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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나1: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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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구하라 목사 |
참고 : |
찬송 70장, 피난처 있으니
나홈서는 엘고스 사람 나훔이 기록한 예언서입니다.
‘나홈’이라는 말은 긍휼, 자비 혹은 위로자라는 뜻입니다.
나훔서는 종종 요나서와 비교되기도 하는데 왜냐하면 당시 악명높은 군대를 가지고 있었던 대제국 앗수르에 대하여, 요나서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회개할 때 인애와 자비로 용서해주었으나, 그에 비해 100여 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의 나훔서에는 그 니느웨 사람들을 철저히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태도와 성품이 요나서에서는 자비와 사랑으로 나타났지만, 나훔서에서는 공의와 심판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니느웨는 500년 이상 강력한 통치권을 발휘한 서아시아를 지배했던 큰 성입니다.
여러 세대를 거쳐 성을 거대하게 건축함으로 인해서 그들의 죄는 점점 교만에 빠져드는 죄를 지었습니다. 니느웨성은 인간의 폭력, 자기의 근육, 자기의 힘을 자랑하고 또 정복한 정복의 상징으로 이웃에 대항하는, 형제를 괴롭히는 도시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홈 선지자는 포로 되어 있는 유다를 위로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성품에서부터 시작하여 소망을 안겨 줍니다. 유다가 비록 포로 되어 있으나 하나님의 성품으로 보아 언제까지나 원수에게 버려두지 않고 반드시 구원하여 주신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절망하지 않고 소망을 가지라는 것이 나홈에서의 메시지입니다.
요나서와의 차이점은 요나서는 하나님의 자비가 어떠함을 보여 주고 나홈서는 하나님의 공의와 엄위를 보여줍니다.
1.니느웨가 심판을 받아야하는 이유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1:2상)
하나님은 우상 숭배자들에 대하여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형상이든지 그것을 숭배하고 그곳에 예배하면 우상인 것입니다.
우상은 물질이 될 수도 있고, 자녀, 명예, 권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을 절대적인 것으로 아는 사람은 지식이나 능력을 우상으로 섬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섬김에 대해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것입니다. 니느웨는 하나님 아닌 것을 따라감으로 심판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우상이란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인 것입니다.
돈을 따라가다가 돈 떨어지는 날 실망합니다. 돈 없으면 죽을것 같은 세상이지만 돈이 없어도 살만 합니다. 공중나는 새와 짐승들을 보십시오. 잘 살아갑니다.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보호하심으로 사는 방법을 익히고 실천해야 합니다.
자녀를 너무 의지하다가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날이 오면 실망합니다.
힘센 세력을 의지하다가 정권이 바뀌는 날 통곡하게 되며
명예에 우쭐대다가 신예들이 혜성과 같이 나타날 때에 비참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질투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1:2중)
니느웨를 심판하시는 이유의 또 한 가지는 보복을 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거스리고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는 분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복 하신다는 말씀은 그의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잘못된 행위에 대하여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행위를 말하며 인간의 보복 행위처럼 공의와 사랑이 결여된 보복으로 생각하시면 오해가 생깁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만대에 복을 주시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3,4대까지 심판을 내리십니다. 이 3,4대까지라는 말은 계속 징벌을 받아 씨가 없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보복을 피할 길이 없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하여 민감하고 불의에 대해서 항상 전투적이며 의를 추구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혼탁한 공기로 오염된 이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청량제 역활을 하도록 날마다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아주 민감하십니다.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1:3중)
하나님께서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므로 죄인들에게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나 노하실 때에는 큰 권능으로 하시어 끝까지 회개하지 않은 죄인을 사하지 않습니다.
회오리바람, 광풍, 티끌이 등장된 것은 하나님이 진노하실 때에 사람이 피할 길을 찾을 수 없어 혼돈 천지에 빠지게 될 것과 인생으로서 접촉할 수 없는 높은 구름도 발의 티끌같이 낮다는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심판의 이유는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민감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는 사람은 죄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을 합니다.
'누가 구원받았으며,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를 아는 것은 죄에 대한 반응에서 나타납니다.
자신에 대해서나 이웃에 대해서나 죄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면 민감한 반응을 보여야 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1:7상)
니느웨를 심판하시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선하심 때문입니다.
자기가 택하신 백성들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백성이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서라도 죄를 범한 사람은 심판을 해야 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박해자들의 입을 다물게 해 줘야 되겠고 그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끝을 내줘야 되겠다는 말씀입니다. 7절 말씀은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행할 당시 가장 위로를 받은 말씀으로 힘을 얻고 소망을 얻는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면 환난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자들을 아시느니라”
2.심판의 방법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곳을 진멸하시고 (1:8상)
범람한 물은, 파사와 메대와 아라비아와 바벨론 군대가 홍수처럼 밀려와 니느웨를 쓸어버리는 군대의 침략을 말합니다. 500년 도읍지,그렇게 교만하고 자랑스러운 니느웨가 이 연합 군대의 침범으로 인하여 쓸려 버리고 말 것입니다.
