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마5:43-48 |
---|---|
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http://blog.naver.com/malsoom/70742333 |
2009년 6월 21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5장 43절~48절
설교제목 : 완전함으로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한 너희가 너희 형제자매들에게만 인사를 하면서 지내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 사람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마태 5:43~48).
<장일순 이야기>
‘원주에 살다간 예수’라는 별칭을 얻고 있는 이가 있습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1928. 9. 3. ~ 1994. 5. 22)입니다. 오늘 먼저 장일순 선생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날 시골 아낙네가 장일순을 찾아와 딸 혼수 비용으로 모아둔 돈을 기차 안에서 몽땅 소매치기 당했다며, 그 돈을 찾아달라고 장일순에게 매달렸습니다. 장일순은 그 아주머니를 돌려보내고 원주역으로 갔습니다. 가서 원주역 앞 노점에서 소주를 시켜놓고 노점상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기를 사나흘 하자 원주역을 무대로 활동하는 소매치기들을 죄다 알아낼 수 있었고, 마침내는 그 시골 아주머니 돈을 훔친 작자까지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장일순은 그를 달래서 남아 있는 돈을 받아냈습니다. 거기에 자기 돈을 합쳐서 아주머니에게 돌려줬습니다. 그렇게 일을 마무리 지은 뒤로도 장일순은 가끔 원주역에 갔는데, 그것은 소매치기에게 밥과 술을 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때 장일순은 소매치기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했습니다.
“미안하네. 내가 자네 영업을 방해했어. 이것은 내가 그 일에 대해 사과를 하는 밥과 술이라네. 한 잔 받으시고, 용서하시라고.” 앞으로 소매치기 같은 것 하지 말라든가 나무라는 말 같은 것은 일절하지 않았습니다. (『좁쌀 한 알』중에서).
만약 보통 사람이 아주머니 돈을 훔쳐간 도둑을 알아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분명 그 사람은 그 도둑을 경찰에 신고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경찰과 도둑, 도둑과 그 사람은 원수가 되고,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시기하는 ‘불행한 관계들’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일순과 그 주변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장일순과 도둑, 그리고 아주머니와 도둑을 알려준 노점상 사람들 모두는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지 않는, ‘행복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두는 장일순의 지혜로운 처신 덕분이었습니다.
<예수 이야기>
장일순을 생각할 때마다 ‘예수님’ 생각이 절로 납니다. 장일순은 예수님을 닮아있습니다. 예수님은 장일순을 닮아있습니다. ‘장일순과 예수님’을 쉽게 연결지을 수 있는 성경말씀을 보겠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한 너희가 너희 형제자매들에게만 인사를 하면서 지내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 사람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마태 5:43~48).】
예수님의 일깨움은 무엇이었나요?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대들을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일깨움입니다. 예수님의 일깨움은 완전한 사랑, 완전한 화해, 흔쾌한 평화, 그 누구도 소외되거나 빠지지 않는 모든 이들의 완전한 화합, 그걸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장일순 선생이 그 삶을 통해서 전하고 싶었던 인생의 지혜였습니다.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조차도, 나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과도 완전한 화합을 할 수 있는 드넓은 인격의 사람, 그게 핵심이었습니다.
즉 예수님과 장일순 선생 모두에게서 발견되는 일깨움의 핵심은 ‘완전한 영성’이었습니다. 완전한 혁명입니다. 대(大)를 위해서 소(小)를 희생해야 한다든가, 혁명의 완수를 위해서 원수가 되는 일부 부유계층을 처단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든가, 일의 실질적 추진을 위해서 일정부분 타협할 수밖에 없다든가 … 그런 부분적인 것들에 대한 유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완전해야 합니다. 일이 늦더라도, 도대체 되는 일이 없더라도 완전한 혁명이어야 합니다. 단 한 명의 어린 양도 소외됨이 없는 ‘모든 이들의 모든 행복’, 그 완전의 영성으로 가야하는 것입니다. 그게 예수님의 일깨움이고, 장일순의 메시지입니다.
<말씀의 적용>
예나 지금이나 인류는 ‘타도(打倒)의 대상’을 “누군가를 쳐서 넘어뜨리면” 유토피아적인 이상사회가 만들어진다는 환상(幻想)을 갖곤 합니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환상일 뿐입니다. 이 세상에 “치고 때려서 넘어뜨려야할 대상”은 없어야 합니다. 그 원수 같은 존재는 “쳐서 넘어뜨려야할 대상”이 아니라 “품고 쓰다듬고 사랑해야할 대상”인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장일순처럼 …….
가정 공동체에서, 이웃과 친척 사이에서, 교회공동체에서, 직장과 기업체에서, 군대와 학교에서, 민족과 나라와 인류공동체에서 ‘쳐서 넘어뜨려야할 대상’은 없어야 합니다. 이미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고 당부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원주에 살다간 예수’ 장일순 선생은 소매치기와 같은 범죄자에 대해서도 윤리적으로 정죄하지 않고 드넓은 마음으로 품고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완전함으로’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이 시간 설교말씀의 제목 ‘완전함으로’를 깊이 묵상하시는 귀한 시간 되시길 바라며, 장일순과 예수님에게서 나타난 ‘놀라운 관용과 사랑의 정신’을 되새김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축도 : 이제는 우리에게 진리의 길을 몸소 보여주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언제나 어디서나 자비의 마음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넓으신 은총과, 진리의 동반자로서 우리와 함께 걸으시는 성령님의 아름다운 동행이 여기 고개 숙인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언제나 어디서나 풍요로우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니다. 아멘.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