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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세계로 가는 영성여행

창세기 김부겸 목사............... 조회 수 321 추천 수 0 2015.03.13 21:4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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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25:7-8 
설교자 : 김부겸 목사 
참고 : http://blog.naver.com/malsoom/62074652 

2009년 2월 15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창세기 25장 7절~8절 / 마가복음 12장 24절~25절

설교제목 :  “영원의 세계로 가는 영성여행”


  【아브라함의 향년이 일백 칠십 오세라. 그가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 아브라함이 누린 햇수는 모두 백일흔다섯 해이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받은 목숨대로 다 살고, 아주 늙은 나이에 기운이 다하여서, 숨을 거두고 세상을 떠나, 조상들이 간 길로 갔다.(창 25:7~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마가 12:24~25)】


  <삶 이야기>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숨이 끊어질 때까지의 시간, 그것을 우리는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인생의 시간에 대해서 절대가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 인생의 시간동안이 굉장히 중요한 일들을 해야 하는 것으로 우리는 흔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인생의 시간동안 어떤 일을 행하고, 어떤 경지에 다다르느냐에 따라서 ‘인생 후’의 상태가 결정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인생의 시간 동안 득도(得道), 즉 진리를 깨우쳐야만 ‘인생 후’의 시간에 윤회의 고리를 끊고 영원한 대자유인으로서 해탈할 수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 우리 기독교에서는 인생의 시간동안 제대로 살아야만 ‘인생 후’의 시간에 천국에 들어가지, 그렇지 못하면 지옥에 빠진다는 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래 보거나 저래 보거나 ‘인생의 시간’이 인생 후의 상태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좀 색다른 상상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인생 이전’ ‘인생의 시간’ ‘인생 이후’에 대해서 자유로운 영성적 상상을 나눠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구약성경 이야기>

  먼저 구약성경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의 향년이 일백 칠십 오세라. 그가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 아브라함이 누린 햇수는 모두 백일흔다섯 해이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받은 목숨대로 다 살고, 아주 늙은 나이에 기운이 다하여서, 숨을 거두고 세상을 떠나, 조상들이 간 길로 갔다.(창 25:7~8)】

  이 말씀에서 제가 주목하고자 하는 대목은 아브라함이 죽어서 ‘열조’(烈祖)에게로 돌아갔다는 점입니다. 즉 인간은 각자가 개인으로서 별개의 존재로서 살고 또 죽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떠난 조상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즉 인생 이전의 무수한 조상의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통찰입니다. 저는 그 점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한국의 기독교가 조상에 대한 숭배의 예절을 거의 다 버려버렸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과거 유교가 거의 병적이라할만큼 조상숭배에 집착한 것 역시 잘못이겠습니다만, 우리 기독교가 조상에 대한 ‘연결고리’를 끊어버린 점 역시 잘못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기독교가 ‘인생 이전의 삶’에 대한 고귀한 통찰을 다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 대한 구약성경의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기독교 역시 ‘인생 이전의 존재들’에 대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전통은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안정되게 하고, 평화롭게 하고, 자유롭게 하고, 건강하게 하는 ‘지혜로운 진리의 전통’이었습니다. 다만 이를 이해하지 못한 서양 기독교의 선교사들이 이를 끊어버린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를 창조적으로 복원해야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이야기>

  이제 신약성경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마가 12:24~25)】

  오늘 신약성경 말씀의 관심은 ‘인생 이후’의 삶입니다. 사두개인들이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예수님에게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답변하신 메시지는 “사람이 …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가 12:25)는 것이었습니다. 즉 죽음 이후의 삶의 양태는 죽음 이전의 삶의 양태와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이 될 것이며(인간의 삶의 양태가 아닌 천사들의 삶의 양태), 그렇기 때문에 영원하신 하나님의 세계에 있어서, 또 그런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없는 것’이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작은 결론 이야기>

  작은 결론으로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우리 한국 기독교가 ‘인생 이전’과 ‘인생 이후’의 삶에 대해서 침묵한 채, 오로지 ‘인생의 시간’에 대해서만 신앙적 논의와 신학적 탐구를 하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 논의와 탐구의 영역을 ‘인생 이전’과 ‘인생 이후’의 영역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더 깊고, 높고, 넓은 ‘영성적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는 그런 탐구의 과정에서 선(禪)의 언어와 논리를 활용하자는 제안도 아울러서 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인생 이전’, ‘인생 이후’의 삶에 대한 신앙(신학)적 탐구는 기존의 서구적 패러다임으로는 불가능하며, 오로지 동양의 언어, 즉 선(禪)의 논리로서 돌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경리 이야기>

  2008년 5월인가요?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세상을 떠났을 때, 제가 쓴 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좀 길지만 먼저 그 글을 인용해 보려고 합니다.

