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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사5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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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사랑
본문: 이사야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어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아 팔을 겨우 움직일 수 있었고, 얼굴은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으며, 음식도 간신히 삼키는 정도였습니다. 소년은 매일 할아버지 방으로 점심을 챙겨 가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소년은 그 일을 아주 성실하게 해냈지만, 별로 즐거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청년기에 접어들면서는 그 일에 싫증을 내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어머니에게 『이제부터는 엄마가 할아버지를 먹여 드리세요!』라고 소리치고 말았습니다. 소년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하던 일을 멈추고 돌아서서 말을 꺼냈습니다. 『너도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었으니 할아버지에게 일어났던 일을 전부 알 때가 된 것 같구나. 할아버지는 원래 아주 건강한 분이셨지. 그런데 네가 아기였을 때 사고가 생겼단다. 불이 났었지. 지하실에서 일하던 네 아버지는 네가 엄마와 함께 있으리라 생각했고, 나는 네가 아버지랑 있을 거라 생각했단다. 그래서 각자 급히 집을 빠져나왔던 거야. 그때 먼저 나와 계셨던 할아버지가 순간적으로 사태를 파악하시고는 황급히 집 안으로 뛰어들어 가셨단다. 2층에서 너를 찾아내신 할아버지는 젖은 담요로 너를 감싸 안고 미친 듯이 뛰어나오셨단다. 그날 너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는 심한 화상뿐 아니라 연기에 질식된 상태에서 응급실로 실려 가셨어.』
소년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한 번도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소년은 더 이상 아무런 불평 없이 점심을 챙겨 할아버지 방으로 갔습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눈이 수북히 쌓이도록 내린 어느 겨울날, 강원도 깊은 골짜기를 두 사람이 찾았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한사람은 미국 노인이었고, 젊은 청년은 한국사람 이었습니다. 눈 속을 빠져 나가며 한참 골짜기를 더듬어 들어간 두 사람이 마침내 한 무덤 앞에 섰습니다.
『이곳이 네 어머니가 묻힌 곳이란다.』 나이 많은 미국인이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날을 회상합니다.
6.25 전쟁시 한 미군 병사가 강원도 깊은 골짜기로 후퇴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이상한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가만 들어보니 아이 울음 소리였습니다. 울음소리를 따라가 봤더니, 그 소리는 눈구덩이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눈 속에서 꺼내기 위해 눈을 치우던 미군병사는 소스라쳐 놀라고 말았습니다. 거기에 또 한 번 놀란 것은 흰눈 속에 파묻혀 있는 어머니가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알몸 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피난을 가던 어머니가 깊은 골짜기에 갇히게 되자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 아이를 감싸곤, 허리를 꾸부려 아이를 끌어 안은채 얼어 죽고만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에 감동한 미군병사는 언 땅을 파 어머니를 묻고, 어머니 품에서 울어대던 갓난아이를 데리고 가 자신의 아이로 키웠습니다. 아이가 자라 청년이 되자, 지난날 있었던 일들을 다 이야기하고, 그때 언 땅에 묻었던 청년의 어머니 산소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청년이 눈이 수북히 쌓인 무덤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무릎아래 눈을 녹이기 시작했습니다. 한참만에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더니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기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알몸이 되었습니다. 청년은 무덤위에 쌓인 눈을 두 손으로 정성스레 모두 치워냈습니다. 그런 뒤 청년은 자기가 벗은 옷으로 무덤을 덮어가기 시작 했습니다. 마치, 어머니께 옷을 입혀 드리듯... 청년은 어머니의 무덤을 모두 자기 옷으로 덮었습니다. 그리고는 무덤위에 쓰러져 통곡을 합니다. 『어머니 ! 그날 얼마나 추우셨어요!』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3:18)
알베르트 슈페르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공장을 100% 가동시키는데 천부적인 지혜를 발휘했던 공학자이자 건축가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 전범 재판 때 자신의 죄를 인정한 슈페르는 20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석방이 되자 그는 여러 권의 책을 썼습니다. 한번은 ABC 방송 기자가 인터뷰를 했습니다.
