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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로

누가복음 이선근 형제............... 조회 수 913 추천 수 0 2015.03.14 14: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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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20:22-25 
설교자 : 이선근 형제 
참고 : http://www.saegilchurch.or.kr/123064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로

(누가복음 20:22-25)


2012년 8월 5일 주일예배

이선근 형제

(새길기독사회문화원 간사)


오늘 본문은 마가복음의 사화를 기본으로 하여 마태복음의 전개와 누가복음의 전개가 각각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 세 개의 본문은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사실은 거의 똑같습니다.

 

마가복음의 구조는, 예루살렘 입성 - 성전정화 - 무화과나무가 마름 - 예수의 권위 논쟁(11장) - 포도원 농부 비유 - 황제의 세금 논쟁 - 부활논쟁 - 가장 큰 계명 - 다윗의 자손 - 율법학자(서기관)를 삼가라 - 과부의 헌금(12장) - 예루살렘 멸망 예언 - 환난 예고/깨어 있으라(13장) 이고,

 
마태복음의 구조는, 예루살렘 입성 - 성전정화 - 무화과나무가 마름 - 예수의 권위 논쟁 - 포도원 농부 비유(21장) - 혼인 잔치의 비유 - 황제의 세금 논쟁 - 부활논쟁 - 가장 큰 계명 - 다윗의 자손 - 율법학자(과 바리새)를 삼가라(22장) - 예루살렘 멸망 예언 - 환난 예고/깨어 있으라(23장) 이며,


그리고 누가복음의 구조는, 가장 큰 계명(10장) - ( … ) - 예루살렘 입성(도성에서의 사건들) - 성전정화(19장) - 예수의 권위 논쟁 - 포도원 농부의 비유 - 황제의 세금 논쟁 - 부활논쟁 - 다윗의 자손 - 율법학자를 삼가라(20장) - 과부의 헌금 - 예루살렘 멸망 예언 - 환난예고/깨어 있으라(21장) 입니다.


구조가 이렇다 보니 신약성서를 읽어본 분들이라면 동일한 내용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을 것입니다. 물론 복음서 기자별로 구조가 약간씩 다른 만큼 주제도 약간씩 다르기 때문에 아마도 본문을 주제로 하는 설교를 여러 차례 다른 내용으로 접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어쩌면 다소 진부하거나 익숙한 내용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본문은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한 뼘 더 깊게 들어갈 수 있는 숨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 숨은 이야기들을 만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이 성경에 구성된 목적을 누가복음에서는 매우 직접적으로 기술해 놓았습니다. 성전정화 사건 이후 율법학자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음모를 꾸밉니다. 누가복음 20장 20절 후반 절에 의하면 “...그것은 그분을 총독의 관청과 권력기관으로 넘겨주려는 것이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처벌할 수 있도록 죄가 될 만한 꺼리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이를 빌미로 로마의 총독이었던 빌라도 앞에 예수님을 데리고 갔습니다. 누가복음 23장 2절 후반 절에 기록되기를, “...우리가 보니 이 자가 우리 민족을 이간하여 황제에게 세금을 못 바치게 하고, 자칭 그리스도의 왕이라 했습니다.” 라고 예수를 고발한 자들이 빌라도에게 그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을 모함하려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곤란한 질문을 해서 책을 잡기 위한 모략이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해 낸 것은,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매우 교묘한 속임수입니다.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유대 사람들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야만 했습니다. 어린이와 노인을 제외하고 12세 부터 65세 까지의 주민이면 누구나 인두세 형태의 주민세를 내야 했습니다. 이때 반드시 로마의 은전 데나리온(Denarius)으로만 내야 했는데, 데나리온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120808_20120805말씀증거_사진자료Denarius_Tiberius.jpg


 

