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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주일을 지워가는 세대

순전한신앙이야기 황부일목사............... 조회 수 494 추천 수 0 2015.04.07 22: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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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순전한 신앙이야기<http://cafe.naver.com/ghkdqndlf> 

주일을 지워가는 세대


주일을 성수해야 한다고 하면 마치 유대주의 자들이 안식일을 외식 적으로나 습관적으로 지키던 것처럼 여기고 비아냥거리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진보주의자들은 그런건 옛 시대 보수주의자들의 낡아빠진 습관으로 보거나 반대로 보수주의자들은 지금도 예배당에 나와 예배 한 두 번 하는 것을 지키는 것으로 강조합니다. 그나마 그런 주일 성수란 말도 이젠 들어 보기조차 매우 어렵게 되었습니다. 또한 일부 개혁주의 자들 가운데서도 주일 성수란 말을 쓰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일요일만 주일이 아니고 모든 날이 주님의 날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한편으로 볼 때 그렇습니다만 실제로 우리가 다른 평일에도 주일처럼 보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볼 때 오늘날 교회들에서 주일은 어렵게 되었고 저들 좋은 대로 되어 버렸고 복잡하고 요란하고 바쁜 시대에 향락적 문화까지 넘쳐 교회들에게 있어 주일은 겨우 이름뿐 실제 교회가 가져야할 마땅한 주일의 거룩한 모습이나 참된 의미는 없어져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심각하고 위험하다는 표현보다 더 확실한 표현을 빌자면 거룩함은 없고 세속화 쪽으로 가는 자멸적인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어 가야할 구원의 날을 지워가고 있으니 세상의 모습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일의 거룩함이 없다는 것은 결국 주일은 형식에 불과 하던가 아니면 주일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라고 우리가 칭하고 있으나 우리에게는 거룩한 날은 없고 하나님의 분노로 생겨진 세상의 날만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교회들은 정확히 꼬집어서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과 다수의 교인들의 형편과 원함에 따라 주일을 지워버려 가고 있는 것입니다. 거룩한 주일의 의미를 지워가고 주일을 거룩한 한 날이 아니라 불과 몇 시간 예배하는 시간으로만 남기고 지워버렸고 각자 사사로운 시간으로 만들어 버린지 이미 오래 되어버렸고 그나마 남은 두 번 정도의 예배 시간마저 시대적 흐름의 세파와 각자 형편과 거기다 맞추어 주는 인본주의 신앙으로 인해 밀어 내기 식으로 지워져 겨우 한 번 남아 있는 교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것도 골라잡아 예배하게 했고 빨리하고 알아서 하게 1부로도 마련해 놓았습니다. 아예 주일에 예배를 못할 자를 위해 금요일, 토요일에도 할 수 있게 사정을 봐주는 아량이 큰(?) 교회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니까 주일은 말이 주일 이지 겨우 예배하는 그 시간을 빼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일요일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이 주일을 거룩히 지켜야 하는 마땅한 믿음의 의지가 없습니다. 교회에만 주어진 구원의 날로서의 주일이 교회로 인해 그것을 지켜 주어야 할 지도자들로 인해 애매모호한 날이 되었습니다. 주일도 아니고 세상 날도 아닌 어중간한 날이 되었고 더 문제는 이런 상태 속에서 온전한 주일로서의 방향으로 가야함에 대해 누구하나 외치는 자 없다는 점이고 되려 서로 남은 부분까지 편리와 자유를 위해 지워 없애려는 쪽으로 합의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에스겔서를 보면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찌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줄 알게 하리라 하였었노라 그러나 그 자손이 내게 패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좇지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는지라”고 말씀했습니다(겔 20:20-21).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더럽혔다는 것은 그날을 구별하지 않고 이방인처럼 보냈다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않아 그들의 삶 자체가 거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구원의 안식이 주어진 날이요 그것을 기억하여 하나님께 감사경배하고 또한 삶 전체를 안식으로 이루어감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주일의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주일을 바로 알고 지키며 더욱 온전히 이루어 가기 위해서는 먼저 안식일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3장 18절~4장 11절까지 보면 안식과 안식일의 관계와 안식일이 언제부터 어떻게 주어졌는가 그리고 주일까지 관계를 단계적으로 잘 증거 해 줌을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안식이나 아담 때의 안식과 이스라엘에 주어진 회복된 안식과 복음을 통한 안식을 말하고 있음을 봅니다.

