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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한 제자의 요건

누가복음 권진관 형제............... 조회 수 426 추천 수 0 2015.03.16 16:46:40
.........
성경본문 : 눅4:18-21 
설교자 : 권진관 형제 
참고 : http://www.saegilchurch.or.kr/index.php?mid=sermon&category=99215&document_srl=125238 

충실한 제자의 요건

(누가복음 4:18-21)

 

2012년 9월 30일 주일예배

권진관 형제

(새길교회 신학위원, 성공회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오늘은 한가위 추석날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좋은 가을 날씨 동안에 연휴를 즐기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정말 복된 기간이지만, 이 시간에도 어려움 속에서, 외로움 속에서 힘들어 하는 이웃들이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지난 7월에 이순(耳順)의 나이인 환갑을 맞아서 이를 기념하여, “민중신학 에세이”라는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친구들, 동지들이 작은 출판기념회를 열어 주었습니다. 이제 신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한 인간으로 한 단계 넘어서야 하는 시기를 마지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나이가 들면서 저의 마음속에 들어오는 것은 어떻게 하면 뜻있고, 의미있고, 멋있게 사는 것인가 하는 생각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책과 커피와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조용한 까페와,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녹색 걷는 길과 자전거 길만 있으면 내 삶이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마는, 그러나 그것보다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내가 진실과 진리에 잇대어 사는 길이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어떻게 잘 마무리할 수 있느냐는 생각을 요즘 부쩍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그럴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선배 어른들이 계실 것입니다마는, 저는 이런 것도 더 젊어서부터 해둘수록 좋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그러던 중 지난 여름에 한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책은 제가 좋아하는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Alain Badiou)의 Logics of Worlds입니다. 이 책에서 스파르타카스(Spartacus)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스파르타카스가 노예로 끌려와 검투사가 되었는데, 이제 기원전 73년에 스파르타카스는 동료 검투사들과 자유를 찾기 위해 노예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 반란의 모토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노예이지만, 자유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반란이 일어나니까, 노예 사회에서 두 패로 갈라집니다. 하나는 스파르타카스에 참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에 참여하지 않는 노예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반란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이 반란에 의해서 잘되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다른 그룹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스파르타카스를 제거하려고 하는 세력이었습니다. 스파르타카스를 제거하려는 세력은 주로 로마지배세력이고 로마군대였습니다. 스파르타카스 군대는 로마군대를 이기고, 이탈리아 남부를 장악하기도 했지만, 결국 정규군에게 패배하고, 6000명의 노예반란군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됩니다. 스파르타카스는 노예들에게, 우리도 자유를 되찾아 고향에 갈 수 있으며, 그것을 이루는 때는 바로 지금이며,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이 시작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로 노예들을 모았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현재를 믿고, 그것을 이루는 데에 참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갈라집니다. 스파르타카스 노예반란군들은 이 새로운 현재를 믿고, 그것에 투신했던 것입니다.

 

오늘은 역사 이야기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오늘 한국의 역사 중에 1894년 전후에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1894년은 동학농민 전쟁이 있었던 해이고, 청일 전쟁이 한반도에서 있었던 해입니다. 이 당시 고종황제와 조선의 관리들은 다른 강대국에 의존하여 나라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에 일본은 조선을 병탐하려고 착착 실행에 옮기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봉준이 중심이 되어 동학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나라를 구하고 나라도 개혁하려고 했습니다. 수만 수십 만 명의 동학농민들이 일어났는데, 조선의 귀족들과 관리들, 황제는 농민들의 편에 서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일본과 손을 잡고 동학농민들을 공격하고 죽였던 것입니다. 우금치 일대에서의 전투에서 수 만 명의 동학농민들이 죽고, 결국 조선은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동학 농민운동의 메시지는 척양척왜, 보국안민을 통한 자주독립이었고, 이것에 많은 농민들이 호응했습니다. 이들은 이 메시지가 지금 이 시간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되, 지금 이 시간에 열렸던 것입니다. 동학군들이 비록 많이 죽었지만, 저는 이들의 결단은 나라를 구하고, 세상을 개혁해 보려고 하는 숭고한 결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새로운 시작을 역사 속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에 충실하게 응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시대를 거부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전봉준을 취조한 서광범이라는 당시 법부대신과의 일문일답을 여기에서 일부만 소개하려고 합니다.

 

서광범 : 왜 난을 일으켰는가?

전봉준 : 어찌하여 나를 보고 난을 일으켰다고 하느냐? 작란을 하는 것은 바로 왜놈에게 나라를 팔아먹고도 끄떡없는 부패한 너희 고관들 아니냐?

 

서광범은 개화파 지식인이었고, 김홍집 개화파 내각의 핵심이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개화파 엘리트들이 민중을 억압하고 탄압했던 것은 우리가 지금도 깊이 생각하고 반성해야 할 거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회의 엘리트 계층이 외국 강대국과 손잡고 허약한 민중계층을 억압하고 죽이는 현실이 다시는 재연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정말 1894년의 시대로 다시 돌아가게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저는 평화주의자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우리 주위를 돌아볼 때, 특히 우리의 지식인들, 엘리트들이 너무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의 엘리트 계층들이 미국의 보호막을 너무 믿고, 그 속에 너무나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한반도의 운명을 일본과 미국, 혹은 미국과 중국이 우리와 상관없이 결정해 버릴 수 있을 거란 걱정이 듭니다. 일본의 조선병합은 가쯔라-태프트 밀약에 의해서 미국의 방조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한 일이 다시 반복될까 걱정입니다. 미국은 남한을 아직도 일본의 속국처럼 보고 있는 듯합니다. 자주적인 외교권이 우리에게 아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주변 국가들은 사거리 1만 Km이상의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데 우리는 300 킬로 정도에서 이제 800 키로 정도할 수 있도록 미국의 허락을 받으려고 안절부절하고 있습니다. 강정마을을 해군기지화 하는 것은 미국의 대중국전략의 일환이라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2010년는 국치 100주년이 되던 했습니다. 그리고 전쟁 60주년이었습니다. 내년은 휴전 60주년이 됩니다.

