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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벧후2: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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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5.2.16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557) |
거짓에 미혹되지 않는 길
(벧후 2:9-16)
<
두려움에 빠지지 마십시오 >
지난주 토요일 SBS 방송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홍모란 자칭 여자 전도사가 거짓
예언으로 수많은 가정을 파괴한 사건이 방송되었습니다. 그 여자는 2014년 12월 14일 북한이 땅굴로 쳐들어와서 여자들은 정신대로 팔려가고
아이들은 인육으로 먹히니까 11월 말까지 한국을 떠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젖어 미국, 태국, 필리핀, 캄보디아
등지로 떠나 가족이 생이별을 했습니다.
그런 거짓말 유포를 그냥 놔두지만 말고 뭔가 공권력으로 제지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한
변호사의 말에 의하면 그 여자의 거짓 예언만으로는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돈을 건네준 사람이 고소를 해야만 사기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반 상식에 비춰 너무 허황된 말로 많은 가정을 파괴했다면 법을 폭넓게 적용해서 단죄해야 앞으로 그런 피해를
조금이라도 더 막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기 영혼과 가족을 지키는 것입니다. 법과 공권력이 모든 피해를 다
막아줄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어떻게 정상적인 멀쩡한 사람이 그런 정신병자 같은 사람이 내뱉는 거짓 예언에 속을까?” 언뜻 보면
이해되지 않지만 그런 일들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는 원초적인 두려움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탐욕스런 종교인은 늘
두려움을 이용합니다.
특히 거짓 종교인은 두려움과 신비감을 주려고 방언을 이용할 때가 많습니다. “아무라카 삼마타타 다루이 토도
기살라무.” 그 다음에 호소력 있는 소리로 방언통역을 합니다. “누구든지 살려고 하면 내 말을 정녕 따르라.” 그런 식으로 거짓 예언을 합니다.
“산다르바 올리고래 카투 아무 심파이 우칼라마(이제 곧 전쟁이 도래하니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임한다). 앙카라마 라누 한키우이 봉봉 살리우래
시마(내 말을 듣고 한국을 떠나면 살리라).” 그게 예언입니까? 황당한 얘기입니다.
제가 방언의 은사를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방언기도는 크게 할 수도 있고 적게 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기도에 깊이 몰입할 때는 저 나름대로의 방언기도를 읊조리며 합니다. 그 기도는 거의
저만 들을 수 있고 남들은 거의 들을 수 없게 하는데 그때 여러 가지 비전과 지혜를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처럼 방언이 개인의 기도생활에는
유익이 되지만 거짓 예언을 통해 두려움을 심으려는 무속적인 방언에는 절대 속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날, 멀쩡하던 남편이 거짓
예언 동영상을 보고 고민하다가 와서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이제 곧 전쟁이 일어난대. 그러면 아이들은 인육으로 먹히고 여자들은 정신대로
끌려간대. 2014년 12월 전에 빨리 외국으로 피신해야 한대. 빨리 외국으로 피신합시다.” 마치 가족을 대단히 생각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자기 말을 안 들으면 가족들을 버려서라도 혼자만 구원받겠다고 하는 것이 이단에 빠진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런 남편의 말을
듣고 아내가 말합니다. “당신 미쳤어요. 나는 안 가요.” 아이들도 안 간다고 했습니다. 그때 진짜 가족을 생각하는 책임적인 가장이라면 이렇게
나왔을 것입니다. “정 함께 안 가겠다고 하면 나도 남아 당신과 자녀들을 위해 북한군 한 사람이라도 막을게.” 그러나 실제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아내와 자녀를 버리고 홀라당 혼자 외국으로 피신했습니다. 그처럼 거짓 예언자, 거짓 치유자, 이단에 빠지면 이기적이 되고 자기중심적이 됩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한 어머니는 태국 치앙마이로 피신한 딸에게 가서 사정했습니다. “얘야! 한국으로 돌아가자! 한국에 작년
12월에 전쟁이 안 일어났다.” 그때 딸이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엄마! 왜 여기까지 쫓아와서 난리에요. 저는 한국에 안 돌아가요. 한국은
지금 보이지 않는 전쟁 중이에요. 다시는 절 찾지 마세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 경우에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낫습니다.