  【박경리 선생과 생명사상 / 소설가 박경리 선생(1926년-2008년)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박경리 선생의 유명한 소설 『토지』조차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고, 그분을 간접적으로라도 만난 인연이 전혀 없는 입장이라서, 별스러운 안타까움이 없습니다만, 다만 한 가지 박경리 선생이 노년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셨던 ‘생명 사상’에 대해서 몇 자 적고 싶네요.

  원래 박 선생은 지난해 폐암발병을 통보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 선생이 “병원 치료를 거부한 채 시골집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연 그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제가 알기에 박경리 선생은 그런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글쎄요? 그걸 사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철학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마 둘 다 적합한 용어는 아닐 것입니다. 제 식으로 이름을 붙인다면, ‘생명에의 영성’이라고 하고 싶네요.

  박경리 선생은 ‘생명에의 영성’을 추구하신 분이고, 탐구하신 분이고, 그 ‘생명에의 영성’을 온 몸으로 실천하시면서 인생의 나날을 사신 분이었습니다. 그분께는 지상에서 숨을 쉬고 있는 삶만이 ‘생명’이 아니라, 지상의 숨을 접고 흙으로 돌아가는 삶 역시 ‘생명’이었습니다. 삶도 삶이요 죽음도 삶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구분이 무의미한 삶이라고 할까요? 삶과 죽음의 초탈이라고 할까요? 제 식으로 이해하면 그렇습니다. 그러니 박 선생이 폐암 선고를 받았다고 해서 노심초사(勞心焦思)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죽음에 대한 원초적 공포가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박경리 선생도 죽음의 순간 앞에서 많이 외롭고 힘겹고 고통스러웠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생명에의 영성’을 온 몸으로 사는 사람에게 있는 ‘평화로운 죽음의 세계’도 분명 존재하는 것입니다. 박경리 선생은 분명 그럴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박경리 선생이 노년의 세월을 사셨던 ‘원주’라는 도시도 참 흥미로운 땅입니다. 왜냐하면 그 원주 땅에는 ‘생명에의 영성’을 온 몸으로 사는 선각자적인 사람들이 여럿 있기 때문입니다. 박 선생의 사위인 김지하 시인도 그렇고, 김 시인의 스승인 장일순 선생도 그렇고 …. 과거 1970년대와 1980년대 원주가 민주화의 성지였다면, 2000년대 원주는 ‘생명영성의 성지’쯤 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아무튼 박경리 선생이 떠나셨고, 우리는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게 다 일까요? 아닙니다. 분명 박 선생을 비롯한 원주의 선각자들이 지상에 남겨진 우리들에게 일깨워주는 메시지가 있는데, 그것은 ‘생명 영성에의 귀의’일 것입니다. 이제 고인을 떠나보내면서, 박경리 선생이 노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던 ‘생명에의 영성’에 대해서, 남겨진 우리들이 다 함께 깊이 성찰하자는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영성에 깊은 조예가 있으신 어느 부흥사 목사님께서 그 글을 읽어보신 후에 제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시는 말씀이 “박경리 씨가 죽음의 세계에 대해서 어떻게 그런 놀라운 통찰을 할 수 있었을까요?”하고 물으셨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적당한 답변이 생각나지 않아서 정신없이 얼버무렸습니다만, 이제 그 목사님의 물음에 답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경리 선생이 ‘인생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나름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시골의 골방에 그 스스로를 가둔 채 소설의 세계에 몰두했던 ‘선(禪)적인 수행’ 덕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게 제 답변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영원의 세계로 가는 영성여행”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살고 있는 이 인생의 시간은, 영원 전부터 영원 후로 이어지는 ‘무한의 세계’로 걸어가는 영성의 여행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영성의 여행 길 중에서 우리가 길벗으로서 만난 것이지요!


  오늘 이 시간, 우리 교우들 모두가 인생 이전과 인생 이후의 삶에 대해서 영성적 상상의 나래를 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자유로운 상상을 통해서 더 많고 높고 깊고 넓은 평화와 안식을 얻으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축도 : 이제는 우리에게 진리의 길을 몸소 보여주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언제나 어디서나 자비의 마음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진리의 상담자로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동행이 여기 고개 숙인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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