데나리온은 무개가 4.5g, 직경이 22mm 정도 되는 은화입니다. 앞면에는 티베리우스 황제(BC.42-AD.37)의 흉상이 있고, 뒷면에는 월계수 잎을 들고 있는 황후의 좌상이 있습니다. 또한 앞면에 TI(tiberius) CAESAR DIVI AVG(augusti) F(filius) AVGVST(augustus) 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아우구스투스로부터 신성을 부여받은 그의 아들 티베리우스 카이사”라는 뜻입니다. 뒷면에는 PONTIF MAXIM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는 “최고의 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지역의 총독은 사람 숫자대로 데나리온을 거두었고, 이를 로마의 황실로 보냈습니다. 만약 이 책무를 다 하지 못하거나 방해를 한다면 로마제국과 황제에 대한 반역죄로 엄히 처벌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젤롯당 혹은 열심당이라고 불리던 사람들은 바로 이 주민세 거부 운동을 벌였던 집단입니다. AD 66년 예루살렘의 1차 유대 독립전쟁은 바로 이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렇게 이들이 과격하게 로마의 주민세를 거부했던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의 통치자는 하나님 한 분이셨습니다. 둘째, 보시는 바와 같이 로마의 은전 데나리온에는 황제의 흉상이 있었는데,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율과 신앙에 저촉되었던 것입니다. 유대의 많은 백성들은 열심당원들과 똑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사실 유대의 민족 지도자들(특히 바리새인들)도 이와 같은 문제 때문에 황제에게 내는 세금을 매우 불편해 했습니다. 그러나 열심당원과 같은 격한 거부 운동에 동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심적으로는 매우 불편했으나 황제의 규율을 지키는 대신 자신들의 권력이 보호 받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백성들이 로마 황제에게 내는 세금을 매우 불경스럽게 생각하고 있고, 어쩔 수 없어 납세의 의무만을 형식적으로 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만약 예수가 황제에게 세금을 내야 한다고 하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독한 것이 될 것입니다. 또한 백성들은 예수님에게서 등을 돌릴 것입니다. 반대로, 황제에게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한다면 로마제국의 법과 황제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죄를 물어 처형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속임수를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지혜롭게 말씀하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줘라. 그러나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할 것이다.” 라고 말이지요. 잔꾀로 예수님을 옭아매려 했던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지혜에 감탄하고 맙니다. 그들은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실 오늘의 본문은 이상의 내용 이외에 더 이상 설명 할 것이 없는 명쾌한 대화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좀 더 깊이 있는 사실이 녹아 있습니다.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 저는 세 가지 질문을 먼저 드리고자 합니다.

 
ⅰ 데나리온이라는 돈은 느닷없이 어디서 나타났을까요? 예루살렘에서는 사용하기 곤란한 로마 황제의 돈을 이렇게 쉽게 꺼내 보일 수가 있는 것입니까?

 

ⅱ 그런데 왜 갑자기 세금이 논쟁의 주제가 되었을까요?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부여 받은 것과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ⅲ 도대체 하나님의 것이란 또 무엇이란 말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하나님께 드려야 할까요?

 
마치 스님들의 선문답 같은 본문의 대화만으로는 풍부하고 입체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으니, 본 사건의 내막을 보다 더 잘 살피기 위하여 성서의 이야기들을 좀 더 풀어가겠습니다.

 
본문이 등장하는 이유는 성전정화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공관복음 세 편은 모두 다 이 부분에서 순서가 같습니다.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정화 사건 - 권위 논쟁 - 포도원 농부 비유 - 황제의 세금 논쟁 - (가장 큰 계명) - (과부의 헌금) - 예루살렘 멸망 예언, 이렇게 몇몇 사건이 똑 같은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순서대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님은 경건히 기도해야할 성전 안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각지에서 예루살렘으로 찾아온 유대인들은 로마의 동전을 유대의 동전으로 환전 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서는 성전세를 로마의 화폐로 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전 밖에는 환전 상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환전 할 때 당연히 수수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인들이 성전 안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성전 밖에서 미처 돈을 바꾸지 못한 사람들이 성전 안에서 환전을 하거나 돈을 빌렸던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성전 안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회당을 관리하거나 예배를 준비하는 종교지도자들은 로마의 돈이 오고가는 데도 그들을 전혀 제제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서로 유착관계에 있었던 것입니다.