 

우리는 원하지 않는 전쟁에 끌려들어갔고, 우리의 의지에 반해서 나라가 분단되었습니다. 일제의 속박은 우리가 받았는데 우리는 분단으로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문제에 대해서 우리 크리스천들과 지식인들이 무관심하고 있습니다. 다시 1894년으로 되돌아갈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앞섭니다. 1894년은 조선의 지배 엘리트 계급이 일본과 손잡고 동학농민들에게 선전포고했던 해입니다. 이러한 패턴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예를 들어서, 오늘의 한국의 지배 엘리트들이 미국과 일본과 손을 잡고 북한의 동족을 치는 일에 합류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평화와 통일을 이루어 내야 합니다. 지금 정부는 그것을 못했다면, 다음 정부에서는 그것을 꼭 이루어놓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의 본문 말씀을 가지고 잠깐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기름을 부으셨으므로 주의 영이 임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곧 주의 영이 임하는 일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그리고 눈먼 자에게 보게 함을, 그리고 억눌린 자들을 해방시키는 것, 이런 것들이 예수의 새로운 시작의 내용이었습니다.

 

예수의 새로운 시작은 이제 주님이 원하시는 시대의 시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고 나오는데, 여기에서 주의 은혜의 해는 주가 마음에 드시는 새로운 시대를 말합니다. 예수에 의해서 새로운 시작이 지금 시작되었던 것이며, 이것은 주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선포를 들은 사람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결단을 요구하는 선포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이들에게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이 성경 말씀은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이 말씀이 오늘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말씀으로, 지금 새로운 현재가 시작되었으니 이제 이것을 받아들이는 결단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에 의해서 시작된 새로운 현재를 인정하라는 촉구입니다.

 

그러나 예수 시대의 주체들 중에 소수만이 이러한 예수의 선포에 응했습니다. 그의 제자들입니다. 그 소수들이 이제 예수의 공생애의 활동으로 점점 더 확장되어 갑니다. 예수 시대에 예수의 선포에 의해서 당시에 존재했던 주체들이 의견이 갈리게 됩니다. 그 주체의 유형들을 대략 살펴보면 이렇게 됩니다. 율법학자들인 바리새파, 제사장 계급인 사두개파, 로마 제국과 적대적인 혁명적인 젤롯파, 이밖에 로마인들, 헤롯왕 당파들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는 예수가 선포한 메시아적 현재를 부정했습니다. 그것을 도표로 보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예수와 그 제자들

(신실한 주체들)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받아들임

․로마제국

․그럴리 없어. 그것은 이미 로마 제국과 함께 시작되었던 거였어

․유대인들/바리새인들/제사장들

․그건 율법과 함께 이미 시작되었어

․젤롯당

․유대나라 건설로 시작 됨

․헤롯당

․우린 헤롯과 운명을 같이 할 거야, “이대로가 좋사오니.”

 

예수의 신실한 제자들은 예수가 선포한 지금 여기에서 시작된 새로운 시대, 주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원하시는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시대에도 이러한 신실한 제자들, 신실한 주체들은 지배계층으로부터 억압당하고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그리고 예수가 원했던 것은 이러한 신실한 주체들이 살아남을 뿐 아니라, 이들의 선포가 받아들여져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좋아하는 시대를 여는 것이 신실한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마지막으로, 오늘날 우리 한반도에서 새로운 현재를 여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예수의 새로운 현재를 오늘의 현실 속에서 구현해 나가야 할 것으로 봅니다. 그것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눈먼 자들에게 보임을, 억눌린 사람을 해방시켜 주는 과제를 오늘 우리 교회는 충실하게 그리고 창조적으로 실행해야 합니다. 제가 창조적이라고 한 말씀은 이 말씀의 의미를 우리 시대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침략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더 이상 가난한 사람들이 죽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최근 쌍용 자동차 해고자들이 죽어가는 것이 그 예입니다. 이제는 그런 일들이 생기면 안 생기도록 막아야 합니다. 교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의 일을 지금 이 땅에서 계속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러한 예수의 초청에 응답해야 합니다. 그 예를 로마인의 지배 엘리트이면서도 예수의 초청에 응답한 사람인 로마 장교 백부장에게서 발견할 수 있고, 부유한 세리장 삭게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백부장은 자기의 종이 중풍으로 누워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예수에게 고쳐달라고 청했습니다. 예수를 모실 자격이 없음을 고백하고,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 종이 나을 것입니다”고 예수께 말씀드립니다. 세리 삭게오는 예수의 초대에 응해서 가진 전 재산을 반을 나누어 이웃에게 주고, 잘못 걷은 세금은 4배로 갚았습니다.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비록 못나고, 용기 없고, 혹은 너무 가진 것이 많아서 또는 너무 많이 알아서, 예수를 따를 능력이 없어졌지만, 그러한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백부장과 세리장 삭게오 처럼 예수의 초청에 응답하여 그의 신실한 제자가 되기를 기도하고 결단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주님,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현실 속에 있음을 발견합니다. 경제가 발전했음에도 약자들은 더 죽음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추석을 맞이한 우리는 그동안 받은 많은 복을 느끼며 즐거워합니다마는 그 속에 슬픔도 함께 하고 있음도 발견합니다. 당신께서 선포하신 말씀에 응답하는 것은 이 어렵고 복잡한 시대에 진리의 등불을 드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희들을 인도하셔서, 진리에 잇대어 사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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