 부르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로 여겨지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란 찬송은 몇 백 년 동안 성도들로부터 가장 사랑 받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찬송을 부를 때마다 새로운 감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찬송을 부를 때마다 새로운 감격과 감동과 감사가 넘치게 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인생 최대의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감사하지 못합니까? 첫째, ‘받은 것’은 외면하고 ‘받을 것’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구원이란 엄청난 은혜와 축복을 이미 받은 존재입니다. 그 선물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를 깊이 인식하면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또한 지금 살아있는 것, 교회에 나올 건강이 있는 것, 일용할 양식이 있는 것 등 이미 받은 많은 은혜를 생각해도 역시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선한 뜻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뜻과 판단을 따라 좋은 길인 줄 알고 갔다가 불행하게 된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서 오히려 상처와 불행에 빠진 경우도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 뜻과 계획보다 항상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더 선함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셋째, 남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모습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재능도 다르고 그릇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남과 비교해 열등감과 질투를 가지지 마십시오.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내일의 나’를 만들려고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큰일은 이루지 못해도 하나님께 최상의 감사를 드리면 자기 인생의 목적을 누구보다 잘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3.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이용해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하늘과 삼라만상을 창조했습니다(6절). 또한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처럼 쌓았고 깊은 물을 곳간에 두셨습니다(7절). 고대 사람들에게 바다는 무한한 신비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 신비한 바다까지 관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시편 기자는 노래합니다(8절).

 또한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다스리시고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고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계획과 생각대로 이뤄지게 하십니다(9-11절). 그처럼 천지만물을 주관하시고 나라의 흥망성쇠와 인생의 생사고락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면 그때부터 세상이 두렵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자기를 겸손히 낮추고 하나님을 최고로 높이는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은 최고로 높여주십니다. 결국 축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마음 중의 하나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것이 체질화되어서 윗사람을 높이는 예의 바른 행동이 저절로 나옵니다. 윗사람은 어떤 사람을 끌어줍니까? 자신을 마치 주를 경외하듯이 높여주는 예의 바른 사람을 일순위로 끌어줍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나타나는 교만한 태도가 ‘버릇이 없는 태도’이고 청소년들에게 나타나는 교만한 태도가 ‘예의가 없는 태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버릇이 없는 태도’와 ‘예의가 없는 태도’는 인생을 실패하게 만드는 제일 요소입니다. 예의 바른 청년은 대개 성공이 예약된 청년입니다. 자녀를 예의 바른 자녀로 키우십시오. 그런 자녀가 대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가 되고 결국 인물이 됩니다.

 가끔 보면 예의 바르지 않은 사람이 예의를 차릴 때도 있습니다. 비굴하게 작전상 머리를 숙일 때입니다. 그런 작전상의 비굴한 예의가 아닌 진짜 예의 바른 태도를 힘써 갖추십시오. 윗사람이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할지라도 예의는 가급적 지키려고 하십시오. 도덕과 윤리가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예의 없는 태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까지 잃게 할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고난과 상처와 문제가 심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만 잃지 않는다면 결국 정의가 승리하고 심은 대로 거두는 역사를 반드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4.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다고 노래합니다(12절). 또한 하나님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후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천지만물의 흐름과 인간의 역사에 세세하게 개입하시고 늘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신다고 노래합니다(13-15절). 그처럼 하늘에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내려다보시는 하나님을 성도는 눈을 들어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사람이 아무리 강한 것 같아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고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16-17절). 그처럼 사람 숫자와 힘으로는 자기를 온전히 구원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면 하나님이 돌봐주시고 어떤 어려운 상황도 이겨낼 수 있게 하십니다(18-19절). 그래서 시편 기자는 도움과 방패가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겠다고 다짐합니다(20절).

 그렇게 하나님의 성호를 의지하겠다고 다짐하면 마음에 행복과 희망이 가득 차고 즐거움이 넘치게 됩니다(21절). 그처럼 즐거운 마음과 넘치는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에게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베풀어달라고 기도하면서 시편 기자는 시를 끝냅니다(22절). 간단히 말하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바라보면 영어로 3h, 즉 도움(help)과 행복(happiness)과 희망(hope)을 얻는다고 노래한 것입니다.

 자기 현실을 바라보면 가끔 탄식이 나옵니다. “내가 정말로 찬란한 꿈과 비전을 이룰 수 있을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찬란한 계획이 여전히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바라보면 시야가 좁아지고 인생의 목적을 잃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시야가 커지고 인생의 목적이 뚜렷해집니다. 살면서 늘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섭리에 집중하십시오. 때로 어려운 일을 겪지만 그때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면 하나님이 찬란한 꿈과 비전을 새롭게 해주시고 마침내 그 꿈과 비전을 이뤄주실 것입니다.

< 찬란한 꿈을 꾸십시오 >

 지금부터 26년 전, 미국에서 신대원을 다닐 때 가까운 친구 전도사님과 대화하다가 제 입에서 농담 비슷한 말이 나왔습니다. “전도사님! 저는 백만 명 목회를 하는 것이 꿈입니다.” 그때 인격이 훌륭한 친구 전도사님은 제 말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해주었고 힘주는 말도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말을 한 후 괜히 실없는 소리를 한 것 같아서 부끄러웠고 제 안에서는 갈등이 생겼습니다. 한쪽 자아가 말했습니다. “이 전도사야! 꿈 깨! 욕심이 지나치다.” 그러나 다른 쪽 자아는 말했습니다. “숫자가 과한 것은 사실이지만 큰 꿈을 가지고 준비해보라.”