 

성전 안이든 밖이든 고리로 장사를 하는 것도 문제인데, 순진하고 가난한 백성들의 귀한 재물을 착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그 배후가 로마의 치리자이라면, 비록 유대인이더라도 장사치라면 용서는 할 수 없을지언정 이해는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모시는 유대의 제사장이었고 백성들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알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먼저 데나리온이라고 하는 돈의 의미입니다.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라고 다들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면 왜 데나리온이 하루 품삯의 기준이 되었을까요? 황제의 병사들에게 주는 하루치 녹의 기준이었기 때문입니다. 워낙 데나리온은 로마 황실에서 자신의 병사들에게 봉사의 대가로 줄 목적으로 주조됩니다. 또한 황제 자신에 대한 충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로마 황제가 그의 힘으로 만들어낸 질서이며 가치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데나리온으로만 인두세 형태의 주민세를 받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황제에게 충성을 해야지만 데나리온을 받을 수 있었고 그래야만 세금을 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데나리온은 황제가 정치적 경제적 혹은 군사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교묘한 권력이었습니다. 때문에 모든 가치는 황제에게 충성하는 정도를 가지고 평가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당나귀 한 마리는 황제에게 40일을, 소 한 마리는 200일을 충성해야 얻을 수 있는 재산이며 황제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면 당나귀나 소를 구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모든 사람은 황제에게 충성하며 황제에게 봉사 할 수 있는 육체적 가치를 황제로부터 평가받아 노동력이 있는 12세에서 65세의 사람들은 모두 황제에게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력이 황제의 것임을 인정해야만 살아 갈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노동력을 팔며 일하는 사람들, 즉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해입니다.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화폐로는 데나리온이 다소 큰돈입니다. 사람들은 음식을 사야하고 소소한 물건들이 필요합니다. 때로 여관에서 숙박을 해야 하며 필요에 따라 소액의 현금 거래를 해야 합니다. 이때 데나리온은 큰돈입니다. 이것보다 좀 더 작은 단위의 돈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의 화폐로만 헌금이나 성전세를 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환전상인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는 유대인들은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해 가치가 낮아 양이 많고 부피가 상대적으로 큰 유대의 동전을 가지고 오지 않습니다. 같은 가치이지만 양과 부피가 작은 로마의 돈을 들고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성전 앞에서 돈을 환전했습니다. 그런데 이속에 밝은 환전상인들은 환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고리의 이자를 받고 예루살렘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폐를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이때 환전할 로마의 돈이 없거나, 충분히 헌금 할 유대의 돈이 없던 사람들은 비록 이자가 높더라도 그 돈을 빌려야만 했던 것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빌려야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삶이 궁핍하거나 너무 어려워 생존 자체에 문제가 있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런 사람들은 헌금할 생각조차 못했겠지요. 다만 이들은 온전한 노동의 가치를 평가받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너무 어리거나, 너무 늙었거나, 몸이 아프거나 온전치 못했던, 혹은 일을 해야만 하는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주로 허드렛일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매우 힘들지만 온전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그에 합당한 일당을 받지도 못합니다. 황제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이야 합당한 녹을 받으며 세금도 낼 수 있고 헌금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렇지 않았던 가난한 사람들은 열심당처럼 황제의 역적이 되거나 혹은 그저 가난한 사람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전정화 사건 이후 예수님의 행위는 예루살렘의 권력자들에게는 매우 불쾌한 일이었고 그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는 각지에서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예수님을 매우 좋아했었습니다. 당연히 예루살렘의 권력자들은 예수를 따르는 백성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처음 권위논쟁에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 및 장로들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도대체 당신이 이러한 행위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누구로부터 그러한 권한을 받았느냐는 질문이죠. 아무것도 아닌, 그저 가난한 동네 갈릴리의 사람이 저 고고한 예루살렘 성전에서 자신들의 허락도 없이 판을 뒤엎었으니 그들 입장에선 당연한 질문입니다. 예수님도 되묻습니다. 그럼 세례자 요한의 권위는 누구에게서 나오느냐고 묻지요. 여기에 답하면 자신도 답하겠다고 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권위가 하늘에서라면 예수님도 하늘에서라고 하겠지요. 세례자 요한의 권위가 군중들로부터라면 요한을 따르던 사람들이 화를 낼 것입니다. 요한은 투표로 선출된 지도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율법학자들과 그 동행자들은 대답하지 못함은 물론 예수님을 면박하려던 목적도 이루지 못합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포도원의 비유를 통해 소작농부들이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였음을 비유로 설명합니다. 이 말은 곧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자신의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자신을 음해하려는 것을 간파하고 있음을 말씀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의 모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로부터의 금전적 손해, 당한 수모, 게다가 권위논쟁까지... 이대로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신들의 부와 권력과 지위가 위태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포도원의 소작 농부들처럼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한지를 묻는 본문의 사건으로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예수님을 거짓으로 치켜세우면서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지를 물어 오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데나리온이라고 하는 동전을 보자고 하십니다. 여기서 첫 번째 궁금증을 풀어봅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로마 황제의 신적 권위를 상징한다는 데나리온을 어째서 이처럼 쉽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일까요? 혹시 주머니 안에 가지고 다닌 건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이 어찌 아니 불경스럽다고 할 수 있나요. 성경에는 그들이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보낸 정탐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추측컨대 이들이 바로 성전정화 사건에서 환전하고 물건 팔던 그 치들이고, 그들의 배후는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임이 명백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범하고 있는 죄를 깨우쳐 줍니다. “네가 세금을 내기위해 가지고 있는 돈에는 황제의 모습이 새겨져 있구나. 그리고 아우구스투스로부터 신성을 부여받은 그의 아들 티베리우스라고 써있구나. 이건 하나님의 것이 아니구나. 이건 다시 티베리우스에게 돌려주어라. 그러나 네가 진정 하나님께 받은 것이 있다면 그건 하나님께 돌려드리자.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느냐.” 하고 말입니다.