마른 지푸라기 같이 모두 탈 것이거늘 (1:10하)
하나님은 불의한 자들을 단번에 끝을 내십니다. 2,3회 공격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마른 지푸라기같이 불타 없어질 것입니다.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1:8하)
하나님은 대적 자들을 물로 쓸고, 불로 태우고, 그리고 흔적도 없이 처치하실 것입니다.
그 도시는 역사 위에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 이름을 기억조차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니느웨는 본문의 예언대로 니느웨성의 역사적 유물은 대형 박물관에 몇 조각 남아 있을 뿐 역사의 암흑 속으로 밀려 들어가 버렸습니다.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입니다 (1:14중)
이름이 다시 전파되지 않는다는 말은 후계자가 없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곧 이단의 특징입니다.
이단은 후계자가 없습니다. 있다 해도 얼마 못 갑니다.
그래서 이단은 기독교 역사에서도 우쭐거리며 나오다가 다음 대를 잇지 못하고 사라져 버립니다.
연속성이 없습니다.
겸손치 못한 니느웨, 500년 역사를 자랑했지만 하나님 앞에는 무가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찬란했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성도 하나님의 처치를 받으니 잔존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니느웨성을 쌓고 있지는 않는지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이웃에 대한 독단적이고 폭군적인 태도나 자세가 바로 니느웨성입니다.
바벨탑이 무너질 날이 옵니다. 흔적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후손 대대로 믿는 자로 기록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후계가 없으면 우리는 이단일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무가치한 생을 가꾸어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 되어서도 안 되고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나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들어가는 유리할 별들이 되서는 안될 것입니다.
(유1:12-13).
그러나 복된 소식이 있습니다.
볼찌어다 아름다움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위에 있도다 (1:15상)
앗수르의 멸망 소식은 유다에게는 아름다운 소식이요 복음입니다.
악인이 진멸되어 그들이 다시는 유다 가운데로 통행치 못하게 되었으니 더이상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앗수르의 압제를 벗어나 다시 하나님께 대한 제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악인에 대한 심판이 확실하다는 것은 자기 백성에 대한 위로가 확실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대적하는 사람의 입을 봉하고 끝을 보게 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소식을 듣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산성으로 삼고 그 품안에 피하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의 은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기도>
우상을 섬기는 자를 멸하시고, 교만한자를 물리치시며, 그의 택한 백성을 보호하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사람을 의지하다가 낙심치 않게 하시고, 언제나 하나님만이 우리의 도움이시며 산성이심을 알고 피하게하시고, 의지하며 도움을 바라며 나아가는 백성되게하시고, 그 안에서 힘을 얻고 은총을 누리는 기쁨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나홈서는 엘고스 사람 나훔이 기록한 예언서입니다.
‘나홈’이라는 말은 긍휼, 자비 혹은 위로자라는 뜻입니다.
나훔서는 종종 요나서와 비교되기도 하는데 왜냐하면 당시 악명높은 군대를 가지고 있었던 대제국 앗수르에 대하여, 요나서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회개할 때 인애와 자비로 용서해주었으나, 그에 비해 100여 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의 나훔서에는 그 니느웨 사람들을 철저히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태도와 성품이 요나서에서는 자비와 사랑으로 나타났지만, 나훔서에서는 공의와 심판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니느웨는 500년 이상 강력한 통치권을 발휘한 서아시아를 지배했던 큰 성입니다.
여러 세대를 거쳐 성을 거대하게 건축함으로 인해서 그들의 죄는 점점 교만에 빠져드는 죄를 지었습니다. 니느웨성은 인간의 폭력, 자기의 근육, 자기의 힘을 자랑하고 또 정복한 정복의 상징으로 이웃에 대항하는, 형제를 괴롭히는 도시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홈 선지자는 포로 되어 있는 유다를 위로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성품에서부터 시작하여 소망을 안겨 줍니다. 유다가 비록 포로 되어 있으나 하나님의 성품으로 보아 언제까지나 원수에게 버려두지 않고 반드시 구원하여 주신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절망하지 않고 소망을 가지라는 것이 나홈에서의 메시지입니다.
요나서와의 차이점은 요나서는 하나님의 자비가 어떠함을 보여 주고 나홈서는 하나님의 공의와 엄위를 보여줍니다.
1.니느웨가 심판을 받아야하는 이유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1:2상)
하나님은 우상 숭배자들에 대하여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형상이든지 그것을 숭배하고 그곳에 예배하면 우상인 것입니다.
우상은 물질이 될 수도 있고, 자녀, 명예, 권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을 절대적인 것으로 아는 사람은 지식이나 능력을 우상으로 섬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섬김에 대해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것입니다. 니느웨는 하나님 아닌 것을 따라감으로 심판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우상이란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인 것입니다.
돈을 따라가다가 돈 떨어지는 날 실망합니다. 돈 없으면 죽을것 같은 세상이지만 돈이 없어도 살만 합니다. 공중나는 새와 짐승들을 보십시오. 잘 살아갑니다.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보호하심으로 사는 방법을 익히고 실천해야 합니다.
자녀를 너무 의지하다가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날이 오면 실망합니다.
