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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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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http://blog.naver.com/malsoom/87671264 |
2009년 8월 30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창세기 3장 19절
설교제목 : 흙의 영성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창 3:19).】
<소금 인형 이야기>
소금 인형 이야기를 최근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설명해주는 참 훌륭한 비유였습니다. 소금인형 이야기를 아시는지요? 소금으로 만들어진 인형, 즉 소금 인형이 어느 날 바다가 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소금은 바다로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에 자신의 근원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닷가로 갔습니다. 바닷물에 발을 들여놓자 발이 없어졌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릎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는 몸이 없어지고 급기야는 전체가 없어졌습니다. 바닷물에 녹은 것이지요. 그때 소금인형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 내가 바다네!” 소금인형은 자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소금인형은 물에만 닿으면 녹아 없어지는 영원히 사라지는 약한 존재입니다. 마치 몇 십년 후 죽음을 맞이 해야 하는 인간이라는 존재와 동일합니다. 소금인형은 자신의 존재(삶의 본질)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바다(생명의 원천, 미지의 세계, 영원한 공간)라는 곳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집니다. 그래서 자신은 녹아 사라졌지만 결국은 바다와 하나가 된(물아일치, 物我一致) 상태, 즉 영원한 존재인 바다와 하나가 되는 깨달음 속에서 편안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언젠가는 녹아 없어질 소금인형 같은 나약한 존재이지만, 그래서 물질적인 인간의 몸은 사라지겠지만, 오히려 그렇게 하느님의 품속에 섞임으로써 하느님과 동일한 존재로 성화(聖化)되는 것입니다.
정말 훌륭한 비유의 이야기입니다.
<성경 이야기>
이제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창 3:19).】 인간은 하느님의 몸인 흙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몸인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당연한 이치이고,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는 섭리이고,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하느님의 몸인 흙에서 왔기 때문에 하느님의 몸인 흙과 가까이 있을 때, 결국 최종적으로는 하느님의 몸인 흙으로 돌아갈 때에만 완전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흙이 해방이고 구원이고 기쁨이고 평안이고 행복입니다.
<현실 이야기>
그런데 오늘날 현대인들은 어떠한가요? 흙의 문화와 친숙한 가요? 그렇지 않고 낯선 가요?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문화는 흙의 문화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현대인들이 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차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현대인들이 흙의 철학과 흙의 섭리, 흙의 정신, 흙의 생리와 벽을 쌓고 있으며, 흙과 동떨어진 삶을 당연시 한다는 점입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가능하겠습니다만, 한 가지 사례를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요즘 도시의 아이들은 집안에 개미 한 마리만 들어와도 난리를 칩니다. 우리 아이들도 집안에 조그만 벌레라도 들어오면 호들갑을 떨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나 한 번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벌레가 살 수 있어야만 사람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온갖 벌레들을 모두 없애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 역시 멸종될 것입니다. 요즘 도시인들은 대리석과 시멘트로 잘 포장된 집과 사무실, 길과 광장에서 살고 있는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대리석과 시멘트에서 생명이 자랄 수 있나요? 그럴 수 없습니다. 대리석과 시멘트에는 생명이 깃들 수 없습니다. 그런 대리석의 문화와 시멘트의 문화, 유리의 문화와 보도블럭의 문화는 흙의 문화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현대 도시인들은 흙의 문화에 애써 등을 돌린 채 살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대리석과 시멘트, 유리에 그 생명의 호흡을 맡기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흙의 정신 이야기>
그러므로 우리 현대인들은 흙의 문화, 흙의 정신, 흙의 철학 … ‘흙의 영성’에 다시금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와 구원, 행복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흙의 영성’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오늘 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흙의 영성은 겸손의 영성입니다. 라틴어로 ‘겸손’을 휴밀리타스(humilitas)라고 하는데, 그 말의 어원은 휴무스(humus, 흙)에서 왔다고 합니다. 흙의 영성은 곧 겸손의 영성입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얼마나 똑똑한가요? 하나 같이 야무집니다. 절대로 손해는 안 보고 사는 사람들이 현대인입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헛 똑똑이’라고 합니다. 헛 똑똑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바보입니다. 진정한 ‘참 똑똑이’는 겸손한 똑똑이입니다. 손해볼 줄도 알고, 싸움에서 질 줄도 압니다. 그러나 그런 큰 마음의 사람이 결국은 인생에서 승자가 됩니다. 이게 흙의 영성이 일깨워주는 겸손의 지혜입니다.
