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시123:1-2 |
---|---|
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15.1.4 주일설교 여의도순복음중앙교회 |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야훼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시편 123편 1∼2절
인내심을 갖고 하나님 기다리는 것이 신앙
기다림에 뜻있어… 주님보다 앞서지 말아야
믿고 기다릴 때 응답받고 기적의 삶 누려
미국의 유명한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그의 저서 「미래의 충격」에서 “이제 세계는 강자와 약자 대신 빠른 자와 느린 자로 구분되며, 빠른 자는 승리하고 느린 자는 패배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오늘날은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기다린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기다림을 이해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탕도 깨물어 먹어야 직성이 풀리고, 커피 자판기 앞에서도 불이 꺼지기도 전에 손을 내밀어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빨리 빨리”가 한국인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표현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빨라지고 사람들은 기다리는 것을 힘들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고, 기다려야 할 일이 많습니다. 밥을 지을 때도 밥이 빨리 되라고 밥솥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면 결국 밥은 설익어서 먹지 못하게 됩니다. 인생도 그와 같아서 뜸을 드리는 시간, 즉 기다림의 시간이 있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기다림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의 여정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천지 만물의 창조주가 되시고,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1. 기다림을 통해 복을 받은 사람들
성경에 보면 오래 기다려 복 받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얻기 위해서 무려 25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창세기 12장 2∼4절에 보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야훼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와서 약속의 아들을 얻기까지 무려 25년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이삭은 모리아 산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에 의해 제물로 드려져야 할 죽음의 순간 하나님의 뜻을 천년 같이 느끼며 기다려야 했습니다. 혈기 왕성한 10대 소년 이삭은 얼마든지 그 상황을 박차고 일어나서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달아날 수 있었으나 이삭은 하나님이 자기를 약속의 아들로 주셨기 때문에 죽음의 최후 순간에도 하나님이 자기를 붙들어 줄 것이라는 것을 믿고 인간적으로 도망치지 않았습니다.(창 22:7∼8) 아들을 잡아서 제물로 드리려는 아버지의 심정도 처참했지만 아버지가 칼을 들어 내리치려는 순간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이삭의 인내는 하나님께 복을 받을 만한 인내였던 것입니다.
야곱은 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봉사하며 기다렸습니다. 창세기 31장 41절은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라고 했습니다. 그와 같은 오래 기다림의 대가로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올 때 수많은 짐승을 거느리고 큰 부자가 되어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17세에 형제들에 의해 노예로 팔린 후 13년 동안 노예생활과 감옥생활을 하며 꿈이 이뤄지도록 기다렸습니다. 그는 종으로 팔렸으나 마음에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텅빈 가슴으로 종살이 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꿈을 매일같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꿈이 요셉을 인도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는 가정총무가 되었고, 감옥에 들어가서는 감옥총무가 되었고, 바로에게 등용 되었을 때는 나라의 국무총리가 되어서 온 나라를 다스리고 중동 일대를 기근에서 건져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40년을 기다려 300만 이스라엘 백성을 430년 동안 종살이 하는 애굽에서 출애굽시켰습니다. 모세는 도망자의 신세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바람과 햇빛과 모래만 가득한 광야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광야의 기다림은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했고, 40년이라는 고독의 시간은 80세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인도하는 지도자가 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신앙의 원리는 인내심을 갖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난 다음에 기다리지 않고 뒤로 돌아가 버리면 하나님의 응답은 거기에서 그치고 맙니다. 하루가 되었든 이틀이 되었든 끝까지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신명기 8장 16절에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4∼26절에 “내 심령에 이르기를 야훼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야훼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야훼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라고 했습니다. 또 로마서 5장 3∼4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기다리면 반드시 응답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기다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인생에 고난이 다가왔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겨울철 주변을 둘러보면 산천이 다 눈으로 덮여서 생명의 기운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땅 속에는 많은 생명들이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봄이 되면 마치 죽었던 것 같았던 자연에서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눈에는 아무 증거 보이지 않고, 귀에는 아무 소리 들리지 않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이 죽은 것 같은 절망 속에서도 결국에 생명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기다리지 못한 사람들
성경에 보면 기다리지 못해 하나님의 복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예 또한 많이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 율법을 받으러 간 사이에 기다리다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을 협박했습니다. “모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하나님 말씀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가고 난 다음 흔적이 없다. 그러니 이제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라”고 백성들은 외쳤습니다. 그 협박을 감당하지 못한 아론은 백성들이 내놓은 금붙이를 모아 황금 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보며 신이라고 절을 하고, 광란하며 춤을 추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 돌판을 던지며 크게 노하였고, 진노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날에 3000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벌하시고 죽게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2장 19∼20절에 “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니라”고 이날의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되었을 것을 기다리지 못해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최초의 이스라엘 왕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에 앞서 오직 제사장만이 감당해야 할 제사를 자신이 주도함으로 비극적인 인생의 결과를 맞아야 했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었을 당시 블레셋의 대군이 이스라엘을 쳐서 멸하려고 공격해 왔습니다. 블레셋 군대들은 점점 가까이 오며 이스라엘을 압박하는데 제사를 집례 할 사무엘은 오지 않으니 사울의 마음에는 조급함이 다가왔고, 그래서 자기 지위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제단 위에 불을 붙여 제물을 드리는 죄를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무엘상 13장 13∼14절에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야훼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야훼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야훼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야훼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야훼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기다리지 못한 사울은 하나님이 주신 왕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기다림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릴 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실까’ 꿈꾸고 바라보고 기도하면서 기다리면 낙심에 빠지지 않고 즐겁고 기대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데, 꿈을 가지지 않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도우신다고 스스로 격려하지도 않고, ‘왜 빨리 응답 하시지 않는가? 하나님 너무 늦게 응답하시는 것 아닌가?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실 모양이네. 그만 두자. 