 
좀 쉽게 풀어보죠. “물질, 돈, 부, 명예, 권력 이런 건 마몬의 것이구나. 그러니 그런 건 마몬에게 다시 돌려주고, 네가 진정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다시 우리의 하나님께 돌려드리자.” 하고 타이르고 계신 것입니다. 그들은 우문을 했지만, 예수님은 현답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한 뼘 더 들어가면 예수님은 화를 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죽이려고 모함하는 이 사람들 앞에서 깊은 사랑으로 깨우쳐 타이르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지혜만 보이고 그의 사랑은 보이지 않은 탓이지요. 다시 부활논쟁으로 이어집니다. 이때 예수님은 산자의 하나님을 말씀하시고 계시지요. 하늘나라와 부활에 대해 관심이 없던,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어봅니다. 사실 질문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늘의 권위에 대한 논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공격하듯 말했을 것입니다. “하늘에서 받은 권위, 하늘나라에서나 써먹어라 여기는 로마가 다스리는 세계이니 우리는 여기식대로 살아가련다. 땅에서는 로마 황제가 왕이니 나중에 하늘에 가서나 하나님의 법을 따르겠노라. 그래 그런데 그 하늘나라의 법을 네가 알면 한 번 말해 보거라. 만약 모르면 너 가짜고, 알더라도 그건 하늘의 법이니 여기선 쓸모없구나.” 하는 식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법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 땅에 사는 백성들의 하나님이니까요.

 
그리고 나서 두 렙돈(Lepton)을 헌금한 과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여인을 보며 예수님은 크게 칭찬을 합니다. 여기서 렙돈이라고 하는 돈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보겠습니다.