그때 찾아서 돌아가자고 할 때 자녀가 “저는 절대 안 돌아가요.”라고 하면 그 말 때문에 더 돌아오는 때가 늦어질 뿐입니다.
어떤
부모들은 자녀들이 잘못된 것에 속상해하면서 한탄을 합니다. “목사님! 제 아이가 술 담배에 손을 댔어요. 제 아이가 인터넷 게임에 빠졌어요.
만화에 빠졌어요. 나쁜 친구와 어울려 다녀요.” 물론 그런 것들도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만 그나마 이단에 빠지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차라리 술 담배에 빠지는 것이 낫습니다. 언젠가 술 담배는 끊게 됩니다. 차라리 만화나 인터넷 게임에 빠지는 것이
낫습니다. 그것 때문에 학업은 떨어져도 상상력이나 창조력이 자극되어 나중에 철이 들면 기발한 상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나쁜 친구와
어울려도 한때입니다. 자신이 계속 좋은 부모가 되어 자녀 곁을 지켜준다면 언젠가는 그 자녀가 돌아와서 오히려 효자가 됩니다. 그러나 이단에
빠지면 수많은 것을 잃게 되고 나중에 돌아와도 영혼이 절름발이가 되어 세상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현저히 약화됩니다.
두려움에
대처하는 사전 지식과 예방이 없으면 누구도 그렇게 미혹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강한 것 같지만 의외로 약한 존재입니다. 특히 선천적으로 두려움에
잘 휩싸이는 영혼들에게는 사전교육과 사전예방이 중요합니다. 자녀를 키울 때 부모의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두려움을 막아주고 두려움을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녀가 수시로 다가오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며 담대하게 살 수 있게
됩니다.
특히 부모들은 자녀들을 이상한 집회에 데리고 가서 아이를 ‘영혼의 병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미리 자녀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해주십시오. “얘야! 앞으로 공포를 주는 이상한 말을 듣거나 그런 동영상을 봐도 거기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지 마라.
하나님을 붙잡고 죽으면 죽으리라고 담대하게 대처해야 한다. 혹시 그런 상황이 생기면 그때는 꼭 나와 의논하고 바른 분들에게 상담을
부탁해라.”
이단 종교에 빠지면 물질과 가족 등 수많은 것을 잃습니다. 나중에 속은 것을 알 때쯤 되면 이미 영혼이 만신창이가 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원도 잘 가려서 가야 하고 자녀들을 여름 수련회에 보낼 때도 잘 가려서 보내야 합니다. 무서운 설교로 아이들의
영혼에 두려움을 심은 후에 마귀를 쫓아내도록 기도하게 하고 열광신앙으로 빠지게 하는 것은 겉으로는 신앙이 좋아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내적인
두려움이 커진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수련회 갔다 와서 잘못된 말을 듣거나 잘못된 체험을 해서 영혼이 두려움에 휩싸였다가
정신이 약화되고 병든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제가 MBC 신우회 지도목사를 할 때 당시 한 회원은 딸을 잘못된 수련회에 보낸 것을 늘 땅을
치고 후회했습니다. 멀쩡하던 딸이 고등학교 때 수련회에 갔다 온 후 이상한 두려움에 젖어 그 다음부터 끊임없이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했기
때문입니다.
선천적으로 걱정이 많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들은 두려움과 공포를 심어주는 집회를 더욱 주의시켜야 합니다. 영혼이
공포심을 가지면 리더는 그 영혼을 자기 뜻대로 조종하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그러나 공포심을 조장해 영혼을 약화시킨 후 조종하는 리더십은 가장
사악한 리더십 중의 하나입니다. 거짓 종교인들은 그 방법을 애용합니다. 그러나 참된 목자는 아무리 목회가 힘들고 교회성장이 안 되어도 그런
야비한 방법을 쓰지 않습니다.
기독교 리더는 기본적으로 양떼들에게 담대한 믿음의 중요성을 늘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십니까? 예수님을 진실로 믿습니까? 그러면 ‘죽으면 죽으리라! 잃으면 잃으리라!’고 나가십시오. 죄를 지었으면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을
다시 붙잡으십시오. 하나님 외에는 어떤 말이나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믿음과 평안을 늘 전해주어야 합니다. 부모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도 그런 담대한 믿음을 자녀들에게 늘 말해주어서 자녀들이 헛된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주사를 놔주는
일입니다.