 

  ≼범죄이전의 안식으로서 안식일≽

 

 히브리서 4장 4-5절을 보면 범죄 이전 아담에게 주어진 안식일이 나옵니다. 그 내용을 볼 것 같으면 “제 7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7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내용의 근거가 되는 창세기 2장 1-3절을 보면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은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 하셨음이더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창조를 마치시고 일을 안 하시는 쉼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창조된 후 하나님의 안식이 아담이 거하는 에덴동산을 은혜의 낙원으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이 마치는 일곱째 날부터 하나님의 안식이 시작되었고 안식의 날로 아담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물론 그 안식은 행위 언약 안에서 계속되는 여부가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아담의 범죄로 인류는 안식이 없는 세상으로 쫓김을 입었고 죽음과 수고와 슬픔뿐이고 환경은 가시와 엉겅퀴가 있는 형편에서 영원히 형벌의 삶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잠시적인 육신의 휴식과 쉼만 있을 뿐 하나님의 영원한 평안의 안식은 상실하고 만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회복으로 주어진 안식으로서 안식일≽

 

히브리서 3장 17절~4장 1-3, 8절을 참조해 보면 하나님께서 광야 40년 동안 범죄한 자들에게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고 광야에서 죽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를 통해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된 것을 여호수아는 증거 하기를 “이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을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수 22:4).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약속의 땅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아담의 범죄 이후 잃어버린 하나님의 안식을 오실 메시야 안에서 회복 받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다시 안식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주시면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제 4계명을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7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거룩하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출 20:8-11).


이스라엘의 구원은 이렇게 다시 회복된 하나님의 안식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안식일은 처음부터 지은 낙원 적이며 하나님 나라가 되는 안식이 그들에게 오실 메시야 안에서 구원의 은혜로 다시 시작된 날이요 이 날은 여호와의 안식일로 그의 뜻대로 거룩히 보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을 통해 그들은 언약의 땅에서 안식의 삶을 이루어 가야 했던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에게만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이 있는 것이고 이 땅에서 사는 날 동안도 하나님 백성으로서 그것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이 회복의 은혜로 주어졌다는 증거가 안식일이요 또한 하나님의 안식이 그들에게 시작되었다는 날이 안식일이요 그래서 하나님 백성으로서 구원의 안식을 감사하여 경배로 기억하는 날이 안식일이며 그 날을 하나님과 교통함으로 안식의 삶을 실현 시켜갈 수 있는 날이 바로 안식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찌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찌니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31:13-17).


여기서 분명한 것은 안식일은 하나님의 날로서 백성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성일이 된다고 한 것입니다. 죄로 버림받아 형벌된 삶을 살아가는 일시적인 세상의 날 중에 하나님의 날인 안식일이 성도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제 칠일을 하나님의 성일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날을 성일로 지키지 않고 평일처럼 멋대로 보내면 백성 중에서 끊쳐지고 죽일찌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안식일이 없는 자는 곧 구원받지 못한 이방 백성과 같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단순히 그 날에 한 의식이나 규례를 따져 지키려만 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안식년과 희년이 있는데 그것이 안식일로 출발하여 하나님 나라로 선 이스라엘에게 하나님 나라 된 안식으로서 평안하고 거룩한 삶으로 실현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에는 못 미쳤던 것입니다.