『슈페르 씨, 초창기에 쓴 책을 보면 '나의 죄는 절대로 용서받을 수도 없고, 용서받아서도 안 된다.'라는 말이 있던데요.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습니까?』
슈페르는 아주 슬픈 기색을 띠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20년 동안 형무소에서 죗값을 치렀지만,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고 제 마음이 말합니다.』
그는 무섭고 잔인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얼마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관계없이 스스로 죄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피 흘림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라고 사죄의 원칙을 정해 놓으셨습니다.(히9:22) 죄 없는 의인의 피만이 죄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의로운 피를 흘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예수님과 우리 자리를 바꾸어 주셨습니다. 우리 죄는 예수님의 것이 되었고, 예수님의 의는 우리 것이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5:15)
브라질 산호세의 캄포라스라는 도시 근처에는 이상한 시설이 있습니다. 이십 년 전, 브라질 정부는 교도소의 운영을 두 명의 그리스도인에게 맡겼습니다. 그 건물은 휴마이타라고 개명되었고,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두고 운영되었습니다. 오직 두 명의 전임 직원을 제외하면, 모든 업무가 수감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척 콜슨은 그 교도소를 방문한 후에 다음 같은 보고서를 제출하였습니다. 『나는 휴마이타를 방문하였을 때 모든 수감자들이 웃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를 안으로 들여보낸 사람은 살인을 저지르고 잡혀온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어느 곳을 가든지 사람들은 평온해보였습니다. 안내자는 나를 예전에 죄수들을 고문하던 작은 독방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지금은 단지 한 사람만 갇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로 들어가보고 싶으세요?’ ‘물론이지요.’ 그는 천천히 육중한 문을 열었습니다. 나는 그 독방에 있는 죄수를 보았습니다. 휴마이타의 식구들이 아름답게 조각해놓은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교도소의 유일한 죄수인 예수는 그 십자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위해 남은 형기를 채우고 계십니다.’ 안내자가 조용히 말했다.』 죄의 감옥에서 석방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죄의 형벌을 누군가가 다 갚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대속은 갈보리에서 이미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성선생님이라 불리는 중국에 계신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분이 제게 이런 간증을 해 주셨습니다.
『저는 전에 미국과 홍콩을 다니면서 자동차를 실어 나르는 큰 배의 선장이었습니다. 이 일을 하던 중에, 한 형제로부터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미국에서 홍콩으로 배를 몰고 가야하는데 갑자기 열이 너무 나서 도저히 항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다른 항해사와 순번을 바꿨는데, 글쎄 그 배가 가라앉아 나 대신 탔던 항해사가 죽고 말았지요. 이전까지 저는 그냥 예수님이 날 위해 죽으셨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이 나 대신 죽는 일이 생기자 대신 죽는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결국 사표를 쓰고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됐습니다.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님의 그 사랑에 눈을 뜨자 그 빛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위인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일은 가끔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기쁜 일이 아닙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하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13)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관에는 <그리스도의 수난상>이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습니다. 어느 날, 리들리 하버갈이라는 여인이 그림 아래 적힌 『내가 너를 위하여 이처럼 고통을 당했는데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했느냐?』라는 글귀를 메모지에 적어 두었습니다. 얼마 뒤, 그녀는 그 메모지를 다시 보았지만 전과 달리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어 벽난로에 던졌습니다. 그 순간 역풍이 불어 메모지가 다시 거실 안으로 날아와 떨어졌습니다. 이 일을 심상치 않게 여긴 그녀는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해 그 글을 바탕으로 찬송가 가사를 적었습니다. 그 찬송이 바로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찬송가 311장)입니다.
찬송가 311장 (통 185장) 『내 너를 위하여』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 내 너를 위하여 몸버려 피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주느냐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주느냐
2. 아버지 보좌와 그 영광 떠나서 밤 같은 세상에 만 백성 구하려
내 몸을 희생 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내 몸을 희생 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3. 죄중에 빠져서 영 죽을 인생을 구하여 주려고 나 피를 흘렸다
네 죄를 대속 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네 죄를 대속 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4. 한없는 용서와 참사랑 가지고 세상에 내려와 값없이 주었다
이것이 귀중하건만 날 무엇주느냐 이것이 귀중하건만 날 무엇주느냐
세상의 모든 종교는 사람이 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기독교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해 주셨는가를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엄마는 아기를 낳기 위해 피를 쏟으며 산고를 치르지만 아기는 엄마를 위해 한 일도, 할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백성을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주셨는데 더 이상 무엇을 달라고 몸부림치는 겁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미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 용서, 치료, 기적, 능력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롬14:15)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죄와 율법과 사망과 저주에서 자유롭게 해주심을 확실히 믿으시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죄로 죽었던 우리를 소생시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능력의 피임을 명심하고 사나 죽으나 항상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보배로운 피를 흘려주셔서 우리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무한한 보혈의 능력이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영원히 그 피안에 살고, 그 피에 감사하며 그 보혈의 은총을 입은 자고서 항상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게 하옵소서.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보배로운 피를 흘리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후원: 연혼 결혼 정보회사: 홈페이지: http://yeonh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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