가자! 치워버려라!’고 기다리지 못하면 결국에는 응답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게 하십니다. 물론 기도하자마자 하나님이 응답주시는 은혜도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다 이루어 놓은 것은 우리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외에 세상에서의 여러 가지 일들, 즉 집을 사고 판다든지, 사업을 시작한다든지, 공장을 세운다든지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은 기도하고 난 다음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여의도로 교회를 옮길 때 서대문에서 기도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때 우리 성도들이 제일 걱정한 것이 있습니다. ‘여의도로 나가면 버스비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교인들이 얼마나 가난했던지 그들이 걱정했던 것은 건물을 짓고 교회를 여는 것이 걱정이 아니라 마포다리를 건너서 여의도로 가는 버스비가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가라고 말씀하시는 데로 가서 교회를 짓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며 하나님을 기다리게 되었고, 하나님을 기다리게 되니까 하나님이 서울시를 통해서 다리도 놔주시고 버스도 다니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이렇게 널찍한 곳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50년이 넘는 시간을 목회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에게서 기다리는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빨리 응답을 주시지 않아도 기다립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시옵소서’하며 기다리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희한하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필요할 때 도움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보다 앞서가려고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3. 기다릴 필요 없는 하나님의 은혜
고린도후서 6장 2절에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고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기다리지 않고 구할 수 있는 은혜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십자가에서 2천년전에 몸 찢기고 피 흘려서 우리의 죄를 다 청산했기 때문에 죄를 용서받기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내것이라고 주장하면 되는 것입니다. 오순절 날 이미 성령을 보내 주셨기 때문에 성령을 받기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성령을 주시옵소서” 하며 감사하고 찬양하면 방언을 하게 되고 성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 2천년전에 주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대가를 다 지불했기 때문에 병 고침을 받기 위해 기다릴 필요 없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병이 고침을 받은 것을 받아들이고 마귀를 내어쫓고 건강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받기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은 이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셨습니다. 저주는 예수님이 걸머지셨고, 고통도 예수님이 걸머지셔서 십자가에서 몸 찢기고 피 흘려서 저주와 가난과 고통을 다 청산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기다릴 필요 없이 일어서고 앉고 걸어갈 때 늘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다. 나는 형통한 사람이다”라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 천국 가기 위해 기다릴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죽어서 천국가기 위해서 기다릴 필요 없이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곧장 예수님의 손잡고 천국으로 들어갈 수가 있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갈 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되며,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에 ‘모소’라는 대나무는 심은 후 5년 동안은 땅 밖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마치 성장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다음 해부터 이 나무는 싹이 땅밖으로 나와서 하루에 한 자씩 자라 6주 만에 15m 이상 큰 대나무가 된다고 합니다. 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땅 속에서 사방으로 튼튼한 뿌리를 내렸던 것입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고 해서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면 그만큼 열매를 더 크게 맺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의 이치도 우리 인생의 이치과 같습니다. 우리는 오랜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이 나중에 더 큰 은혜를 주심을 의심치 말고 믿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4. 우리는 무엇을 기다려야 하나?
그러나 다른 삶의 여러 가지 일에 대해는 우리가 기도하고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야훼’라고 말씀했기 때문에 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종들이 상전의 손을 바라듯이, 여종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고 기다리듯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또 일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을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23편 1절로 2절에는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야훼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고요하고 잠잠한 음성으로 소원을 주시고, 그 걸음을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다릴 때 마음에 강렬한 소원이 생기면 그 길이 하나님 뜻임을 알고 시행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불안이 다가오고, 소원이 생기지 않는데 내가 나아가면 하나님 뜻이 아닐 때가 다반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이 마음에 소원이 되고 레마가 되어 그대로 실천하게 되면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을 계획할 때 일의 성사는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이 일해야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잠언 16장 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시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상세하게 계획을 세워 놓아도 계획이 성취되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해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 19장 21절에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야훼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도 오직 하나님 뜻만이 계획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다려야 합니까? 예레미야 29장 11∼13절은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했습니다. 크고 비밀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때까지 부르짖어 기도하며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레미야 33장 3절에도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앞서 가지도 말고 너무 늦게 가지도 말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현재 결정도 내리게 하시고, 장례에 일어날 일도 보여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해 주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기다리고 바라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여 섬기며 기다리는 자를 위해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고 일을 성취하여 주시고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해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면 4차원의 영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손을 잡고 3차원인 우리의 개인 생활, 가정 생활, 사회 생활을 변화시키고 창조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캄캄한 깊음 위에 있어 어찌할 바를 모를 때 하나님이 우리를 버렸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 운행한 것처럼 그 문제 위에 성령이 운행하고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구만리장천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들어와서 4차원의 인생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외롭지 않습니다.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우리는 기도하고 기다리고 믿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며 나가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좋으신 하나님! 인생의 수많은 일들이 우리를 조급함 가운데 몰아넣어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하게 하고, 응답을 기다리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분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응답이 이르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 응답받는 인생이 되게 하시고, 축복받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