120808_20120805말씀증거_사진자료Lepton_BasilewsAlexandrou.jpg

렙돈은 그리스 지역에서 통용되던 화폐입니다. 동으로 만든 동전으로 무개는 15g이고 직경은 15-20mm 입니다. 렙돈은 마카비 왕조의 알렉산더 얀네우스(BC.103-76)가 만들어 통용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전의 앞면엔 힘을 상징하는 배의 키가, 뒷면엔 태양을 상징하는 문양이 있습니다. 동전에 새겨진 글씨는 헬라어로 BASILEWS ALEXANDROU 알렉산더의 통치라는 뜻입니다.

 
가치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데나리온의 1/128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자료에 의하면 두 렙돈이 데나리온의 1/300로 렙돈 하나의 가치는 데나리온의 1/600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즉 렙돈 600개가 있어야 데나리온 하나와 같은 가치가 됩니다. 정말로 가치가 작고 작은 돈입니다. 지금 우리 시세로 노동자의 하루 일당을 6만원으로 계산하면 렙돈은 100원의 가치가 있습니다. 지금으로 치자면 여인은 200원을 헌금함에 넣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여인을 보고 “이 가난한 과부가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 저 사람들은 다 넉넉한 가운데서 자기들의 헌금을 넣었지만, 이 과부는 구차한 가운데서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구나.” 하고 칭찬합니다. 예수님은 돈의 가치보다 노동의 가치, 삶의 가치, 생명의 가치를 더 중히 보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흐름으로 보아 이것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인이 가지고 있던 돈 전부, 헌금 할 수 있었던 화폐는 두 렙돈 뿐이었습니다. 워낙 세겔이나 므나와 같은 돈을 헌금 했어야 했겠지요. 그러나 이 또한 데나리온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들고 관리하는 사람만 다를 뿐 결국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소유하여 쌓아둘 수 있는 돈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의 돈은 성전세라고 하는 세금을 내기위해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데나리온과 똑같이 세금을 내기위한 용도의 화폐일 뿐입니다. 로마의 황제에게,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에게 겹겹이 세금을 내고 남은 자신의 전부, 그것이 바로 두 렙돈이었던 것입니다.


왜 갑자기 세금이 본문의 주제가 되었을까요? 단순히 식민지의 서러움을 고발하는 것 외에도 민족의 지도자들의 비리를 함께 고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가난한 과부가 낸 동전은 하나님 나라를 지키려했던 유대 마카비 왕조의 상징입니다. 그녀가 헌금한 것은 황제를 위한 노동의 가치도 아니었고, 유대의 부패한 지도자들을 위한 노동의 가치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슬픈 노동자가 품을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의 가치라고 저는 저릿저릿한 가슴으로 해석해 봅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마태복음의 기자는 황제의 세금 논쟁 이후, 첫 째 가는 계명 논쟁을 풀어 하나님께서 받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으니,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가는 계명이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라고 마태복음 22장 37절부터 39절까지 적혀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데나리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을 주셨고 우리는 그 사랑을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할까요? 지혜로우신 예수님은 이어서 우리의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은 나를 사랑함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이웃들 곧, 하나님의 모든 백성, 그 피조물 모두에게도 그와 같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로 돌려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로... 도대체 무엇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할까요? 데나리온에 로마 황제의 형상이 있다면, 사랑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데나리온이 로마의 지배를 증명하고 있다면, 사랑은 하나님의 지배를 증명해줍니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와 장로들이 데나리온을 이용하여 자신의 권위를 지켰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며 하나님 나라의 권위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깨우쳐 알려주시려고 했던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예루살렘 성이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예언과 함께 종말의 때가 올 것이며 그 때에는 깨어 있으라는 가르침으로 끝납니다. 데나리온으로 쌓아 올린 지배는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끝에는 새롭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이름은 이 땅에 이를 것이며, 하늘 나라는 이 땅에도 임할 것입니다. 땀 흘리는 낮은 자, 땅의 사람들에게도 기쁨의 그 나라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깨어서 분별해야 합니다. 무엇이 데나리온의 지배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지배인지, 믿음대로 하나님의 지배를 따라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곧 이 땅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우리의 이웃들, 하나님의 모든 백성, 이 모든 피조세계와 함께 하나님의 것을 진실로 함께 나누며 생명 세상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어 있어야만 합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의 삶을 보듬어 주시는 하나님,

당신의 이름이 하늘 높은 곳에서 이 땅으로 이르소서.