 그때 백만 명 목회를 준비한다고 엄청나게 책을 읽고 신학교의 기도 탑에 가서 매일 눈물로 기도하면서 꿈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해도 백만 명 목회를 할 재목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눈치가 없고 현실을 파악하는 안목이 부족한 것도 문제였고,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과 성격과 수단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남을 배려하고 나눈다면서 자기 것도 잘 챙기지 못해서 손해 보는 길로 갈 때가 많은데 어떻게 몸집을 불립니까?

 또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대에 오르는 것도 싫어하고 대중을 압도하는 탁월한 언변도 없습니다. 게다가 신학교도 한국 교계의 입장에서는 마이너리티 신학교를 졸업했고 섬겼던 교회들도 대개 마이너리티 교회들이었습니다. 그처럼 인맥과 연줄의 배경을 기대하기 힘든 그룹에만 몸을 담았기에 목회의 첫 단추부터 순조롭게 끼우지 못하고 모든 것을 거의 무에서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백만 명 목회를 합니까?

 1992년 인천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곧 현실에 눈을 뜨면서 ‘백만 명 목회’의 비전에서 ‘만’자가 빠지고 ‘백 명 목회’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교회에서 사례비를 거의 못 받았습니다. 그래서 목회하면서 글도 쓰고, 신학교 강의도 하고, 책도 번역하면서 생활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꿈이 현실적으로 변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40세부터는 한국 교회를 위해 크게 일하게 하시고 50세부터는 세계 교회를 위해 크게 일하게 하소서!”

 그 후 40세가 되어도 한국 교회를 위해 크게 일할 기미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40대 중반이 되면서 인터넷 말씀사역으로 한국교회에 알려지면서 지금은 상당히 많은 한국 목사님들의 목회를 간접적으로 돕게 되었습니다. 그 후 50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세계 교회를 위해 크게 일할 것 같은 기미가 전혀 안 보였습니다. 그러나 <월간 새벽기도> 영문판 발행이 이뤄지면 ‘50세’에는 못했지만 ‘50대’에는 세계 교회를 위해 크게 일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기적적인 좋은 만남을 통해 <월간 새벽기도>가 영문판과 중국판까지 발행되면 은퇴 전까지는 매달 백만 권 월새기 발행도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새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철이 없는 기도도 사심 없이 기도하면 그 기도를 번역해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가 ‘40세에’ 한국 교회를 위해 크게 일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40대에’라고 듣고 응답해주셨고 ‘50세에’ 세계 교회를 위해 크게 일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50대에’라고 듣고 응답해주실 것 같고 ‘백만 명 목회’를 ‘백만 권 목회’로 듣고 응답해주실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약 5년 전에 50세가 되었을 때 “50세에 세계 교회를 위해 크게 일하게 해 달라!”는 옛날의 꿈을 기억하고 교회에 매일 자정쯤 나와 새벽까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세계 교회를 위해 크게 일합니까? 이 비전을 이룰 길을 열어주시고 방법도 알려주시고 사람도 만나게 하소서!” 그렇게 집념을 가지고 몇 달을 기도할 때는 길이 안 열렸는데 그로부터 4년쯤 지나 ‘50세에 이룰 비전’에 대한 꿈이 희미해질 무렵에 하나님이 신기하게 <월간 새벽기도> 사역을 열어주시고 좋은 반응을 얻게 하시면서 ‘세계 교회를 위해 공헌하겠다는 50대의 비전’을 다시 구체화시켜주신 것입니다.

 가끔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다 보면 스스로 묻게 됩니다. “왜 내가 이런 기도를 할까? 인간적인 욕심 때문은 아닐까?” 그런 갈등과 자문을 하면서도 시간이 계속 흘러도 마음속에 사라지지 않고 잔영이 뚜렷이 남는 찬란한 꿈과 비전이 있습니다. 그 꿈과 비전은 언젠가 이뤄지고 혹시 그 꿈과 비전이 그대로 이뤄지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멋지게 번역되어 이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현실이 팍팍하고 답답해도 하나님을 계속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언젠가 주셨던 찬란한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저도 찬란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2024년에 성경 전체 강해설교를 완성하면 그 작품이 천년 이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천년 영향력의 비전’을 가지고 설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비전이 거창하니까 명예욕 때문에 그런 비전을 가진 것으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향력이 있는 좋은 작품을 남기고 싶은 것이지 명예욕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명예욕과 명예심은 엄연히 다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묵묵히 구체화시켜가고 있는 소중한 꿈을 곡해하고 냉소하는 태도가 오히려 진짜 명예욕의 표출일 수 있습니다.

 지금도 저를 아는 사람은 가족과 친구와 교인들과 몇몇 동료들 외에는 거의 없습니다. 가까운 친구 목사님들이 설교 초청을 해도 전혀 안 나가고 언론사도 전혀 접촉하지 않습니다. 그처럼 노출이 없으니까 이름이 올라가도 얻을 것도 별로 없고 얻을 생각도 별로 없습니다. 다만 짧은 일생을 살면서 제 달란트를 살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따라 영향력 있는 글을 남겨서 많은 영혼들을 하나님 품으로 이끌고 싶을 뿐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현재의 모습에 안주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천년 영향력의 꿈과 비전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칭기즈칸은 “나를 극복하면서 나는 칭기즈칸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도 자기를 극복하면서 큰일을 했는데 하물며 성도가 자기를 극복하면 얼마나 큰일을 하겠습니까? 찬란한 꿈과 비전을 가지십시오. 내가 안 되면 남이 되도록 길을 열어주고 당대에 안 되면 후대를 위해 길이라도 열어주겠다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그러면 자기 인생의 목적대로 충분히 사는 셈이 되고 그렇게 살면 그것이 가장 복된 삶입니다. 항상 하나님 안에서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자기 인생의 목적대로 열심히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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