 

  ≼교회 된 우리에게 주어진 안식으로서 주일≽

 

오늘날 대부분 교회들은 주일에 대해 너무 무지하고 제 멋대로들 입니다. 다른 것은 다 개혁 한다고 떠들면서도 주일에 대한 개혁은 없습니다. 주일을 성경적으로 찾아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이나 강조가 없습니다. 이미 지도자들부터 주일은 희미해졌고 앞서서 주일을 지워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주일을 거룩히 잘 지켜야 한다고 말할 것 같으면 율법주의자로 본다거나 구약 시대를 사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보는 경향이 많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주일은 안식일과 같은 것입니다. 안식일이 오실 메시야 안에서 하나님 나라로 구별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구원의 안식으로서 한 증거가 되는 거룩한 날이라면 주일은 오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로 구별되어 교회 된 자들에게 주어진 구원의 날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이나 주일이나 의미는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분노 중에 수고와 슬픔의 날이요 헛된 날로 살아갈 수밖에 없던 모든 인간들 중에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을 구원으로 부르시고 그 구원을 기억하며 이루어 갈 수 있도록 특별한 한 날인 하나님의 날을 주셨는데 그것이 이스라엘에게는 안식일이요 오늘날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이스라엘을 넘어 온 세상에로 구원이 이루어져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된 교회에는 주일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 때부터는 안식 후 첫날이 되는 날을 주의 날로 모여 구원을 기억하여 감사하고 그날을 온종일 교제하며 복음을 나누면서 온전히 하나님 나라 된 모습과 선한 행실로 보내었던 것입니다. 주일은 안식 후 첫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고 부활하신 날로서 구원의 완성으로 시작된 주님의 날인 것입니다. 제자들과 초대 교회는 이날 모이여 교제를 가졌고(요 20:19) 주일 온종일을 복음의 은혜를 나누었던 것입니다(행 20:7).


무엇보다 히브리서 4장 6-11절을 보면 여호수아를 통해 약속의 땅으로 주어진 안식 말고 안식한 때가 하나님 백성에게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통해서 먼저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께서 자기 일을 쉬심같이 자기 일을 쉰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안식인 하나님 나라 상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이 안식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구원의 기업으로 시작되고 그것을 기억하며 누리도록 주어진 날이 안식일이요 이 안식이 복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구원으로 오늘날 교회에 시작되고 누리도록 주님의 날로 주어진 날이 주일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식일과 주일은 하나님의 안식인 거룩한 구원의 날로서는 같으나 안식일은 그리스도가 오시기전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것이요 주일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온 세상 중에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로 실현 된 교회에게 주어진 주의 날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되고 실현된 하나님 나라의 점진 성으로 볼 때 안식일은 이스라엘의 기업의 은혜요 주일은 그리스도로 성취된 주의 나라의 은혜로 발전 된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에서 이제는 온 땅으로 확장되고 실현된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따라 안식일을 안 지키고 주일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이제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느냐가 문제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안식의 본질과 의미를 담고 가르친 구약에서 안식일의 규례를 따라야 하며 또한 예수께서 오셔서 율법을 완성케 하신 입장에서 가르치신 새 계명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1-13절을 보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고치신일과 제자들이 안식일에 길을 가다가 이삭을 잘라먹은 일로 유대주의자들은 안식일을 위반했다고 정죄하고 비방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구원의 안식으로 주어진 안식일을 모르고 의식적으로 또는 외식 적으로만 지키려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시면서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하면서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해도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볼 때 이제 우리에게 있어 주일이 어떻게 지키며 보내야 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에게 안식일이나 오늘날 교회된 우리에게 주일이나 그날은 구원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의 영원한 안식을 주시려고 오셨음으로 안식일의 주인이라 하셨는데 때문에 그분은 생명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즉 선을 행한다는 것은 그날에 주인 되신 주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주의 날을 세상 평일과 분명 구별하여 온전히 거룩하게 하나님 나라 된 선한모습을 찾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더욱 우리는 모든 인생의 날을 구원을 이루어 가는 삶의 유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하게 주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 시작된 날로 알고 계속 우리 모든 삶이 주의 날로 실현되어 가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주일에 대한 기준과 중심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주일은 구원받은 은혜를 감사의 예배로 교회들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여기에는 세상의 흐름이나 여러 가지 형편이나 다수의 의도를 따라 예배가 변경되거나 줄여져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거져 주신바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데 있기 때문에(엡 1:4-6) 감사와 기쁨으로 예배하는데 종일토록 전념해야 합니다. 계시록에 보여 지는 천국은 영원토록 하나님을 높이며 경배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주일도 주님의 날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거룩함이 세상 날 중에 거룩한 한 날로 교회에 주어진 것입니다. 이 날은 예배를 많이 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그 예배를 통해 주님과 교통의 은혜를 더 입고 그때 주시는 구원을 이루는 말씀을 통해 더욱 하나님 나라를 다른 모든 날에도 실현시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은 온 하루를 복음 안에서 성도의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거기에 구원의 모습과 함께 하는 하나님 나라 된 공동체의 모습이 있고 더나가 평일의 삶에도 실현시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모든 시간들을 예수님말씀처럼 마땅히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구원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 된 모습을 찾는 것으로 구원의 은혜를 가지고 서로 돌아보고 안위하며 구원의 유익을 위해 서로 섬기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교회가 함께 도모해야 합니다.