< 거짓에 미혹되지 않는 길 >
요새 어떤 조화는 생화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영혼 문제에서도
가짜가 더 진짜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가장의 천재인 사탄의 습성을 따라 거짓 종교인은 능력을 보여준다고 하고 축복과 치유를 준다고 하면서
화려한 거짓 선전으로 영혼을 미혹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거짓에 미혹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경건을
중시하십시오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이 말씀은 하나님이 경건한 삶을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물론 사람은 완벽하게 경건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누가 경건한 사람인지는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건함이 크게 함량 미달이면 일단 경계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행위가
구원을 주지는 않지만 이단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행위도 잘 봐야 합니다. ‘구별된 삶’과 ‘이상한 삶’은 다른 것입니다. 구별되게 살면 사람들의
주의와 관심을 끌지만 이상하게 살면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고 혐오대상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선택된 복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큰 착각입니다.
물론 경건함을 억지로 드러내지는 마십시오. 경건은 외적인 치장이 아니라
성령 충만할 때 자연스럽게 내면에서 표현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화려한 성탄절트리가 아닌 열매 맺는 유실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할
때 기도와 봉사와 헌신을 자랑하지 말고 또한 영성을 대단하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영성이 생활습관처럼 되게 해야 합니다. 자랑하고 과시하려는
마음만 잘 극복해도 미혹의 영이 틈타는 것을 잘 막을 수 있습니다.
2. 교만을 버리십시오
본문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이 구절에서 ‘주관하는 이’는 그리스도를 뜻하기도 하고 거룩한 공동체의 리더를 뜻하기도 합니다.
당시 거짓 교사들은 정욕을 따라 자기 멋대로 행하면서 거룩한 공동체의 리더를 멸시했습니다.
계속해서 본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조차 거룩한
공동체의 리더를 함부로 비방하지 않는데 거짓 교사들은 교만하게 함부로 비방한다는 것입니다. 남을 쉽게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판단을 가로채는
교만한 행위입니다. 그처럼 가짜 믿음은 늘 자기를 높이고 사람을 높입니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은 마술사 시몬에
대해 “이 사람은 크신 하나님의 능력이다!”라고 했습니다. 그처럼 “아무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란 말을 들으면 더 경계하십시오. 가짜
믿음은 늘 사람을 높입니다. 목회자를 높여줄 때는 존중하고 힘이 되어주는 차원 정도까지만 높여주고 또한 전도할 때 마음이 열리도록 “우리
목사님이 좋아! 말씀도 좋아!”라는 정도까지만 높여주십시오.
그 이상으로 지나치게 목회자를 높이면서 ‘위대한 능력의 종, 마지막
때의 신 사도’란 식으로 높으면 그런 교회는 이미 복음의 참된 의미를 이탈한 교회가 됩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큰 헌신을 하고
아무리 놀랄만한 봉사를 했어도 자신을 감추고 “제가 무슨 큰일을 했나요? 아직도 너무 부족합니다. 이 일로 오직 주님만 영광을 받으시길
원합니다.”라고 할 때 그 영혼은 미혹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3. 이성을 가지십시오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은 이성 없는 짐승과 같다고 묘사합니다. 믿음이란 몰상식이나 몰이해나 몰지각이나 몰이성이 아닙니다. 믿을 때
생각하면서 믿어야 합니다.
믿음에는 지적인 믿음, 감정적인 믿음, 의지적인 믿음의 3대 요소가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믿음은 의지적인 믿음이지만 의지적인 믿음으로 가는 1차 관문이 지적인 믿음이기에 지적인 믿음도 중요합니다. 그런 지적인 믿음을 가지려면 거룩한
양심과 상식을 존중하고 지나온 기독교 역사와 교회사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말씀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했습니다. 성도는 이성을 가지고 정신을 차려서 가짜 능력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목사가 예배 중에 “주 예수여! 오소서!”라고 외치면 본당 안에 빛이 쫙 비치고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오신 증거라고 믿습니다.
어느 날 그 목사가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박으로 5억 원을 탕진한 사실이 MBC에서 방송되자 그가 예배 때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교회건축에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더 헌금할까 하는 피눈물 나는 심정으로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수만 명의 교인들이 다 울었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그런 장면이 이해가 됩니까?