힘센 세력을 의지하다가 정권이 바뀌는 날 통곡하게 되며
명예에 우쭐대다가 신예들이 혜성과 같이 나타날 때에 비참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질투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1:2중)
니느웨를 심판하시는 이유의 또 한 가지는 보복을 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거스리고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는 분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복 하신다는 말씀은 그의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잘못된 행위에 대하여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행위를 말하며 인간의 보복 행위처럼 공의와 사랑이 결여된 보복으로 생각하시면 오해가 생깁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만대에 복을 주시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3,4대까지 심판을 내리십니다. 이 3,4대까지라는 말은 계속 징벌을 받아 씨가 없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보복을 피할 길이 없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하여 민감하고 불의에 대해서 항상 전투적이며 의를 추구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혼탁한 공기로 오염된 이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청량제 역활을 하도록 날마다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아주 민감하십니다.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1:3중)
하나님께서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므로 죄인들에게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나 노하실 때에는 큰 권능으로 하시어 끝까지 회개하지 않은 죄인을 사하지 않습니다.
회오리바람, 광풍, 티끌이 등장된 것은 하나님이 진노하실 때에 사람이 피할 길을 찾을 수 없어 혼돈 천지에 빠지게 될 것과 인생으로서 접촉할 수 없는 높은 구름도 발의 티끌같이 낮다는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심판의 이유는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민감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는 사람은 죄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을 합니다.
'누가 구원받았으며,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를 아는 것은 죄에 대한 반응에서 나타납니다.
자신에 대해서나 이웃에 대해서나 죄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면 민감한 반응을 보여야 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1:7상)
니느웨를 심판하시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선하심 때문입니다.
자기가 택하신 백성들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백성이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서라도 죄를 범한 사람은 심판을 해야 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박해자들의 입을 다물게 해 줘야 되겠고 그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끝을 내줘야 되겠다는 말씀입니다. 7절 말씀은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행할 당시 가장 위로를 받은 말씀으로 힘을 얻고 소망을 얻는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면 환난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자들을 아시느니라”
2.심판의 방법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곳을 진멸하시고 (1:8상)
범람한 물은, 파사와 메대와 아라비아와 바벨론 군대가 홍수처럼 밀려와 니느웨를 쓸어버리는 군대의 침략을 말합니다. 500년 도읍지,그렇게 교만하고 자랑스러운 니느웨가 이 연합 군대의 침범으로 인하여 쓸려 버리고 말 것입니다.
마른 지푸라기 같이 모두 탈 것이거늘 (1:10하)
하나님은 불의한 자들을 단번에 끝을 내십니다. 2,3회 공격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마른 지푸라기같이 불타 없어질 것입니다.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1:8하)
하나님은 대적 자들을 물로 쓸고, 불로 태우고, 그리고 흔적도 없이 처치하실 것입니다.
그 도시는 역사 위에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 이름을 기억조차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니느웨는 본문의 예언대로 니느웨성의 역사적 유물은 대형 박물관에 몇 조각 남아 있을 뿐 역사의 암흑 속으로 밀려 들어가 버렸습니다.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입니다 (1:14중)
이름이 다시 전파되지 않는다는 말은 후계자가 없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곧 이단의 특징입니다.
이단은 후계자가 없습니다. 있다 해도 얼마 못 갑니다.
그래서 이단은 기독교 역사에서도 우쭐거리며 나오다가 다음 대를 잇지 못하고 사라져 버립니다.
연속성이 없습니다.
겸손치 못한 니느웨, 500년 역사를 자랑했지만 하나님 앞에는 무가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찬란했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성도 하나님의 처치를 받으니 잔존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니느웨성을 쌓고 있지는 않는지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이웃에 대한 독단적이고 폭군적인 태도나 자세가 바로 니느웨성입니다.
바벨탑이 무너질 날이 옵니다. 흔적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후손 대대로 믿는 자로 기록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후계가 없으면 우리는 이단일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무가치한 생을 가꾸어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 되어서도 안 되고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나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들어가는 유리할 별들이 되서는 안될 것입니다.
(유1:12-13).
그러나 복된 소식이 있습니다.
볼찌어다 아름다움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위에 있도다 (1:15상)
앗수르의 멸망 소식은 유다에게는 아름다운 소식이요 복음입니다.
악인이 진멸되어 그들이 다시는 유다 가운데로 통행치 못하게 되었으니 더이상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앗수르의 압제를 벗어나 다시 하나님께 대한 제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악인에 대한 심판이 확실하다는 것은 자기 백성에 대한 위로가 확실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대적하는 사람의 입을 봉하고 끝을 보게 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소식을 듣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산성으로 삼고 그 품안에 피하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의 은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기도>
우상을 섬기는 자를 멸하시고, 교만한자를 물리치시며, 그의 택한 백성을 보호하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사람을 의지하다가 낙심치 않게 하시고, 언제나 하나님만이 우리의 도움이시며 산성이심을 알고 피하게하시고, 의지하며 도움을 바라며 나아가는 백성되게하시고, 그 안에서 힘을 얻고 은총을 누리는 기쁨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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