땀 흘리는 낮은 자, 땅의 사람들에게도

당신 나라의 기쁨을 만나게 하소서.

하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소서.


우리에게 명하신대로 깨어 있는 영혼으로 우리가 서로 나누며 기도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목숨과 우리의 뜻을 다해,

하나님 한 분을 사랑합니다.

그와 똑같이, 당신의 피조 세계 온 우주의 이웃들을

내 몸처럼 사랑합니다.
끊임없이 타일러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사랑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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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27 시편 의인은 결국 승리합니다 시36:1-12  이한규 목사  2015-03-18 537
11826 디모데전 축복을 예비하는 4대 삶 딤전6:17-21  이한규 목사  2015-03-18 686
11825 느헤미야 큰일 성취에 필요한 것 느6:10-19  이한규 목사  2015-03-18 399
11824 느헤미야 시련 중에 필요한 자세 느6:1-9  이한규 목사  2015-03-18 449
11823 창세기 찬란한 비전을 이루는 길 창15:1-7  이한규 목사  2015-03-18 522
11822 느헤미야 리더의 자질 4가지 느5:14-19  이한규 목사  2015-03-18 776
11821 시편 막힌 길을 여는 길 시35:14-28  이한규 목사  2015-03-18 720
11820 시편 기도는 헛되지 않습니다 시35:1-13  이한규 목사  2015-03-18 899
11819 시편 자연을 사역자로 시104:1-5  강승호 목사  2015-03-18 324
11818 요한계시 지혜로운 사람 계1:1-20  최장환 목사  2015-03-18 408
11817 열왕기하 영향력있는 자 왕하8:1-19  최장환 목사  2015-03-18 450
11816 요한복음 밥상을 차리신 예수 요21:8-19  조은하 교수  2015-03-16 773
11815 마태복음 놀이와 초월 마19:13-15  구미정 교수  2015-03-16 596
11814 누가복음 충실한 제자의 요건 눅4:18-21  권진관 형제  2015-03-16 427
11813 예레미야 신앙인의 불신앙 렘7:1-11  한인철 목사  2015-03-16 906
11812 마태복음 세 남자 이야기 마5:28  최만자 자매  2015-03-16 661
11811 마태복음 과학적 질문 신학적 답변 [1] 마19:24-26  강종수 목사  2015-03-15 302
11810 신명기 정직한 지도자의 축복 신6:18  이승남 목사  2015-03-15 467
11809 민수기 자기 중심에서 복음으로 민21:4-9  강승호 목사  2015-03-14 1456
11808 마태복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막5:25-34  최만자 자매  2015-03-14 1201
11807 사무엘상 긴 호흡으로 일하시는 하나님 삼상3:15-4:1  박득훈 목사  2015-03-14 818
» 누가복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로 file 눅20:22-25  이선근 형제  2015-03-14 913
11805 요나 됨의 영성 욘1:12  김부겸 목사  2015-03-13 342
11804 요한복음 하늘은 밥 속에 있다 요6:22-59  김부겸 목사  2015-03-13 445
11803 마태복음 베드로의 영성 마16:18  김부겸 목사  2015-03-13 560
11802 마태복음 하나님은 자연이시다 마6:25-34  김부겸 목사  2015-03-13 307
11801 창세기 흩어짐의 길 창11:1-9  김부겸 목사  2015-03-13 362
11800 출애굽기 뜻을 돌이키는 삶 출32:7-14  김부겸 목사  2015-03-13 522
11799 마태복음 괜찮아 괜찮아 마5:5  김부겸 목사  2015-03-13 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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