이런 말들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집사님! 어디 가니까 기막힌 능력이 나타나! 사람들이 막
넘어져! 다 치유가 일어나!” 그러나 성경적인 치유는 사전에 치유를 준비하고 선전하고 계획하는 군중집회에서 척척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선전적인 치유 집회는 거의 가짜이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모습도 결코 아닙니다. 헛된 거짓말에 농락당하지 말고 참된 믿음의 길과 말씀중심적인
삶에서 이탈하지 마십시오. 이성을 가지고 정신을 차리고 말씀 안에 있어야 미혹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영혼이
됩니다.
4. 탐욕을 버리십시오
본문 13-14절 말씀을 보십시오.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을 방탕과 쾌락과 음란의 죄를
짓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미혹해서 탐욕을 채우는 저주의 자식이라고 언급하고 그들의 탐욕을 발람의 길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15-16절).
영성과 사기성을 잘 분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언해주고 치유해준다는 사람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허황된 설교는 영적인 설교라고 주장하고 삶의 변화를 권면하는 바른 설교는 오히려 육적이고 윤리적인 설교라고 합니다. 그런
말은 말씀보다 자기 말을 앞세우려는 거짓 선생들의 기묘한 트릭입니다. 왜 그런 트릭을 씁니까? 자세히 보면 사람을 미혹해 탐욕을 채우려고 그런
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른 설교를 육적인 설교라고 매도하는 이들은 예수님이 육신으로 부활한 것도 믿지 싶지 않고 육신의
부활이 있다는 사실도 믿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육신과 관련된 일이나 실생활에서의 성도다운 삶을 살라고 하는 말씀은 성경에 도배가 되어
있듯이 많습니다. 헛된 영성주의자들의 주장대로라면 바울이나 베드로나 야고보도 육적인 설교를 많이 한 셈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주장입니까?
< 작업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
세상에서 뒤처진 사람이 정당하게 믿음과 용기와
지혜와 땀으로 반전의 역사를 꾀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허황된 능력과 예언을 내세워 인생 역전을 꾀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특히 입으로 ‘하나님,
예수, 성령, 영성’이란 말을 내세우면서 영혼에 두려움을 심어서 영혼을 조종하며 자기 세를 불리려는 것은 제일 안 좋은 종교인의 행태입니다.
그처럼 영성을 가장한 사기에 걸려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영성과 사기성을 잘 분별해 최소한 자기 영혼과 가정과 교회만은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유흥가 여성들이 돈 많은 손님의 돈을 노리고 친절한 척 하고 동정심도 유발하면서 여러 가지 수단을 쓰는
것을 ‘작업을 한다’고 표현합니다. 그런 종류의 작업에 걸려드는 사람을 ‘호구’라고 하고 요새는 ‘호갱’이라고 합니다. 호갱이란 말은 ‘호구
고객(고갱)’을 뜻합니다. 텔레마케터가 영혼의 진정성도 없이 “사랑합니다. 고객님(고갱님)!”이라고 하는 말에서 ‘고갱’이란 말이 유래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호갱’이란 돈을 노리는 작업에 걸려들어 바가지를 옴팡 쓰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입니다.
그런 호갱이 되지 않으려면
상품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잘 모르면 믿을만한 사람에게 잘 물어야 합니다. 또한 모르는 사람이 전화해서 “고객님!” 하면서 많은 특별한
혜택을 주겠다고 하면 일단 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돈을 노리는 작업에 걸려들어 물건을 잘못 사고 돈을 뜯기는 것은 그나마 낫지만 거짓 종교인의
작업에 넘어가면 돈과 가정을 잃고 더 나아가 두려움의 영에 지배되고 평생을 절름발이 인생으로 살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속주의와 신비주의와 기복주의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욕심을 버리고 화려한 능력을 보여주고 특별선택과 특별축복을 약속하는 거짓 종교인의 작업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특히 그들이 두려움을 심는 작업에는 결코 넘어가지 마십시오. “죽으면 죽으리라! 잃으면 잃으리라! 나는 하나님만 붙잡고
성실하게 땀을 앞세워 살리라!”고 결심하고 굳센 믿음을 가지고 흔들리지 마십시오. 그처럼 거짓에 미혹되지 않고 말씀 중심적인 삶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에서 이탈하지 않고 마침내 승리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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