둘째 흙의 영성은 ‘순환의 영성’입니다. 흙의 사람은 “세상 만사가 돌고 돈다”는 점을 깨닫고 있는 사람입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옵니다. 돌고 도는 것이 인생입니다. 가난한 자가 부자가 되고, 부자가 가난한 자가 되는 게 인생입니다. 달이 차면 기울고, 꽃이 떨어져야 열매가 맺는 것이 세상이치입니다. 그게 자연이고 흙의 영성입니다.
여기 한 송이 꽃이 있다고 칩시다. 우리는 흔히 그 아름다운 꽃을 영원히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꽃이 떨어져야 열매가 맺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인들은 어떤가요? ‘꽃이 떨어지면 큰 일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떱니다. 꽃이 떨어지면, 즉 아름다운 얼굴이 늙어 흉해지면 - 출세했던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면 - 많은 재산이 다 없어져 버리면 - 인기를 다 잃어버리면 큰 일 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꽃이 떨어져야 인생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 이치를 분명하게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 곧 흙의 영성입니다.
셋째 흙의 영성은 ‘대아(大我)의 영성’입니다. 흙의 사람은 참으로 큰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가 가능합니다. 우리는 흔히 도시의 거대한 빌딩을 보면서 입을 딱 벌립니다. 50층, 1백층짜리 건물들을 보면서 감탄합니다. 그러나 지구별의 꼭대기에서 세상을 내려 볼라치면 가소로울 뿐입니다. 우주의 끝에서 보면, 1백층 짜리 건물이나 먼지 한 톨이나 매양 같습니다. 그게 그거입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또 이런 이야기도 가능합니다. 우리는 흔히 대통령이 되거나 대기업의 총수가 되는 일을 대단한 일인양 생각합니다. 그러나 장구한 우주의 역사, 즉 수십억년의 역사 속에서 명멸(明滅)했던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의 생노병사(生老病死)를 생각해보면, 우스운 장난에 불과합니다. 영성의 사람은 그렇게 대아(大我)의 사람입니다. 소아(小我)의 사람이 아닙니다.
알렉산더 대왕과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대화 이야기를 알고 계시지요? 20대의 젊은 나이에 세계를 정복해 나갔던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다 주겠으니, 말만 하라.” 이때 디오게네스는 말했답니다. “필요한 것이 단 하나 있다. 지금 나에게 오는 햇볕을 그대가 가리고 있는데 비켜 달라.” 알렉산더는 도시의 사람이었고, 디오게네스는 자연의 사람이었습니다. 흙의 사람이 보았을 때, 그리스 페르시아 시리아 이집트를 차례로 정복하고, 알렉산더라는 이름이 붙은 도시를 70개나 세운 왕이라고 할지라도 가소롭게 보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명예와 재산과 권력은 한낱 부질없는 욕심의 허망한 장난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알렉산더는 요절했고, 그가 정복했던 나라들은 사분오열(四分五裂)로 찢겨졌습니다. 이런 이치를 분명하게 깨닫고 있는 이가 흙의 사람 디오게네스였습니다. 그렇게 흙의 사람은 대아의 사람인 것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흙의 영성’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 흙의 영성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이제는 진리의 길을 몸소 보여주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우리의 생명과 영혼을 언제나 치유해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아름다운 동행이 사랑하는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언제나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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