일에는 평일처럼 사사로운 말이나 사적인 일들과 육신의 흥과 기분을 위한 오락을 행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만 주님 안에서 더 기쁨을 얻고 존귀해 짐을 얻고 약속된 하나님 나라로 자라간다고 이사야는 증거 했습니다(사 58:13-14). 물론 평일처럼 사적인 일을 위해 상거래도 해서는 안 됩니다. 포로 된 생활로 세상처럼 살았던 유대백성이 해방되어 돌아와서도 안식일에 상거래를 하자 느헤미야는 안식일을 범하는 악을 행하여 망한 조상들같이 한다며 강하게 책망합니다(느 13:15-18). 그리고 누구를 위해서도 또한 그 무엇을 위해서 주일을 할애해 주거나 양보해 줄 수 없습니다. 주일은 분명히 주님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구원의 새로운 날로 실현되어 가기 위해 내려 주신 축복의 날로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리에게 주일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 백성이 아닙니다. 교회 된 성도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주의 날로 거룩히 잘 지켜야 할 가장 중심된 이유는 주일을 통해 모든 날을 구원으로 이루어 가기 위해서입니다. 때문에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여 경배하며 하나님과 성령의 교통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은혜를 입고 이제 우리 모두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려지는 영적 예배가 되도록 이제 세상의 날과 세상의 일과 그리고 사사로운 인간 중심의 시간과 형편과 유익과 세속의 문화와 향락으로 빠지는 육신의 즐김과 믿음이 부족한 자들의 요구로부터 주일은 거룩히 지켜져야 합니다. 어떤 자들은 모든 날이 주님의 날인데 주일만 지키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모든 날이 주님의 날이요 하나님 나라 된 모습과 삶으로 이루어가기 위해서 주일은 더욱 성수돼야 하는 것이며 구원이 시작된 날로 구원을 찾아가며 실현시켜가는 날로 온종일 거룩히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일은 그날만을 위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삶이 하나님 나라로 발전 실현되어 가도록 위해 복음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주일을 지키기 위해 많은 손해도 감수했고 핍박도 당했으며 순교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들은 믿음의 지조 없이 주일을 스스로 지워가는 세대가 된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어 감과 연결된 주일의 중요성을 모르거나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주일을 자기 날처럼 세상의 평일처럼 맘대로 형편 따라 점점 지워 없애가는 어리석고 악한 이 세대 교회들은 이 점을 깨닫고 주일을 성령 안에서 구원의 교통을 가지며 복음 안에서 구원의 은혜와 유익된 날이 되도록 찾아가며 온전히 채워가는 개혁적인 변화가 오길 힘쓰며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 된 우리에게 있어 구원을 올바로 이루어 하나님 나라를 실현시켜 가는 것보다 더 보배롭고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게 존귀한 주일을 지워 가야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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